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50)
제50화
50화. 개미굴(10)
“바보…… 넌 진짜 바보야.”
“네~ 네.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훌쩍-.
루나가 또 한 번 크게 코를 들이켰다.
물로 머리와 옷을 헹구고, 아공간에 있던 머리끈을 꺼내 루나의 머리를 트윈테일로 묶어 주었다.
우리 루나는 트윈테일을 빼면 남는 거라곤 개같은 성격 하나뿐이니까.
머리끈은 왜 가지고 다니냐고?
애를 키우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나씩 갖고 다녀야 하는 법이다.
뭐, 아기가 15살이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
하지만 이런 지극한 내 정성에도, 눈이 퉁퉁 부은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훌쩍…… 착각은 하지 마.”
“예?”
“절대로 네가 없어서 운 게 아니야! 네가 죽었…… 아, 아니, 어디서 다치기라도 했을까 봐 운 거니까.”
죽었다는 말을 입에도 담기 싫었던 걸까.
‘귀엽긴.’
제 딴에는 사나운 눈매라고 생각하겠지만, 눈이 퉁퉁 부은 채 저런 말을 하니 영 설득력이 없다.
“지, 진짜거든? 네가 죽는다고 해서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거 같아!?”
“후후,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좀 슬프겠군요.”
“아, 아니 뭐…… 진짜 그런다는 건 아니지. 죽기 전에 내가 구해 줄 거고. 친구가 죽으면 슬프긴 하겠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것일까.
루나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루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후후, 고생하셨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붙어 있을 테니 걱정 마세요.”
루나가 수그러드는 게 느껴졌다.
역시 애를 달랠 때는 칭찬과 쓰다듬기 콤보가 최고다.
“누, 누가 애인 줄 알아!?”
루나가 내 손을 쳐 내며 달려들었다.
음, 이제야 평소의 루나로 돌아왔군.
내 머리통을 잘근잘근 씹는 그녀를 무시한 채 생각에 잠겼다.
‘카론이 레니아와 한 거래는 무엇일까?’
지금 확실한 건 세 가지뿐이었다.
루나가 관련됐다는 것.
내가 루나와 친해지는 걸 견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루나의 엄마인 레니아가 한 부탁이라는 것.
그렇다면 설마……!
‘루나에게 좋은 남자를 찾아 주라는 거래인가?’
그럼 내가 딱이다.
나는 완전 좋은 남자니까.
사나운 루나에게 머리통을 내줄 정도로 좋은 남자!
“이제부터 나한테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마.”
“……네?”
“불안해서 어디 떨어지겠어? 앞으로는 어딜 가든 함께야. 그렇게 알아!”
분노 조절 장애, 스토커 기질.
여기에 분리 불안 장애까지 추가라고?
이게 내 유일한 파티원?
어질어질하다, 진짜.
“오, 제로!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개미굴을 같이 탐사했던 3조의 아이들이었다.
“루나 양은 정말 대단해요! 덕분에 고백을 할 수 있게 됐다고요!”
“맞아. 덕분에 살았다니까?”
클리셰를 뿌리고 다니던 고백 살인마(?)도 무사했다.
대화를 들어 보니 루나가 아이들을 구해 준 듯했다.
‘카론이 없는 공백을 루나가 메꾼 건가?’
[Lv. 21]루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였다.
나와 헤어지기 전이 18이었으니, 무려 3레벨이나 올랐다는 뜻이다.
게다가.
[애증A]새 스킬까지 생겼다.
갑자기 스킬이, 그것도 A급이 생기다니.
‘애증은 시너지 스킬이야.’
시너지 스킬이란 파티원 중 조건에 부합하는 캐릭터가 있을 때 발동되는 패시브 스킬.
그리고 [애증]은 전체 스탯이 증감하는 효과를 지닌 스킬이다.
스탯이 증감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조건에 부합하는 상대가 함께 있을 경우에는 스탯 증가 효과가.
곁에 없을 때는 스탯이 감소하는 효과가 적용된다는 뜻이다.
‘내가 알기로 A급은 ±25%.’
참고로 S급이면 ±50%의 스탯이 적용된다.
그렇다. 사기다.
하지만 그만한 페널티도 존재하는 스킬이었다.
