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33)
제33화
33화. 광대와 영웅, 그리고 앵무새(15)
오색 깃털이 흩날린다.
검은 가시에 찔린 앵무새가 힘을 잃은 채 땅에 털썩 떨어졌다.
“레이몬 군! 돌격하세요!”
“네, 넵!”
침식의 누적 횟수를 초기화한 레이몬이 돌진했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청소] 스킬을 사용하면서.
‘젠장!’
분노에 이성이 마비돼 멍청하게 달려든 게 아니다.
충분한 생각을 거친 결론이었지.
내가 달려든 이유 첫 번째.
앵무새가 죽은 이상, 지원을 와 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체력을 최대한 깎은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두 번째, 죽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러나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식료품을 아껴 먹으며 구출을 바라는 요행뿐.
그 터무니없는 확률에 기댈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달려든 세 번째 이유…….
‘짜증 나잖아.’
새로운 공략이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도.
악마의 편린이 [부식] 스킬을 쓰게 된 터무니없는 이유도.
앵무새가 죽으면서 히든 피스를 얻을 기회를 잃었다는 것도.
그리고.
내 무리한 공략 때문에 비극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루터스와 앵무새의 이야기도.
전부 다.
짜증 나니까.
그래서 달려드는 거다.
“크크크! 죽어라!”
악마의 편린이 웃었다. 승리를 자신하는 듯한 웃음이다.
하지만.
‘이쪽도 승산은 있어.’
유일하게 하지 않았던 수를 둔다. 아니,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되는 수를 둔다.
바로, ‘나’라는 말을 사용하는 수를.
“관통만 피하면 됩니다! 스치는 공격은 그냥 두세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가시를 막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레이몬이었으니까.
‘충분히 가능해. 우리 레이몬인 너라면!’
거리가 가까울수록 회피 확률이 떨어지는 게임의 특성.
하지만 레이몬은 그 반대인 특수한 캐릭터다.
체력이 낮아질수록, 적과 가까워질수록 회피율이 상승한다.
떨어지는 회피율보다 상승하는 폭이 더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탱커 포지션을 맡지.’
그러니까 악마의 편린의 공격 정도는 우습게 쳐 낼 수 있을 거다.
레이몬의 팔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첫 번째 침식.’
나는 그의 뒤에서 [청소]를 하며 가고 있기 때문에 침식당하지 않았다.
캉! 카칵!
레이몬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관통될 만한 공격은 쳐 내고, 스칠 만한 공격은 그냥 둔다.
그걸 구분할 수 있다니. 내가 시키긴 했지만, 진짜 엄청난 놈이다.
촥! 촤촥!
“큭!”
검은 가시가 왼팔에 스쳤다.
마치 채찍과도 같은 공격.
옷을 입고 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스친 곳의 피부가 너덜너덜해졌다는 걸.
레이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팔과 다리, 몸, 뺨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정보창.’
남아 있던 20pt.
모든 스탯을 체력에 쏟아부었다.
아까워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생사의 갈림길이니까.
‘버텨라, 버텨!’
상처를 입으면서도 전진, 또 전진했다.
레이몬의 얼굴 일부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두 번째 침식 중첩.
손에 있던 대걸레를 집어 던지며 외쳤다.
“레이몬 군! 검을 넘기세요!”
레이몬이 마지막 공격을 쳐 냄과 동시에 내게 검을 넘겼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마주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라는 걸. 두 번째 침식이 중첩된 상태인데도 말이다.
“물러서세요! 제 공격 범위에 휩쓸립니다!”
“아…… 네, 넵!”
그제야 레이몬이 이탈했다.
동시에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을 때였다.
“큭!”
전신에 격통이 느껴지더니, 손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첫 번째 침식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즉.
‘아직 한 번 더 버틸 수 있다.’
악마의 편린이 눈앞에 있었다. 게임상으로 따지면 한 칸과 두 칸 사이쯤일까.
반쯤 부식된 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튀어나온 검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단단히 붙들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동시에 [눈 뜨기]를 사용했다.
“후후, 제가 나서게 하다니. 어쩔 수 없군요. 보여 드리죠, 진짜 ‘일섬’을.”
