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43)
제43화
43화. 개미굴(3)
“!?”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테르온이 고드너와 제파, 둘의 강등을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고드너는 서열 7위, 제파는 8위가 됐다.
“테, 테르온 님? 어째서…….”
“그것도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나? 진짜 답이 없는 놈이었군.”
그제야 제파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더 했다간 한 자릿수가 아닌, 두 자릿수로 밀려날 것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쯧.”
테르온이 혀를 찼다.
서로를 자극하며 성장하는 상승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안한 서열 시스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대를 까 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같은 파의 일원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꼴이라니. 지금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저놈을 영입한다면 몇 위 자리를 줘야 할까?”
“5위면 충분하지. 저 정도 실력자는 차고 넘치니까.”
“잘 쳐 줘도 4위. 그 위로는 절대 못 줘.”
테르온은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들은 눈이 다 옹이구멍인가? 아니면 대가리에 문제가 있나?
‘상대가 실력을 숨긴 것도 모르다니. 이놈들이 한 자릿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을 수가 없군.’
나름 실력자들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신경질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건 테르온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리디아 님, 이걸로 완벽히 판명 났습니다.”
“뭐가요?”
“테르온파의 전력이 형편없으며, 저 제로라는 아이의 실력은 더욱 형편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며 유리디아는 생각했다.
자신들은 저 형편없는 테르온파보다 더더욱 형편없는 집단이었구나- 라고.
‘진짜 미치겠네요.’
‘진짜 미치겠군.’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한 유리디아와 테르온.
자신의 생각에 공감해 주는 존재가 반대파의 수장뿐이라니.
이보다 더 어이없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4위를 주자!”
“5위라고!”
심지어 파가 반으로 갈려 기세 싸움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테르온은 그들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제로의 실력과 그 가치가 어떻냐는 것.
“다이크, 어떻게 보나?”
테르온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누군가 듣긴 했나 싶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
하지만 대답은 분명하게 들려왔다.
“강합니다. 일부러 실력을 숨기고 있군요.”
“역시 그랬나. 곤란하군. 저런 타입은 다루기 쉽지 않은데…….”
어딘가 다가가기 싫은 분위기.
불길한 외모도 그렇지만, 관심을 표해도 못 들은 척 도망친다.
심지어 유리디아 쪽에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저런 타입은 컨트롤하기 힘들지.’
그의 곁에 있는 루나라는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성질이 사나울 뿐만 아니라 제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고양이 년.
그런 아이는 옆에 두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유리디아 쪽에 줄 수는 없는데…… 다이크, 어때? 저 둘과 싸운다면 이길 수 있나?”
다이크가 제로와 루나를 바라봤다.
확실히 강하다. 동년배에서는 그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제가 이깁니다.”
“그 대답을 원했어.”
테르온의 입이 쭉 찢어졌다.
영입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성질 사나운 고양이도 같이 넣어 달라는 조건을 건다면 그것도 들어줄 것이고.
‘하지만 가질 수 없다면?’
그렇다면 역시.
부수는 게 맞다.
* * *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목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 덥고 습한 온도.
중간중간 박힌 발광석이 빛을 내뿜지만, 가시권 확보가 고작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곳은 동굴 속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렇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던전 안.
교관의 호위 아래 던전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키에엑!
서걱!
머리를 잃은 개미가 목에서 녹색 피를 울컥울컥 쏟아 냈다.
잘린 개미의 목이 데구루루 굴러 우리들의 앞에 도달했다.
“으으…… 끔찍해.”
“우웩!”
아이들이 또 한 번 자지러졌다.
개미형 마수와 마주한 것도 어느덧 다섯 번째.
하지만 적응한 아이들보다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검은 개미.’
하급 마수 중의 하급 마수.
껍질이 튼튼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능력도 없는 놈이다.
하지만 위압감이 엄청나다. 크기만 해도 무려 2m에 달했으니까.
‘입에 물리면 최소 절단이야.’
그때였다.
개미가 벽을 타고 오르더니 교관들 옆으로 두 마리가 새어 나왔다.
몇몇 아이들이 뒤로 돌아 도망치려 했다.
맞서려는 그룹과 도망치려는 그룹.
그들 사이에서 일순간 혼란이 일었다.
타닥-!
그 순간, 앞으로 누군가가 튀어 나갔다.
다이크다.
게임 속에 들어온 이후 말 한번 섞은 적 없는 아이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콰각!
콰직!
크게 휘둘러진 육중한 대검.
순식간에 개미 두 마리의 목이 날아갔다.
움직임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검이 번쩍함과 동시에 개미 두 마리가 풀썩 쓰러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쯧, 그렇게 말했는데 도망치는 꼴이라니.”
카론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업 시간부터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리고 들어온 이후에도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카론이다.
“방금 도망치려던 놈들에게는 벌점을 부여하겠다.”
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우수반이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게다가 이제 고작 열다섯인 아이들 아닌가.
나도 [정신방어]의 힘이 없었다면 저 무리에 포함됐을지도 모른다.
“크큭, 저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꼭 실력도 없는 것들이 저렇게 허세를 떨지.”
테르온파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도망친 아이들 중에 유리디아파에 속한 아이가 두 명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식간에 개미를 썰어 버린 다이크는 테르온파의 일원.
