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83)
제83화
83화. 첫 번째 보스, 르앵(1)
모두가 깜짝 놀랐다.
르앵은 인자한 편에 속하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묵묵하지만, 학생에게는 나름대로 친절한.
그게 바로 르앵이란 사람이었다.
저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도를 모르는군요!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야지요! 여긴 유리디아 양의 과외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죄송해요. 너무 궁금해서 그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로운터 가문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아시겠나요?”
“……예.”
르앵이 왼손을 들어 올리더니,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수업을 이어 갈 분위기가 아닌 것 같군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그렇게 르앵이 교실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에는 짜증이 가득 묻어 있었다.
“바보 같은 여자군요. 벌점을 사서 받다니.”
“테르온 님, 중간고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쯧.”
뒤에서 테르온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저번부터 이상하네. 테르온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유리디아가 헛발질하면 할수록, 그에게 유리해지는 것일 텐데 말이다.
“응? 뭐야? 수업 끝났어?”
“후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니. 수업에 집중 안 할래? 너 그러다 꼴등한다.”
루나야.
입에 침이나 닦고 말해.
* * *
훈련장.
몸을 풀고 있는 루나를 향해 말했다.
“참,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선물?”
품속에서 펜던트를 하나 꺼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정령이 양각된 작은 펜던트.
S급 아티팩트, ‘정령의 숨결’이다.
“응? 그게 뭐야?”
“아티팩트입니다. 치명적인 공격을 받을 시, 한 번 무효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죠.”
“거짓말하지 마. 그런 종류의 아티팩트가 얼마나 비싼데. 게다가 경감도 아니고 무효? 그게 진짜라면 수십만 골드쯤은 할걸?”
응, 그래. 그 수십만 골드짜리 아티팩트를 너한테 준다고.
부담돼서 받지 못하겠지? 그치?
“후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이건 제가 쓰도록…….”
후웅-.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내 손에 있던 정령의 숨결이 자취를 감췄다.
루나가 순식간에 채간 거다.
그녀가 한쪽 눈을 감은 채, 정령의 숨결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응~ 확실히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긴 하네. 근데 피해 무효라니, 너무 뻥이 심하다. 제로, 너 사기당한 것 같은데?”
“사기요?”
“응. 이거 잡상인한테 산 거지? 으휴, 아직도 이런 사기에 당하는 애가 있단 말이야?”
카론이 나한테 사기를 칠 수는 있겠지만, 시스템이 사기를 칠 수는 없다.
정령의 숨결의 효과는 두말할 것 없는 진짜. 이 게임의 종결 아이템이다.
그게 가치를 모르는 아이의 손에 들어가다니.
진짜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다.
이제부터는 ‘루나 목에 정령의 숨결’로 속담을 정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부터는 나랑 같이 다녀. 그런 거짓말을 믿어서야……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하여튼, 넌 이 누님이 없으면 안 된다니깐?”
“후후, 싫으시다면 돌려주셔도 괜찮습니다만.”
“친구가 선물로 준 거잖아? 싫어도 받아야지. 빨리 매 주기나 해.”
루나가 빙글 뒤로 돌더니, 내게 하얀 목을 내밀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 좋은 아이템을 전달하는 것도 모자라 내 손으로 직접 걸어 줘야 한다니.
“뭐, 길거리에서 파는 물품치고 예쁘긴 하네.”
“후, 후후……. 다음에 더 예쁜 걸로 구해 오겠습니다. 그때 교환하시죠.”
“알았어, 알았어. 네 정성을 봐서 오랫동안…… 아니, 평생 매고 다닐게. 어때? 이제 만족하지?”
아니, 전혀! 돌려 달란 말이다!
내가 낳고(?) 기른, 정령의 숨결을!
‘은빛 섬광도 나쁜 건 아니지만…….’
카론이 떠난 후, 방에서 은빛 섬광을 실험해 봤다.
옆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누르면 한 줄기 마나가 날아가는 방식.
그 속도가 워낙 빨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뭐, 벽지에 작은 구멍이 나긴 했지만.’
마나를 모으는 시간이 필요 없다는 게 중요했다.
턴 소모가 없다는 뜻이니까.
‘마나 소모는 10 정도.’
현재 내 마력 스탯은 39. 마력양은 390이다.
다른 스킬의 사용을 고려해도, 열 번 이상은 사용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파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끝까지 사용해도 괜찮을 법한.
엄청나게 좋은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후후, 더 예쁜 게 좋지 않겠습니까? 루나 양의 아름다운 외모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놈이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어쩌겠어? 선물이잖아. 마음씨 착한 내가 써 줘야지. 친구가 준 선물은, 저주가 걸려 있어도 사용한다. 그게 바로 나의 신조라고.”
응, 그것참 거지 같은 신조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그걸 신조가 아니라 멍청이라고 부르거든?
살짝 한숨을 내쉴 때였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루나가 눈을 빛냈다.
오, 설마 카론이 준 거라는 걸 눈치챈 건가?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다.
변명거리라곤 ‘카론 선생님이 로리콘이라 그렇습니다’, 이것 단 하나뿐이니까.
‘카론의 명예를 지켜 주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레니아와 카론이 알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게 더 루나의 분노를 살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리콘이라서 그렇다’.
이렇게 대답하는 걸 카론도 원하고 있을 것이다.
‘카론, 나만 믿으라고. 난 비밀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니까.’
