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42화. 개미굴(2)
현재 문제는 네 가지다.
스탯, 대련 경험의 차이, 공격 경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공격이 어렵다는 것.’
막기 바쁘다 보니 공격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지만, 어설프게 공격하는 순간 패배가 확정되는 탓이 더 컸다.
목검을 내지르는 순간 방어 수단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시간을 끌며 무승부를 기다리는 건…….’
슬쩍 카론의 눈치를 살폈다.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느 한쪽이 패배할 때까지, 이 대련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질 수는 없어.’
약자에 대한 괴롭힘을 피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 ‘제로’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신비주의, 그리고 최대한 흑막인 척 활동해야 한다.’
지금까지 발동한 히든 피스들도 그렇지만, 악마의 편린과의 만남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캐릭터는 정의와 악,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걸.
‘그러니까 패배는 용납되지 않아. 신비주의가 완전히 깨져 버릴 테니까.’
문제는 고드너와의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는 거다.
슬슬 끝을 낼 때가 다가온 걸까. 고드너의 공격이 점차 빨라졌다.
‘뭐가 보여야 반격을 하든지 하지. 아……!’
떠올랐다.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정보창] 스킬을 여기저기 사용했다. 이름과 스탯은 관심 없다.지금 내게 필요한 건 스킬뿐.
그리고 한 아이에게서 원하던 스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체시력F].곧바로 [신의 모방]을 발동했다.
[마계술]을 삭제, 그리고 [동체시력]을 모방한다. [‘신의 모방’ 스킬의 효과로 ‘동체시력’ 스킬의 등급이 A로 고정됩니다.]수많은 스킬들 중, [동체시력]을 모방한 이유.
‘겉으로 티가 나지 않으니까.’
[신의 모방]은 모방한 스킬의 등급이 A급으로 강제 고정되는 스킬이다.A급. 우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스킬의 등급이 F급부터 시작된다는 걸 고려한다면, A급까지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엑스트라가 쓰는 기술도 A급이면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지.’
강한 이펙트나 임팩트를 남기는 액티브 스킬은 지금 상황에서 쓰기 부적합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A급이어도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패시브 스킬 중, 지금 상황에 가장 적합한 [동체시력]을 선택한 거다.
“이걸로 끝이다!”
고드너가 검을 내질렀다.
찌르기다. 그가 검을 일직선으로 쭉 뻗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A급의 [동체시력]이기 때문일까.
고드너의 움직임이 엄청 느려 보인다.
마치 슬로모션과도 같은 움직임.
몸을 틀면서 그의 찌르기를 피했다. 동시에 목검을 내질렀다.
힘을 줄 필요도, 기교를 부릴 필요도 없다.
고드너가 알아서 찔리러 오는 중이었으니까.
푸욱!
“큭!”
손에 묵직한 압통이 느껴짐과 동시에, 고드너가 배를 움켜잡은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느리다. 모든 동작이 너무나도 느리다. 심지어.
“쓰러지는 것조차 느리시군요.”
“뭐, 뭐라고!?”
고드너의 눈동자가 불탄다. 아직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금 내게 달려든 바로 그 순간.
“……여기까지다.”
갑자기 나타난 카론이 고드너의 손목을 붙들었다.
“선생님! 저는 아직 싸울 수 있……!”
“그건 이게 대련이기 때문이다. 실전이었다면 방금 넌 죽었다. 내장을 다 쏟으면서 제발 살려 달라며 땅바닥을 벅벅 기었겠지.”
입을 열려던 고드너의 입술이 꽉 다물렸다.
할 말이 없다기보다는, 카론의 시선이 무서운 탓일 거다.
“승자인 제로에게는 상점 1점을 부여하겠다.”
“후후, 감사합니다.”
“저번 수업 때 벌점 4점을 받았었지. 나머지 3점을 복구하려면 던전에서 열심히 뛰어야 할 거다.”
음, 그건 4점의 벌점을 준 당신 잘못이 아닐까?
