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9)
제9화
9화. 입학시험(6)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하지만 엘레스터는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글쎄요. 그럼 저 두 생도 외에, 미궁을 부순 생도가 또 있나요?”
“…….”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빼고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까.
“왜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은 거죠? 2차 시험장의 문은 거대하기 때문에, 미궁을 절반쯤 돌파했을 때부터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왜 다 미궁을 빙빙 돌며 헤매는 개고생을 한 거죠?”
“그, 그건…….”
“우리 솔직해집시다. 생각하지 못한 거잖아요.”
미궁은 보통 돌이나 광석 등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수풀로 이루어진 미궁을 봐도, 부술 생각을 하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틀에 갇힌 생각은 위험합니다.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게 되거든요.”
완벽한 엘레스터의 논리.
질문을 한 아이가 고개를 푹 떨궜다.
“질문을 한 학생이 누구죠?”
“저, 접니다.”
“상대의 노력을 무식하다고 폄훼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기 있게 질문하는 건 아주 좋았어요. 꼭 입학했으면 좋겠군요.”
“가, 감사합니다. 꼭 합격할게요!”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불만을 품은 아이들이 상당히 많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인지한 엘레스터가 말을 이었다.
“이제 막 1차 시험이 끝났을 뿐입니다. 어차피 실력이 안 되면 이번 시험에서, 그리고 다음 시험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하, 하지만…….”
“설마 1차 시험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사람에게 밀릴 정도로 실력이 없는 건 아니겠죠? 그렇다면 여기서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
그제야 모든 아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수긍한 거다. 아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엘레스터의 말은 지극히 논리적이었으니까.
‘직접 보니 더 대단하군.’
사실 수풀을 돌파하며 1차 시험에 합격하는 히든 피스는 잘 쓰이지 않는 히든 피스였다.
딱히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히든 피스이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엘레스터의 대화가 좀 늘어난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난 종종 이 루트를 이용하곤 했다. 왜냐고?
2차 시험 감독관이자, 위대한 대마법사, 그리고.
‘내가 게임에서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이니까.’
이유는 방금 있었던 일에서 알 수 있을 거다.
인자하고, 합리적이며, 꾸짖음과 동시에 잘못을 반성할 시간을 주기까지.
하지만 주제를 모르는 건방진 아이들에겐 가차 없다.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참 멋있게 늙은 노인이란 말이지.’
내 학창 시절 선생님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선생님들이 모두 저렇다면 참 좋을 텐데.
게임에서는 일러스트가 한 장뿐인 엘레스터의 얼굴을 즐겁게 바라볼 때였다.
‘음?’
갑자기 왜 저런 얼빠진 표정이 된 거지? 게다가 왜 나를 보는…….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2차 시험 종목. ‘환상 마법’.
그게 시작된 거였다. 아니, 시작된 지 오래였다.
“으으윽……!”
“크윽!”
“오, 오지 마!”
신호도 없이 갑자기 시작된 시험.
루나를 포함한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중이었다.
단 한 명.
나만 빼고.
“…….”
“…….”
[정신방어] 스킬은 약물은 물론 정신계 마법 공격에도 완전한 면역을 부여한다.즉, 나는 환상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2차 시험 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타이밍에 맞춰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게임 속 캐릭터를 감상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뭐, 아주 조금 늦었을 뿐이니까.
“크윽! 머리가……!”
하지만 아무도 반응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눈초리가 더 이상해졌다.
엘레스터는 물론, 주위를 둘러싼 교관들조차도 똑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 아는 것 같다. 이놈 지금.
연기하는 중이라고.
“……허허.”
엘레스터가 단상에서 내려서더니, 미끄러지듯 내게로 다가왔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하는 사이에 내 앞에 도달했다.
“연기는 그쯤 하는 게 좋겠구나. 뭐, 그럴 필요도 없고.”
“으흐흑…….”
내가 낸 소리가 아니다. 옆에 있던 루나가 낸 소리지.
그녀가 엎드린 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모종의 이유로 평소보다 강한 마법을 쓴 엘레스터다.
이렇게 된 이상…….
“……후후, 고약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시는군요. 역시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답습니다.”
어떻게 들으면 비꼬는 듯한 다소 도발적인 대사.
그걸 증명하듯 교관들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이게 맞다.
‘엘레스터는 당당한 아이를 좋아하지.’
그뿐이랴. 실력자들은 더더욱 좋아한다.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기둥이라면서.
그러니 이 대사가 맞다.
“……험한 생활을 한 모양이구나.”
“후후, 눈이 이 모양 이 꼴이다 보니 어쩔 수 없더군요.”
“글쎄다. 그 탓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실실 웃고 있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가요? 시정하도록 노력하죠.”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캐릭터가 생긴 게 이런 걸 어떡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만들어질 때부터 웃는 상이었다고!
“이름이 어떻게 되나?”
“제로라고 합니다.”
“허허, 좋은 이름이로구나. 기억해 두마. 이번 기수는 대단한 아이들이 많구먼.”
엘레스터가 공중에 뜨더니, 단상 위로 살포시 착지했다.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뭐, 뭐야…….”
“환상 마법이었나?”
“방어용 아티팩트도 챙겨 왔는데 어째서…… 아, 아니. 크흠.”