루나의 완력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고 있을 때, 루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레스토랑 예약도 모자라서 선물까지……. 너 설마 나 좋아하니?”
“…….”
그러고 보니 깜빡했다.
우리 루나는 눈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이라는 걸.
무엇보다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후후, 전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쭉빵이 취향이라고.”
“흐응~ 그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내가 쭉빵이니까 좋아하는 게 맞는다는 걸까? 아니면…….”
루나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눈을 빛냈다.
“쭉빵이 아니니까 꺼지라는 걸까. 둘 중 어느 쪽이니?”
그야 당연히 후자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루나가 입을 이리저리 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물어뜯어 버리겠다는 뜻 되시겠다.
“후, 후후……. 루나 양은 당연히 쭉빵이지요.”
“그렇지? 그래도 나한테 너무 빠지면 안 된다? 하여튼, 너무 매력적이어도 문제라니깐? 이러다 친구 다 잃게 생겼어.”
루나 루나야, 그게 무슨 소리니.
너한테 친구는 나 한 명뿐이잖아.
일단 잃을 친구부터 사귀고 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순서 아닐까?
“그럼 이 누님의 훈련을 잘 보고 있으라고. 이상한 점 있으면 말해 주고.”
루나가 훈련장 중앙으로 향했다.
제법 긴 대화였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정령의 숨결을 돌려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들어주는 게 루나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카론과 루나의 히든 피스.
그런 걸지도 모른다.
‘갈수록 재밌어지네. 카론…… 대체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걸까?’
카론과 레스터 가문.
비어 있던 퍼즐 한두 조각을 더 찾았다.
전체적인 그림은 완성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왜?’라는 퍼즐 조각이 없다.
살인 전차라고 불릴 정도로 감정이 없는 카론이 루나를 보호해 주는 이유.
‘그것만 알게 된다면 카론을 더 이용해 먹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
S급, A급 아티팩트를 1장부터 주워 오는 카론이다.
약점을 쥐게 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삐끗했다간 바로 목이 꺾일 거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지. 뭐, 지금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기도 하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 그건 바로.
[메인 퀘스트#4]-1장의 보스, ‘르앵 드 플뢰르’를 처치하라!
마검에 지배된 선생, 르앵 드 플뢰르를 처치하세요.
일반 보스가 아닌, 히든 보스를 처치해야 클리어!
르앵 드 플뢰르를 회개시킨 후 처치할 경우,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르앵 드 플뢰르(0/1).
보상 : 200exp, 10골드
추가 보상 : 눈 뜨기(F) > 눈 뜨기(E)
페널티 : 모든 스탯 5 감소
※이 퀘스트는 거부가 불가능한 퀘스트입니다.
이게 문제였다.
살인의 문제가 아니다.
루나의 조언을 받기도 했지만,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살인은 피할 수 없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적응해야 해. 그래야 거침없는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흑마법사도, 도적 떼도, 또는 그 이외의 사람도.
죽이는 걸 망설인다면 그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모른다.
-서로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죽여. 그래야 네 옆 사람이 살아.
나를 위해서가 아닌, 동료를 위해 죽이라는 조언.
루나치고 꽤 괜찮은 조언을 해 줬다.
그리고 나는 그 조언을 따를 생각이었다.
‘르앵을 죽이는 건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야.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르앵 드 플뢰르를 회개시킨 후 처치할 경우,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바로 저 문구가 문제였다.
회개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성경이라도 읽어 주면 되려나?
‘르앵이 마검에 손을 대는 이유는 알고 있어.’
아카데미에서 플레이를 시작할 경우, 1장의 보스는 100% 르앵이다.
그러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아는 건 당연했다.
르앵 드 플뢰르.
하지만 지금 그는 ‘르앵’으로 불린다.
가문이 몰락하는 와중, 르앵이 뒤를 잇지 않을 것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귀족 사회에서 흔한 일이었다.
삼류 귀족.
말 그대로 이름뿐인 자리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창피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세금, 노역, 귀족의 의무 등.
귀족에 뒤따르는 갖가지 의무를 피하기 위해 가문의 뒤를 잇지 않는 귀족들도 많았다.
몰락 귀족을 자청하는 것이다.
그래도 피는 귀족인지라 귀족과 같은 대우를 해 주는 곳이 많기도 했으니, 몰락 귀족이 흔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르앵은 좀 다르긴 하지만.’
어느 날 르앵은 제 발로 가문을 떠났고, 방랑 기사 신분으로 제국에 그 이름을 떨친다.
명예를 건 결투에서 많이 승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진짜 유명해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결투의 승패와 상관없이, 고개를 숙이며 상대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검술로 유명한 가문에 식솔로 들어가 생활할 때도 있었다.
보통은 창피하다며 외면하는 행위.
하지만 르앵은 당당히 요구했고, 비전 기술을 배워 떠났다.
결투, 배움, 방랑.
그 생활이 반복된 지 어느덧 10년.
돌연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가 플뢰르 가문의 가주와 결투를 벌인다.
그리고 승리한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결투에서 승리한 후, 르앵은 가르침을 청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딴 쓰레기 같은 검술을 처음부터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영웅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르앵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가문의 검술만을 사용해 플뢰르 가문의 가주를 꺾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그에게 이명이 생겼다.
‘모방의 르앵’이라는 이명이.
그렇다, 르앵은.
자신의 가문을 제 손으로 몰락시켜 버린.
가문의 배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