심지어 1점은 자기 기분이 나빠서 추가로 깎은 거잖아.
“후후,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살인 전차.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내 자리로 향했다.
‘휴, 큰일 날 뻔했네. 신의 모방이 있기에 망정이지…….’
[신의 모방]이 개사기 스킬인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압도적인 유연성.’
방금 한 것처럼, 때에 따라서 모방 스킬을 바꿀 수 있다.
상황에 맞춰 스킬을 바꿔 가며 카운터를 먹인다.
모든 고인물들이 필수로 챙겨 가는 게 당연한 스킬이었다.
‘주변에 스킬을 모방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적의 스킬도 모방할 수 있으니 페널티라고 하기도 민망하지.’
액티브 스킬은 사용하는 것을 눈으로 보아야지만 모방이 가능해지지만, 패시브 스킬은 그렇지 않다.
항시 발동 중인 것. 그게 바로 ‘패시브 스킬’이니까.
‘이런 사기적인 스킬이 심지어 일회성도 아니라니.’
저장 후 바꾸지만 않는다면 몇 번이고 재사용이 가능했다.
[마계술]은 잃었지만, 스토리에도 없던 상황을 잘 넘겼으니 손해라고 말할 것까지는 아니다.동시에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검성 제로는 개뿔.’
현실을 깨닫는다.
나는 아직도 약하다는 차가운 현실을.
안도와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쉴 때, 루나가 투덜거렸다.
“뭐야, 비전 기술 없이도 충분히 강하잖아?”
투명 슬라임을 공략할 당시 내가 했던 거짓말을 떠올린 모양이다.
내 가문의 비전 기술에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사용하기 곤란하다는 거짓말.
“지금까지 왜 약한 척한 거야? 입학시험은 그렇다 쳐도 네가 처음부터 가세했다면 악마의 편린도 쉽게 이겼을 것 같은데.”
루나의 눈에 의심이 서렸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변명거리? 그야 당연히.
없다.
‘일방적으로 밀렸다고 생각했는데…… 루나가 볼 때는 아니었나?’
그만큼 [검술A]의 힘이 대단하다는 증거이리라.
고드너를 이기는 것에 집중하느라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다.
“수상한데…….”
루나가 얼굴을 바싹 들이밀며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말하고 있다.
친구 사이에 비밀은 없다. 그러니 어서 말해라.
곤란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시.
웃어넘기는 게 최고지.
“후후.”
“응? 말 좀 해 보라니까?”
“후후후후후후후!”
“…….”
루나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삐진 걸까? 살짝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내가 보게 된 건.
입을 크게 벌린 채 달려드는 루나의 모습이었다.
* * *
“흠, 강한 것 같긴 한데…….”
“응. 생각보다 약한 것 같지?”
“그래도 고드너를 제압했으니 영입하긴 해야겠지만…….”
아이들이 수군거리며 제로에 대한 평가를 매겼다.
대부분이 그의 실력이 별로라고 평가했다.
카론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을.’
각자의 경지에서 보이는 세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눈높이의 차이가 있으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여긴 우수반이다.
그런데도 제로의 실력을 별로라고 평가하다니.
‘조금 전 대련을 보고도 그런 판단을 내린다고?’
아이들은 제로가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운 좋게 카운터를 먹여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카론의 생각은 달랐다.
‘적당히 상대해 준 거야. 이유는…… 압도적으로 이기면 피곤한 일이 많아질 테니까. 그래서 그런 거겠지.’
공격을 급급하게 막는 것처럼 보였지만, 카론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순간순간 목검의 각도를 교묘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저런 건 상급자가 하급자를 지도할 때나 할 수 있는 기술.
즉, 둘 사이에는 그만큼의 실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일격은…….’
자로 쟀다고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카운터.
본인의 힘을 쓰기는커녕 상대방의 힘을 이용한, 그야말로 완벽한 일격이었다.
“쯧.”
열다섯의 나이에 저런 실력이라니.
자신이 열다섯일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이었다.
