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66)
제66화
66화. 3위의 실력(8)
“크헉…….”
“뭐야, 벌써 끝이야? 예상은 했지만, 너무 싱겁네.”
루나가 검을 집어넣었다.
고드너와의 결투.
루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일방적인 결투였다.
그 자존심 센 고드너가 일어설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젠장! 무슨 이런 괴물 같은 년이 다 있지?’
루나가 중간부터는 검날이 아닌, 검등으로 상대해 줬기에 망정이지.
이게 진짜 결투였다면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서 있는 건 나일 거다, 멍청한 년.’
결투에서 승리했을 때의 경우도, 그리고 졌을 때의 경우도.
다 계산해 뒀으니까.
씨익-.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드너.
루나는 보았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짓고 있는.
고드너의 웃음을.
‘웃어?’
루나가 이상함을 감지할 때였다.
결투장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응? 뭐야?”
“누가 있나 본데?”
“결투장에 사람이 있다고?”
두 무리의 아이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였다.
그리고 그들도 발견했다.
결투장 위에 서 있는 루나와 고드너를.
“결투 중이었던 건가?”
“뭐야? 고드너가 진 거야?”
“아니, 가만. 둘뿐인데? 공증인은?”
“뭐야, 설마 공증인도 없이 결투를 한 거야?”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시끌시끌해졌다.
하지만 상황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유리디아가 혀를 찼다.
‘쯧, 왠지 동행을 요구하더라니…….’
늦은 밤.
1학년의 발전을 위해 대화를 하자는 테르온의 제안.
살짝 거리를 둔 채 대화가 진행됐고, 그를 따라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결투장이었다.
‘자신에게 반하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겠다는 거겠지.’
공개 처형식이나 다름없었다.
루나 또한 상황을 눈치챘다.
자신을 내쫓으려는 거다. 이 아카데미에서.
“테르온 님! 전 지지 않았습니다! 저년이 치사한 수를 썼습니다!”
“야! 내가 언제 그랬어?”
“검도 저년이 먼저 뽑아 휘둘렀다고요! 전 피해자입니다!”
“네가 먼저 죄 없는 애를 팼잖아!!”
고드너가 꿱꿱 소리를 질렀다.
돼지 멱따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는 소리.
하지만 고드너는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주장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큭큭, 넌 이제 끝이다.’
교칙을 어긴 루나는 아카데미에서 내쫓기게 될 거고.
피해자인 자신의 명예는 회복되고, 이번 일의 공적으로 테르온파에서 입지를 단단히 다질 수 있게 될 거다.
모든 게 완벽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할 때였다.
테르온의 입이 열렸다.
“둘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다니, 곤란하군.”
“테르온 님……?”
“결투를 속행하는 건 어떤가? 어느 한쪽이…….”
테르온의 눈이 불길하게 빛났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할 때까지 말이야.”
* * *
“테, 테르온 님? 그게 무슨…….”
그렇다. 테르온이 노리는 건, 루나를 아카데미에서 쫓아내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걸 원했지.
테르온은 루나를 사회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처형한다.’
완전히 끝내 버릴 생각이었다.
“테르온, 그게 무슨 소리죠? 결투를 속행하자니.”
“이런 표현은 조금 그렇지만, 저 멍청이들이 공증인도 없이 싸웠지 않나.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고드너는 나와 같이 일하는 친구지.”
고드너의 편을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감싸 줄 수는 없다. 공정해야지. 그게 앤우드 아카데미의 이념 중 하나 아닌가?”
얼핏 보면 테르온이 착한 사람처럼 느껴질 거다.
자신의 수하가 엮인 일임에도,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는 거니까.
하지만 유리디아는 알고 있었다.
저 속에 담긴 진짜 뜻을.
“……그래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결투를 지속하겠다는 건가요?”
“그래. 그러면 좀 공평하지 않겠나?”
“공평하긴 뭐가 공평해요! 실력으로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구조인데! 승자가 거짓말을 한 경우면 어떡하려고요?”
테르온이 크게 웃었다.
