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30)
제30화
30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12)
“오오, 역시 그랬나! 이거 괜히 연기할 필요가 없었군.”
“그렇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이곳에 도착하면 악마의 편린님을 따라 움직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까득.
루나가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녀도 내 곁에서 거리를 뒀다.
“그, 그럴 리가! 제로가 그럴 리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레이몬은 내 곁을 지켰다.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충성도가 높은지 모르겠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큭큭, 간단하지. 내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도록 도우면 된다네.”
“혼자서도 가능한 거 아니었습니까? 침식의 초기 타입이지만, 그 정도는 가능한 걸로 아는데.”
“으음! 내가 잠들기 이전에 사고를 당해서 말이지. 성검이라니…… 상상도 못 했지. 그래서 힘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야.”
“성검이라니. 그건 어딨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군. 내가 잠들기 전에는 저곳에 있었는데…….”
악마의 편린이 하나뿐인 눈동자를 움직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사람의 뼈와 옷가지. 그리고 부서진 검의 흔적이 있었다.
“친구! 친구!”
앵무새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었다.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었다. 루터스의 흔적이다.
악마의 편린과 치열한 전투를 펼친 후에 전사했다.
그게 게임에서 만든 스토리의 일부였다.
“크큭, 꼴이 좋군. 뭐, 나도 큰 피해를 입어 어쩔 수 없이 휴식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상관없어. 자네가 왔으니 말이야.”
“힘은 어디까지 회복한 상태입니까?”
“20% 정도일까. 쓸 수 있는 능력도 침식과 가시 촉수뿐이야. 제길, 어쩌다 내 꼴이 이렇게…….”
악마의 편린 주변으로 검은 촉수가 꿈틀거렸다.
끝이 송곳처럼 날카로운 촉수. 저게 놈의 공격 방식이었다.
“저런, 움직이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렇다네. 침식의 힘도 예전 같지가 않아. 공간을 한 번에 차지할 수는 없을 듯하군. 자네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지 뭔가.”
“흐음, 그분에게 다른 명령은 없었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이라거나…….”
“음? 나를 완성한 후 복제형을 만든다는 계획이었지. 제국 북쪽에 있는 새하얀 평원에서도 다른 계획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얼핏…… 잠깐만.”
악마의 편린이 눈동자를 한 바퀴 움직였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근데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건가? 잠들어 있던 나보다 자네가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터인데.”
아, 그거?
왜냐하면…….
“후후, 제가 당신의 적이기 때문이죠.”
“……!!”
놈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가 놀랐다는 걸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 이이이이이 이런! 간악한 인간 놈 같으니!”
“후후, 멍청하군요. 과연, 악마답습니다. 인간보다 거짓말을 못하는 종족이라 불릴 만해요.”
“이 건방진 놈이 뭐라는 거냐! 거짓말은 악마의 것이다!”
“네, 다음 악마 나와 주세요. 패배자랑 노는 건 재미가 없어서…….”
“이, 이놈이……!”
알이 거세게 진동했다.
진짜로 화났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떨림이었다.
부들거리는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루나가 다시 내 곁에 서며 말했다.
“잘했어.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고.”
“……아까 이를 가시지 않았습니까?”
“아하하…… 여, 연기지, 연기! 내가 친구를 배신할 리 없잖아? 내 연기 어땠어?”
그게 연기였다면 배우로 대성할 수 있을 거다.
다음은 로델린이었다.
“제로 군, 한 가지만 대답해 주게.”
“말씀하시죠.”
“저놈이 악마의 편린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건가?”
내가 그걸 입에 담았던가?
실수다. 하지만 변명거리는 차고 넘쳤다.
“문에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문이라고?”
“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쓰여 있다.
악마의 편린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이곳에 잠시 봉인한다고.
‘50년간 깨우지 말라는 말도 쓰여 있지만, 그것까지 읽을 수 있다고 하면 역효과가 나겠지.’
악마 고고학은 생각보다 많이 발전한 학문이 아니다.
조금만 연구하려고 해도 흑마법사라며 화형을 했으니까.
최근에서야 그 필요성이 대두된 학문.
그러니 말을 아끼는 게 맞다.
“빌어먹을 인간 놈! 다 죽여 주마!!”
악마의 편린이 있는 곳에서 검은 오라가 터져 나왔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포효.
