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75)
제75화
75화. 변화하는 일상(4)
“실험실인 것 같습니다.”
“우욱…… 무슨 냄새가…….”
시궁쥐 중 몇이 구역질을 시작했다.
시체 썩는 냄새를 맡으며 잘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된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구토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심각한 냄새가 풍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
시궁쥐들은 말을 잃었다.
눈앞에 있는 광경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비현실적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꿈이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5m는 될 법한 높이의 천장.
그 꼭대기에 닿는 거대한 산.
시체 더미로 만들어진 산이 그들을 반겨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산이.
‘3개라니.’
무려 3개나 있었다.
한쪽은 인간, 한쪽은 악마, 그리고 한쪽은 실패작들.
“세상에…….”
인간의 숫자도 그렇지만, 악마의 숫자를 본 이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50마리는 넘는 것 같다.
악마 강림을 위한 제물은 기본이 백 단위부터 시작인데.
그런 악마가 저렇게나 쌓여 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인 거냐!’
시궁쥐들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공포로 털썩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였다.
“살려…… 주세요.”
실패작 더미에서 들려온 희미한 음성.
생존자다. 모두가 그곳으로 달려갔고 이내 보게 되었다.
악마의 몸에 붙은 채 힘겹게 숨을 내쉬는.
작은 아이의 모습을.
“…….”
보아하니 5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다.
아이가 카론을 바라보았다.
뭔가를 느낀 걸까. 아이가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죽여…… 주세요.”
“……미안하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서걱!
우연일까.
카론의 단검에 물방울 하나가 달라붙었다.
아이가 흘린 눈물이었다.
“흑마법사들은?”
흑마법사는 광기의 창조주뿐만이 아니다.
그를 뒤쫓는 와중, 중간중간마다 그의 수하들을 붙잡았다.
하나같이 신체 일부가 망가졌고, 심문이 힘들 정도로 미친놈들뿐이었다.
“다섯 명을 추가로 붙잡았습니다. 구금 후 심문할 예정입니다.”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
“……카론 님이 직접이요?”
“그래.”
미친놈들이라 심문이 힘들다고?
보여 주마.
진짜 미친놈이 누구인지.
‘루시우스라고 했던가?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여 줄 테니까.
* * *
“때문에, 근육은 무작정 키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무기와 검술에 맞는 근육을 키운다, 이게 바로 검술의 기본이자 검술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입니다.”
르앵 선생은 오늘도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검술의 기초.
검술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한테 딱 맞는 수업이다.
“제로 군, 뭐에 맞춰서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했지?”
“후후, 본인에게 잘 맞는 무기와 검술입니다.”
“정답이네. 상점 1점을 부여하도록 하지.”
벌점이 아닌, 상점.
심지어 어려운 수준의 문제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일 거다.
‘테르온이 전략을 바꿨군.’
견제에서 회유로 바꾼 거다.
아니면 나쁜 관계보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
그런 전략일 수도 있었다.
‘테르온은 내가 어디에 소속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도 딱 이런 수준의 관계가 좋다.
역시 공감 능력이 뛰어난 테르온이었다.
문제는.
“제로 군, 안녕하세요? 오늘 식사 같이하지 않을래요? 저희가 특급 요리사를 초빙했거든요. 아, 물론 루나 양도 같이요.”
공감이라곤 없는 특급의 ISTJ 유리디아.
얘가 문제였다.
뭐, 특급 요리사라는 뻔히 보이는 함정에 대체 누가 넘어가겠냐마는.
“제로! 뭐 해? 특급 요리사래! 빨리 가자!”
“…….”
응, 그래. 우리 루나가 있었지.
함정이든 뭐든 일단 달려들고 보는구나?
“후후, 식당으로 갑시다.”
“응? 왜?”
“저런 고급 음식을 먹으면 탈 납니다. 우리에겐 학생 식당이 제일 잘 어울려요.”
“너 바보야? 그냥 먹고 탈 나면 되잖아.”
