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87)
제87화
87화. 첫 번째 보스, 르앵(5)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로델린 선배한테 너를 부탁받았어.”
“저, 저 같은 아이와 친구가 되어 줄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하지. 저 이상한 놈도 나라는 엄청난 친구를 만났잖아? 너도 얼마든지 가능해.”
레제가 타당한 의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설득당한 걸까.
설마 이상한 놈이라는 대목은 아니겠지?
“자, 그럼 친구를 사귀러 가 볼까?”
“치,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건데요?”
“응? 그야…….”
루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루나는.
‘친구가 나 하나뿐이니까.’
그런 주제에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고 로델린의 부탁을 받아들이다니.
친구가 하나인 아이에게 부탁을 한 로델린이나.
친구가 하나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인 루나나.
멍청이들의 잔치가 따로 없다.
“그, 그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꿀팁을 하나 알려 줄게.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면…….”
“바, 발견하면요?”
“일단 물어.”
“그, 그렇군요. 일단 물어라…….”
레제가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루나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이상한 조언을 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딱히 루나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친구가 됐으니까.’
즉, 루나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뿐이랴. 물어 죽이겠다는 협박에 욕설, 날이 시퍼런 검을 목에 겨누고, 발에 차이기까지.
그런 루나랑 어떻게 친구가 된 건지.
미스터리다. 정말.
“야, 뭐 해? 너도 조언 좀 해 줘 봐.”
“조언이요?”
“나 같은 위대한 친구를 어떻게 사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해 주란 말이야.”
음, 글쎄.
네가 편하게 물어뜯을 수 있도록 허리를 숙여 줬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 전에, 짚고 넘어갈 게 하나 있었다.
“루나 양, 잠깐만 이리 와 주시겠습니까?”
“뭔데?”
레제와 살짝 거리를 벌렸다. 우리의 대화가 안 들릴 정도의 거리.
“진짜로 같이 다니실 생각입니까?”
“어쩔 수 없잖아. 선배님한테 부탁받았는걸. 당분간만 같이 다니자. 첫 친구가 생길 때까지만.”
“안 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어요. 벌써 잊으신 겁니까?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를?”
루나는 자신의 가문에 누명을 씌운 자들을 찾기 위해.
나는 힘을 쌓기 위해.
물론, 루나가 알기로는 나 또한 ‘복수’를 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걸로 되어 있긴 하지만.
“…….”
오히려 그래서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을 거다.
레제와 친구 놀이를 해 줄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물론, 이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야.’
내가 레제를 멀리하려는 진짜 이유.
루나의 착한 심성 때문이었다.
레제가 잠깐 머무르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다른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면? 루나가 레제와 너무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강제로 내 파티원이 되겠지.’
먹여 살리는 건 문제없다. 문제는 레제의 [생존 희망자]라는 특성이다.
적에게 표적이 될 시 전장을 이탈하는 해괴한 특성.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가는 파티원?
등 뒤를 믿고 맡길 수가 없다. 최종 보스에 도전해야 하는 나라면 더더욱.
그러니 레제를 처음부터 멀리하겠다는 내 판단은 너무나도 올바른 것이었다.
“잠깐뿐이잖아. 우리도 휴식 시간은 있어야지.”
그러니까 그 잠깐이 잠깐으로 안 끝날 거라는 느낌이 온다니깐?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눈을 떴다. [눈 뜨기] 스킬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루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나도 알아. 우리 일도 중요하지. 하지만…….”
루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다잖아.”
그제야 루나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열 살부터 5년간 혼자였던 루나다.
어쩌면 레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본 것일지도 모른다.
오롯이 제 혼자서 모든 걸 끌어안아야만 했던 자신의 옛 모습을.
동정심을 유발하다니. 치사하다.
“……어쩔 수 없군요.”
“어? 받아 주겠다는 거야?”
“후후, 들어줄 수밖에요. 친구의 부탁 아닙니까.”
“제로……!”
감동이 잔뜩 어린 루나의 표정.
그런 루나를 향해 검지를 빼 들었다.
“단, 이건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응? 뭔데?”
“써 드리죠. 좀 길거든요.”
[아공간]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내 손에 들린 펜이 미끄러지듯 글을 써 내렸다.
-밥과 입을 것, 장난감은 주인인 루나가 챙겨 줄 것, 다른 사람과 트러블이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할 것,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산책도 시킬 것.
“내가 책임지고 돌보라는 거구나? 그래, 뭐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후후, 생각보다 힘들걸요?”
“힘들기는 무슨. 근데 이 문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어디더라?”
내가 써 준 종이를 보며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법 익숙할 거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지켜야 할 것들.
거기에서 따온 문구니까.
‘싸울 수 없는 애완동물 포지션. 그게 레제의 현 위치이기도 하고.’
그러니 애완동물 정도로 취급하면 어떻게든 될 거다.
빠른 시일 안에 분양(?)이 되면 더 좋고.
일시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무능력한 아이를 파티에 넣다니.
너무 생각 없는 행동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저런 레제라도 할 수 있는 역할이 딱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가 극복할 수 없는 위험에 빠졌을 때…….’
방패로 쓰면 되니까.
물론, 그 대가로 방패는 부서지겠지만 말이다.
잔인하다고? 이 게임은 원래 그런 게임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캐릭터를 악마의 아가리에 집어넣고.
그 대가로 얻은 시간을 이용해 공략하는 것.
「아카데미의 영웅」이라는 게임에서 희생 플레이는 당연하다고 말할 정도로 많았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게임이라는 뜻이다.
‘뭐, 악마를 몇 번 마주하고 나면 스스로 나가떨어질 수도 있고.’
루나의 말대로 휴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1장이 끝난 다음부터는 바빠질 테니까 말이다.