첫째, 조건에 부합하는 캐릭터에 문제가 생긴다면 곧바로 시너지 효과가 사라진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루나의 [애증] 대상은 바로 나.
내가 멀리 떨어지거나 기절, 또는 죽는다면 곧바로 [애증]의 효과가 사라지며.
그 즉시 모든 스탯 –25%의 페널티를 받는다.
둘째, 페널티가 과도하게 크다.
내가 함께 없을 때는 –25%. 무려 1/4이 약해지는 거다.
그리고 이건 레벨이 오를수록, 스탯이 높아질수록 더 크게 와닿을 거다.
셋째, 저 스킬이 S급이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스킬이 S급에 도달하는 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 S급은 단순히 한 단계의 차이가 아니니까.
‘스킬 자체가 변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생기지.’
그렇다. S급은 단순 노가다가 아닌, 행운도 함께해야 오를 수 있는 경지.
그래서 A급과 S급의 수치가 25%나 차이가 나는 거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고인물들이 잠재력 도박을 하는 이유지.’
궤를 달리하는 S급 스킬을 획득할 수 있으니까.
랜덤이긴 하지만, S급 스킬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도박이었다.
‘그러고 보니 또 잠재력 도박을 할 수 있는 pt가 쌓였네.’
개미 산란장에서 무려 10레벨을 올린 나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일섬]으로.
‘어쩌면…… 카론이 등장하도록 설계한 건 이걸 막기 위해서였을지도?’
갈수록 레벨을 올리기 힘들어지는 게임이지만, 계속해서 스킬을 사용했다면 적어도 50까지는 올릴 수 있었을 거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을 터.
밸런스 붕괴를 막기 위해 카론이 등장하도록 설계해 두다니.
역시.
‘이 게임은 재밌다니까?’
당장이라도 잠재력 도박을 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꾹 억눌렀다.
보는 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강제적으로 발현되는 스킬 같은 걸 얻게 될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이번 개미굴에서 얻은 수확을 정리하자면…….’
10레벨 업, 잠재력 도박을 할 수 있는 100pt 획득.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얻은 10골드, 스킬 레벨 업 포인트 1개.
카론의 히든 피스 발견, 최소한의 신뢰 관계 구축.
여기에 루나의 성장까지.
엄청난 수확을 거두었다. 그것도 단 하루 만에.
‘애증 스킬은 뭐…… 나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니까.’
오히려 나와 같이만 있다면 +25%의 스탯이 증가하는 루나다.
우리가 떨어질 일은 거의 없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했다.
“제, 제로! 무사했군요!”
저 멀리서 총총 달려오는 누군가.
레이몬이었다.
그런 레이몬의 뒤를 두 명의 아이가 따랐다.
이 게임의 주인공인 알렉스. 그리고 마법의 천재 유리디아다.
‘예정대로 잘 만났나 보네.’
개미굴 에피소드는 첫 전투가 펼쳐지는 장소이자.
셋이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당분간은 떨어져 다니겠지만, 앞으로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며 동료가 될 거다.
‘카론이 이탈한 것 때문에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원작과 똑같이 잘 진행된 듯했다.
‘레벨이…… 높네.’
셋 모두 내가 예상한 것보다 한두 개씩 더 올랐다.
루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한 단계씩 더 성장한 것이다.
‘카론이 없었던 영향인가?’
원래라면 카론이 해치웠어야 했던 개미들을 교관과 아이들이 나눠서 처치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쁜 건 아니다. 주인공들이 강해질수록 이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니까.
‘이것도 숨겨진 히든 피스 중 하나겠지. 참 다행이야, 아무 일도 없이 끝나서.’
1파티에 속해야 하는 주연들이 무사한 것도 다행이었지만, 레이몬에게 친구가 생겼다.
저 둘과 함께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일단 의지할 곳이 생겼다는 게 중요했다.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레이몬이 좌우로 팔을 크게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라고요!”
“……?”
“새, 새 친구들이긴 하지만 제로만큼 친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이놈 지금 뭐라는 거냐?
오해는 무슨. 셋이 안면을 터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여튼 저놈의 순수악 특성이 문제다.
“뭐야. 저리 안 꺼져? 제로가 불편해하잖아!”
“루, 루나! 또 제로를 괴롭히고 있었죠! 꺼, 꺼져야 할 건 당신 쪽이라고요!”