응, 그렇구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루나를 들어 올려 옆구리에 꼈다.
그러자 루나의 엉덩이가 유리디아를 바라보는 구조가 됐다.
“죄송해요, 유리디아 양. 저는 제로랑 오붓하게 밥을 먹는 게 좋아서요.”
톤을 올려 루나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루나의 몸을 살짝 흔드는 디테일도 잊지 않았다.
유리디아의 입장에선 루나의 엉덩이가 말하는 것 같겠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뭐야! 내가 언제 그런 말 했어! 싫어! 이거 놔!”
우리 루나는 엉덩이로 말을 참 잘하기도 하지.
버둥거리는 루나의 허리를 단단히 잡았다.
“후후, 아니, 호호! 그럼 저흰 이만 가 볼게요.”
“안 돼! 내 특급 요리!”
절규하는 루나를 옆구리에 낀 채로 교실을 나섰다.
* * *
“쳇, 특급 요리 먹고 싶었는데 이게 뭐야.”
루나가 오므라이스를 뒤적거렸다.
뿌우.
볼은 잔뜩 부풀린 채였다.
불만이 가득하다. 어서 빨리 자신의 화를 풀어 줘라.
라는 뜻이었다.
‘귀엽긴.’
하지만 루나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왜 초감각이 발동한 거지?’
[초감각]이 발동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이상하다고 말할 게 없었다.
‘쓰레기통 근처는 맞는데…… 왜 저기에 무언가가 느껴지는 걸까.’
조금 생각해 본 결과, 깨달을 수 있었다.
‘시궁쥐.’
그렇다. 저기 있는 건 시궁쥐일 확률이 높았다.
나를 종종 살피라고 카론이 명령을 내려 놨을 거고, 그게 지금인 게 틀림없었다.
‘평소에는 멀리서 감시해서 느낄 수 없었던 거겠지.’
게임상에서 [초감각]의 범위는 10칸 정도.
그 범위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뭐, 마침 카론하고 얘기할 게 있긴 해.’
결투장 안에서 [일섬]을 사용하며 덫을 놨다는 걸 말해야 하고.
받아야 할 것도 있었다.
‘이번 달 접선 암호는 초토화였지.’
말할 때 ‘초토화’라는 단어를 넣으면 된다.
물론 한 번으로는 안 된다.
확률은 낮지만, 일반인이 대화 중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니까.
‘최소 세 번.’
그럼 주변에 있던 시궁쥐가 카론에게 전달할 것이다.
제로라는 아이가 암호를 알고 있었다고.
내게 암호를 알려 준 건 카론이니, 곧바로 찾아올 것이다.
“루나 양.”
“왜. 미리 말해 두는데, 나 아직 화 안 풀렸다?”
“후후, 초토화의 뜻을 아십니까?”
“갑자기 퀴즈야?”
“후후, 그렇습니다. 그리고 퀴즈에는 당연히 상품도 있겠죠?”
루나가 눈을 빛냈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와 함께.
“흐응~ 그렇구나. 이제 다 이해했어.”
“예?”
“너 주말에 고급 레스토랑 예약해 놨구나? 그래서 특급 요리 못 먹게 막은 거지? 맛있게 못 먹게 될까 봐.”
초토화가 뭔지 물었을 뿐인데 갑자기 레스토랑이 왜 나와?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걸까.
“뭐, 특급 요리 정도는 아니겠지만 내가 인심 썼다.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저…… 루나 양?”
“아, 미안, 미안. 서프라이즈였지? 모른 척했어야 했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다. 걱정 마. 지금부터 모른 척해 줄 테니까.”
그게 모른 척한다고 되는 거니?
그리고 레스토랑 예약한 적 없다니까!?
초토화가 왜 레스토랑으로 변한 거냐고!
“참! 우선 퀴즈를 맞혀야지. 다 박살 낸다는 뜻 아냐? 그 무엇도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겠다는.”
“후후, 맞습니다. 초토화의 뜻을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이제 두 번 말했다.
