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31)
제31화
31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13)
“크크크! 다 죽여 주마! 내가 조루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마!”
악마의 편린이 마기로 만든 가시를 마구 휘둘렀다.
아까부터 신경 쓰고 있었구나?
악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심한 놈이다.
“……침식 범위가 더 늘어났군.”
로델린이 침음을 흘렸다.
아까보다 더 넓어진 검붉은 땅에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조루…… 아니, 악마의 편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주변을 침식시키며 착실하게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후후, 괜찮습니다. 계획대로 다 잘될 겁니다.”
“……그 계획이 너무 허무맹랑해서 그렇지.”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로델린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단단하게 쥐고 있는 대걸레.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들고 악마랑 싸우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검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라니.’
믿을 수가 없을 거다.
악마와의 싸움을 직접 목도한 적이 있는 로델린이라면 더더욱.
“후후, 그럼 가겠습니다. 진형은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입니다. 주의할 점은 하나뿐입니다. 다들 기억하시죠?”
“물론이다. 침식에 두 번 당할 시 이탈 후 회복을 기다렸다 다시 돌입한다. 확실히, 당해 보니 이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 같군.”
“좋아! 가 보자고!”
루나와 외침과 함께 모두가 진형을 갖췄다.
내가 선두, 레이몬이 두 번째, 루나가 맨 뒤였다.
로델린은 내 앞. 정확히는 조금 앞쪽에 비스듬히 자리했다.
타닷-!
“크크크! 오너라! 다 죽여 주…… 응?”
악마의 편린이 당황하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돌진하지 않았으니까.
돌진은커녕 악마의 편린을 가운데에 두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회의까지 하며 준비를 단단히 한 놈들이 갑자기 운동장을 도는 것 같은 행위를 한다?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다.
“네놈들 지금 대체 뭘 하는…… 응?”
악마의 편린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슬슬 보였기 때문일 거다. 아니면 느낀 거거나.
자신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침식이!? 어, 어떻게……!”
놈의 눈이 볼록 튀어나왔다. 사람으로 치면 부릅뜬 경우일 거다.
이내 경악에 가까운 외침이 공동에 울렸다.
“네, 네놈 지금 뭘 하는 거냐!”
“보면 모릅니까? 청소하잖아요!”
“아니!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음, 아무래도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가 보다.
착한 나니까 설명해 줘야지.
그러니까 내가 이 공략법을 떠올린 건, 지난주 초. 학기가 막 시작했을 때다.
레이몬, 루나와 친구가 된 후, 앵무새 덕분에 우연히 두 번째 퀘스트를 클리어한 때.
‘앵무새에게 청소 스킬을 사용했었지.’
앵무새의 존재와 그 가치를 알고 있었지만, 전력상의 문제로 에피소드3 이후에나 클리어하려고 했던 나다.
보답이라 하기엔 뭐하지만 [청소]로 앵무새를 깨끗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확인하게 된다.
‘청소 스킬로 침식을 지울 수 있다는 걸.’
고인물들이 이 정보를 몰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청소] 스킬의 레벨을 S까지 올릴 수 있는 건 에피소드 후반, 또는 ‘잠재력 도박’을 했을 때만 얻을 수 있으니까.잘은 몰라도, 잠재력 도박으로 [청소]를 얻었던 사람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떤 미친놈이 [청소]를 가지고 플레이하겠는가.
‘차라리 게임을 재시작하는 선택을 하겠지.’
S급 스킬의 힘은 위대했다.
대걸레를 땅에 갖다 댄 채 달리기만 해도 쭉쭉 잘 밀린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델린이 헛웃음을 지었다.
“침식 제거가 이토록 쉬울 줄은 몰랐군.”
“후후, 프로토타입의 침식이니까요. 진짜 침식은 이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군.”
진짜로 기분이 좋은지, 로델린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가문이 있는 변경을 지금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있을 테니까.
웃고 있던 로델린이 돌연 검을 휘둘렀다.
캉!
“범위 안에 들어왔나 보군. 모두 긴장감을 끌어올리도록!”
