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38)
제38화
38화. 명예(3)
“참 나, 무슨 이런 일로 묘비를 세운다고 난리야?”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제일 높은 직위이자, 정점에 서 있는 자.
총장 드웨너가 계속해서 꿍얼거렸다.
20년 전에 아카데미에서 학생이 죽은 사건.
아카데미의 잘못임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인데, 보상과 묘비도 유공자급으로 세워 주자니.
“으윽! 10년 전 악마에게 당한 대뇌 전두엽에 통증이!”
드웨너가 머리를 감싸 쥔 채 신음했다.
반쯤 벗겨진 머리, 그 한구석 어딘가.
그곳에는 실제로 자그마한 상처가 있었다.
‘그때의 악마 놈이 또 떠오르는군. 아주 흉악한 놈이었지.’
드웨너의 전부이자, 훈장과도 같은 상처.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악마와 싸울 때 구경하다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였다.
하지만 드웨너는 넘어짐과 동시에 기절했기 때문에, 악마가 새긴 상처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후우, 진정하자. 이러다 상처가 터질지도 몰라. 흉악한 악마 놈,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는구나. 하지만 이 드웨너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악마가 본다면 ‘아…… 저건 좀…….’이라고 말하며 상처를 손수 치료해 주고 싶을 정도의 엄살과 오해.
아무튼, 드웨너는 계속해서 숲속을 거닐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시간을 보내는 비밀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오, 오늘도 건강하구나.”
숲속에 숨겨져 있는 작은 연못.
그곳에서 잉어 몇 마리가 그를 반겨 주었다.
정확히는, 그의 손에 있는 봉투였지만.
“그래그래, 어젯밤에 춥지는 않았느냐? 감기 걸린 아이는 없고?”
잉어가 입을 뻐끔거리며 빵부스러기를 흡입했다.
그 모습을 본 드웨너는 대뇌 전두엽의 통증이…… 아니, 스트레스가 눈 녹은 듯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드웨너가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귀족이지만, 명성이 높은 가문 출신은 아니다.
대악마와 싸운 선조 덕분에 찬란했던 시절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것도 먼 옛날의 일.
현재 그의 가문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발품이라도 팔아 일자리를 얻기 위해 귀족 파티를 돌아다니던 그때…….
“아시즈 후작님을 만났지.”
제국의 기둥 중 하나인 헤리제스 후작가.
현 가주인 아시즈 후작이 친히 말을 걸어 주었다.
무슨 일이든 상관없으니 일자리를 소개해 주십사 허리를 굽히고, 술에 취해 쓰러진 바로 그다음 날.
……낯선 천장이다.
앤우드 아카데미 총장실의 천장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몰락 귀족인 내가 눈을 뜨니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인 앤우드 아카데미의 총장이 되었습니다!?’
소설 제목도 이딴 식으로 지으면 욕을 처먹을 거다.
하지만 자신이 총장의 자리에 오른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드웨너는…….
“후후, 분명 내 능력을 알아차리신 거겠지. 역시 제국의 기둥 중 하나다우시군.”
자신이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건 몰락 귀족이라는 껍데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 같은 능력자를 못 알아보는 멍청이들이 문제였던 거다!
-라는 자기합리화를 끝마친 드웨너는 총장이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총장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윈 드 헤리제스, 그리고 로델린 드 루시드.’
학생회장인 아윈만 해도 컨트롤이 힘들었는데, 작년에 로델린이 입학하면서 더 힘들어졌다.
평소에는 깍듯한 아이가 업무만 시작하면 눈에 불을 켠다.
숫자 하나, 문자 하나만 틀려도 양쪽에서 물어뜯는다.
서명을 늦게 해 일정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일주일간 총장실에 감금당한 채 일만 해야 했다.
‘좀 늦을 수도 있는 거잖아! 필기체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드웨너는 두 사람에게 반항할 수가 없었다.
둘의 출중한 능력도 능력이지만, 둘 다 가문이 빵빵해서 함부로 대하기가 뭐하다.
지금도 총학생회장인 아윈과 부학생회장인 로델린의 기 싸움에 지쳐 피신을 나온 참이었다.
‘아윈…… 그놈은 대놓고 나를 무시하기까지 한단 말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이곳에 꽂아 넣은 게 아시즈 드 헤리제스 후작 아닌가.
아윈은 무려 그 헤리제스 가문의 손자다.
그래서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아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거일 테고.
“답답하구나, 답답해. 우리 가문이 어쩌다 이렇게…….”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드웨너라도 괄시에 가까운 무시는 참기 힘들었다.
잉어들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던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학생? 이곳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인데…….’
길을 잃기라도 한 걸까?
머지않아 그 아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눈.
실눈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작은 남자아이였다.
“학생,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길이 험했을 터인데…….”
“후후, 죄송합니다. 제가 길눈이 어두운지라…….”
남자아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눈이 작으면 길눈도 어두운 걸까?
“저런, 조심했어야지. 내가 데려다주겠네. 잠시 기다려주겠나? 이놈들 간식은 주고 가야 해서 말이야.”
불길한 외모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아이.
하지만 드웨너는 그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원체 둔하기도 했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헤헤…… 잉어…… 간식…… 학생회…… 무섭다.’
그런 드웨너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아이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에 주먹을 탁! 치며 소리쳤다.
“혹시…… 드웨너 총장님 아니신지요?”
“응? 나를 아는가?”
“당연합니다! 앤우드 아카데미의 위대한 18대 총장님 아니십니까!”