하지만 모두가 깨어난 건 아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엘레스터가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교관들이 기절한 아이들을 하나둘 둘러메고 사라졌다.
탈락한 거다. 2차 시험에서.
멍-.
루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제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물어 죽인다.”
아까보다 더 까칠해졌다.
지독한 환상…… 아니, 과거를 맛봤을 테니까.
“허허, 많이들 살아남았군요. 장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생도가 아닌 입학생이겠군요. 그때 웃으면서 다시 만납시다.”
아이들이 환호성과 함께 엘레스터의 이름을 연호했다.
2차 시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허허, 믿을 수가 없군.”
엘레스터가 중얼거렸다.
자신이 펼친 마법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고서클의 마법.
미리 대비를 해 온 아이들이 몇몇 보였기에, 평소보다 더 강한 마력을 주입했다.
학생들 수준에서 깰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2차 시험의 룰은 아래와 같다.
마법을 펼친 후 5분 뒤에 캔슬.
그 뒤부터 깨어나는 순서대로 점수를 매긴다.
기절은 탈락.
‘그런데 그 아이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실눈을 한 아이.
환상 마법에 걸리지 않은 건 아닐 거다. 그렇다면…….
‘스스로 깨부수고 나왔다? 내 마법을?’
게다가 아직 마법에 걸린 척하는 연기는 덤이었다.
엘레스터의 입가에 긴 호선이 그려졌다.
아주 재밌는 병아리가 하나 들어왔지 않은가.
“3차…… 아니, 비밀 시험을 맡은 카론 경에게 전하게. 관심 있게 지켜보라고. 요주의 생도야.”
“넵!”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듯한 학생이다.
과거 대륙을 절망과 공포, 절규로 물들였던 존재들의 초상화와 전설.
그건 엘레스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접근한 후 몰래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으로 스캔해 봤지만, 제로는 환상 마법을 막는 아티팩트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환상 마법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들을 보고, 겪고, 느꼈다는 건데…….’
엘레스터는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현실’이다.
환상은 결국 거짓으로 점철된 세계. 절대 현실을 능가할 수 없다.
“환상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끔찍한 과거가 있다는 건가? 아니면 설마…….”
9서클 대마법사인 자신보다도 더 강한 실력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엘레스터는 피식하고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
스캔 결과, 생체 나이는 영락없는 15세의 소년이었다.
고작 저 나이에 자신보다 강할 수는 없다.
세월이란 이름을 한, 경험의 무게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저…… 엘레스터 님. 저 학생의 점수는 어떻게 하죠?”
채점표에 ‘환상 마법을 스스로 부순 경우’에 대한 점수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걸 정해 뒀을 리가 없다.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꿀꺽-.
교관이 침을 삼켰다.
합리적이고 인자한 사람이지만, 규칙에는 엄격한 게 바로 대마법사 엘레스터.
하지만 규칙을 중시하면 제로라는 인재를 잃게 된다.
제국의 기둥 중 하나인 그가 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터.
그래서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점수라…… 그렇군요.”
엘레스터는 자신의 실수를 겸허히 인정하기로 했다.
대마법사라 할지라도 자신도 엄연한 인간.
고작 9서클일 뿐이다. 드래곤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는 소리다.
‘내 실수 때문에 그 아이를 낙제시킬 수는 없지.’
어느덧 하늘보다 흙이 더 가까워진 나이.
이 나이에 아이에게 배우고, 진리를 또 하나 깨우치다니.
본연의 임무 외에도, 아카데미에 잘 왔다고 생각하는 엘레스터였다.
제로의 점수를 어떻게 매기냐고? 그야 당연히.
“만점이지요.”
* * *
“죽인다…… 다 죽인다…….”
3차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
우리 루나의 상태가 좋지 않다. 그것도 꽤 많이.
“저…… 루나 양?”
“죽고 싶다고?”
“아닙니다. 하던 거 마저 하세요.”
중얼중얼.
너무 무섭다. 악마 소환이라도 하려는 걸까?
가련하고 순수한 나에게는 너무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슬라임 미궁과 환상 마법 시험.
난이도의 간극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2차가 이 정도라면 3차는 대체 얼마나 힘들까.
아이들의 표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3차도 힘들긴 하지. 뭐, 나는 루나에게 업혀 갈 예정이니 상관없지만.’
그러니 지금은 루나의 기분에 맞춰 줄 때였다.
“루나 양, 저길 보세요. 하늘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널 저기로 보내 버리기 전에 닥쳐.”
오, 끔찍하기도 하지.
그냥 조용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의 전투력이라면 3차 시험은 무사통과일 테니까.
“오, 저길 봐. 교관님들이 계셔. 다 왔나 봐.”
“으으…… 벌써 3차 시험장이라고? 2차보다 더 어렵고 힘들겠지?”
“잠깐만…… 저건……!”
아이들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3차 시험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어서다.
정사각형 형태의 경기장. 이게 뜻하는 건…….
‘대련밖에 없지.’
그렇다. 3차 시험은 대련이었다.
그것도 열 명이서 조를 이뤄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싸우는, 대련을 빙자한 개싸움.
아이들이 교관의 지도에 따라 한쪽에 정렬했을 때였다.
“반갑다, 3차 교관 카론이라고 한다.”
나타났다.
내가 이 게임에서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