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47화. 개미굴(7)
기쁘다. 하지만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대체 어떤 이유로 히든 피스가 발동한 것인가.
그리고 이 히든 피스의 끝은 어떻게 되는가.
이게 문제였다.
‘상대도 좋지 않아. 그 많은 사람들 중 하필이면…….’
제국의 시궁쥐 카론.
고인물들 중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딱딱한 어투와 정 없는 성격도 그렇지만.
느닷없이 나타나 플레이어의 목을 꺾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고인물들은 카론을 이렇게 부르곤 했다.
‘배드 엔딩 메이커’라고.
사실, 카론은 독특한 이벤트가 존재하는 캐릭터다.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난 곳에서 활동 중, 카론과 마주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때 유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싸운다.
-대화한다.
문제라고 한다면, ‘싸운다’를 선택할 경우 99% 전멸한다는 것.
최종장에 돌입한 이후에도 카론을 이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즉, 유저는 ‘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카론과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80% 정도가 목이 꺾이지.’
이게 바로 카론이 ‘배드 엔딩 메이커’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카론은 아카데미 선생 이전에 제국의 시궁쥐인 남자.
제국에 위험이 될 존재라고 판단하면 지체하지 않고 목을 꺾어 버릴 거다.
“이런……! 마수가 이렇게나 많다니!”
반대편을 확인한 카론이 침음을 흘렸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배드 엔딩 히든 피스가 아닌, 다른 히든 피스가 발동한 건가?’
나도 모르고 있던 히든 피스.
그게 발동했을 확률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와 있던 거지?’
물론, 방금 막 도착한 것일 수도 있다.
이쪽에 무언가 사고가 터졌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비밀 통로를 찾아내는 건 카론에게 쉬웠을 거다.
“제로! 정신 차려라!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
카론이 크게 소리쳤다.
당황했다는 게, 지금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게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마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보호해야 할 학생도 많으니까.
하지만.
‘카론이 이런 캐릭터는 아닐 텐데?’
내가 아는 카론이라면 오히려 당황했다는 걸 숨겼을 것이다.
원체 성격이 냉철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불안이 학생들에게 전염될 수도 있으니까.
즉, 결론은 하나다.
‘연기를 하고 있어.’
다년간의 첩보 생활.
거짓말 판별과 고문계의 스페셜리스트.
그 누구보다 낮고 어두운 곳에서 황제의 뒤를 지키는 자.
그게 바로.
‘제국의 시궁쥐 카론.’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방금 막 도착했을 거라는 가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카론은 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일섬]을 쓴 순간조차도.“제로! 뭐 하는 거냐! 어서 날 따라와라!”
카론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저 손을 맞잡으면 어떻게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끌려가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후후,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냐?”
“누가 봐도 저쪽 절벽에 큰 공격이 가해진 상태인데…… 그건 왜 지적을 안 하시는 것인지요?”
“…….”
카론은 연기에 집중한 나머지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일섬]이 남긴 여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지금도 크고 작은 돌 부스러기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고, 개미들의 혼란도 여전했다.
무엇보다 반대편 절벽에는 똑똑히 새겨져 있었다.
[일섬]의 크나큰 검흔 자국이.“……그렇구나. 설마 네가 한 거냐?”
“후후, 그럴 리가요.”
“그럼 누가 한 게냐?”
“오, 저도 마침 그게 궁금했습니다.”
“…….”
카론의 눈빛에 살짝 짜증이 서렸다.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걸까.
나도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수도 있겠군. 그놈이 이번 사건의 원흉일 수도 있겠어.”
“그렇군요. 그리고 범인은 레스터 가문의 사람일 거고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저 흔적. 레스터 가문의 ‘일섬’이잖아요?”
“…….”
하나의 실수는 두 번째 실수를 유발하기 마련.
우리는 루나가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섬’이라는 기술을 아는 건 당연한 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일까. 카론이 입을 꾹 다물었다.
카론을 몰아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스킬’을 사용할 때라는 걸.
“이상하군요. 저게 일섬의 흔적이라는 걸 모르실 리는 없고. 그렇다면…….”
한쪽 눈을 뜸과 동시에 [눈 뜨기] 스킬을 사용했다.
“보고도 일부러 못 본 척하고 있는 거라거나?”
카론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상대로였다.
카론은 내 [일섬]을 목격했고, 어떠한 목적 때문에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후, 실수하셨군요. 카론 선생…….”
아니.
“제국의 시궁쥐 씨.”
너무 도발적인 언행이었던 것일까.
카론이 몸 여기저기를 기괴하게 뒤틀었다.
뚜둑- 뚜두둑-.
카론이 몸을 이리저리 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허둥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고, 평소보다 몸집이 1.2배는 더 커졌다.
그리고.
“……눈치 빠른 쥐새끼는 싫어하는데 말이지.”
카론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내 이명을 알고 있다니. 이거 놀랍구나.”
카론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느긋한 발걸음.
하지만 눈을 감았다 뜨자, 카론은 어느새 내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흉터가 가득한 험상궂은 얼굴.
사람 하나는 우습게 죽이고도 남을 흉흉한 눈빛.
배드 엔딩으로 향하는 카론의 전용 히든 피스가 발동한 상황까지.
