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68화. 3위의 실력(10)
쩌억!
루나의 몸이 말 그대로 붕 떴다.
땅에 엎어진 루나가 재빨리 일어나 상황을 살폈다.
다이크는 가만히 서 있었다.
추가 공격을 시도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퉷!
피가 섞인 침이 땅을 적셨다.
다이크가 검의 옆면으로 쳐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몸이 반으로 갈라질 뻔했다.
“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내가 저쪽으로 나올지 어떻게 알았냐?”
“찍었다.”
“찍었다고?”
“그렇다.”
좌와 우.
확률은 50%.
그 확률의 승자는 다이크, 패배자는 루나였다.
‘재수가 없네, 재수가.’
됐다, 이런 거에 신경 쓸 시간에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게 더 낫다.
루나가 달려들면서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피하고, 공격하고, 구르고, 얻어맞고, 또다시 얻어맞고.
그리고 또.
퍼억!
얻어맞았다.
“크헉!”
루나가 땅에 검을 박은 채 부들거렸다.
검으로 막았는데도 이런 통증이라니.
“젠장…….”
자신과 달리 다이크는 멀쩡했다.
호흡만 살짝 거칠어졌을 뿐, 몸 어디에도 상처가 없었다.
채앵!
루나가 휘두른 검을 다이크가 막았다.
서로의 검이 겹쳐진 교착 상태.
루나가 속삭였다.
“야, 너 솔직히 말해.”
“?”
“너 몇 살이냐. 스무 살 넘지? 5년 꿇은 거지?”
“……열다섯 맞다.”
끼긱- 끼기긱-.
“큭!”
사실 이런 자세는 루나에게 불리하다.
무기와 힘, 덩치. 모든 것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루나의 의도대로였다.
자세를 고쳐잡으며 다시 속삭였다.
“진짜 괴물이네. 그래, 네 주인이 원하는 게 뭐래?”
“……무슨 말이냐.”
“아까 둘이 얘기하드만. 뭐 지시받은 거 아니야? 불구로 만들라든지, 목을 베라든지 같은 거.”
“…….”
“계속 옆면으로 두들기는 걸 보니 죽이라는 건 아닌 거 같고, 뭐 다리나 팔이라도 하나 가져다 바치래?”
캉!
다이크가 루나의 검을 강하게 밀어냈다.
검은 닿지 않지만, 서로의 말이 충분히 들리는 거리.
다이크가 입을 열었다.
“……너의 한쪽 팔이다.”
“하하, 그랬구나? 예상대로네.”
루나가 검을 땅에 박았다.
이 괴물은 이길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패배를 선언해도, 테르온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찌익- 찌지직-.
상의를 벗은 루나가 소매를 찢어 왼쪽 팔뚝에 단단히 동여맸다.
“좋아, 가져가. 이까짓 팔 하나, 얼마든지 내줄게.”
단.
“제로에게는 손대지 않겠다는 조건만 추가한다면.”
다이크와 검을 맞댄 뒤 깨달았다.
제로도 이 아이를 이길 수 없을 거다. 이건 진짜 괴물이니까.
그래서 다 버렸다.
자존심도, 분노도, 그리고 팔 한쪽도.
‘제로의 목숨에 비하면 싼 장사지.’
마침 그들이 있는 쪽에는 테르온이 있었다.
충분히 대화가 들린다는 말이다.
테르온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손대지 말라고?”
“그래, 영광으로 알아. 내 한쪽 팔을 가져갔다는 게 네 인생 최대 업적이 될 테니까.”
들썩들썩-.
“크하하하하!!”
돌연, 테르온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자지러질 정도의 웃음.
하지만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과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라서.
‘무서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묵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크크크크…… 건방진 주제에 제법 기개가 있구나.”
계속되는 웃음. 그러던 와중이었다.
테르온의 웃음이 뚝 끊겼다. 동시에 정색했다.
“건방진 년 같으니. 지금 누가 누굴 봐주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냐?”
