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54)
제54화
54화. 논공행상(3)
“잠깐!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상장을 받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고드너가 외친 말이다.
‘테르온이 지시한 모양이네.’
뭐, 합당한 질문이긴 했다.
수십 마리의 개미와 싸우는 건 현재 다이크도 할 수 없는 일.
만약 내가 다이크보다 강하다면 전략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론에게 묻는 거였다.
정말 수십 마리의 개미를 홀로 처리한 게 맞느냐고.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왜 상장을 준 거지?’
눈에 띄는 짓은 하지 말라더니, 이건 너무 눈에 띈다.
카론이 생각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오히려 막대한 벌점을 줬으면 또 모를까.
‘그리고 미리 말을 맞췄어야지. 수십 마리의 개미와 나 혼자 맞서 싸웠다니, 뭔 소리야?’
뭐, 실제로 가능하긴 하다. [신의 모방]이 있으니까.
[일섬] 한 방에 정리됐을 거다.‘하지만 현재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저 괴물 다이크도 못하는 일을 수상쩍은 놈이 해냈다?
악마로 몰려 화형당하기 딱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론이 생각해 낼 만한 변명거리는 아닌데…….’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허점이 너무 많은 변명이다.
그런 생각이 담긴 내 시선을 느껴서일까.
카론이 입을 열었다.
“기존에 파악하지 못했던 길이 있었다. 그곳을 제로가 발견했고, 혼자서 그 길을 무너뜨려 막았지.”
“그런 일이…….”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됐나?”
카론이 나를 힐끗 바라봤다.
누가 물어보거든, 저렇게 대답하라는 거였다.
‘내가 무너뜨렸다는 길은 카론이 만들어 뒀겠지.’
증거를 제시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
평범한 벽을 부수고 길이 있었던 척 위장해 두지 않았을까?
“뭐야. 어디 갔나 했더니…… 나름 고생하고 있었잖아?”
“후후,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도 모르고 제 머리를 깨물었죠. 참 몰상식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게. 근데 그거 설마 나야?”
루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어 주었다.
그래, 맞아. 그게 바로 너야. 움빠 둠빠 두비두밤~.
콰직!
잠시 나를 바라보던 루나가 내 머리를 깨물었다.
응, 계속 깨물어 봐. 아프면 그만이야~.
물론 이런 와중에도 아이들의 불만은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상점 10점은 너무 과합니다. 중간고사에서 형평성의 문제가……!”
“나한테 그래 봤자 소용없다.”
“예? 그게 무슨…….”
카론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이건 총장님의 지시 사항이거든.”
“총장님의!?”
“잠깐, 저거 설마 총장 직인이야!?”
상장의 오른쪽 아래.
‘총장 드웨너’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아하, 그런 거였어?’
그제야 머릿속에 퍼즐이 맞춰졌다.
내가 활약했다는 거짓말도 그렇지만, 카론답지 않은 허점이 가득한 변명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드웨너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구나?’
그제야 아이들이 입을 닫았다.
앤우드 아카데미의 최고 권력자가 상장을 내렸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머릿속으로는 아마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새끼, 운이 좋았네.’
‘사망자 없이 무사히 끝났으니까. 위에서 보고만 받는 사람 입장에선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을 수밖에 없겠지.’
‘자기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뭐, 긴급한 상황이긴 했지. 이건 인정.’
……같은 생각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자, 카론이 다시금 교단에 올라섰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논공행상의 의의를 설명해 주겠다. 아는 사람 있나?”
“공적에 따라 상을 내림으로써,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함 아닌가요?”
카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전적인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긴 뜻, 의의를 말하는 것이지.”
조용했다. 유리디아, 테르온, 내로라하는 우등생들까지.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사실, 미래에 너희들이 갈 곳도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카데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평가를 받고, 매긴다.
사람의 가치를 숫자로 수치화하고 기록을 남기는 거다.
“사람을 숫자로 치환해 평가한다니,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누군가와 일을 하게 될 경우, 어떤 걸로 그 사람을 평가할 거지?”
외모? 대화? 도덕성? 전문 지식?
그 또한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사람을 파악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수치화된 평가는 그럴 때 도움이 된다. 여기에 상장 같은 게 하나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더욱 도드라지게 되겠지.”
물론,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평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다.
뒤늦게 출발한 사람이 앞사람을 따라잡았다고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노력해라. 지금의 노력이 미래의 너희를 성장시키고, 목숨을 구해 줄 테니까.”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다.
첫 실전. 그리고 살면서 처음 받아 본 나 자신에 대한 평가지.
입학시험 이후 너무 들떴었다는 걸 깨달았을 거다.
“아, 물론 취직도 시켜 줄 거다. 네놈들의 평가 점수가 좋다면 말이지.”
아이들이 웃었다.
목숨이라는 단어에 비해, 무게가 가벼운 단어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놈들. 취직이 얼마나 힘든데!’
대한민국의 청년 취업률을 알면 절대 웃지 못할 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먼저 가지도록.”
까득.
테르온이 이를 갈았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듯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다. 푹 쉬도록 해라. 아픈 놈은 더 푹 쉴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되겠군.”
그런 테르온에게 돌아온 건 비아냥이었다.
카론이 교실을 나섰지만, 그 누구도 교실을 나서지 않았다.
테르온의 심기를 거슬렸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냄새가 나.”