한 번만 더 말하면 카론과 접선할 수 있게 될 거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닌 듯했다.
“그리고?”
“예?”
“상품을 말해 줘야지.”
루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어서 상품이 뭔지 말해 달라는 눈치다.
‘머리를 굴려라!’
넌 카론과의 심리전에서도 이긴 남자잖아!
이 정도 상황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했다.
특급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루나.
한 번 더 말해야 하는 초토화라는 단어.
레스토랑.
그리고 눈앞에 있는 루나의 오므라이스.
정보라는 이름을 한 제각기 다른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았고, 하나의 퍼즐이 완성됐다.
그래,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슥슥! 달그락달그락!
루나의 오므라이스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속을 다 뒤집고, 예쁜 지단도 갈가리 찢어 버렸다.
케첩도 여기저기 뿌렸다.
“후후, 퀴즈 상품. 초토화 오므라이스입니다.”
“…….”
뚜둑-.
루나가 목을 꺾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응, 역시.
‘안 통하는구나?’
그렇게 나는.
루나에 의해 온몸이 초토화되고 말았다.
* * *
“루나 양,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따라오지 말랬지! 나 진짜 화낼 거야!”
초토화 오므라이스 사건의 발발.
그 뒤로 1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루나의 화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루나를 많이 겪어 봐서 아는데, 이 정도 분노는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은 혼자 내버려 두고, 나중에 만나면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뭐야! 왜 안 따라와!”
“……가던 중이었습니다.”
“따라오지 말랬지! 나 진짜 화낼 거야!”
“…….”
이 미친 변덕이 문제다.
시야에서 벗어나면 안 따라오냐고 화내고.
가까이 가면 따라오지 말라고 화낸다.
‘화는 내야겠고, 화해하는 방법은 모르겠고. 뭐, 그런 상황인가?’
딱히 불만은 없었다.
저게 루나라는 아이였고, 잘 따라오나 싶어 계속 뒤를 힐끔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귀엽기 짝이 없었으니까.
응? 이번 건 진짜 내가 잘못한 행동인데 불만은 가지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가?
‘이걸 어떻게 한담?’
루나의 뒤를 계속 쫓던 때였다.
갑자기 루나가 고개를 홱 돌렸다.
화가 잔뜩 난 표정.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표정이라는 걸.
“내 화를 푸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당장 레스토랑 예약해! 이번 주말에 꼭 먹어야겠어!”
아카데미 앞,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
별점 3.5점 수준의 애매한 레스토랑이지만, 아카데미 학생들이 많다 보니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
“예약이 꽉 찼다고 말하는 거 루나 양도 같이 들으셨지 않습니까.”
“몰라! 어떻게든 예약해!”
루나가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같이 지냈기에 안다. 이렇게 떼를 쓰는 루나는 막을 수가 없다는 걸.
일단 알겠다고 하는 수밖에.
“후우, 알겠습니다. 구해 보도록 하죠.”
“……진짜?”
“예. 그러니까 화 푸세요. 귀여운 얼굴 망가집니다.”
“그렇다면야 뭐…….”
루나가 툭툭 몸을 털며 일어났다.
“도와드려도 되죠?”
“……뭐, 그러든가.”
샐쭉한 표정을 짓는 루나.
그녀의 머리칼에 붙은 풀때기를 떼 주던 때였다.
찰칵-.
루나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왜 갑자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걸까?
“이것도 추억인데 다 찍어 둬야지.”
“추억이요?”
“응, 친구랑 사진 찍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앵무 때도 그랬고…… 그때 더 많이 찍어 둘 걸 그랬어.”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무엇보다 나와 싸우고 멀어질 뻔했던 루나다.
카메라를 갖고 다니기로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뭐, 좀 자제시키긴 해야겠지만.’
마나석의 힘으로 곧장 인화된 사진.
피식 웃음을 흘린 루나가 사진을 품에 갈무리했다.
근데 루나야, 내 얼굴 밑에서 찍지 마.
빈대떡처럼 나왔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