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63)
제63화
63화. 3위의 실력(5)
루나의 품에는 각종 상비약이 들려 있었다.
저 정도면 의무실을 털어 온 수준이다.
높이가 루나의 턱에 닿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비약으로 만들어진 산.
루나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걸 책상 위로 우르르 쏟아 냈다.
“벌려.”
루나야, 그거 성희롱이야.
그런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루나가 내 입을 우악스럽게 벌렸다.
그러더니 약을 욱여넣었다.
한 통을 다 말이다.
“씹어.”
와그작와그작-.
음, 루나야. 물은 없니?
찌릿-.
그래, 뭐 침이면 충분하지.
내 주제에 무슨 물이 필요하겠니. 하하하.
스윽-.
유리디아의 뒤에 있던 아이가 물을 내밀었다.
유리디아가 내게 물을 전달하려고 하자, 루나가 홱 채갔다.
그러더니 내 입에 콸콸 쏟아부었다.
내 상의가 젖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후후, 감사합니다. 루나 양 덕분에 살았군요.”
“닥쳐.”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이는 루나다.
내가 여자애랑 손을 잡아서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손을 잡아서 그런 것이지.
“루나 양, 안녕하세요? 저 알죠?”
“몰라.”
“어머, 그러시구나. 저는 유리디아라고 해요. 친하게 지내요, 우리.”
와, 미친 스토커 vs 공감 따윈 없는 ISTJ.
진짜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결이다.
철썩!
루나가 유리디아가 내민 손을 쳐 냈다.
그녀의 뒤에 있던 아이들이 즉각 전투태세를 취했다.
“모두 가만히 계세요.”
“하지만…….”
“제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요?”
생긋 웃으며 뱉은 말.
하지만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미묘한 가시를.
“루나 양, 지금 뭐 하자는 거죠?”
“너야말로 뭐 하자는 건데? 왜 접근하는 거야?”
“그야…… 교류를 위해서죠. 우린 동기잖아요?”
“X랄.”
대놓고 면전에 내뱉는 욕설은 참기 힘들었던 걸까.
유리디아가 몸을 움찔 떨었다.
“어머나, 귀여운 외모와 달리 사나운 분이시네. 루나 양, 그러다 진짜 큰일 나요? 저는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랍니다.”
“그래? 나는 너보다 더 무서운 사람인데.”
“흐응~ 루나 양, 객기도 적당히 부려야 하는 법이랍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오셨나 본데, 그건 운이 좋았던 거예요.”
“어디 한판 붙어 보든가.”
뚜둑-.
루나가 목을 또 한 번 꺾었다.
“……굳이 이럴 필요 있나요?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어요. 우린 짐승이 아니잖아요.”
유리디아가 먼저 한발 물러나며 진정하자는 의사를 표했다.
루나를 배려해 준 거다. 귀족의 자존심을 한번 버리면서까지.
문제는.
“그만 지껄이고 덤벼. 이기는 쪽이 저놈을 가지는 거야. 규칙은 이 정도로 하면 되겠지?”
우리 루나가 짐승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거다.
“하! 진짜 짐승이네요. 실망이 큽니다, 루나 양.”
“짐승이든 뭐든 상관없어. 제로만 뺏어가지 마. 쟨 내 거니까.”
“사람을 소유하겠다는 건가요? 그건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넌 많잖아. 나한텐 얘밖에 없어.”
일순, 교실이 숙연해졌다.
루나의 말대로였다.
그녀의 뒤에는 나만 앉아 있었고.
유리디아의 뒤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서 있었다.
얼핏 들으면 동정심을 유발할 상황.
하지만 아이들이 느낀 건 동정심이 아닌 듯했다.
“어머, 어머! 세상에!”
“지금 들었어요?”
“‘나한텐 얘밖에 없어?’ 꺄악!”
유리디아파에는 여자아이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저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죠?”
“뜨겁기도 하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다니. 어떻게! 귀여운 왕자님이잖아요, 완전!”
오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문제는, 유리디아 또한 여자아이라는 거다.