“…….”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살려 달라며 애원했어도 모자랐을 상황이다. 그런데 뭐?”
팔을 베는 게 인생 최대 업적이라고?
이래서 눈치 없는 것들은 딱 질색이다.
“다이크.”
“예.”
“죽여라.”
“……학생을 죽였다간 뒤처리가.”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하지만…….”
“명령이다.”
다이크의 눈빛이 변했다.
그가 검을 세운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리디아는 알 수 있었다. 다이크가.
진짜로 루나를 죽일 거라는 걸.
“테르온! 당신 진짜 미쳤어요?”
“결투 공증 대리인으로서 선언한다. 신성한 결투를 방해하는 것들은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할 거다.”
“개소리야! 너한텐 그런 권한 없잖아! 모두 저들을 끌어내리세요!”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유리디아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루나 양! 내려와요! 이쪽으로 오세요!”
루나도 죽을 생각은 없었다.
결투는 끝났다. 결투장을 내려가려던 때였다.
다이크가 검을 휘둘렀다.
유리디아가 곧장 마법을 캐스팅했다.
“실드!”
쩌정-!
실드가 산산조각이 났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말이다.
“캐스팅을 막아라!”
테르온파가 달려들었다.
그 힘에 의해 유리디아파가 뒤로 밀려났다.
‘젠장! 공격 마법만 쓸 수 있었다면!’
공격 마법을 사용한다면 사상자가 생기게 된다.
루나를 지키겠다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안 돼! 루나 양!”
텅!
루나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다이크가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크헉…….”
검을 세워 막았는데도 충격이 엄청나다.
팔뚝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저 자식…… 검날로 휘둘렀잖아?’
지금까지 신체에 타격을 가할 때는 검을 옆으로 눕힌 다이크다.
그런데 명령 한 번에 이렇게 돌변하다니.
루나는 알 수 있었다. 다이크가 진짜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야,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
“명령 때문에 사람을 죽이겠다고?”
“…….”
이제는 말을 섞지도 않는다.
다르다. 지금까지와는 완전.
‘다른 존재 같아.’
그런 루나를 향해 테르온이 이죽거렸다.
“외로워하지 마라. 네년 다음엔 그놈도 베어 줄 테니.”
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솟아 올랐다.
자신이 죽는 건 괜찮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제로까지 위험해지는 건, 괜찮지가 않다.
‘난 왜 이렇게 멍청한 걸까.’
자신 때문에 제로가 죽는다면, 대체 어떻게 사죄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는 안 된다.
제로만큼은, 제로만큼은!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콰앙!
모든 힘을 다해 날린 한 방.
하지만 이번에도 다이크에게는 닿지 못했다.
테르온이 비웃었다.
“그건 대체 무슨 기술이냐? 근본도 없는 미천한 게 딱 네년 같구나.”
“후후, 근본이 없다뇨.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
테르온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웬 놈이냐!”
테르온은 외침과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여유로운 음색, 분명 존대이건만 거슬리기 짝이 없는 말투.
불길함이 끈적끈적 붙어 있는 듯한 늘어짐까지.
이 목소리는 분명…….
“후후, 테르온. 당신의 대리 결투…….”
고개를 옆으로 돌린 테르온은 마주했다.
불길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습니다.”
입학시험 3위, 제로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 *
“제로다! 제로가 나타났다!”
누군가의 외침.
혼란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혼전 양상을 보이던 전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이다.
‘휴, 눈 뜨기를 사용한 게 정답이었나 보네.’
결투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개판.
루나는 땅을 구르고 있지, 애들은 머리채를 붙잡은 채 싸우고 있지, 내 목소리는 전달이 안 되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덕분에 여기까지는 편하게 왔지만.’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테르온이 있는 곳 바로 옆으로 가서 [눈 뜨기]를 사용한 거다.
제발 나한테 관심 좀 달라고.
“제, 제로다.”
“3위가 왔어…….”
소강상태가 된 탓일까.
