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44)
제44화
44화. 개미굴(4)
하지만 루나의 미소는 그리 길지 않았다.
교관들이 일부러 흘려 보낸 검은 개미.
루나가 다리를 피하며 옆에서 공격을 가했지만, 일격에 목을 베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쳇!”
상처를 입은 검은 개미가 날뛰었고, 다른 아이들이 몰려들어 몰매를 때리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한 마리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루나의 눈빛이 음울해졌다.
[일섬]을 썼으면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건 비전 검술이다.본인의 실력을 키우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후후, 충분히 잘하셨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리를 다 자른 후에야 목을 노리잖아요?”
“그래도 이래서는…….”
동급생도 이기지 못하는 실력으로 언제 복수를 끝마칠 수 있을까.
목표가 저 멀리 있는 만큼, 루나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후후, 걱정 마십시오. 루나 양은 금방 강해질 테니까.”
“꼴에 위로해 주기는. 일단 고맙다고는 해 둘게.”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레스터 가문의 검술은 루나 양의 상상 이상이거든요.”
“흐, 흥! 그건 나도 알거든? 우리 가문의 검술은 대륙 최고라고. 뭐, 지금은 숙련도가 부족하지만…….”
아니, 루나는 이 검술이 품고 있는 힘을 모르고 있다.
가문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진짜 힘을 보여 주지 않았을 테니까.
“제길…… 난 왜 이렇게 약한 거야…….”
루나가 느끼는, 품고 있는 불안감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왔다.
‘평소에는 날카로운 고양이가 버려진 고양이처럼 벌벌 떨기는…….’
그런 루나를 위해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을 조용히 속삭인다.
“후후, 루나 양. 걱정 마세요. 진짜 레스터 가문의 검술은 달을 벨 수 있으니까.”
“달을?”
“예, 그렇습니다.”
루나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뭔 개소리야…… 정신 나갔니?”
루나가 검지를 자신의 머리 옆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미치광이를 본 듯한 표정은 덤.
나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진짜로.
달을 벨 수 있다고…….
* * *
“도착했군. 지금부터 10분간 휴식한다.”
1시간쯤 걸었을까. 우리는 거대한 광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천장이 높은 공동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와…… 저것 좀 봐.”
“미친. 벽에 구멍이 뭐 저렇게 많이 나 있어?”
“설마 저게 다 길인 건 아니겠지?”
벽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이 나 있다는 것.
심지어 모두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깊다는 뜻이다. 눈으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으으, 소름 끼쳐…….”
그런 구멍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 설 수밖에 없었다.
구멍에서 기이한 울음소리까지 들려오자 아이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물론, 살인 전차 카론에게 배려 따윈 없었다.
“지금부터는 미리 짜 두었던 조별로 행동한다. 구멍 위에 숫자가 붙어 있으니 각 조는 이동할 수 있도록.”
이곳은 개미굴.
개미가 서식하는 개미굴답게 수십 개의 길이 존재했다.
“우리가 몇 조더라?”
“후후, 3조입니다.”
학생 여덟 명이 한 조. 그리고 각 조마다 교관이 한 명씩 따라붙었다.
[정보창]을 이용해 이름을 살펴봤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이름은 없다.게임에서는 본 적 없는 존재들. 즉, 엑스트라들이라는 말이었다.
“다들 안녕. 3조 교관을 맡은 ‘론’이야. 졸업생이니 말은 편하게 할게.”
교관의 이름도 기억에 없었다.
엑스트라만 가득한 조라니. 죽기 딱 좋은 조다.
‘뭐, 이번 던전에서 죽는 아이는 한 명도 없지만.’
주연들이 처음으로 한데 뭉치는 습격 이벤트이자, 첫 대형 이벤트.
이 이벤트가 끝났을 때 죽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안전이 보장된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지.’
일부러 트롤링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파티에서 최후의 생존자가 죽기 직전.
카론이 갑자기 등장하며 남은 개미를 일격에 해치운다.