“승자독식. 이 세계는 원래 그런 세계 아니었나? 오히려 이런 기회를 주는 것에 감사해야지.”
유리디아가 재빨리 계산에 들어갔다.
학생들 간에 있던 불법 결투. 그걸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는 말.
명분은 테르온 쪽에 있다. 그렇다면 실리는 어떻지?
고드너가 승리할 경우, 루나는 죄를 뒤집어쓴 채 아카데미에서 내쫓기게 될 거고.
고드너가 패배할 경우, 그가 아카데미에서 내쫓기게 될 거다.
뭐가 됐든 테르온이 직접적으로 손해 보는 구조는 아니다.
오히려.
‘처형하는 걸 보여 줌으로써 아이들에게 공포를 심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테르온이 이득을 보는 구조라는 뜻이다.
그래서 유리디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공증인이 없잖아요! 선도부가 아닌 우리들에게는 공증 자격이 없습니다. 결투가 속행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그럼 공증 자격이 있다면 상관없다는 뜻이로군?”
“예? 그게 무슨…….”
테르온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목패였다. 공증(公證)이라는 문자가 각인된 목패.
“르앵 선생에게 받은 공증패라네. 현재 나는 공증 대리인으로서, 공증 자격을 수행할 수 있는 몸이라는 거지.”
유리디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테르온 이 개자식. 대체 언제부터, 어디까지 설계한 거지?’
유리디아가 몸을 돌렸다.
남이 설계한 판에서 들러리가 되는 건 사양이다.
“선생님을 모셔 오겠어요. 공증 대리인이라니. 그에 맞는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테르온이 그런 유리디아의 손목을 덥석 붙들었다.
“굳이 일을 크게 키우지 말자고, 유리디아.”
“…….”
“오늘의 결투는 끝남과 동시에 없던 일이 될 거야.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나는 거지.”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테르온이 말하는 건.
“어차피 그쪽은 손해 보는 게 없잖나. 아니면, 진짜로 나랑 해 볼 생각인가? 저 아이 하나 때문에?”
그렇다. 다치는 건 고드너, 아니면 루나.
저 둘 중에 하나다. 유리디아 쪽이 손해 보는 건 없었다.
하지만.
“없던 일로 해 주겠다고 했죠? 그럼 루나 양이 승리할 경우는 어떻게 되죠?”
“말 그대로 없던 일이 되지. 오늘 결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사라지는 거야. 우리 쪽에도 좋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지.”
유리디아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루나가 이기기만 한다면 아무 일도 없이 끝낼 수 있다.
테르온이 얻어 가는 건 공포심 하나.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루나 양, 힘내세요.’
유리디아는 루나를 믿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이미.
테르온이 친 덫에 꽁꽁 묶인 상태라는 걸.
“자, 이제 결투를 속행하면 되겠군. 자신의 결백은 자신이 밝히는 거다.”
“테르온 님……?”
고드너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런 계획은 듣지 못했다.
루나라는 아이가 먼저 검을 뽑게만 만들면, 뒷일은 자신이 다 처리해 주겠다고 했는데.
“대체 어째서……?”
“고드너, 나는 너를 믿는다. 귀족의 명예를 보여라.”
“예?”
“설마 항복하는 건 아니겠지? 명석이 귀족인데 말이다.”
멍한 표정을 짓는 고드너.
그의 귓가에 테르온이 속삭였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제야 고드너는 깨달았다.
덫에 걸린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고.
* * *
퍽! 퍽!
“으, 으으…….”
고드너가 신음을 흘렸다.
검등으로 어찌나 때렸는지 짓물러진 살이 터지며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야! 빨리 졌다고 말해!”
“나, 나는 지지 않았다…….”
“이, 이 멍청이가 진짜……!”
결투가 속행된 지 30분째.
고드너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패배를 선언하지 않았다.
루나와 싸우면 맞아 죽고.
포기하면 테르온파에서 축출된다.
문제는, 그의 아버지가 뷀른가의 가신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자신이 축출되면 아버지의 자리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끄윽…….”
“기절했습니다.”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깨운 뒤 다시 결투를 속행한다.”
