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39)
제39화
39화. 명예(4)
느닷없이 튀어나온 드웨너의 폭탄 발언.
집무실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로델린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고.
아윈은 즉각 반발했다.
“아카데미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자니! 아카데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총장님의 명예는 두말할 것도 없겠죠!”
평소라면 바로 시선을 피하며 도망쳤을 거다.
하지만 오늘의 드웨너는 달랐다.
“아윈 군,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네. 불명예를 쓰는…… 아니, 무릅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가 아닐까?”
“……!!”
저런 명문이 드웨너의 입에서 나오다니.
게다가 그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은 또 어떠한가.
‘저, 저게 그 낙하산 드웨너가 맞나?’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아윈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버지나 할아버님이 조언해 준 거겠지. 그렇다면 나도 따라야지. 위에서 계산을 끝냈다는 거니까.’
루시드가의 명예를 드높여 주는 일.
이걸 밀어 주라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고 아윈은 판단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이렇듯 아윈은 많은 생각을 거쳐 낸 결론이었지만, 드웨너의 눈에는 자신의 유능을 인정한 것으로 보였다.
“아니지, 석상도 하나 세워 줘야겠어. 장소는 성검의 무덤으로 하고…… 작품명은 ‘두 영웅의 기상’으로. 로델린 양, 어떤가?”
“아…… 서, 석상까지요? 조, 좋은 것 같습니다.”
“음, 로델린 양이 유족을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했었지. 나 대신 진심을 담아 잘 전해 주게. 보상과 묘지는 물론, 두 영웅의 석상을 세워 주겠다고 말이야.”
“무, 물론입니다. 총장님의 진심, 제가 분명히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델린이 크게 대답했고, 드웨너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로델린은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불명예를 쓰는…… 아니, 무릅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가 아닐까?
‘제로 군에게 들은 말과 비슷한데…… 우연이겠지?’
원래 저런 명문이 있었고, 그걸 제로와 드웨너가 인용한 건 아닐까?
그럴 거다. 제로가 드웨너 총장을 조종하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로델린이었다.
* * *
“루터스 군의 유품입니다.”
로델린이 내민 작은 상자.
그곳에는 루터스의 해진 옷가지와 앵무새의 깃털, 상패, 감사장, 그리고 부서진 검자루가 들어 있었다.
광대가 조심스레 옷가지를 매만졌다.
슬픔, 분노, 회한, 애증, 애환.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평소와 달리 멀끔한 옷차림에 광대 특유의 분장도 하지 않은 상태다.
눈치가 빠른 로델린에게 있어 상대의 감정을 유추하는 건 밥 먹는 것보다도 쉬운 일.
하지만 로델린은 그의 감정을 유추할 수 없었다.
그만큼 광대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탓도 있긴 했지만…….
‘내가 뭐라고 감히…….’
그 누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한낱 단어 따위로는,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절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앵무 군의 깃털에는 보존 마법을 걸어 두었습니다. 크게 상처만 나지 않는다면 백 년은 멀쩡할 겁니다.”
“그렇군요.”
“상패와 감사장도 있습니다만…….”
로델린이 말끝을 흐렸다.
죽은 뒤에야 받는 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루터스를 영웅으로 예우하기 위한 최선을 다하고는 있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자, 로델린의 진심이었다.
“…….”
광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걸까, 아니면 비난할 준비를 하는 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역할이니까.
“유골은 제국의 국립묘지에 안장될 겁니다. 아카데미에는 묘비와 석상이 세워질 예정이고요.”
“영웅급의 대우군요. 감사합니다.”
광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로델린도 그를 따라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로 공식적인 안내 절차가 모두 끝났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로델린이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20년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다니,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괜찮습니다. 로델린 양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잘 모르시겠지만, 그때 당시 제 큰언니가…….”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
“예?”
“같은 학생끼리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루시드가에서 이런 배려를 하는 건…… 아마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로델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유족에게 도리어 배려를 받는 꼴이라니.
부학생회장과 군인, 둘 다 실격이다.
“그나저나……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로델린 양은 좀처럼 웃질 않는군요.”
“……지금 상황이 웃을 때는 아니지 않나요?”
“후후, 그런가요? 그래도 웃어 주세요. 절 위해서라도.”
하하.
로델린이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그 모습을 본 광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이는 웃어야 예쁜 법이죠.”
“전 아이가 아닙니다만…….”
“제 눈에는 아이인걸요. 아마 어깨에 짊어진 짐이 많은 거겠죠.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 법인데…….”
로델린은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명문가의 자제. 그리고 군인 가문.
어릴 때부터 빨리 철이 들어야 했기에 아이 취급을 받는 게 영 익숙지 않았다.
“로델린 양, 하고 싶은 일은 있습니까?”
“예?”
“꿈이 있냐는 말입니다.”
꿈이라고?
그런 게 자신에게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자신은 그저 제국의 안녕과 평안만을 바랄 뿐이니까.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광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그랬군요. 빨리 꿈을 찾길 바라겠습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망가져 버리고 말 테니까요.”
“아…….”
“고마웠습니다.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또 뵙도록 하죠.”
말을 마친 광대가 중절모를 눌러썼다.
유품 상자를 챙긴 그를 향해 로델린이 다급히 말했다.
“혹시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말씀하십시오. 최대한 지원하라고 가문에서 명령이 내려왔으니까요.”
“바라는 거라……. 로델린 양이 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건 당장은 힘들겠죠. 그러니까…….”
상자를 내려놓은 광대가 양 손가락의 검지를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그 자신의 입가를 양쪽에서 살짝 밀어 올렸다.
인위적으로 만든 미소. 광대가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보답은 로델린 양의 웃음으로 하겠습니다.”
“……예?”
