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48)
제48화
48화. 개미굴(8)
“가문의 비기를 전수받았단 말이냐?”
“후후, 정식적인 전수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거긴 합니다.”
100% 거짓말은 아니다. [신의 모방]으로 모방한 기술이니까.
어떻게 보면 전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자 카론이 비웃음을 흘렸다.
“비슷한 거라…… 상당히 애매한 대답이로구나.”
“후후, 사실대로 말한 것뿐입니다. 전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니까요.”
이것도 거짓말은 아니다.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라. 자세히 설명해라.”
“후후, 존재의의도 그렇지만…… 제가 추구하는 것과 레스터 가문이 추구하는 것, 그 둘이 달랐거든요.”
사실 게임에는 레스터 가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
하지만 ‘긍지’를 중요시하는, 프라이드가 상당히 높았던 가문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반역자로 몰려 멸문당한 것도 어이없는 사건 하나 때문이었지.’
그리고 이건 나보다 카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때의 사건이 아니다.
지금은 레스터 가문이 고결하고 긍지 높은 가문이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존재의의라……. 그게 무슨 말이지?”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 그 자리를 제가 원했습니다. 아니, 원했었다, 이게 맞겠군요. 지금은 없어진 가문이니까 말이죠.”
“…….”
거짓말이 아니다.
‘게임 3년 차쯤이었나? 레스터 가문의 첩자를 꿈꿨지.’
어릴 때였으니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때 레스터 가문에 내가 있었다면 그런 일을 겪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그러니, 지금 내가 한 말도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자리를 꿈꿨군.”
첩자라는 자리.
실력 이전에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아야 하는 자리다.
긍지를 중시하는 레스터 가문에 그런 자리가 존재할 리 없었다.
“후후, 정확하십니다. 참 너무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더러운 일을 하겠다는데도 받아 주지 않다니요.”
“……그 자리를 자처한 이유는 뭐지?”
“보답을 하고 싶었거든요.”
“보답?”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죠. 레스터 가문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던 고아원을.”
“…….”
게임 속에서 나왔던 정보 중 하나.
레스터 가문은 선행도 남몰래 하기를 원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영지마다 있는 고아원이었다.
심지어는 다른 가문의 영지에서도 운영했다고 한다.
“굶어 죽기 직전, 커다란 빵 한 조각을 받은 그날 결심했습니다. 제 인생의 나머지는 레스터 가문을 위해 쓰겠다고.”
“…….”
카론이란 캐릭터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황제에게 직접 하사받은 빵.
그가 제국의 시궁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라는 건, 카론에 대한 몇 없는 정보 중 하나였다.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나를 측은하게 여기게끔.
동질감을 느껴 자신과 나를 겹쳐 볼 수 있도록.
“고아원에서 먹을 걸 훔쳐 레스터 가문으로 향했습니다. 반년을 꼬박 걸었고, 받아들여 달라며 반년 동안 머리를 조아렸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실제로 고아원에서 자랐으니까.
그게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카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30%의 진실이 섞인 거짓말이라 구별을 못 하는 것인지.
레스터 가문에 관한 얘기라 관심 있게 듣고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과거의 자신과 날 겹쳐 보고 있기 때문인지.
어느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을 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정신방어]가 심장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주였던 레니아 님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받아 달라며 고집을 부렸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널 받아들였단 말이냐?”
“후후, 그렇습니다. 이제 좀 믿음이 가십니까?”
이번에는 100% 거짓말로 점철된 문장들이다.
걸려도 좋다. 한 번 거짓말이 들켰다고 해서 바로 목을 꺾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 중요한 건 [정신방어]의 검증이다.
그래야 다음 수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 전혀. 오히려 네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역시 [정신방어]는 심장박동까지 컨트롤하지 못하는 걸까?
전략을 수정하려던 때였다.
“레스터 가문은 엄격하다. 언행과 행실도 그렇지만, 검술은 더 하지. 더러운 시궁쥐를 꿈꾸는 자에게는 더더욱 전수할 리가 없다.”
카론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지적한 건 레스터 가문의 긍지다.
내 거짓말을 지적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통한 거다. 순도 100%의 거짓말이.’
[정신방어]가 심장박동까지 컨트롤한다는 거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물론 한 번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일부러 속은 척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어.’
내게 더 많은 거짓말을 시키고, 레스터 가문과 연이 없는 존재라는 걸 확신하기 위해서.
카론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후후, 이거 섭섭하군요. 사실을 거짓말로 치부하시다니.”
“아니, 거짓말이 확실하다. 긍지 높은 레스터 가문에서…….”
때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카론이 주로 사용하는 어휘, 말의 속도, 우리가 나눈 대화.
마지막으로 타이밍까지.
“너 같은 걸 키울 일은 없을 테니까.”
“저 같은 걸 키울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죠?”
양쪽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똑 닮은 문장.
카론의 눈이 커졌다.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다 봤으니까.
재빨리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레스터 가문에서 저 같은 걸 받아 줄 리 없죠. 어린아이인 탓도 있지만, 더러운 일을 맡겨 달라니. 레니아 님 성격에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
“그럼 뭐냐?”