검은 가시를 쳐 낸 로델린이 외쳤다.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정도는 다 막을 수 있는 실력을 갖췄으니까.
‘나만 빼고.’
당분간 이대로 빙빙 돌면서 침식을 제거할 생각이다.
로델린과 루나의 공격이 가능해질 때까지.
게임으로 따지면 악마의 편린 주변으로 땅 두 칸 정도의 거리일까?
‘공격 가능한 거리가 되면 로델린이 알려 주기로 했지.’
그 전까지 내가 할 일은 청소뿐이다.
참고로 한 군데만 뚫는 건 비효율적이다.
악마의 편린도 한 군데만 방어하면 되니까.
그러니 사방팔방을 다 제거한 뒤, 로델린과 루나가 각자의 판단하에 공격하는 방식이 좋다.
“이, 이…… 빌어먹을 놈들이!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악마의 입에서 정정당당이 나오다니. 세상 말세다.
그리고 대걸레 정도면 충분히 정정당당하지 않나?
“성검을 든 놈과의 싸움에서도 이긴 나다! 그런데 내가 그깟…… 그깟……!”
“대걸레에게 질 줄은 몰랐죠? 모든 역사서에 기록되겠군요. ‘대걸레’에게 최초로 패배한 악마, ‘악마의 편린’으로.”
“크, 크아아아아!! 죽어라!!”
검은 가시가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로델린이 가시를 부수고, 레이몬은 가시를 흘리며 나를 보호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엄청난 검술 실력이다.
“오, 뭐, 뭔가 평소보다 더 편한 느낌이에요.”
“후후, 제가 뭐랬습니까.”
“어, 어떻게 된 걸까요. 그, 그저 손만 바꿨을 뿐인데.”
……그야 당연하잖아. 넌 왼손잡이니까.
그나저나 왼손으로 처음 검을 쓰는데 저게 가능하다니.
진짜 미쳐 버린 재능이다.
“죽어! 죽어!”
캉! 카캉!
창과 방패의 대결이 계속됐다.
로델린은 다른 방식의 공격이 펼쳐질까 봐 근심하고 있지만, 악마의 편린이 가진 공격법은 저거 하나뿐이다.
[마계술]의 힘으로 만든 마기 가시.이거 하나뿐.
하지만 에피소드3 이후에나 클리어할 수 있다.
‘침식 세 번 즉사 룰의 위엄이지.’
체력이 얼마가 되든, 침식의 땅에서 세 번 연속해서 활동하면 즉사.
여기에 마기 가시와 침식의 땅에서 활동할 때 받는 대미지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체력이 어느 정도 받쳐 주는 에피소드3 이후에나 도전하는 게 고인물의 원칙이었다.
‘하지만 만약 침식이 없다면 난이도는 어떻게 될까?’
엄청 쉬워진다.
공격 방법이라고는 마기로 만든 가시뿐.
지금 악마의 편린은 샌드백이 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제로 군, 사정거리에 들어왔네!”
“좋습니다. 진형을 바꾸겠습니다!”
로델린과 루나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더니, 악마의 편린의 앞과 뒤에 자리했다.
레이몬은 내 곁에, 이전 로델린의 자리를 차지했다.
“대지 뒤집기!”
“일섬!”
콰가가가각-!
검은 피가 튀었다. 악마의 편린이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이, 이놈들이!”
루나가 계속해서 공격했고, 로델린은 살짝 물러나며 한 번 공격을 쉬었다.
둘의 공격 타이밍이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우리는 결국.
‘한 번씩 물러나야 하니까.’
게임으로 치면 악마의 편린이 있는 곳으로부터 두 칸의 땅.
저기까지 내가 들어가서 지우는 건 무리수다.
‘회피 확률이 낮아지니까.’
거리가 가까울수록 회피 확률 감소, 멀수록 증가.
그게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다.
게다가 레이몬의 방어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리고 이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지.’
“제, 제로! 저 잠시 빠질게요!”
“……후후, 알겠습니다.”
레이몬이 뒤로 물러났다. 몸의 일부가 보랏빛으로 변한 상태다.
침식의 영향을 세 번 받으면 즉사라는 룰.