기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깔끔한 실력이군. 다이크, 너에게 상점 1점을 부여하겠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서지 마라. 다른 아이들의 대응 능력도 봐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다이크가 상점을 받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완벽하게 약점을 공략했으니까.’
검은 개미의 약점은 머리, 가슴, 배 사이에 존재하는 비교적 얇은 연결 부위다.
단 두 군데에만 존재하는 약점.
그중에서도 머리와 가슴 사이의 연결 부위를 노리는 게 정석이었다.
가슴과 배 사이를 베어도 당분간은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단하네.”
두 개미의 사체 옆을 지나가던 중, 루나가 중얼거렸다.
“후후, 그런가요?”
“넌 아무것도 몰라서 좋겠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냐면…… 아마 로델린 선배님 정도는 돼야 가능할걸?”
루나의 눈빛이 음울하게 변했다.
로델린과의 격차는 인정할 거다.
우수한 가문에 타고난 재능, 거기에 1년 선배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동급생인 다이크와도 이렇게 실력 차이가 나다니.
복수를 꿈꾸는 루나의 입장에서는 우울할 수밖에 없는 일일 거다.
‘투명 슬라임과 악마의 편린까지 잡았는데…… 아직도 격차가 큰 건가?’
현재 루나는 게임 속 루나보다 크게 성장한 상태다.
그런데 아직도 다이크라는 존재를 높은 벽으로 인지하다니.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다이크는…….
‘루나의 팔을 베는 놈이니까.’
알렉스, 로델린, 레이몬을 비롯한 주연 중 하나이자, 아카데미의 다섯 손가락 중 하나.
그리고.
‘테르온의 사냥개이자, 노예.’
테르온의 노예이다 보니 주인공 일행과 가장 많은 마찰을 겪는 아이 중 하나다.
‘여러 사건을 겪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아웃되는 캐릭터지만…….’
저 ‘여러 사건’ 중 하나가 바로 루나가 한쪽 팔을 잃는 일.
그게 문제다.
‘역시 다이크와 맞붙는 건 시기상조인가.’
루나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다.
[신의 모방]으로 모방한 A급 비전 기술을 사람 앞에서 쓸 수는 없었으니까.초반 스토리의 중추이다 보니 함부로 처리할 수도 없는 상황.
그러니 미리 대비를 해 두기로 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안전한 방법으로.
“루나 양, 테르온파와는 엮이지 마십시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가까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뭐, 그래.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니까, 그 정도쯤이야 뭐…….”
루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역시 이 빡대가리…… 아니, 이 아이는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괴롭힘당하는 약자를 구하는 것도 금지입니다.”
그제야 루나가 움찔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이쪽을 보는구나?
“그게 뭔 개소리야?”
“앵무 군을 구하다가 놈들과 싸운 적이 있었죠? 그런 일 또한 삼가란 뜻입니다. 아니, 하지 마세요.”
“…….”
루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루나가 테르온 패거리를 진짜 싫어한다는 걸.
‘하지만 이건 테르온도 마찬가지야.’
영입 권유를 거절당한 탓도 있겠지만, 루나의 호전적인 성격과 약자의 앞에 서는 신념 탓이 더 클 거다.
이 둘은 조만간 부딪칠 확률이 높다. 게임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 대가는 루나의 한쪽 팔이겠지.’
루나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싫어. 귀족이란 놈들이 패거리를 이룰 뿐 아니라, 약자들을 괴롭히다니. 절대 용납 못 해!”
“그래도 참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위험하니까요.”
“위험하다고 꼬랑지 말고 도망칠 수 있어. 귀족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잘못된 일을 눈앞에서 보고도 도망치는 건, 귀족이 할 짓이 아니야.”
어쩜 이리도 올바른 아이가 있을까.
좋다. 참 좋다.
‘부러지기 딱 좋다.’
신념이란 놈은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된 단어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의 신념은 개소리와 다를 바 없으며,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루나는 그 직전인 상태고.
루나가 눈을 빛냈다. 더 할 말이 있냐고 묻는 듯한 눈빛.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루나 양, 저랑 약속합시다. 절대 끼어들지 않기로.”
“그러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친구가 위험해지는 건 싫으니까요.”
순간, 루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친구’라는 단어에 유난히 집착하는 루나다.
이건 친구로서의 부탁이니 거절하기 힘들 거다.
위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내리려고 애쓰지만, 불가능했던 걸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쓸데없는 걱정하기는. 흥, 그래 뭐, 내가 인심 썼다. 자, 약속!”
루나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자는 걸까? 그건 조금 낯부끄러운데.
“이건 뭡니까?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응? 우리 가족은 약속할 때 이렇게 했는데?”
“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약속을 상징하죠. 약속의 중요성에 대한 가족의 의지가 느껴지는군요. 그저 말로만 약속하는 요즘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조금도 쉬지 않고 내뱉은 대답.
루나가 역시 약속은 이렇게 하는 거라며 해맑게 웃었다.
탈룰라를 시전할 뻔한 나는 숨을 고르기 바빴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거겠지. 그렇지?”
“후후, 그렇습니다.”
“흐응~ 뭐,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지만 내가 참아야지 뭐.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친구로서 할 짓이 아니니까. 친구니까 어쩔 수 없네, 어쩔 수 없어!”
루나가 내 등을 거칠게 두들기며 웃었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
‘친구와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니까…….’
테르온파와 엮이지 말라는 약속 정도는 지켜 줄 거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