그야말로 최악인 상황이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이럴수록 빛을 발하는 스킬이 있었으니까.
‘정신방어…… 확실히 이럴 때는 사기란 말이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하다는 건 엄청난 강점이다.
머릿속으로 카론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제국의 시궁쥐, 황제의 그림자, 암살, 그리고 첩보의 달인.’
로델린도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캐릭터지만, 눈앞의 카론만큼은 아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경험이 적으니까.’
게다가 감정에 호소하면 약해지는 타입.
조금만 입을 털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카론은 그렇지 않다.
그에게 감정이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모래알과도 같은 것.
여러 나라를 오가며 거친 첩보 생활을 했다 보니, 어리숙한 거짓말을 했다간 귀신같이 간파당할 거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속여 왔지만, 카론은 격이 다른 존재야.’
무엇보다 지금 이곳은 카론과 나, 단둘만이 존재하는 공간.
한 명이 죽어 나가도 조용히 묻힐 것이다.
물론, 그 한 명은 100% 내가 될 것이고.
“제국의 시궁쥐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명이야.”
“후후, 그렇습니까?”
카론이 내 멱살을 꽉 움켜쥐더니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내 발밑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 그 단어를 입에 올린 놈들 모두 죽여 버렸거든.”
“후후, 그러셨군요. 진작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카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내가 전혀 당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황하지 않는 이유?
[정신방어] 스킬이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이상하니까.’
마수의 습격, 학생들의 위기.
그 와중에 발견한 ‘나’라는 비정상적인 존재.
긴급 상황 중의 긴급 상황이다.
하지만 카론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 정도 상황은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다.
나를 기절시키고 구속.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
그 후에 나를 고문해서 정보를 알아낸다.
이게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귀찮게 연기까지 해가며 나와 대화하는 걸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레스터 가문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내가 봤을 때 카론은 레스터 가문과 연이 있어 보였다.
앞서 말했지만, 그에게는 감정이란 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카론이 루나에게 호의를 보인다?
‘레스터 가문과 엮인 무언가가 있어. 게임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확실하다.’
느낌이 팍팍 왔다.
카론과 레스터 가문의 사이를 밝혀내는 것.
그게 바로 카론을 공략하는 열쇠이자.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거라는 게.
“시답잖은 농담은 여기까지다. 지금 네놈 머리로는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기에도 벅차겠지. 그러니 질문은 내가 해 주마. 넌 대답만 해라.”
거참 고마운 배려로군.
사실 저건 대화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술 중 하나다.
뭐, 딱히 우위를 점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상관없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건.
‘거짓말을 어떻게 해야 안 들킬 수 있느냐.’
카론이 거짓말을 간파할 때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이 가진 정보와 대조, 논리와 이치, 눈동자의 움직임, 호흡, 맥박의 변동 등.
‘그중에서도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눈동자의 움직임, 호흡, 그리고 맥박의 변동.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움직임들이 문제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실눈캐.’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으니 눈동자의 움직임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지만.
문제는 호흡과 맥박의 변동이다.
항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정신방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스킬이 심장박동까지 컨트롤 가능한지는 의문인 상태.
이렇게 된 이상.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 대답한다.’
가장 완벽한 거짓말은 진실이 30% 정도 섞인 거짓말이니까.
지금부터 대화를 통한 극한의 심리전이 펼쳐질 거다.
고인물과 제국의 시궁쥐의 첫 번째 심리전.
어느 쪽이 이기든 더럽고 치열한 머리싸움이 될 것이다.
카론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사생아냐?”
레스터 가문의 사생아 출신.
루나와 배다른 남매냐고 묻는 질문.
‘그쪽으로 추론한 건가.’
뭐, 합리적인 추론이긴 했다.
[일섬]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니까.하지만.
“후후, 아닙니다. 위대한 레스터 가문이 그랬을 리가 없잖아요?”
“…….”
카론이 입을 다물었다.
첫 질문부터 반격 아닌 반격을 당해서일 거다.
카론의 첫 번째 질문.
단도직입적인 질문처럼 보였지만, 함정이 숨겨져 있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거라 생각했겠지.’
물론, 사생아라고 말한다면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긴 했을 거다.
이 시대에 유전자 감식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짓말’이 통했을 경우의 얘기다.
‘아직 정신방어 스킬이 심장박동 컨트롤까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
만약 ‘맞습니다. 루나와 배다른 남매입니다. 흑흑, 저 불쌍하죠?’라고 대답했는데 [정신방어]가 심장박동 컨트롤을 못 하는 거였다면?
이미 저 세상에 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사생아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압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20개쯤은 생각해 놨을 테고.’
그래서 진실을 말한 거다.
‘하지만 카론이 얻은 게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
레스터 가문에 알 수 없는 호의를 보이는 카론이다.
내가 사생아였다면 루나와 동급의 대우를 해 줬을 터.
하지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카론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어졌다.
즉, 지금 카론은 첫 질문을 희생한 대신.
내 목숨을 언제든지 끊어 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 거다.
“그럼 어떻게 레스터 가문의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거지?”
첫 번째 관문은 넘었다.
이제부터는 [정신방어]의 실험과 확인, 그리고 역으로 정보를 캐낼 때다.
속으로 침을 꼴깍 삼킨 후, 입을 열었다.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