이건 로델린과 루나뿐만 아니라, 레이몬에게도 유효했다.
처음 빙글빙글 돌며 침식을 지울 때는, 로델린과 레이몬이 교대하며 침식의 세 번의 중첩을 피했다.
하지만 지금은 레이몬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이 순간이 문제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작은 틈.
언젠가는 이 틈이 존재한다는 걸 악마의 편린도 눈치챌 거다.
레이몬이 두 번 침식된 타이밍에 나도 같이 물러서면 되는 거 아니냐고?
불가능하다.
‘침식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악마의 편린과 가깝기 때문일까.
잠시 쉬는 것만으로도 검붉은 땅이 쭉쭉 늘어난다.
내가 쉬지 않고 청소를 해야 로델린과 루나가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는 땅이 생길 정도다.
‘시간은 놈의 편이야.’
악마의 편린의 공격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잔상처는 피할 수 없다.
로델린은 괜찮겠지만 루나와 레이몬, 나는 체력이 낮아서 피해가 누적되면 쓰러지고 만다.
즉, 레이몬이라는 방패와 루나라는 검이 활동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한 기회라는 거지.’
청소에 집중하던 순간이었다.
검은 가시가 레이몬의 방어를 뚫고 들어왔다.
콰직!
“앗! 죄, 죄송해요!”
내 몸에 닿지는 못했지만, 대걸레가 부서지고 말았다.
“크크크크큭! 이제는 청소를 못 하겠지! 꼴이 좋구나!”
악마의 편린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래서.
나도 따라 웃어 주었다.
“후후, 고맙습니다. 마침 바꾸려던 참이었거든요.”
“……?”
쑥-.
품에 손을 넣었다 꺼냈다.
그러자 내 손에 대걸레가 생겼다. 그것도 2개나.
순간, 악마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치 ‘그게 왜 거기서 나와?’라는 표정 같다.
“후후후, 학교에 있는 모든 대걸레를 가져왔죠!”
“…….”
악마가 벙쪘다.
눈만 있는 놈이지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다니. 역시 나는 대단하단…….
“……제로 군.”
“예?”
“학교의 자원을 함부로 훔치는 것도 모자라 손상시키다니. 자네에게 벌점 1점을 부여하겠네.”
“…….”
로델린이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대걸레 좀 훔친 걸로 벌점을 받다니.
젠장. 이게 다.
저 빌어먹을 악마 놈 때문이다.
* * *
앵무새의 일기#5
“악마! 악마!”
“아, 악마라고? 어디?”
“뭐야. 루터스의 앵무새잖아. 저런 말은 어디서 배워서……. 저리 가!”
아니, 진짜 악마가 나타났다고!
아카데미를 돌면서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는다.
“악마! 악마!”
악마가 나타났어요.
“구해 줘! 친구!”
구해 주세요. 제발 누가 좀.
“친구!”
하나뿐인 제 친구를 구해 주세요.
…….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돌팔매질에 맞은 몸도 너무 아프다.
‘친구는 괜찮을까?’
비틀거리면서 성검의 무덤으로 향했다.
성검이 뽑힌 구멍을 통해 다시 안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그런데.
“뭐지? 어째서 성검이…….”
검은 가면을 쓴 여자가 서 있다. 아니, 공중에 떠 있다.
내가 평범한 앵무새라고 생각한 걸까?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흠, 등잔 밑이 어둡다는 전략이었는데 실패하다니. 아쉽게 됐군요.”
전략? 그렇다면 저 아래에 악마를 놓은 게 바로…….
“뭐, 됐어요. 프로토타입에 불과하니까. 실험 결과도 나쁘지 않고. 간단히 함정만 설치해서 내버려 두죠.”
네놈이구나. 네놈이 악마를 심었구나!
“악마!”
“꺄앗! 뭐야!”
부리로 공격했지만, 볼에 생채기만 생겼을 뿐이다.
젠장, 난 왜 이리도 약한 걸까.
“앵무새? 네까짓 게 감히 내 얼굴에 상처를 내!”
파직!
검붉은 기운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내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