“레니아 님과 거래를 했습니다.”
“……거래?”
“기브 앤 테이크. 대가를 지불하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대가를 지불했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너 같은 놈이 무슨 대가를 지불할 수 있지?”
열다섯. 지금도 어린 나이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어렸을 거고, 그런 놈이 제국의 기둥 중 하나였던 레스터 가문에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리 없다.
카론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음,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정보 같지도 않은 정보를 주고, 측은함에 가르침을 받았다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카론의 반응을 보아 하니 레스터 가문의 긍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높은 듯했다.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변명으로는 턱도 없을 터.
이 이상 꾸며 내는 건 무리다. 그러니까.
뻔뻔하게 간다.
“후후, 그걸 알아내는 게 당신의 일 중 하나 아닌가요?”
“…….”
“커헉!”
카론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더니 내 목을 움켜쥐었다.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목을 틀어쥐니, 자연스럽게 목이 졸리게 되었다.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잘도 하는구나. 죽고 싶은 거냐?”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끔찍한 고통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신방어 이 개같은 스킬 같으니……!’
정신이 멀쩡했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다니.
숨이 막히면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조금 덜 아프기 마련인데……!
그딴 건 하나도 없이 오로지 고통뿐이었다.
[정신방어]. 이거 진짜 문제 있는 스킬이다.‘배드 엔딩인가…….’
죽기 직전 내가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18년 동안, 그리고 게임 속 세상에 들어와서도 클리어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
‘애들도…… 구원해 주고 싶었는데.’
로델린, 루나, 레이몬, 그리고 아직 마주하지 못한 아이들까지.
각자의 아픔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었다.
힘들겠지만, 내 손이 닿는 선에서는 최대한 이끌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루터스와 앵무새 같은 영웅이 될 팔자는 아니었나 보다.
‘……젠장.’
카론을 향해 마지막 욕설을 내뱉은 때였다.
단단한 돌바닥이 난데없이 나를 들이받았다.
동시에 호흡이 돌아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땅이 나를 들이받은 게 아니라.
내가 땅으로 떨어진 것이라는 걸.
“헉…… 헉…….”
나를 내려다보는 카론과 시선을 마주했다.
살려 준 거다. 달리 말하면.
살아남은 거다.
카론이 날 죽여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 거다.
“두 번 다시 시답잖은 농담은 하지 마라. 다음에는 진짜로 목을 꺾어 줄 테니.”
서슬 퍼런 경고.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카론이 내 목을 조른 건, 농담 때문이 아니라는 걸.
‘불리한 상황 속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야. 즉.’
나는 잘하고 있었다는 걸 카론이 증명해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이머가 ‘아, 이 새끼 게임 X같이 하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랄까?
극찬 중의 극찬을 받았다는 뜻이다.
“루나를 보호해 주는 이유는 뭐지?”
카론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직 머리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노린 것이겠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대답했다.
“레스터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게 첫째, 가문의 검술이 전승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둘째, 레니아 님과의 거래 중 하나라는 게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넷째…….”
네 번째 손가락을 펴며 상큼하게 말했다.
“루나 양은 귀여우니까요.”
카론의 눈이 짜게 식었다.
* * *
그로부터 1분쯤 흘렀을까.
“쯧.”
카론이 혀를 찼다.
지금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다.
당연한 일이었다.
협박에 굴하기는커녕 더 농담을 해 대는 꼴이라니.
‘뭐, 루나가 귀엽다는 건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카론이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다.
“…….”
카론은 입을 열지 않았다.
농담 이전에,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을 진실로 판별했다는 뜻이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정신방어] 스킬은.
‘심장박동까지 컨트롤 가능하다.’
이런 개사기 스킬 같으니!
물론, 좋은 쪽으로의 개사기였다.
죽기 직전에도 생생한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 것만 빼면 말이다.
“건방진 놈. 이유가 참 많고 다양하기도 하구나.”
“후후, 제 변덕도 살짝 섞여 있긴 합니다. 레니아 님과의 거래 내용이 좀 포괄적인지라…… 어쩔 수 없이 묶여 버렸달까요.”
“거래 내용이 정확히 어떻게 되지?”
그야 그건.
“후후, 비밀입니다.”
“…….”
그런 거래를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카론은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레스터 가문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약속을 지킬 이유는 없을 텐데?”
“신의를 지키는 게 잘못된 행동인가요? 제가 비록 출신은 미천하지만, 긍지는 갖고 있는 몸입니다.”
정식으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레스터 가문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니까요.
카론에게는 아마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카론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슬픔, 회한, 시기, 질투, 그리고 부러움?
물론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었다.
‘레스터 가문과 어떤 관계였던 거지?’
살짝 깊게 파고들까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돌렸다.
카론에 대한 정보가 한 번에 풀릴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개미굴은 1장의 첫 전투.
게임 초반부 중의 초반부다.
그런데 꽁꽁 숨겨져 있던 정보가 공개될 리 없었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공략해 주지. 카론이라…… 아주 맛있는(?) 게 튀어나왔어.’
캐릭터의 숨겨진 일화를 발굴해 내는 것.
그게 바로 ‘게임’의 묘미 중 하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카론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