“예?”
냄새가 난다는 루나의 중얼거림.
동시에 시선은 카론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
설마 눈치챘단 말인가? 카론이 자신을 아껴 준다는 걸?
‘그 눈치 없는 루나가?’
확실히 상점을 너무 많이 받긴 했다.
무려 8점.
12점을 받은 알렉스와 9점을 받은 유리디아의 그림자에 가려짐과 동시에.
중간고사에서 높은 등수를 받기에는 최적의 점수.
‘카론, 너무 티 났잖아!’
루나가 눈치챌 정도니 말 다 했다.
카론을 위한 변명을 준비하던 때였다.
루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확실해. 어디선가 맡아 본 냄새야. 근데…… 언제더라?”
하지만 루나의 입에서 나온 건 지금 상황과 전혀 관련 없는 말이었다.
그럼 그렇지. 눈치챘을 리가 없었다.
우리 루나는 눈치를 밥 말아 먹은 아이니까.
“루나 양.”
“응?”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개라면 또 모르겠지만요.”
“……그래. 개한테 한번 물려 봐라.”
“예?”
고개를 돌린 나를 반겨준 건, 크게 벌린 루나의 입이었다.
* * *
“후후후.”
앤우드 아카데미의 총장실.
18대 총장, 드웨너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선물은 잘 받았나 모르겠군, 제로 군.”
드웨너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개미굴에서 사고가 터졌다는 말을 듣고 전전긍긍하던 중, 도착한 카론.
그에게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바로 아이들을 개미굴로 끌고 간 주모자…… 아니, 책임자였으니까.
“이이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나! 일을 얼마나 대충 한 게야!”
하마터면 아이들이 죽을 뻔했다.
이건 단순히 사고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카론도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죄송하면 교사 생활 끝나나?”
“…….”
“어쭈? 이제 내 말까지 무시하겠다는 겐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해?”
“……주의하겠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그런 거 하나하나 꼼꼼히 다 확인했다고!”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이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얼마나 일을 대충 했으면!”
“죄송합니다.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죄송하면 교사 생활 끝나나?”
“……?”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무려 30분이 지날 때까지도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훈계.
아니, 짜증 토해 내기.
그래도 카론은 괜찮았다.
애초에 자신이 꼼꼼히 확인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카론에게 있어 이 정도 질책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만 뺀다면 말이다.
‘이 자식…… 자기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모르고 있잖아?’
웃긴 건, 드웨너 총장이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거다.
30분째 무지성한, 같은 대화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니.
이리 무능한 작자가 어디 또 있을까.
“나 때는 말이야…….”
또다시 반복되는 말.
카론은 결심했다. 당장 이 총장실을 나가야겠다고.
첩보원에게 있어 인내심은 기본 소양.
드웨너는 그런 카론의 인내심을 바닥냈다.
단 30분 만에 말이다.
‘화제를 바꾼다.’
어떤 화제로 바꿔야 저 무능한 드웨너의 관심을 돌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카론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켈트성을 탈출했을 때보다도 더욱 바쁘게 돌아가는 카론의 머리!
‘그놈을 팔아야겠군.’
짜증 나기 짝이 없는 놈. 제로를 팔기로 했다.
시궁쥐를 꿈꾸는 녀석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최대한 입을 맞추려고 노력할 테니까.
“이이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얼마나 일을 대충 했으면!”
타이밍을 재는 건 쉬웠다.
드웨너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숨겨진 공간이 있었습니다.”
“숨겨진 공간?”
“예, 그렇습니다.”
개미 산란장으로 이어지는 숨겨진 공간의 위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공간.
그곳을 말하는 거였다.
교관들과 함께 아이들을 보낸 후, 개미굴로 돌아와 제로의 흔적을 지웠다.
발자국, 머리카락, 추적향의 냄새 등.
그 직후, 카론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외적인 문제는 해결했지만, 내적인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교관들의 시선이 문제야.’
제로를 본 이들이 아무도 없다.
남들은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말하겠지만, 이건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상벌점을 주기 위한 회의가 시작됐을 때, 제로의 차례가 왔다고 가정해 보자.
“다음은 제로 군입니다. 제가 담당하던 구역에는 없었습니다.”
“저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하군요. 도망자 명단에도 없는데요?”
교관들의 눈은 절대 옹이구멍이 아니다.
혼란한 와중에도 충실히 아이들을 감시했다.
그런데 제로를 본 교관이 한 명도 없다?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카론이 선택한 건.
콰앙!
후드득…….
벽을 부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거였다.
‘혼란스러운 와중 새로운 길을 발견했고, 제로는 거기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발견해 구해 줬다.’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쫓아오는 절체절명의 순간.
‘힘으로 입구를 무너뜨리고 개미들의 추격을 막았다.’
무난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스토리다.
눈앞에 증거를 만들어 놨으니까.
지금 만든 것이다 보니 돌벽의 색이 다른 곳과 다르지만, 상관없다.
개미굴은 자신이 통제하는 곳.
정보 또한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흠…… 그런 일이 있었다니. 어쩔 수 없긴 했군. 그 혼란한 상황에 숨겨진 공간까지 있었다니…….”
“다 제가 잘 알아보지 못한 탓입니다.”
“아니네. 내가 너무 흥분했었군. 참, 그 갇혀 있었다던 학생의 이름은 뭔가?”
“제로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