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80)
제80화
80화. 변화하는 일상(9)
카론을 바라보는 내 눈이 짜게 식었다.
S급 종결템을 루나에게 주라니.
로리콘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조심해야겠어. 저건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니까.’
사사삭-.
카론과 거리를 벌렸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남색에도 일가견이 있을지.
미소년(?)인 나는 조심하는 게 맞다.
좁은 방에서 필사적으로 카론과 거리를 벌리던 때였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전혀 아니니 걱정 마라.”
“후, 후후…… 그, 그렇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정보는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요.”
“…….”
카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말했잖느냐. 레니아와 거래를 했다고.”
“후후, 거참 편한 변명이로군요.”
“그건 네놈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제가요?”
“…….”
카론의 눈빛이 짜증으로 가득 찼다.
뭐, 레니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며 위기를 넘어가긴 했다.
하지만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나는 변태로 몰릴 위기를 빠져나가기 위해 이용한 거지만, 카론은 범죄자(?)로 몰릴 위기를 빠져나가기 위해 이용했다.
변태 vs. 범죄자.
누구나 후자 쪽이 더 문제 있는 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
“아무튼, 정보에 대한 대가는 그걸로 충분하겠지. 이제 광기의 창조주에 대한 정보를 넘겨라. 값은 잘 쳐 줄 테니 걱정 말고.”
죽음을 한 번 극복할 수 있는 S급 아티팩트.
확실히 차고 넘치는 대가이긴 했다.
내가 아니라 루나에게 줘야 한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뿌우-.
볼을 잔뜩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뭐냐, 그건. 죽고 싶다는 뜻이냐?”
물론 아니다. 즉각 볼에서 바람을 뺐다.
루나를 따라 해 봤는데 영 반응이 별로다.
내가 여자였다면 초절정 미소녀라 반드시 통했을 텐데.
‘후우, 이제야 정리가 됐네.’
의도치 않게 카론을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내줘도 괜찮은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
머릿속에서 정리를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단 흑마법사들과 엮인 적이 있었습니다. 신체 어딘가가 한 군데씩 망가진 이상한 놈들이었죠.”
광기의 창조주를 따르는 흑마법사들의 공통점.
신체 한두 군데가 없거나 악마의 신체를 접합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그러더군요. 자신들이 따르는 분은 더 대단하다고. 악마들을 몸에 심고 다닌다고 말이죠. 저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아니, 맞다. 내가 직접 봤으니 확실해.”
“악마를 몸에 달고도 멀쩡하단 말입니까?”
광기의 창조주를 떠올린 걸까. 카론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뭐, 이해는 간다.
단 한 장만 존재하는 광기의 창조주 일러스트.
하지만 누구도 그 일러스트를 잊지 못했다. 단 한 번만 본 사람조차도 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혐짤로 활약했고, 아직도 종종 등장할 정도.
그 정도로 기괴한 일러스트였으니, 현실에서 어떤 모습일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보기 전에 카론이 죽여 줬으면 좋겠다.’
난 연약하고 순수한 아이니까.
그런 끔찍한 걸 본다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그걸 인간이라고 칭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은 인간의 것으로 보였다.”
“그렇군요. 그들이 따르는 자가 바로 ‘광기의 창조주’라는 거고…….”
왼손을 들어 올려 턱에 갖다 댔다. 일명 추리하는 자세.
그 상태로 조용히 읊조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놈들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그렇다면 그 말도 진짜라는 걸까요?”
생각하던 와중,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혼잣말.
카론은 내 말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친 덫에 걸려든 거다.
“그게 무슨 말이냐? 뭐가 진짜라는 거지?”
“이런, 실수했군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건 확실한 정보는 아닌지라…….”
“정보의 정제는 내가 하겠다고 말했을 텐데? 네놈이 할 건 내뱉는 것뿐이다. 아는 건 전부 내놓도록 해라.”
이래서 일 잘하는 사람과 일하면 편하다니깐?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들이 그랬습니다. 마계 군단장과 소통할 수 있는 고위 흑마법사가 존재한다고 말이죠.”
“군단장……!”
카론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군단장이 강림할 경우, 대륙은 피와 살점으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군단장과 맞서는 전쟁터.
그곳에 존재하는 건 피와 살점뿐일 수밖에 없다.
‘모든 인류가 참여하는, 스케일이 다른 전쟁이기 때문이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에는 공통된 조약이 한 가지 있다.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며.
모든 나라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조약.
-군단장이 강림할 경우, 인류는 그 즉시 모든 적대행위를 멈추고 힘을 모아 군단장에 맞서야 한다.
제국과 성국, 공국, 왕국 등.
모든 인류가 공동전선을 펴고 군단장에 맞서는 거다.
전 인류의 힘을 합쳐야만 겨우 대적할 수 있는 정도.
마계 군단장의 힘은 그 정도였다.
‘게임 설정상, 가장 최근에 강림했던 건 5군단장 크롤리.’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왕국 하나가 5군단장의 강림과 동시에 멸망했고, 인류의 존망을 건 전쟁이 시작됐다.
결과는 인간 연합군의 승리.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인류의 10%가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피해가 적었다’라고.
‘그전에는 최소 20%의 인구가 죽어 나갔기 때문이지.’
심지어 저 퍼센티지 중 상당수가 젊은이들이다. 인류 성장의 동력이 뚝 끊겨 버리는 거다.