‘상향평준화가 된 거겠지. 제국의 미래가 밝아서 다행이군.’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제로가 우수반에서 가장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테르온, 유리디아, 그리고…….
‘다이크. 저놈은 논외야.’
카론이 다이크가 있는 쪽을 슬쩍 흘겨봤다.
테르온의 호위무사이자, 사냥개.
불과 열다섯의 나이에 이미 5성 기사의 경지를 이룩한, 전무후무한 천재.
제로가 날고 기어도 다이크를 이길 수는 없을 거다.
저건.
괴물이니까.
“아, 아픕니다! 루나 양, 아파요!”
“아프라고 무는 거니까 당연하지! 죽어! 죽어!”
카론의 시선이 소란이 일은 쪽으로 향했다.
루나가 제로의 어깨에 올라탄 채 그의 머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친해 보이는군.’
수첩을 꺼내 제로의 이름을 슥슥 적었다.
수업 중 소란. 제로에게만 벌점 1점.
오늘도 제로가 마음에 안 드는 카론이었다.
* * *
제로에게 패배한 고드너는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수치심, 그리고 압도적인 모멸감.
뭐? 쓰러지는 것조차 느리다고?
‘저 새끼가……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잠시 부들거리던 그는 곧장 테르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귀족인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겨 준 제로라는 놈.
백 번 찢어 죽여도 모자라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테르온 님! 방심했을 뿐입니다! 다시 붙는다면 무조건 제가……!”
“방심했다고? 놀랍군. 그게 자랑스럽게 떠벌릴 수 있는 말이었다니.”
테르온이 냉소를 머금었다.
자신을 뽐내려다 진 것만 해도 추한데 변명까지 하는 꼴이라니.
“대련 전에 카론 선생이 말했지. 방심은 하지 말라고.”
상대가 조금 수세에 몰린다고 해서 방심을 하는데 던전 안에서라고 방심을 안 할까?
이건 어딜 가든 마찬가지일 것이며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나 그곳이 여우로 가득한 정치계라면 더더욱.
“허세는 독이지. 당분간 근신하도록 해라. 유리디아파의 기를 살려 주다니…… 망신이 따로 없군.”
고드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테르온파의 서열 6위. 나름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다니.
‘그렇다고 이곳을 나갈 수는 없어.’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유리디아파에 붙는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빠진다고 해서 대세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으니까.’
테르온파의 인재 폭은 유리디아파보다 월등하다.
물론 저쪽에는 마법의 천재라고 불리는 유리디아가 있긴 하지만.
‘저 괴물에게는 상대가 안 되지.’
테르온의 뒤에 서 있는 한 남자아이.
그를 마주한 순간 직감했다.
자신은 저 괴물을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저 괴물에게 물려 죽임을 당하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다.’
수치심은 일시적이다.
지금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더 중요했다.
고드너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때였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그냥 솔직히 말하지 그래. 네 실력이 모자랐다고 말이야.”
고드너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서열 7위, 제파.
그의 말에 고드너가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그렇잖나. 저따위 놈에게 지다니. 지금까지는 패거리를 이끌며 형편없는 실력을 잘 숨겨 온 모양이지만, 그것도 여기까지가 됐군.”
고드너의 절대적인 실력이 부족했다는 주장.
그가 채 반박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 제로라는 놈의 검술이 별로긴 했지.”
“하긴, 정식으로 검술을 배우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던데.”
“그런 놈에게 명문가의 검술이 패배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럼 정말로 고드너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건가?”
대부분 제파를 따르는 아이들의 말.
하지만 파장은 작지 않았다.
테르온파에 속한 아이들이 고드너의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나와라.”
“뭐?”
“내 실력을 의심하는 놈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란 말이다! 제파 네놈을 포함해 모두 상대해 줄 테니!”
고드너의 일갈을 들은 제파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이거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상황이었으니까.
테르온의 허락만 떨어지면 싸움이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곧 테르온의 입이 열렸고, 튀어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네놈 둘 다 한 단계씩 강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