“……!!”
악마의 편린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 뜨기] 스킬, 초 근접한 거리, 루나의 일섬 자세까지.놈의 모든 신경이 나에게 쏠렸다.
파직-.
“큭!”
한 발을 앞으로 내딛자, 또 한 번의 격통이 몸을 쓸고 지나갔다.
두 번째 침식이 중첩됐다는 뜻이다.
이제 한 번만 더 당하면 즉사 판정이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어!’
자세를 취한다.
살짝 굽힌 왼쪽 무릎, 그에 맞춰 직각으로 세워지는 검집.
검을 뽑는 손목의 각도까지.
[‘흉내쟁이’가 발동합니다.]여기에 광대에게 받은 [흉내쟁이] 스킬까지 발동하자, 완벽한 일섬의 자세가 됐다.
악마의 편린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가시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미안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해.
너희들의 복수를 직접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희들의 진혼을 달래 줄 수 없을 정도로 약해서.
난 약하니까, 그러니까 대신 부탁할게.
“후후, 뒤는 확인하셨나요? 아, 눈이 1개라 그건 불가능하려나?”
“……!!”
모든 가시를 내게 썼으니, 절대 막지 못할 거다.
악마의 편린 뒤쪽에서 심판이 내려온다.
루시드 가문류 첫 번째 비기.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대지 뒤집기!
일섬(一閃)!
* * *
콰가가가가각-!
콰지직!
비산하는 땅과 돌덩이, 빛나는 섬광, 그리고.
“키에에에에엑!!”
비명과 함께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악마의 체액과 살점.
몸을 바닥에 한층 더 밀착시켰다.
툭- 투둑-.
잠시 후, 소음이 멎었다.
머리에 가득한 먼지와 돌 부스러기를 털어 내며 주변을 살폈다.
악마의 편린은 온데간데없었다.
뒤집어진 땅과 한 줄기 검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
“야! 괜찮아?”
“제로 군! 괜찮은가?”
“흐어엉……!”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근데 레이몬 쟤는 왜 울고 난리람.
천천히 몸을 점검했다.
어디 잘린 곳은 없고, 두 번 중첩됐던 침식도 사라졌고.
몸 곳곳에 난 잔상처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다.
‘후, 진짜 죽을 뻔했네.’
두 번 중첩된 침식, 내게만 쏘아진 검은 가시, 여기에 로델린의 공격 범위로 인한 피해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검은 가시는 어떻게 피했냐고?
‘데굴데굴 굴러서 피했지.’
벌러덩 드러누우며 가시를 피한 후.
데굴데굴 굴러 침식과 로델린의 공격 범위로부터 빠져나왔다.
상당히 추한 모습이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을 거다.
그만큼 치열한 전투였다.
눈물과 콧물 범벅인 얼굴로 달려드는 레이몬을 필사적으로 밀어낼 때였다.
“내, 내가 네까짓 놈들한테…….”
귀에 거슬리는, 악마 특유의 목소리.
소름이 돋으며 머리칼이 곤두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돌무더기를 뚫고 커다란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의 편린. 놈이 아직 살아 있었다.
‘젠장, 역시 레벨이 너무 낮았나……!’
이제 겨우 에피소드1 초반부인 시점.
로델린과 루나의 레벨이 낮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공격력도 그만큼 부족했을 것이다.
칵! 콰각!
악마의 편린이 검은 가시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섰다.
놈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내가 질 것 같으냐!!”
폭발하는 마기와 그 아래에 다시금 자리하는 검붉은 땅.
게임으로 치면 두 칸 정도의 범위.
‘세 번 중첩 즉사 룰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건가……!’
처음과 달라진 건 놈의 위치와 체력뿐이었다.
바뀐 위치에서 부활이라니.
지금부터는 고인물인 내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일단 물러나야 해!’
후퇴 명령을 내리려던 때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칼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하아아아아아압!!”
로델린이다.
순식간에 악마의 편린의 앞에 도달한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손은 이미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첫 번째 침식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카캉! 콰직!
“크읍……!”
로델린이 신음을 흘렸다.
