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58)
제58화
58화. 카론과의 거래(3)
“후후, 저도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조사를 해 봤죠.”
“조사?”
“예. 뭐, 큰 정보를 얻은 건 아니었습니다. 놈들이 신성력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 정도?”
“……흑마법사가 신성력을 연구했다고?”
웃긴 상황이다.
과학자가 무속신앙을 연구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랄까.
문제는, 저 과학자가 미친 과학자라는 거다.
“그렇습니다. 신성력과 심장, 악마, 인간에 관한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더군요.”
“흠…… 심장이라…….”
큰일은 아니다. 신성력과 악마, 그리고 인간.
이 세 가지는 밀접한 관계니까.
심장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이렇다 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게 어디까지나, 평소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방금 퍼즐을 맞춰 보니 감이 오는군요. 후스 군이 생각보다 큰일을 해 줬습니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무슨 감이 온다는 거냐?”
“악마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신성력이지.”
“그게 인간한테도 통하나요?”
“아니, 오히려 회복시키지. 잠깐, 설마……!”
카론의 눈에 일순, 공포가 서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
“그렇습니다. 만약…… 인간과 접합한 악마에는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면요?”
“……최악이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악마는 결코 약하지 않으며, 강림한 악마는 더더욱 약하지 않다.
신성력을 두른 무구로 상대해도 힘든데 만약,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니, 오히려 회복을 한다면?
“지옥도가 펼쳐지겠군.”
카론의 말대로다.
갈레타 지방은 저 키메라 때문에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받는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키메라.’
그게 바로 광기의 창조주가 하고 있는 연구이자, 미친 짓이었다.
“후후, 뭐, 아직 가정일 뿐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확증된 편향은 좋지 않다. 시궁쥐로 살아가고 싶다면 당장 그 태도를 바꾸도록.”
전 시궁쥐가 아니라 새끼 쥐새끼인데요.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카론을 돌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슬슬 한계야.’
이 이상 대화를 이어 갔다간 내 귀여운 얼굴이 폭삭 늙어 버릴지도!?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할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카론을 마주한 탓도 있지만…….’
말이 길어지면 좋지 않다.
내뱉은 정보끼리 충돌하며 오류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론은 티끌만 한 정보의 오류도 놓치지 않을 터.’
게다가 광기의 창조주와 키메라라는 큰 정보까지 제공한 상태.
바뀔 미래에 대한 계산도 해 봐야 했다.
“바빠지겠군. 아티팩트는 구하는 대로 지급해 주마.”
“후후, 기대하겠습니다.”
“뭔가 더 기억나는 게 있다면 연락해라. 뻐꾸기는 어디에나 있으니. 이번 달 접선 암호는 ‘초토화’다. 잘 기억해 두도록.”
초토화라는 단어를 대화에 섞어서 말하고 다니면 근방에 있던 시궁쥐가 카론에게 알리고.
카론 쪽에서 접선해 오겠다는 뜻이다.
‘초토화가 뭐냐, 초토화가. 이걸 대화에 어떻게 섞어?’
후후, 루나 양. 초토화해 드릴까요?
-라고 했다간 내 몸이 초토화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후후, 매력적인 암호로군요.”
“건방진 놈. 그런 돌려 까기식 화법은 고치도록 해라. 좋지 않은 습관이니.”
“노력해 보겠습니다.”
“쯧.”
혀를 찬 카론이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현재 이곳은 3층인데 말이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봤지만, 카론의 머리카락 비슷한 것도 없었다.
쉴 새 없이 울리던 [초감각] 또한 조용해졌다.
방에 나 혼자 남았다는 뜻이다.
“후우…… 한 건 해결이군요.”
벽에 몸을 기대니 몸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상장부터 루나와 놀아 주기, 카론과의 거래까지.
아, 진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잠자리에 들 수는 없었다.
정보의 정리와 새로 알게 된 것, 쓸모없어진 정보를 삭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스럭-.
서랍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이 게임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적어 둔 종이 뭉치.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카론이 봤겠네.’
카론은 첩보의 달인이다.
내가 자리에 없는 기회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내 방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봤으리라.
큰일이다.
게임 속 정보가 고스란히 카론의 손에 넘어갔다는 거니까.
하지만.
“후후,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빼앗기시겠군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 * *
바스락-.
제로의 방을 떠난 카론.
그의 손에는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재질은 다르지만, 제로의 방에 있던 것과 같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필사는 아무것도 아니지.’
종이를 똑같은 크기로 오려 낸 후 위치와 배열, 심지어는 글자 크기와 작은 점까지 똑같이 베꼈다.
제로가 적어 놓은 이 세계에 대한 각종 정보, 캐릭터, 히든 피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까지.
고스란히 카론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건 뭐지?’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종이.
하지만 카론은 그것을 읽을 수가 없었다.
모든 정보가 한글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보기에는 너무 길고, 배열도 정신이 없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암호문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그런 거였다면 조금 더 짧고 간결하여야 하며, 이보다 작은 종이에 적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암호화해 둔 건가.’
동글동글하면서도 각이 져 있는 신비한 문자.
얼핏 보면 그림 같기도 한,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의 문자.
‘……하나도 모르겠군.’
제국의 시궁쥐로 살아가며 각종 문자를 접한 카론이다.
그런 자신조차 처음 보는 문자라니.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문자인가? 대단하군.’
제로를 향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독자적인 문자의 창조 외에도 그렇다.
