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89화. 첫 번째 보스, 르앵(7)
“빨리 원하는 걸 말해라. 나는 너와 달리 바쁜 몸이란 말이다.”
내가 생각에 빠지자 카론이 닦달하기 시작했다.
아직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뭐, 막 생각이 끝났으니 상관없지만.
최대한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아닙니다. 조금 생각해 보니 이건 아닌 것 같군요. 고작 이런 걸로 대가를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무슨 꿍꿍이냐.”
카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가를 안 받는다고 하니 의심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진심입니다. 카론 선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게 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조금 전에 루나에게 일섬을 가르치겠다며 협박하던 놈은 다른 놈이더냐?”
아, 그때는 뭔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거든. 미안하게 됐네.
하지만 아까는 아까, 지금은 지금 아니겠어?
“후후, 너무 매정하게 떠나시니까 그런 거였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비즈니스 관계라지만, 그건 너무 삭막하잖습니까?”
“너 같은 놈과는 그 정도 관계가 딱 좋다. 영 찝찝하군. 그냥 대가를 주겠다. 원하는 걸 말해라. 돈? 아티팩트? 아니면 다른 무언가?”
아니, 미친놈아! 나도 받기 싫다고!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후후, 그럼 달아 놓는 걸로 하시죠. 다음에 제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거기에 합해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대가를 받는 것도, 안 받는 것도 아니야!’ 작전.
그러자 카론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마음에 안 들지만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네놈 맘대로 해라.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거겠지?”
“후후, 순수한 궁금증이 하나 있습니다만.”
“전혀 순수하지 않을 것 같군. 이만 가 보도록 하겠다.”
카론이 훈련장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를 불러 세우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레니아 님이 관련된 것인데도요?”
멈칫-.
카론이 즉각 몸을 돌렸다.
“쯧, 역시 순수하지 않은 궁금증이었군. 그만 뜸 들이고 말해라. 뭐냐?”
“르앵 선생이 일섬을 알고 있더군요. 그것도 꽤나 자세히.”
“르앵이?”
카론이 관심을 보였다.
계획대로다. 레스터 가문을 이용해 르앵에 대한 정보를 묻는 것.
카론으로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일 거고, 이 정도면 르앵의 사지를 분해하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다.
뭐, 조금 화풀이를 하러 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세히 설명해 봐라.”
며칠 전 야외 수업, 유리디아의 집착, 최근 교실에서 있었던 일까지.
얘기를 끝내자, 카론이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그런 일이 있었군. 르앵이라…… 그라면 충분히 일섬도 사용할 수 있긴 하지. 하지만 레스터 가문에서 일섬을 배웠다는 건 나도 처음 듣는군.”
잠시 말이 멈췄다.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윽고, 카론의 입술이 달싹일 때 우리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아마 거짓말이겠지.”
“거짓말일 확률이 높습니다.”
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뭐, 난 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말이다.
‘레스터 가문은 굉장히 딱딱한 가문이야.’
게임을 플레이하며 알고 있던 정보, 그리고 이곳에서 직접 들은 정보들을 종합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폐쇄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개방적이지도 않은.
고리타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문.
그런 가문에서 외부인인 르앵에게 직접 검술을 지도했을 리 없다.
그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알면서 물어본 거냐?”
“후후, 혹시 모르니까 말이죠. 저 같은 특수한 경우가 또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긴, 레스터 가문 출신이 아닌 자가 제대로 된 일섬을 쓰는 건 네놈이 처음이긴 하지.”
“후후, 그럼 예쁘게 봐 주시는 게…….”
“내가 일섬을 눈앞에서 보지만 않았어도 그 자리에서 즉각 죽였던 건데. 아쉽군.”
카론이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예뻐해 달라고 말한 게 뭐 어때서?
사이코패스도 저 정도는 아닐 거다.
‘음?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거짓말한 르앵에게 화가 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이 아니다.
“화나지 않으셨군요?”
“내가 왜 화를 낸단 말이냐. 네놈의 얼굴을 볼 때마다 화가 나긴 하지만, 충분히 참을 수 있다.”
……이 새끼가?
루나를 이쪽으로 불러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르앵에 대한 정보가 나올 것 같았으니까.
“후, 후후……. 르앵 선생이 레스터 가문의 기술을 쓰지 않았습니까. 직접 배웠다는 거짓말도 했고요. 그런데도 화가 나지 않으신 겁니까?”
“아아, 그 말이었군. 진작 잘 설명했어야지. 난 네놈의 못난 얼굴 때문인 줄 알았지 뭐냐.”
뚝, 뚜둑.
참아야 한다. 덤비면 내가 죽으니까.
카론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서 덤벼 달라는 것 같기도 했다.
덤비면 최소 전치 12주. 중상이다.
참기로 했다. 난 어른이니까.
“뭐냐. 덤비는 거 아니었나?”
“후후,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카론 선생님인데요.”
“재미없는 놈.”
아쉽다는 듯 눈을 빛내던 카론이 입을 열었다.
“르앵은 상당한 노력가다. 그래서 싫어하지 않는다. 뭐, 딱히 좋아하지도 않지만.”
“노력가요?”
“그렇다. 다른 가문의 검술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보는 눈이 뛰어나고 분석하는 것에 재능이 있긴 하지만…… 노력 없이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지.”
르앵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다.
카론이 이 정도로 칭찬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안 봐도 뻔했다.
‘뭐, 수업 때 나도 느끼긴 했지만.’
르앵이 1장을 끝맺음하는 보스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던 나다.
첫 수업 때 잔뜩 긴장했지만,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성실, 열정, 최선.