“웃으세요. 루터스도 분명 그걸 원할 테니까.”
하하.
로델린이 또다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광대가 다시금 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고마워요, 제 아들놈의 명예를 지켜 줘서.”
“아…….”
“따라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충분한 보답을 받았으니까. 건강하세요, 로델린 양.”
달칵-.
광대가 나간 문이 조용히 닫혔다.
따라 나가려던 로델린은 이내 생각을 바꿨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슬픔을 감내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니까.
그런 로델린의 시야에 문득, 문 옆에 걸려 있는 거울이 걸렸다.
제법 큼직한 거울.
로델린은 자신도 모르게 그 앞에 섰다.
‘꿈, 그리고 웃음이라…….’
자신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은 척 보기에도 이상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없네.’
무표정.
귀족가에서 자라다 보니 표정 관리를 하는 게 일상이 된 로델린이다.
‘내가 이렇게 표정이 없었던가?’
머리를 긁적이던 로델린이 양손의 검지를 치켜들었다.
양쪽 입가에 갖다 댄 검지를 살짝 위로 치켜올렸다.
“하하.”
이상한 미소다. 차마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한 미소.
그러고 보니 자신의 웃는 얼굴을 본 게 얼마 만이더라?
아니, 제대로 웃어 본 게 언제였지?
“…….”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오늘부터 웃는 걸 연습하자. 자연스러운 미소를 연습해야.
‘가문의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광대는 아이면 아이답게 웃는 게 좋다고 말했지만, 자신은 어른이다.
가문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게 자신의 의무이자, 역할이니까.
“우선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찾아야겠군.”
양쪽 입가에 올린 검지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음, 온통 어색하고 이상한 미소투성이다.
“키히히.”
광대처럼 소리 내어 웃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들어오려던 누군가가 멈칫했다.
제로였다.
“…….”
“…….”
“……실례했습니다.”
달칵-.
조심스레 다시 닫히는 문.
로델린이 다시금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손가락을 입가에 댄 채 우스꽝스럽게 웃고 있는 자신이 서 있었다.
화끈-.
얼굴에 열감이 일더니, 이내 빨갛게 달아올랐다.
거울 안에 있는 로델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노크를 하지 않다니.”
예의범절 미숙.
내일 꼭 벌점을 부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로델린이었다.
* * *
‘쟤는 왜 저러고 있는 거람?’
도망치듯 총장실을 나섰다.
광대를 만나러 왔지만, 나를 반겨준 건 괴상망측하게 웃고 있는 로델린이었다.
게임에서도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진심으로 당황했다.
‘고인물의 경험상 숨겨진 보상은 광대가 줄 확률이 높은데…….’
그렇다. 나는 지금 광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숨겨진 스토리든 보상이든, 그를 만나야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설마 로델린의 기괴한 미소. 저게 히든 피스 보상은 아니겠지?’
부학생회장의 은밀한 취미(?).
뭔가 봐서는 안 될 모습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몸을 부르르 떨 때였다.
“오, 제로 군. 안 그래도 찾고 있었다네.”
광대의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 그의 얼굴은 분장 하나 없이 깨끗했다.
복장도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후후, 일은 잘 보셨습니까?”
“그렇다네. 영웅급 대우라니, 루터스가 참 좋아하겠어.”
광대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해 보인달까?
루터스가 친구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는 걸 알아서일 수도, 그가 꿈을 이뤄서일 수도 있었다.
“그보다 절 찾으시는 중이셨다고요?”
“아아, 그렇지. 이걸 받아 주겠나?”
광대가 들고 있던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검의 자루였다. 정확히는.
[힘을 잃은 성검 자루 : A]공격력 – ???
성국에서 만든 9대 성검. 주인을 잃고 힘이 사라진 상태다.
주의사항 – 파손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사용에 주의를 요합니다.
‘성검이라고?’
성검(聖劍).
성국에서 사악한 존재를 벌하기 위해 만든 검이다.
20년 전 루터스와 함께 성검이 사라진 뒤, 성국에서는 5년의 시간을 들여 열 번째 성검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말로 해서 쉬워 보이는 거지, 5년 동안 소모된 비용이 천문학적이라 아직도 성국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10대 성검은 현재 성국에 있지.’
그러니까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루터스가 뽑은 9대 성검이자, 백 년 전에 만들어진 성검이다.
뭐, 악마의 편린과의 전투로 인해 손잡이 부분만 남은 상태지만.
‘그래도 나쁠 건 없겠지.’
어디에서 쓰일지 알 수 없지만, 아이템으로 주어진 이상 분명 사용처가 존재할 것이다.
갖고 있어서 손해는 없을 터. 성검 자루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제가 가져도 괜찮겠습니까?”
“이미 챙겨 놓고 그렇게 물으면 뭐 하나?”
“후후, 제가 그랬나요?”
“키히히. 역시 자네는 마음에 들어. 아이다운 면이 제법 많거든.”
광대의 말투가 변했다. 광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말투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이곳을 떠나려 한다는 걸.
“떠나시는 겁니까?”
“떠나야지. 아들놈이 행복했다는 걸, 앞으로도 행복하게 지낼 거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뭐 하고 지내실 건데요?”
“뭐 하고 지낼 거냐고? 그야 당연히…….”
광대의 손이 산들산들한 바람처럼 움직였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광대 특유의 화장으로 가득 찼다.
“키히히.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줘야지.”
“후후, 앞길에 행운이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광대가 중절모에 앵무새의 깃털을 꽂았다.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고맙네, 내 아들놈의 명예를 지켜 주어서.”
뒤돌아 있는 상태였기에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순간, 광대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키히히.”
그의 기분을 알 수 있는.
아주 기분 좋은, 그런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