아이들이 각자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테르온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제로, 너 이 자식. 그게 무슨 말이냐? 내 대리 결투가 시시하다고?”
“후후, 그렇습니다. 약자를 괴롭히는 꼴이라니, 시시해도 너무 시시합니다.”
“그래?”
테르온이 씩 웃음을 흘렸다.
“그럼 뭐, 네가 대신 결투라도 할 테냐?”
“뭐, 그럴까요?”
“……!”
너무나도 쿨한 대답이 나와서일까.
테르온의 눈이 커졌다.
그를 지나쳐 결투장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올라오지 마!”
루나가 소리쳤다. 올라오지 말라고.
발을 올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책임지고 이 결투를 끝낼 수 있다고!”
“…….”
“너까지 말려들 필요 없어! 그러니까 오지 마!”
고개를 돌려 테르온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래, 역시 일이 커지는 건 네놈도 싫겠지. 이렇게 하지. 저년의 팔 한쪽으로 마무리하는 거야.”
루나의 팔 한쪽으로 결투를 끝낼 수 있다고?
거참 배포가 크시기도 하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결투장으로 올라선 거다.
테르온의 제안을 무시한 건 덤이었다.
“오오……!”
“와! 올라갔어! 싸우겠다는 건가?”
“대단하네.”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과 경탄이 터져 나왔다.
멋있어 보이나 보다. 난 죽을 맛인데.
‘남의 속도 모르고.’
루나가 걸린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루나가 동료라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카론이 날 죽일 테니까.’
살인 전차 카론.
루나의 몸에 흠집이라도 났다간 나를 세포 단위로 분해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올라온 거다.
“루나 양, 괜찮으십니까?”
“이 바보야! 올라오면 어떡해!”
“후후, 괜찮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왜 바보죠? 루나 양은 질문 하나 이해 못 하는 바보인가요?”
“흐아앙! 이 바보야! 넌 진짜 바보야아…….”
루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루나와 얘기하는 것도 이틀 만의 일이다.
아공간에서 손수건을 꺼내 루나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동안 미안했습니다. 제 실수였어요.”
“흑, 흐흑…… 나, 나도 미안해.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예, 서로 잘못한 겁니다. 사과는 여기까지 하죠. 지금은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루나의 근처에 서 있는 다이크.
저놈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미안해. 내가 또 사고를 쳐서 너를…….”
“괜찮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아니! 저놈 진짜 위험해! 그냥 가자! 돌아가자고!”
“안 됩니다.”
“어째서?”
“루나 양이 다쳤잖아요.”
오오오오오오-!
들썩들썩!
아이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쟤들을 깜빡했네.
남의 연애질을 훔쳐보는 변태들.
뭐, 내가 루나와 연애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들었어? ‘루나 양이 다쳤잖아요’라고? 미쳤다, 진짜.”
“역시 사랑에는 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건가?”
“진짜 미쳤다.”
“오늘부터 난 루나 친위대다. 저 커플을 방해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하여튼 피곤한 놈들이다.
눈물을 그친 루나가 나를 바라봤다.
“괜찮겠어? 저놈은 강해.”
“괜찮습니다. 저도 강하니까요.”
“다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한다고 말해. 내 팔 한쪽 내주면 되니까.”
“후후, 그런 일 없습니다.”
“됐고, 대답이나 해. 알겠어? 다칠 것 같으면 포기하는 거야.”
간절한 루나의 눈빛.
같이 지낸 시간 덕분에 알 수 있다. 이 아이가 진심이라는 걸.
‘나를 위해서는 팔 한쪽도 내주겠다는 건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뭐,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루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이크의 공격이 제게 한 번이라도 스치면 항복하겠습니다.”
어찌 들으면 바로 꽁지를 내리겠다는 말.
하지만 루나는 내 말뜻을 이해한 듯했다.
“압도적으로 이기겠다는 거구나. 알겠어.”
루나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외쳤다.
“나는, 대리 결투자로 제로를 지명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