‘내 기척을 알아차릴 줄이야.’
카론이 마음만 먹는다면 8성 기사조차 속여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여유를 부리는 것도 모자라 등까지 내주다니.
은신을 감지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가만, 그럼 그때도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건가?’
개미굴의 산란장.
그때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일섬을 일부러 보여 준 거군. 나와 대화하려고.’
자신과 끈을 만들고 거래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상황을 유도한 거다.
자신 쪽에서 먼저 달려들 수밖에 없도록 레스터 가문이라는 먹이를 던진 거고.
전혀 그런 게 아니었지만, 카론은 착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퍼즐이 하나하나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시건방진 놈.”
말실수라도 했다간 바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짓을 벌였다는 건.
‘자신이 있었다는 거겠지.’
감히 제국의 시궁쥐인 자신에게 심리전을 걸고, 이길 자신이 있었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다.
하지만.
피식-.
“시건방진 자식 같으니. 다음에는 한 수 가르쳐 줘야겠군.”
퉁명한 말과 달리 카론의 입은 웃고 있었다.
저 나이에 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지녔을 줄이야.
단순히 머리가 좋은 것만으로는 저렇게 되지 않는다.
경험이 받쳐 준다는 뜻이다.
‘제법 거친 생활을 해 온 모양이군.’
자신이 데려가 정성껏 키우고, 여러 가지를 주입한 후 차기 시궁쥐의 자리를 내주고 싶을 정도다.
말만 그럴싸하지 사실상 납치, 감금, 조교 아니냐고?
……착각이다.
‘루나만 없었어도 당장 납치…… 아니, 데려가는 건데 말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지만, 적어도 다른 놈들보다는 나아 보인다.
당분간은 믿고 맡겨도 괜찮을 듯했다.
‘뭐,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카론의 눈빛이 변했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키메라.
아직 추측일 뿐이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추측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아니,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
스스슥-.
카론의 뒤로 수십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전달해라.”
갈레타 지방에.
“모든 시궁쥐를 투입한다.”
* * *
“즉, 같은 검술을 사용해도 가문의 검술에 따라 단련되는 근육이 다르므로 여기서 차이가…….”
하암-.
오전 수업 시간.
나도 모르게 하품이 흘러나왔다.
정보를 정리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기 때문이다.
카론과 나눴던 대화의 복기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게임 속으로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미래를 바꾸는 짓을 저질렀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행동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루나를 동료로 맞이하거나 루터스의 명예 회복, 상장을 받는 것 등.
이런 건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이 게임은 방대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해 온 행동에 영향받을 정도로 허약한 세계가 아니다.
하지만 어제 내가 카론에게 제공한 정보는 다르다.
‘미래가 크게 바뀔 거야.’
이 세계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내 최대 강점이자, 무기다.
즉, 닥쳐올 미래를 바꾼다면 내 강점을 잃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적의 전력을 약화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장사야.’
갈레타 지방의 파멸.
제국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된 첫 번째 이유다.
제국의 모든 길이 이어져 있는 전략적 요충지.
갈레타 지방만 멀쩡했어도 미래에 발생하는 사건의 절반은 막아 냈으리라.
‘키메라도 짜증 나는 존재고.’
‘악’ 성향의 적들에게 최소 2배의 대미지를 입히는 신성력.
하지만 광기의 창조주가 만든 키메라는 신성력에 피해를 받지 않는다.
심지어 회복을 하기까지 한다.
‘게임에서는 신성력이 담겨 있지 않은 무기를 따로 들고 다녀야 했지.’
키메라를 공격할 때는 일반 무기를, 다른 놈들을 상대할 때는 신성력이 담긴 무기를 사용하며 싸워야 했다.
무기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1턴이 소모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키메라가 만들어지기 전에 막아 낸다면?’
차후 있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천왕, 그리고 6군단장.’
인간이면서도 재앙을 뿌려 대는 네 명의 흑마법사.
그리고 악마를 통솔하는 대악마이자, 6위(位)의 군단장.
이 게임의 최종 흑막이자, 우리가 처치해야 할 적이다.
‘최종 보스에 도달하기 전까지 최대한 처리해 놔야 한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갇혀 있는 나로서는 무리.
그래서 카론에게 귀띔해 준 거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살인 전차로 미친 흑마법사를 물리치는 격이랄까.
‘후후, 역시 나라니깐.’
카론의 강함을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사천왕과 맞설 정도는 되는 걸로 안다.
응? 그러다 카론이 죽으면 어떡하냐고?
‘내 알 바 아니야.’
내 목을 조른 배드 엔딩 메이커 자식.
죽든 말든 알 게 뭐냐.
‘뭐, 사실 둘이 마주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아.’
광기의 창조주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기 때문이다.
수하들을 보내면 보냈지, 직접 나서지는 않을 거다.
애초에 카론은 아카데미에 묶여 있기도 하고 말이다.
“제로 군.”
“…….”
“야, 너 부르잖아.”
루나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 집중하느라 누가 부르는 것도 듣지 못했다.
나를 부른 건 ‘검술의 기초’ 수업을 맡고 있는 르앵 드 플뢰르 선생이었다.
“내 수업이 지루했나 보군. 자네에게 벌점 1점을 부과하겠네.”
“선생님! 벌점이라니요! 잠깐 졸은 것 가지고 그건 너무한 처사…….”
“루나 양, 자네도 벌점을 받고 싶은가?”
“네, 저한테 주세요. 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