동시에 내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악마의 편린을 처치하세요.
보상 : 300exp, 30골드
페널티 : 사망
이 게임에는 히든 퀘스트도 존재한다.
애초에 퀘스트와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옛날 게임이니까.
이 정도면 에피소드1치고 보상도 빵빵한 편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사망 페널티인가? 레벨 차이가 심하긴 한가 보군.’
페널티가 사망이라는 건, 그보다 심한 페널티를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죽은 뒤에 스탯 감소를 비롯한 다른 페널티를 줘 봤자 뭐 하겠는가. 어차피 죽은 뒤인데.
즉, 현재 내 스펙으로 클리어하기에는 난도가 너무 높다는 뜻이자 배드 엔딩에 가깝다는 뜻이기도 했다.
플레이에 각별한 주의를 요하라는 친절한 안내라고나 할까.
‘정보창.’
[악마의 편린 : S]Lv : 39
힘 : 58
민첩 : 39
지능 : 18
체력 : 350
마력 : 250
성향 : 악
누군가의 연구로 인해 탄생한 작품. 상당한 실력자가 만든 것으로 보인다.
주변을 점차 잠식하며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인간에게 엄청난 악의를 갖고 있다.
현재 성검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능력치가 감소한 상태이다.
보유 스킬 : [공간 장악S], [침식B], [마계술B], [부식D]
“다 죽여 주겠다!!”
푸확!
칠흑의 가시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저걸 맞는다면 저놈의 말처럼 죽고 말 거다.
내 레벨은 고작 12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우리 애들이 좀 세거든.’
카강! 챙!
로델린과 루나가 내게 향하는 가시를 부쉈다.
루나는 레벨이 낮지만, 애초에 주연급에 맞먹는 스펙을 가진 아이다.
나와 같이 히든 슬라임을 잡았으니, 레벨도 평소보다 높을 것이고.
‘공격 특화 캐릭터라 공격력도 강하고.’
방어력과 체력이 부족할지는 몰라도, 공격력은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게다가 악마의 편린은 성검의 영향으로 스펙에 비해 약한 상태.
그러니 루나가 가시를 한 번에 부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대지 뒤집기!”
“일섬!”
투쾅!
카가각!
땅이 뒤집히고 섬광이 번쩍이는 검격.
악마의 편린의 몸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피해가 있지만, 미미하다.
악마의 편린이 가시를 세우며 몸을 방어했기 때문이다.
“큭!”
“으윽!”
동시에 로델린과 루나가 뒤로 물러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팔과 다리가 옅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악마의 편린이 지닌 [공간 장악]과 [침식] 스킬 때문이다.
‘침식은 스킬 레벨이 낮지만, 공간 장악 스킬 탓에 대미지가 더 강하지.’
정확히는 자신의 공간으로 선언한 영역에서 스탯과 스킬의 효율이 오른다.
현재 검붉게 물든 땅이 [공간 장악]에 성공한 공간.
그리고 점차 저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게임에서는 침식의 피해를 연속으로 세 번 받으면 즉사하는 방식이었지.’
연속으로 세 번.
즉, 중간에 한 번 범위 밖으로 나가면 초기화가 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고인물들은 세 캐릭터로 돌아가며 대미지를 분산,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물론, 최소한의 체력도 필요해.’
침식에 당할 때도 피해를 입긴 하니까 말이다.
로델린과 루나가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위험하다.
로델린은 괜찮겠지만, 루나의 피는 간당간당할 거다.
“크크크크큭! 다 죽여 주겠다!”
“루나 양, 물러나게. 내가 혼자 상대할 테니.”
“젠장……!”
하지만 로델린도 물러나야 할 때다.
현재 두 번 침식에 당한 상태니까.
그걸 증명하듯, 목까지 침식이 차오른 상태였다.
“모두 이쪽으로 오십시오.”
“제로 군, 침식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 시간이 지체된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설명해 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세요.”
루나가 즉각 뒤로 물러나고, 로델린은 잠시 생각한 뒤 내 곁으로 다가왔다.
“크크크…… 인간 놈들. 그래 봤자 소용없다. 이 몸은…….”
“거 좀 조용히 해 주십시오. 회의 중인 거 안 보입니까?”
“건방진 인간 놈! 당장 죽여 주겠다!”