“뭐래? 나만큼 제로한테 잘해 주는 애가 누가 있다고!”
루나야, 일단 내 머리를 물어뜯고 있는 입부터 떼고 말하는 게 어떨까?
그래야 설득력이 생길 것 같은데.
“우, 우우……! 저도 그 정도 스킨십은 얼마든지 가능한 사이거든요?”
이게 스킨십으로 보인다고? 제정신인가?
그리고 남자한테 물어뜯기고 싶진 않거든?
“메롱이다. 제로가 아무나 스킨십해 주는 애는 아니거든? 이렇게 보여도 나름 지조 있는 애라고.”
이거 내가 스킨십하고 있는 거였어?
강제로 머리를 물어뜯기고 있는 게?
“저, 저는 당신과 달리 베프란 말이에요! 아주 절친한 사이라는 뜻이죠.”
“베, 베프!? 내가 더 친하거든? 나는 베베베베베베프야!!”
루나야, 이 세상에 그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거든?
‘베’ 자가 많이 붙는다고 더 친한 것도 아니야.
“제, 제 친구를 돌려 주세요!”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루나가 레이몬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손이 제법 매섭다.
[애증] 스킬이 저런 드잡이에도 적용이 되는 거였구나?새로운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맙다, 루나야.
“이, 이거 놓으세요!”
“새로운 친구들하고 놀면 되잖아! 왜 우리한테 붙는 건데?”
“저, 전 제로가 더 좋단 말이에요!”
“우리 제로는 너 같은 거 안 좋아해!”
“그, 그쪽 제로가 아니라 저의 제로예요!”
악! 악!
루나와 레이몬의 가슴이 옹졸해지는 싸움이 시작됐다.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니까.
“안녕하세요?”
그때였다.
유리디아가 생긋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나와 안면을 트고,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에게 종속할 것을 권유한다.
참고로 유리디아파에서 사람을 보낸 적은 몇 번 있지만, 직접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귀족의 자존심, 그리고 한 계파를 이끈다는 자부심 때문이겠지.’
먼저 찾아와 자신의 권위를 세워 주길 바란 거다.
그리고 이건 테르온 쪽도 다르지 않았다.
직접 찾아오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사람만 계속 보냈다.
추파를 계속해서 보냈지만, 거기에 응하지 않으니 골치가 아팠을 거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하겠군.’
약속을 잡거나 스스로 찾아간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우연히 마주했다는 게 중요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게 대체 뭐가 다르냐며 반문하겠지만.
콧대가 높은 귀족들에게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하늘과 땅, 그 정도로 큰 차이랄까?
“후후, 안녕하십니까. 제로라고 합니다.”
“물론 알고 있었답니다. 신입생이라면 제로 군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지요. 처음 인사드려요. 로운터가의 삼녀. 유리디아 드 로운터입니다.”
교복이 조금 찢어진 상태였지만, 유리디아의 기품을 조금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더없이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다.
물론.
‘속으로는 전혀 딴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사실 유리디아는 상당한 말괄량이다.
하지만 그녀는 귀족.
심지어 마법의 천재라고 칭송받으며 가문의 기대를 온몸에 받고 있는 상태.
실제 성격을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낼 수가 없었다.
‘뭐, 가문에서는 교육과 지도를 통해 개과천선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리디아의 1%도 바꿔 놓지 못했다.
유리디아의 연기력과 참을성이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캐릭터인지 이해하기 쉬울 거다.
지금도 속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 거다.
‘아, 예의 차리는 거 X나 귀찮네. 그래도 첫 만남이니 신경 써야겠지?’
-라고.
나쁜 아이는 아니다.
그저 겉과 속이 아주 조금(?) 다른 아이일 뿐.
참고로 유리디아에게는 두 얼굴의 유리디아, 아수라 유리디아, 지킬 앤 유리디아라는 별명이 있다.
유리디아로 게임을 플레이할 시, 대사와 함께 괄호로 속마음이 표시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사람을 보냈는데 통 답을 보내지 않으셔서 섭섭했달까요? 물론, 아주 조금이지만요.”
나다, 이 10새끼야. 사람을 보냈는데 왜 안 오냐?
게다가 무시까지 해? 조금 뒤지고 싶냐?
……가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