개미를 한 마리도 못 잡으니 경험치와 보상의 손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카론에게 받는 쓴소리와 벌점은 고인물들을 더 화나게 했고 말이다.
‘어떻게든 카론을 욕보이고자 고인물들이 노력했지만…….’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카론이 모든 걸 깨부수며 나타나 학생들을 구해 주곤 했다.
아무튼, 이렇게 엑스트라만 가득한 조라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우리 뒤엔 살인 전차 카론이 있으니까.
“오, 시간이 됐네. 바로 들어가자. 진형은 짜 놨니?”
“예, 간단히 전위, 중위, 후위로 나눴어요.”
전위 셋, 중위 둘, 그리고 후위 셋.
루나와 나는 중위였다.
“나쁘지 않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위험할 때만 개입할 거야. 그러니 최대한 조심하길 바랄게.”
길을 따라 이동하던 때였다.
후위에 있던 아이 중 한 명이 물었다.
“광장에 구멍이 엄청 많던데…… 위험한 거 아닌가요?”
“처음에는 위험했지. 하지만 지금은 안전해. 80% 이상 막아 놨거든.”
“개미들이 다시 뚫을 수도 있지 않나요?”
“하하,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는걸? 뚫리더라도 한두 군데겠지. 그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마, 만약 구멍 전부가 뚫리면요?”
“으음~ 그럼 당연히 위험하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개미들의 지능이 그렇게 뛰어날 리 없잖니?”
“그렇군요. 참, 개미 다리 조금 잘라 가도 되죠? 주말에 부모님께 자랑하려고요.”
“뭐,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정도는 상관없지.”
“그럼 저도 챙겨 갈래요. 고백할 때 줘야겠다!”
“음, 잘못하면 친한 친구 사이가 되고 말걸?”
하하하.
아이들과 교관의 기분 좋은 웃음이 울려 퍼졌다.
물론, 그들의 대화를 들은 나는 어이를 상실한 상태였다.
‘뭐? 구멍이 안 뚫려? 개미들의 지능이 낮아? 부모님께 자랑? 고백?’
클리셰를 이렇게 쌓기도 힘들겠다.
그것도 온통 죽음을 향한 클리셰들뿐이라니.
뭐 이따위 엑스트라 그룹이 다 있을까.
‘다 이놈들 때문이었군.’
게임 개발자의 농간이 아니라, 이놈들이 미친 듯이 클리셰를 쌓아서 일을 키운 게 틀림없었다.
‘개미굴 광장 습격 사건.’
교관의 예상과 달리 개미들은 길을 만들기 위해 착실히 일했고, 막아 놓은 구멍 대부분이 뚫리기 직전인 상태다.
광장으로 돌아온 주인공 일행이 휴식을 취하려는 바로 그 순간 개미들의 습격이 시작된다.
게임상에서는 튜토리얼 이후의 첫 전투이자, 주인공 일행이 서로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전투.
그와 동시에.
‘내가 폭풍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전투지.’
일명 폭업.
마수를 100마리 처치하라는 퀘스트도 함께 처리해 버릴 예정이었다.
자잘한 문제가 몇 개 있긴 하지만, 어떻게든 될 거다.
‘가장 큰 문제는 스토커를 떼어 내는 건데…….’
옆을 바라봤다.
스토커…… 아니, 루나는 쉴 새 없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최고치로 긴장감을 끌어올린 상태.
착한 나는 그런 루나의 긴장을 풀어 주기로 했다.
“루나 양.”
“왜.”
“개미를 세 등분으로 나누면 뭘까요?”
“날 바보로 아는 거야? 머리, 가슴, 배잖아.”
루나가 뭔 개소리를 하냐며 실소를 자아냈다.
그런 루나를 향해 단호히 말했다.
“아뇨, 죽습니다. 개미는 세 개로 나누면 죽어요.”
“…….”
깔깔깔.
내가 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도 엄청난 위트와 유머 감각이다.
내 배려가 먹힌 걸까?