한창 로맨스에 빠져 사는 열다섯 살짜리 여자아이.
‘아니야! 그래도 명색이 한 계파를 이끄는 수장이잖아. 냉철한 판단을……!’
“세상에나. 로맨틱하기도 하지.”
……전혀 못 하고 있구나?
표독스러웠던 유리디아의 표정.
어느새 살살 녹아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뭐야? 안 싸울 거야?”
루나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유리디아는 오히려 그런 루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흠흠, 그런 거였군요. 이해했습니다.”
아니, 뭘 이해했는데?
“오늘은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는 영입이 아니라…….”
아니, 물러나지 마. 그냥 여기 있어!
“동맹 제안을 하러 오죠. 두 분의 사이를 깰 수는 없으니까요.”
아니, 애초에 깨고 말고 할 사이도 아니라고!
“호호, 그럼 저희는 이만. 루나 양, 항상 행복하세요.”
“……?”
후다닥-.
유리디아파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처럼.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아이들도 교실을 떠났다.
입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상태였다.
“뭐야? 싱겁기는. 하여튼 실력도 없는 것들이 입만 살았다니까?”
“후후, 운이 좋았습니다. 유리디아 양은 제법 강하거든요.”
“응~ 내가 이겨.”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테르온과 유리디아의 연달은 습격.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뭐, 테르온한테 찍힌 거 말고는 딱히 문제는 없는 것 같네.’
사소한(?) 문제다, 사소한 문제.
그것보단 점심이 우선이었다.
“후후, 그럼 이만 가 볼까요? 빨리 가지 않으면 줄을 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덥석-.
루나가 내 옷깃을 잡았다.
그러더니 자신 쪽으로 끌었다.
“어딜 가? 마무리는 해야지.”
“……마무리요?”
“응, 다른 애들이랑 얘기하니까 좋았나 봐? 실실 웃던데.”
“전 원래 웃는 상입니다만…….”
루나가 옷깃을 한층 더 가깝게 말아 쥐었다.
너무 가깝다. 속눈썹이 보일 정도로.
“그래? 그럼 왜 아팠던 배가 싹 나았을까?”
“그, 그건 말이죠. 어쩌다 보니 나았달까?”
“어머, 설마 꾀병이었던 거니?”
“아! 지금 생각해 보니 루나 양이 가져온 약이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그거 감기약이야.”
“예?”
“감기약 먹인 거라고. 실수로.”
아하, 실수.
그렇구나? 함정 수사를 펼쳤던 거였구나?
우리 루나가 참 많이 컸다. 이런 함정도 파고.
“자르자.”
“예?”
“자르자고. 더러운 게 묻었잖아.”
루나가 바라보는 건 내 손이었다.
유리디아가 맞잡았던 내 손.
그럼 자르자는 게 설마…….
“내 거에 더러운 게 묻으면 자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닦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괜찮아, 안 아파.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손톱 자르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러면 손이랑 손톱이랑 단어가 왜 따로 존재하겠니?
하지만 소용없었다. 루나의 눈이 광기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응, 결심했다. 다음부터는.
‘그냥 다른 애들과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
입을 벌린 채 다가오는 루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콰직!
* * *
“어머 어머, 저거 봐요. 손을 깨물고 있어요!”
교실 밖에는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유리디아파에 속하는 여자아이들이다.
“무슨 의미일까요?”
“애정을 표현하는 거랍니다. 내 거라고 이곳저곳 표식을 남기는 거죠. 동시에 애정 결핍의 뜻도 내포하고 있고요.”
“역시 유리디아 님! 박식하시기도 하지.”
그리고 여기에는 유리디아도 포함돼 있었다.
창문을 통해 구경하는 다른 사람의 연애질.
이것보다 재밌는 게 어디 또 있을까.
“어머, 이번에는 머리를 물었어요.”
“머리를 깨무는 건 신뢰한다는 뜻이래요.”
“연인 간의 신뢰라…… 아름답기도 하지.”
제로가 비명을 지르는 건 이 아이들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핑크빛 기류로만 보일 뿐.