즉, 인간 측에서 군단장의 강림은 재앙(災殃),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군단장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 경악할 수밖에 없지.’
그 말을 증명하듯, 카론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카론마저 공포에 잠식된 거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멀었다.
“광기의 창조주라는 놈은 군단장과 소통이 가능한 고위 흑마법사 중 하나겠죠.”
“……중 하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말하길, 고위 흑마법사는 넷이라고 했습니다. 확신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지만,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광기의 창조주, 그 정도 급의 놈들이 적어도 셋은 더 있다는 거로군.”
역시 카론이다.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 목적이었다.
‘사천왕의 존재를 알려 주는 것.’
카론이라면 이 정보만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다.
운이 좋다면 한둘은 사전에 제거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카론이 중얼거렸다.
“리즈벨트…… 그가 그중 하나겠군.”
“리즈벨트요?”
누군지 잘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사천왕 중 하나인 여자다.
카론이 저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네놈, 시궁쥐를 꿈꾼다고 말했었지?”
“후후, 지금은 아닙니다. 따를 사람이 없어져서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시궁쥐를 꿈꾼다면 잔혹한 것에는 익숙해져야 할 거다.”
“후후, 나름 익숙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면 말해 줘도 되겠군.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건 특급 기밀이니, 절대 발설하지 말도록 해라.”
카론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갈레타 지방을 조사했다는 것, 광기의 창조주와 마주했다는 것, 그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키메라를 마주했다는 것.
그리고 키메라의 실험 의의와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게임에 있던 내용이 아니라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게 하나 있었다.
‘일개 학생인 나에게 이런 정보를 공유해 주다니.’
일부는 숨겼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다.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니까.’
고무적이다. 절로 주먹이 쥐어질 정도로.
앞으로도 이런저런 정보를 교환할 거고, 그로 인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애써 흥분을 감추며 말했다.
“리즈벨트라……. 이로써 확실해졌군요. 카론 선생님과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최소 둘, 최대 넷이라니.”
“대적할 정도는 아니다. 그놈이 도망쳤으니.”
툴툴거리긴.
광기의 창조주가 열받게 하긴 했나 보다.
뭐, 카론이 겪은 일을 들으니 나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어린아이까지 실험 재료로 쓰다니…….’
어린아이가 죽는 것 정도는 게임에서는 흔한 일.
하지만 그걸 현실로 접하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곧 제국 전역에서 키메라에 대한 방비를 시작할 거다. 아직 특별한 방법이 강구된 건 아니지만, 사체를 연구 중이니 곧 성과가 있을 거다.”
키메라의 연구를 늦추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나쁜 건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미래는 크게 바뀔 테니까 말이다.
“고위 흑마법사라…… 일단 둘의 존재는 확실한 것 같군. 나머지 둘이 실재하는지가 문제인데…….”
군단장과 소통할 수 있는 네 명의 고위 흑마법사가 존재한다는 말.
일개 말단 흑마법사의 입에서 나온 정보다.
카론의 입장에서 신뢰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광기의 창조주와 리즈벨트의 존재를 확인하긴 했지만, 그런 막강한 존재가 더 있으리라고는 확신하기 힘들다.
말단들 특유의 허세일 가능성. 그걸 배제하지 않는 카론이었다.
“하지만 한 놈만 더 확인할 수 있다면 넷이 존재한다는 정보는 확실하다고 봐도 상관없겠죠.”
“……그렇지.”
넷 중 둘과 넷 중 셋.
셋이 존재한다면 나머지 한 명도 실재할 확률이 높다. 아니, 확실하다.
그게 바로 합리적인 생각이자, 논리였다.
즉,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카론에게 남은 사천왕 중 한 명의 존재를 알리는 것.
“…….”
추리력이 올라가는 자세를 한 채 방을 거닐었다.
뭔가 떠오를 듯 말 듯 하다는 연기.
곧장 반응이 왔다.
“정보가 있나?”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아까 말했을 텐데. 정보를 배설하는 것, 그게 네 역할이라고 말이다.”
……내뱉는 게 내 역할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갑자기 배설로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계획대로였다.
“암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들었습니다. 시체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시체가?”
카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였기 때문일 거다.
좀비, 구울, 스켈레톤, 데스 나이트 등.
언데드 계열의 마수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뿐, 곧 등장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더욱 엄청난 공포를 선사하고, 대륙이 혼란에 빠지지.’
우리에게는 제법 친숙한 놈들이지만,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살아 움직이고, 그 수를 점차 불려 나가는 모습을 처음 마주한다면.
누구나 공포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뭐, 이렇다 할 정보가 없다니 어쩔 수 없군. 그거라도 추적해 보는 수밖에. 위치는 어디지?”
“칼로스입니다.”
“칼로스? 거긴 분명…….”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왕국이자, 앤스우드 제국을 턱밑 끝까지 추격해 곧 제국을 선포할 예정이었던 황금의 왕국.
그리고.
“40년 전, 마계 5군단장 크롤리가 강림한 곳…….”
“로한 왕국의 수도 칼로스……!”
그뿐만이 아니다.
싸우면 싸울수록 늘어만 가는 적.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만 가는 패색.
동료였던 아군마저 죽여야 하는 최악의 전장.
그렇다. 현재 칼로스에는 그가 있다.
네크로맨서의 최정점이자, 시체들을 지휘하며 죽음을 몰고 다니는 자.
사천왕 중 한 명인.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