나를 빤히 바라보던 루나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제로, 사람이 사람을 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오, 이번에는 내 긴장을 풀어 주려는 건가?
이렇게 배려가 넘치는 루나라니.
딸(?)의 성장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저런 퀴즈는 처음 들어 보는데.
“후후, 좀비가 되나요?”
“아니, 사람이 사람을 물면 죽어.”
“예? 무슨 문제가 그따위…….”
아이들이 슬금슬금 내 곁에서 멀어졌다.
론 교관도 멀찍이 떨어졌다.
다들 왜 멀어지는 거지?
아.
루나가 입을 쫙 벌리며 이리저리 푸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루나가 낸 퀴즈의 의미를.
“아닐 거 같아? 그럼 시험해 보면 되겠다. 그치?”
“오, 오지 마십시오, 루나 양.”
“긴장하지 마. 나는 그저 정답을 알려 주려는 것뿐이니까.”
루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잠시 후.
공동 가득 내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루나라는 맹수에게 머리를 물어뜯기는 작은 사고 이후.
우리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기 있는 나무패를 수거하렴. 그리고 돌아가면 끝이야.”
론 교관이 한쪽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작은 나무패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3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뭐야. 벌써 끝이야?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그러게요. 다친 사람도 하나 없고.”
“다 해치웠나?”
음, 죽음에 이르는 최고의 클리셰를 내뱉다니.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클리셰는 과학이라는 말이 있듯, 숨어 있던 수많은 마수가 방심하고 있던 우리를 습격…….
-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는 클리셰를 그렇게 말하고도 살아 있다니.
참 운이 좋은 놈들이다.
‘뭐, 광장으로 돌아가면 습격이 시작되겠지만.’
일명 개미굴 광장 포위 사건.
지금도 포위를 위해 속속 모이고 있는 중일 거다.
“그나저나 하급 마수가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네. 중급 마수까지는 무난하게 잡겠는걸?”
“뭐래. 덜덜 떨다가 다리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싸운 놈이.”
“기, 기회를 노린 것뿐이거든? 이런 놈들은 수십 마리가 몰려와도 문제없다고!”
“돌아가면 그녀에게 고백해야지.”
이 와중에도 착실히 클리셰를 쌓다니. 진짜 대단한 엑스트라들이다.
이번에도 사망자 없이 끝난다면 카론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도착했네. 다들 고생 많았다.”
우리는 머지않아 광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이 나 있는 공동의 벽.
다시 봐도 소름 끼친다.
곧 저기서 개미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릴 테니까.
“오, 꽤 많이 왔네. 이번 기수는 실력이 상당한걸?”
주변을 살폈다. 대략 70% 정도의 인원이 복귀한 듯하다.
습격이 머지않았다는 뜻.
동시에 폭업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세 가지.’
첫째, 비밀 통로를 찾는다.
둘째, 카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눈을 벗어난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스토커…… 아니, 루나를 떼어 낸다.’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냐?”
“……후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수상한데…….”
루나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평소에 눈치라곤 없는 애가 이럴 때는 어찌나 눈치가 비상한지.
역시 스토커다웠다.
“루나 양, 목 안 마르십니까? 제가 가져올까요?”
“아니? 필요 없는데?”
“저는 목이 말라서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같이 가자. 마침 나도 목이 말랐거든.”
“……?”
내가 대화의 흐름을 못 따라간 걸까?
분명 두 줄 전쯤에는 필요 없다고 한 것 같았는데.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물 마시러 간다며?”
“후후, 그 전에 쌀 것 같아서요. 구경 오시렵니까?”
루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화장실까지는 따라오기 좀 그런 모양이다.
“……60초 준다. 달려갔다 와.”
겨우 60초?
만약 진짜로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면 많이 곤란했을 거다.
이래 봬도 거대한(?) 사람이니까.
물론, 키 얘기다.
아이들의 틈에 섞인 뒤 슬금슬금 벽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벽을 이리저리 더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