남자아이가 감격스럽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드웨너의 어깨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흠흠, 그렇다네. 내가 18대 총장, 드웨너라네. 만나서 반갑군. 자네 이름은 뭔가?”
“제로라고 합니다. 천운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세이건 가문의 후계자를 만나다니요.”
“음? 우리 가문을 아는가?”
“후후, 당연합니다. 200년 전 제4군단장 발라파르를 해치운 위대하고 원대한 세이건 가문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지요.”
경탄에 가까운 목소리.
드웨너는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흠흠, 선조분이 악마의 잡졸을 하나 처치하시긴 했지.”
“대악마인 군단장을 잡졸이라 칭하다니! 과연 세이건 가문의 후계자다우십니다.”
“험험, 악마 그놈들 생각보다 별거 아니야. 나도 10년 전에 수십 놈과 혈투를 벌였지. 이건 그때 생긴 상처라네.”
드웨너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머리의 상처를 내보였다.
제로라는 아이가 또다시 크게 감탄했다.
‘우리 가문을 알다니. 참된 학생이로군.’
아윈과 로델린 말고 이런 훌륭한 학생이 자신의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이라도 학생회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아윈과 로델린이 양쪽에서 쪼아 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욕심 때문에 이 아이를 그 지옥으로 끌어들일 순 없지……!’
크흡.
학생을 지키기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하는 총장.
자신의 멋진 희생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드웨너였다.
“후후, 그런데……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시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음, 이 자리에 있다 보면 여러 일이 있기 마련이지. 무시하는 자들도 있고…….”
“뭐, 뭐라고요? 무시라니! 그런 배은망덕 놈들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제가 가서 당장 혼쭐을 내 주겠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만 같은 제로라는 아이.
드웨너가 그를 뜯어말렸다.
이렇듯, 드웨너는 아부에 약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에게 아부를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제로의 아부 기술이 뛰어난 이유도 있었다.
살랑살랑. 딸랑딸랑. 덩실덩실!
드웨너를 자지러지게 만드는 극한의 아부!
결국, 그는 현재 자신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일까지 꺼내고 말았다.
“사실 요즘 고민이 하나 있다네.”
“어떤 고민입니까?”
“20년 전 죽은 학생에게 보상을 해 줘야 한다지 뭔가. 내가 총장일 때 있었던 일도 아닌데…….”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루시드가에서 사과문을 공표하기도 했다.
‘모든 보상은 루시드가에서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아카데미의 위신이 떨어진단 말이지.’
학생을 가르치는 아카데미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그걸 20년 동안 모르고 있었다?
돌 맞아 죽기 딱 좋았다. 능력을 인정받아 마련한 이 일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할 것이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야.’
아윈은 과거의 잘못으로 돌리고 조용히 넘어가기를.
로델린은 자신의 가문의 책임도 있으니, 함께 사죄하기를 바랐다.
솔직히 드웨너는 아윈의 손을 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루시드가에서 공표한 이상, 우리도 발을 맞춰 줄 수밖에 없는데.’
왜 하필 자신이 총장직에 있을 때 이런 일이 터진 걸까.
머리에 있는 상처가 따끔따끔해질 때였다.
제로라는 아이의 입이 열렸다.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응?”
“자신이 있었던 때의 일이 아닌데도 학생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오물을 뒤집어쓴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지요.”
“그, 그런가?”
“불명예를 무릅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라는 가르침! 저는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드웨너의 귀가 팔랑거렸다.
불명예를 무릅쓴다라. 뭔가 멋있는 문장이다.
‘그런가? 하긴, 맞는 거 같아. 불명예를 기꺼이 감수한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총장의 모습……!’
제로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황제 폐하께서 상을 내리실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훌륭한 총장이라니, 저라면 무조건 줬을 겁니다.”
“으, 으음……!”
“제국연대기에 이름이 남을지도 모르겠군요. 당대의 우수한 교육자로 당당히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제국연대기에 자신의 이름이?
드웨너의 귀가 눈에 보일 정도로 세차게 움직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어차피 루시드가에서 움직인 이상 발을 맞춰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니까.
‘우선 아시즈 후작님께 보고를 올린 후에…….’
“설마 누군가의 허락을 받으시려는 건 아니죠?”
“으, 으음?”
“그런 건 ‘무능’한 사람들이나 하는 건데 말이죠.”
무능.
드웨너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반대로 가장 좋아하는 말은 유능.
“총장님의 위치 정도면 이 정도 결정쯤이야 보고 없이 처리하셔도 괜찮죠. 선조치 후보고로 상급자를 편하게 한다. 그게 바로 ‘유능’한 사람이니까요.”
“유능……?”
“그렇습니다. 유능하신 드웨너 총장님!”
“그, 그렇지! 난 유능한 총장이니까! 잠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군. 먼저 가 보겠네!”
드웨너가 헐레벌떡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제로라는 아이가 중얼거렸다.
“큭큭큭, 계획대로군요.”
남자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 잡았다.
아주아주.
사악한 미소가.
* * *
“총장님, 또 어디 갔다 오신 겁니까?”
드웨너가 집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아윈이 톡 쏘아붙였다.
당장 그가 서명해야 하는 서류가 30cm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카데미에서 공식적인 사과는 불가능합니다.”
“학생회장님, 아카데미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과는 무조건, 보상은 그다음입니다.”
파지직-!
아윈과 로델린의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아까도 이런 분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도망친 드웨너였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제로라는 아이가 자신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으니까.
“사과문을 작성할 준비를 하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과문은 절대 불가…… 예?”
“사과문을 준비하게. 재조사와 보상은 물론, 묘비도 유공자급 대우로 준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