“그런데 걱정이네요. 학기 초 커플은 깨지기 마련인데.”
“맞아요. 장기 커플은 쉬운 일이 아니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뭐 없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루나 양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루나의 사나운 성격.
제로가 잘 받아 주곤 있지만, 힘겨워 보일 때도 있긴 했다.
‘쉽지 않아.’
루나와 마주했던 유리디아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더 도와주고 싶어졌다.
제로를 향한 루나의 사랑은 진짜 같아 보였으니까.
수십 명의 아이들과 싸울 각오를 서슴지 않게 하는, 불타는 사랑!
“우리가 뒤에서 보조하도록 하죠.”
“좋아요!”
“모두 손을 모으세요!”
“오!”
그렇게 제로와 루나 모르게.
은밀한 팬클럽이 창설되었다.
* * *
유리디아가 팬클럽을 창설하는 사이.
테르온파에는 한바탕 풍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테르온 님! 저놈이 계속 설치게 두실 겁니까?”
“설치긴 누가 설쳤다고 그러나. 생각보다 성격이 좋은 놈이었어.”
“아닙니다! 테르온 님을 은연중에 무시했습니다!”
하아.
테르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열 2위의 자리를 언급해서일까.
아이들의 열의에 기름을 부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 그놈이 나를 무시했다 치자. 하지만 굳이 자극할 필요가 있나? 유리디아파에도 관심이 없던 것 같던데.”
테르온이 봤을 때, 제로는 방관자에 불과했다.
유리디아를 지지고 볶아도 관여하지 않는 방관자.
그런 존재는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
이게 바로 테르온의 생각이었다.
“대테르온파의 권위가 떨어지지 않습니까. 저, 제파에게 맡겨 주십시오! 저런 날파리 하나 처치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 고드너에게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설욕해 보이겠습니다!”
진짜 한숨만 나오게 하는 놈들이었다.
실력도 없는 것들이 제로를 대체 어떻게 이긴다는 걸까.
이들은 제로가 단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로가 보여 준 거라곤, 고드너와의 대결뿐이기 때문이다.
“카론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았느냐.”
숨겨진 통로를 발견한 것도 모자라, 수십 마리의 개미를 막기 위해 벽을 무너뜨렸다.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보통 기술로는 불가능.
마법과 맞먹는 위력의 기술을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도망치다가 우연히 발견한 구멍일 겁니다.”
“벽을 무너뜨린 것도 치사한 수를 쓴 게 분명합니다.”
고드너와 제파.
평소에는 싸우기만 하는 놈들이 편을 먹고 압박하니, 테르온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 눈이 병X인 건가?’
자신의 눈에는 분명히 강자로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약하다고 한다.
인지부조화가 오는 테르온이었다.
왁왁!
아옹다옹!
결국 테르온은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아쉽군. 내 마음에 쏙 드는 놈인데.’
하지만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길 가는 돌멩이와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챙겨 주기도 해야 하고 말이다.
“수장들은 모여라. 회의를 시작하겠다.”
회의는 길었다.
이번에 테르온파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이 필수였다.
“우선 루나라는 아이를 타깃으로 잡는다. 제로는 그 이후의 반응을 보겠다.”
테르온파의 힘을 느낀다면 알아서 들어올 확률도 있었다.
때문에 루나가 희생양으로 결정됐다.
“미끼는?”
“좋은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남부 귀족인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 하더군요. 친구도 없으니 반발을 걱정할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본보기로 처리하기 좋은 놈이군.”
정계의 축소판인 아카데미.
하지만 모든 귀족의 자제가 정쟁에 참가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며, 귀족의 품위를 지키라며 한 소리 내뱉은 후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는 소수의 그룹이 있었다.
“본보기를 보여 주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
공포를 느끼고 알아서 숙이고 들어올 거다.
반발하는 놈들은 유리디아 쪽에 붙겠지만, 그런 놈들은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단순한 전력 비교도 못 하는 머저리들이라는 뜻이니까.
“이번 일은 고드너에게 일임하겠다.”
“감사드립니다!”
1학년 패권 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