훌륭한 선생의 표본이었다.
테르온파를 비호하며 벌점 폭격을 내리던 그에게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선생님이니까. 벌점을 내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 정도로 수업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르앵이었다.
‘노력가라…… 르앵을 회개시키기 위한 키워드일지도?’
머릿속에 정보를 정리하던 때였다.
“그리고 레니아와 대련을 했다는 건 사실일 수도 있을 것 같군.”
“예? 그게 정말입니까?”
“레니아가 대련을 피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특별한 일만 없다면 대련을 받아 줬지. 뭐, 검을 섞을 가치도 없는 자들은 상대를 안 했지만…… 르앵은 그런 결의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
카론의 눈동자가 슥 움직이더니, 내게로 향했다.
“이런 정보도 모르느냐?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꿨다던 놈이.”
툭 던지는 말이지만, 내게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문.
당황하면 안 된다. 뻔뻔하게 간다, 뻔뻔하게.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붙어 있던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레니아 님의 부탁을 들어줘야 했거든요.”
“부탁? 무슨 부탁이지?”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것처럼.
“후후, 개미굴에서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걸 알아내는 건 카론 선생님의 몫이라고요.”
“……걱정 말거라. 꼭 알아낼 터이니.”
카론이 싱긋 웃었다.
오, 쿨한데? 루나의 볼 빵빵이 끼친 영향인가?
입꼬리를 올려 마주 웃어 주던 때였다. 카론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네 몸을 분해해서라도 알아낼 거거든.”
무섭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무섭다.
사람을 분해하겠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후, 후후…… 농담이시죠?”
“그걸 한번 알아내 보거라. 내가 진심인지, 아닌지. 서로 재밌는 퀴즈를 즐길 수 있겠구나. 네 덕분이다.”
아뇨. 전혀 재밌지 않은 퀴즈인데요.
그리고 나 분해하겠다는 거 진심이잖아.
정답을 맞혀도 분해, 틀려도 분해라니. 전혀 기쁘지 않다고!
“아무튼, 르앵의 수업 수준은 괜찮은 편이니 빼먹지 말도록 해라. 길을 잘못 든 놈이긴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며 스스로 깨닫게 될 테니까.”
“길을 잘못 들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너도 명문가의 검술이, 명문가이기 때문에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명문가인 거고.
“아닌가요?”
“쯧, 그럴 리가 없잖느냐. 명문가의 검술을 배운다고 강해져?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왜죠?”
“신체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힘, 근육, 키, 무게, 성별, 기타 등등.
“사람마다 주어진 조건이 다른데, 획일화된 검술이 몸에 맞을 것 같으냐? 맞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 팔과 다리의 길이부터 힘까지.
사람마다 신체 구조가 다르다. 같은 검술을 배워도 차이가 생긴다는 거다.
그게 미미한 차이일지라도, 차이는 분명한 차이다.
대를 거듭할수록 그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고.
“그럼 대형 가문들이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어째서죠?”
“그야 뻔하지 않으냐. 노력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도, 그리고 보지 않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니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카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 선대가 쌓아 올린 과거나 명예, 신뢰도 영향이 있긴 하겠지.”
“노력보다는 그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닌가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후대가 형편없다면 그걸 까먹는 건 순식간일 거다. 생각해 봐라. 제국의 여덟 기둥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더냐?”
앤스우드 제국이 탄생한 건 수백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앤스우드 왕국을 제국으로 만들었던 8개의 기둥이자 가문.
그중 현재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가문은.
‘로델린의 루시드 가문이 유일해.’
나머지 7개의 기둥은 한 세대에 한두 자리씩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었다.
새롭게 떠오른 가문일 때도, 과거의 여덟 기둥 중 하나였던 가문일 때도 있었다.
“얼마든지 노력 여하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다. 특히 검을 다루는 가문이라면 더욱 그렇지. 그러니 명문가의 검술이라고 해서 반드시 강한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가문을 모조리 씹어 먹을 정도로 강력한 검술이니까.
‘명문가의 검술을 배운다고 해서 무조건 강한 건 아니다’라는 카론의 의견이 맞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뭐, 정제된 검술을 가르치는 것이니 효율은 높겠지. 하지만 결국 자신에 맞게 변형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정점에 설 수 있어.”
가문에서 전수해 주는 검술은 어디까지나 길을 알려 주는 것.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자신에게 맞게 변형, 개발하는 것.
그게 바로 후세대에 주어진 일인 거다.
“검술, 창술, 궁술, 무투술 등, 모든 무술은 처음과 끝이 같다. 중간만 다를 뿐이지. 어느 가문의 무술이든, 최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중간만 다를 뿐, 처음과 끝은 같다라.
좋은 말이다.
동시에 르앵에게 어떤 말을 해 줘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르앵은 자기 가문의 검술이 약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다른 가문의 검술을 배웠고, 점점 길을 잃게 된 거다.
‘하지만 강해졌잖아. 그게 길을 잃었다고 말할 정도인가?’
카론이 뭔가를 더 말해 주길 바랐지만, 입을 굳게 다문 지 오래다.
‘이 이상 르앵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의심을 살 거야.’
르앵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챈 카론이 그를 죽여 버리는 것.
이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일단 르앵이 상당한 노력가라는 것과 그가 길을 잃은 이유.
이 두 가지 정보를 얻어 낸 데에서 만족해야 할 듯했다.
“……저거, 그만 멈추는 게 낫지 않겠나?”
“예?”
카론의 시선은 루나에게 향해 있었다.
“헉…… 헉…… 한 번 더!”
훈련장 중앙. 그곳에서.
체력이 다한 루나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