“사거리 안 닿는 거 다 압니다. 다리도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
촥!
가시를 뽑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에서 20m는 떨어진 곳에 박혔다.
악마의 편린이 ‘흠흠, 오랜만에 깨어났더니 관절이 평소 같지가 않군. 스트레칭이나 해야지’라는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주위에 가시를 꽂았다.
자기도 머쓱했나 보다.
우리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해해 주기로 했다.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사실 조금 위험…… 음?”
로델린이 몸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색으로 물들었던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침식의 초기 형태이기 때문인지 변경에 있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군. 몸을 좀먹는 속도는 빠르지만 지속력이 형편없는 모양이야.”
“후후, 조루라니. 안타깝군요.”
로델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진짜 야한 거에 면역이 없다니까.
‘난 조루가 아니라 오랜만에 일어나서 피곤한 거야. 아, 그냥 혼잣말이지만 일단 알아 두라고’라는 꿍얼거림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악마도 이런 거에는 민감한 걸까?
“전략을 설명하겠습니다. 침식에 두 번 당하면 무조건 물러서세요. 완벽하게 회복할 때까지 침식 영역 밖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이해했네. 하지만 공격이 문제야.”
“제가 침식된 땅을 제거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저를 보호해 주세요.”
“……침식된 땅을 없애겠다는 뜻인가? 그건 불가능하다네.”
로델린은 최초로 침식이 시작된 변경에 있던 사람이다.
그러니 잘 알고 있을 거다. 침식은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걸.
막대한 신성력으로만 제거가 가능하니, 로델린의 말이 맞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저건 완전한 침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초기 타입이죠. 그러니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 치지. 그럼 어떻게 제거한단 말인가?”
싱긋 웃음을 흘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내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아주 크고 아름다운…… 대걸레가.
“……설마, 아니겠지.”
로델린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하지만 그 설마가 맞다.
“청소해 주자고요. 저 더러운 땅을.”
잠재력 100포인트나 지불하고 얻은 비운의 스킬.
[청소S]의 힘으로.* * *
앵무새의 일기#4
“친구!”
갑자기 무너진 땅. 떨어지는 루터스를 향해 날았다.
내 속도보다 훨씬 빨리 떨어지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풀썩!
“크억!”
루터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히 그는 죽지 않았다. 겹겹이 쌓인 식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으으…… 난 괜찮아. 그나저나 여긴 뭐지?”
검게 변한 식물들.
온통 죽어 버린 식물투성이다.
분위기도 뭔가 음산했다.
“응? 저건…….”
검붉게 물든 대지. 그 중앙에 검은색 알이 하나 있었다.
“웬 놈이냐?”
검은색 알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하나 튀어나왔다.
동시에 검은 오라가 우리를 덮쳤다.
이렇게 죽는…….
화악-!
죽었다고 생각할 때였다. 루터스가 쥔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성검……!”
“크아악!!”
검은색 알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수백 개의 가시가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저게 바로 악마라는 놈인가……!’
부웅-!
푸확!!
루터스가 검을 휘두르면서 내뿜어진 신성한 빛.
수백 개의 가시가 녹아 스러졌다.
더 이상 뭐라 할 것도 없었다. 전투가 시작됐다.
카가각!
“제길!”
루터스는 다가갈 수 없었다. 공격을 막기에만 급급할 뿐.
앵무새인 나지만, 대련을 많이 봐 온 나다.
승산이 없다. 이대로는 진다.
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루터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사람을 데려와. 그때까지 내가 버티고 있을 테니까.”
안 된다. 그럴 수는 없다.
친구인 너를 두고 갈 수는 없다. 같이 도망가면 되잖아, 이 바보야!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걸까.
루터스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다치면 안 되니까.”
“…….”
“반드시 사람을 데려올 거잖아. 넌 친구니까 믿을 수 있어. 팀플레이야, 기억하지?”
팀플레이.
맞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지만, 우리라면 이길 수 있다.
내가 금방 갔다 올게.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텨 줘, 친구야.
누구보다 빠르게 날았다.
바닥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지만, 성검이 뽑히며 생긴 틈이 있었기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상으로 뛰쳐나옴과 동시에 외쳤다.
“악마! 도와줘! 악마!”
도와주세요! 악마가 나타났어요!
“친구! 구해!”
제 하나뿐인 친구를 구해 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