“오케이. 그럼 결정 난 거다?”
“후후, 적어 준 거나 잘 지켜 주십시오. 산책은 꼭 하시고요.”
“알겠다고.”
루나와 함께 레제의 곁으로 향했다.
레제는 여전히 상자에서 얼굴만 빼꼼 내놓고 있었다.
“미안, 기다렸지? 우리가 하던 일이 있어서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저, 저 같은 게 시간을 뺏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제로, 조언 좀 해 줘 봐.”
“조언이요?”
“응,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꿀팁. 난 하나 알려 줬잖아. 이제 네가 알려 줄 차례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면 물라는 것.
설마 그게 조언의 처음이자 끝인 건 아니겠지?
루나가 날 멀뚱멀뚱 바라봤다.
응, 그렇구나. 처음이자 끝이 맞구나?
역시 우리 루나는 대단한 아이였다.
‘어쩔 수 없군.’
이러다 사람을 물고 다니는 괴물이 아카데미에 출몰할지도 모른다.
로델린에게 잡혀가 심문을 당하는 건 피하고 싶으니, 진심으로 도와주는 수밖에.
“우선 이 상자가 문제입니다. 툭하면 이곳에 숨으니, 사람들이 다가오기 쉽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발견할 수도 없을걸요?”
“하, 하지만…… 무서운걸요.”
“상자 안에서 나오라곤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상자 뚜껑은 열어 두십시오. 그 정도는 괜찮겠죠?”
“네, 네……. 그 정도는 괜찮아요.”
처음은 뚜껑을 연 채로, 다음은 상자 밖으로, 그다음은 상자 없이.
천천히 나아지면 될 거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지만 말이다.
“뭐, 나쁘지 않은 조언이네. 내 조언보다 못하긴 하지만.”
누가 봐도 내가 해 준 조언이 더 좋거든?
애초에 네가 해 준 건 조언도 아니었잖아!
“…….”
훈련장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루나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근데 이제 뭐 하지?”
“…….”
루나 루나야, 그게 무슨 소리니.
누구는 이런저런 생각 끝에 힘들게 결론을 내리고 받아들여 줬는데.
나온 말이 뭐? 근데 이제 뭐 함?
진짜 미치고 팔딱 뛸 일이다.
“크, 크후후…….”
루나의 행태에 충격이 컸던 걸까. 짜증 어린 웃음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신방어]조차도 뚫어 버린 거다.
“왜, 왜 저러는 거예요?”
“종종 저래. 워낙 이상한 놈이잖아. 그냥 네가 이해해.”
수군수군-.
이상한 놈이라니.
사람을 물어뜯는 애랑 온종일 상자에 들어가 있는 애.
누가 봐도 너희가 더 이상하거든!?
“후, 후후……. 평소처럼 훈련이나 하시죠. 레제 양은 지켜보시고요.”
“그래도 괜찮나? 심심할 텐데.”
“괘, 괜찮아요. 보, 보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저, 저는 절대로 못 하는 동작이니까…….”
꼼지락꼼지락-.
레제가 부럽다는 듯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하고 싶은 동작 다 말해! 내가 해 줄 테니까!”
“아, 아니에요! 저, 저 따위가 어떻게 그런 황송한 일을!”
“전혀 황송하지 않거든? 가자!”
루나가 상자 안에 든 레제의 손을 잡고 훈련장 중앙으로 향했다.
근데 저 상자는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미스터리하다, 정말.
드르륵-.
훈련장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카론?’
[초감각]은 발동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은신 상태도 아닌 데다가, 기습할 의사도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왜 여기에 온 걸까.
“후후,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건방진 놈. 인사가 먼저 아니냐? 선생에 대한 예의가 없구나.”
“내 삶의 빛,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카론 선생님 납시셨습니까.”
“……건방진 놈.”
인사를 안 해도 건방진 놈, 인사를 해도 건방진 놈.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근데 진짜 여긴 왜 온 걸까?
루나 쪽을 힐끗 바라보던 카론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저건 뭐냐.”
자신의 눈이 잘못된 건가 싶었나 보다.
저거라니. 레제도 사람이야, 사람!
상자 안에 든 사람이라서 그렇지.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아이랄까요.”
“뭐냐, 그 말도 안 되는 표현법은. 그리고 이상해 봤자 네놈만큼은 아닐 거다.”
충격적이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도, 그리고 레제보다 더 이상하다는 것도.
볼을 가득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하려던 때였다.
“처음 보는 아이군. 이름이 뭐지?”
“레제 양입니다. 우수반은 아니고요.”
“레제, 레제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름은 아니군.”
딱히 특별할 게 없는 대화.
하지만 두 가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첫째, 레제는 스파이가 아니다.
특출난 능력을 지닌 아이라면, 카론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스파이로 활약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면 입학할 때부터 카론이 눈여겨봤을 것이다.
테르온파나 유리디아파에 속해 있었어도 마찬가지다.
둘 중 한 곳에 속해 있다면, 방금 나에게 귀띔해 주었을 거다.
‘루나가 테르온에게 죽을 뻔했으니까. 그 정도 정보는 공유해 줬겠지.’
그리고 둘째. 이게 중요했다.
‘카론조차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레제의 은신술이 뛰어나다는 것.’
다름 아닌 카론이다.
제국의 시궁쥐라 불릴 정도로 첩보의 정점에 서 있는 자.
남다른 눈썰미는 기본이고, 은신한 상대를 찾는 건 그의 특기 중 하나.
그런 카론이 레제를 오늘 처음 본다니.
은신술이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써먹을 데가 있을지도?’
애완동물치고 능력이 나쁘지 않다.
어떻게 요리해야 극한까지 빨아먹을 수 있을까.
“후후후…….”
그런 내 시선을 느낀 걸까.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레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