아이들이 고드너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고드너는 일어서지도 못했다. 드러누운 채 희멀건 눈만 떴을 뿐.
벌써 세 번째 기절이다.
이 이상 했다간 고드너가 죽을지도 모른다.
“이게…… 이게 무슨 결투야.”
루나가 아는 결투는 이런 게 아니었다.
숭고하고, 더없이 명예로운.
그게 바로 결투(決鬪).
하지만 여기에 그런 건 없었다.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건, 결투가 아닌 집단 괴롭힘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제야 모두가 테르온의 노림수를 알게 됐다.
‘대리 결투.’
고드너 대신 다른 사람이 나서서 루나와 싸우게 하려는 거였다.
하지만 대리 결투를 하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노약자, 어린아이, 병마를 겪고 있어 결투를 하지 못하는 사람, 공무를 수행 중인 경우.
이런 상황이면 대리 결투자를 내세울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특별한 조항이 하나 존재했다.
‘대리 결투자로 지목당하면 대리 결투를 실행할 수 있다.’
루나가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것이다.
이런 조항이 생긴 이유는 귀족들 때문이었다.
그 어느 곳보다 추잡하고,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 곳.
일개 사랑싸움이 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생긴 조항이 바로 저 조항이었다.
어떻게든 결투 선에서 싸움을 끝내라는 거다.
‘지목을 당한 자에게는 거절권도 존재하니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항이기도 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없이 유용한 조항이었다.
루나가 테르온을 지목한다. 그러면.
‘진짜 결투’가 시작되는 거다.
“더, 덤벼라…….”
고드너가 드러누운 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루나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루나 양, 안 돼요! 참으세요! 절대 그 말을 하면 안 돼요!’
우수반에 있는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루나는 험한 입과 달리, 마음이 여린 아이라는 걸.
루나가 하늘을 바라봤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아, 그렇구나. 이건.
‘제로를 끌어내기 위해 판 함정이구나.’
자신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든 제로를 끌어들이려는 거다.
테르온파에 들어오면 좋고, 아니어도 자신에게 반하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를 한 셈.
루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루나 양, 테르온파와는 엮이지 마십시오.
-괴롭힘당하는 약자를 구하는 것도 금지입니다.
‘그렇구나. 제로는 이런 상황도 예상했던 거구나.’
무려 개미굴에서 해 준 조언이다.
얼마나 먼 미래를 내다본 건지, 경이로울 정도다.
루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제로가.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런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봐라.
‘내가 다 망쳤어.’
덫에 걸려 저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꼴이라니.
이번 결투가 어떻게 끝나든, 제로는 테르온파와 엮이게 될 거다.
자신이 생각 없이 한 행동으로 인해 제로까지 피해를 보게 된 거다.
‘대리 결투는 함정이야.’
자신은 물론, 제로의 목까지 조이는 최후의 함정.
이번에도 스스로 빠져든다면, 멍청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고드너가 불구가 되거나 죽고 말 테니까.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야.’
패배를 선언하고 죄를 뒤집어쓴 후 퇴학당하거나.
대리 결투를 선언해 결투를 이어 가거나.
테르온의 실력은 미지수지만, 제로가 말해 줬다.
‘테르온, 다이크.’
저 둘과는 진짜로 싸우지 말라고.
하지만 루나는 선택했다.
‘대리 결투자를 지목한다.’
퇴학당하는 건 싫다. 아카데미에서 이룰 목표가 있기도 하지만.
‘즐겁거든.’
제로와 함께하는 아카데미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위로받을 정도로.
제로와 아카데미 생활을 이어 가고 싶었다. 그러니, 첫 번째 선택지는 제외.
두 번째 선택지인, 대리 결투를 선택한 거다.
물론,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가리를 꺾는다.’
테르온파의 수장을 꺾고, 제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거다.
드러누운 채 숨을 헐떡이는 고드너.
루나가 그런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처억-.
검을 테르온에게 겨눴다.
“야, 고상한 척 그만하고 덤벼.”
물어 죽여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