속도는 빨랐지만, 공격이 너무 정직했다.
가시로 만든 방어막에 공격이 막혔고, 검은 가시 두어 개가 로델린의 팔과 허벅지를 관통했다.
“크크크. 꼴좋구나. 걱정 마라, 나머지도 금방 보내줄 테니.”
로델린에게 두 번째 침식이 중첩됐다.
보랏빛으로 물드는 손과 얼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핏줄들.
“루나 양!”
내가 말하기도 전에 루나는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레이몬과 나도 같이 달렸다. 하지만.
‘너무 늦어!’
이어지는 가시 공격이든, 세 번째 침식으로 인한 즉사 룰이든.
로델린이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이 정도로는 날 막아 세울 수 없다!!”
로델린이 양손으로 쥔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동시에 왼발과 오른발의 보폭을 조절하며 바로 섰다.
꽈드득!
그 과정에서 팔과 허벅지에 박혀 있던 가시가 부러졌다.
악마의 편린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이, 이 괴물이……!”
피가 철철 흘러나왔지만, 로델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동작에 들어갔다.
검도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는 중단자세.
거기서 머리 위로 치켜든 검.
나는 그제야 로델린이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루시드가에…… 루시드가의 사람에게…….”
로델린의 목소리가.
아니, 단호한 맹세가 공동에 울려 퍼졌다.
나는 재빨리 옆에서 같이 달리던 레이몬을 발로 차고 앞에 있던 루나를 향해 온몸을 내던지며 끌어안았다.
“두 번째 패배는 허락되지 않는다!!”
로델린의 눈이 빛남과 동시에 검이 내리그어졌다.
그래, 저게 바로.
루시드 가문류 네 번째 비기.
하늘 가르기.
…….
로델린이 검을 내리그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적으로 가득 찼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정적이.
“이게 무……슨……?”
쩌억.
그게 악마의 편린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입을 엶과 동시에 몸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그리고.
공동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 * *
“으, 으윽…….”
눈을 뜬 내가 제일 먼저 마주한 건 루나의 얼굴이었다.
잠든 채 새근새근 숨을 내뱉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귀엽기 짝이 없다.
‘평소에도 이렇게 조용하면 얼마나 좋을꼬.’
루나의 볼을 꼬집자 그녀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작은 복수에 성공한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 ‘악마의 편린을 처치하라’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300exp, 30골드가 주어집니다.] [칭호, ‘악마를 대걸레로 처치한 자’가 주어집니다.] [악마를 대걸레로 처치한 자]-당신을 마주한 악마가 여러 의미로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적으로 마주한 악마의 모든 스탯 –3.
‘칭호까지 얻다니. 운이 좋군.’
이 게임은 칭호의 중첩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퀘스트가 깨진 걸 보니 악마의 편린은 확실히 죽은 것 같고…….’
주변을 둘러봤다.
루나의 옆에는 레이몬이, 그 옆에는 앵무새가 있었다.
“끼흑…… 끽.”
앵무새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상처는 완벽하게 아물어 있는 상태였다.
‘로델린이 치료한 건가?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군.’
이 세계는 게임답게 ‘포션’이란 물건이 존재한다.
로델린은 명문가의 자제이니, 그 정도는 당연히 갖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곤란하게 됐네.’
[신의 모방].내가 얻고자 했던 히든 피스이자, 스킬이다.
이 스킬은 앵무새의 죽음으로써 완성된다.
무슨 뜻이냐고?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악마의 편린을 클리어함과 동시에 앵무새가 루터스의 곁에서 잠들지.’
안 그래도 평균 수명 이상으로 산 앵무새다.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죽음임과 동시에, 감동적인 스토리의 완성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
그렇게 앵무새는 죽는다.
그런데 지금은.
‘게임과 너무 달라졌어.’
나 대신 공격을 맞은 것도 모자라, 악마의 편린의 부활.
원래라면 에피소드 후반쯤부터 사용 가능해지는 루시드 가문 최후의 비기까지.
달라도 너무 달라져 버렸다.
‘히든 피스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거람?’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머리를 벅벅 긁고 있을 때였다.
“제로 군, 일어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