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90)
제90화
90화. 첫 번째 보스, 르앵(8)
“에고고…… 죽겠네.”
한 마리의 지렁이…… 아니, 루나가 어깨를 두드리며 다가왔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때? 아까보다 더 강해졌지?”
“후후,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모습. 아주 잘 봤습니다.”
“……너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 카론 선생님한테 물어본 거거든?”
그럼 선생님한테 반말을 했다는 거야? 그것도 살인 전차 카론에게?
아무리 카론이 너를 이뻐한다지만, 그건 선 넘었다.
루나의 얼굴이 빈대떡이 될지도 모른다.
“……많이 늘었더구나. 노력한다면 더 나아질 거다.”
응, 그렇구나. 이제 보호자라는 걸 숨기지도 않겠다는 거구나?
내가 저렇게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면 단박에 밟아 터트렸을 거면서.
“들었지?”
루나가 팔꿈치로 나를 툭툭 건드렸다.
자신의 실력이 엄청나게 늘은 건, 엄연히 팩트라면서.
‘카론이 이상하다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네.’
저렇게 둔해도 살아갈 수 있다니, 놀랍다.
루나처럼 강한 아이보다 연약한 나를 보호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도 루나처럼 트윈 테일을 한다면 카론이 돌봐 주지 않을까?’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던 때였다.
킁킁-.
갑자기 루나가 코를 킁킁거렸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던 루나의 코가 향한 곳은.
쿵-.
카론의 품이었다.
“뭐, 뭐냐.”
“잠시만요.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루나가 카론의 주변을 돌면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 냄새…… 분명 어디선가 맡아 본 냄새인데……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카론이 뻣뻣하게 굳었다.
멀리서 바라만 보던 루나가 다가왔으니, 그럴 만했다.
‘저번부터 계속 저러네.’
루나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나도 몇 번 냄새를 맡아 봤다. 하지만 카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애초에 카론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은밀하게 활동해야 하니까.’
미행과 추적은 일상이요, 존재감을 없애며 숨는 건 필수.
그런 사람에게 냄새가 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루나의 착각이 분명했다.
“카론 선생님, 우리 옛날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그런 적 없다.”
“하긴, 그렇겠죠? 그런데 왜 이 냄새가 기억에 남아 있지? 이상하네…….”
사람을 냄새로 기억하려는 네가 더 이상해, 루나야.
보통 냄새보단 외모를 먼저 떠올리지 않니? 무슨 짐승도 아니고.
“난 이만 가 보겠다. 적당히 하고 들어가도록.”
카론이 루나를 살짝 밀어내더니, 훈련장을 떠났다.
뭔가 도망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한번 파 볼 여지는 있을지도?’
여전히 코를 킁킁거리고 있는 루나에게 물었다.
“후후, 저한테는 아무 냄새도 안 납니다만.”
“음, 그래? 그럼 내 착각이려나…….”
“일단 무슨 냄새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냄새냐고? 으음…… 말로 표현하기 뭐하네. 내가 아는 냄새가 아니거든.”
“추상적으로라도 괜찮습니다. 떠올리는 걸 말씀해 보시죠.”
루나가 눈을 감았다.
최대한 비슷한 단어를 떠올리려고 노력 중인 것 같았다.
잠시 집중하던 루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뭔가 따뜻하고, 그리운 향기야. 그건 분명해.”
추상적으로 말하라니까 진짜 추상적으로 말하다니.
이런 말괄량이는 어딜 가도 찾아볼 수 없을 거다.
“후후, 따뜻한 향기라니. 그런 건 냄새가 아닙니다만.”
“네가 추상적으로라도 알려 달라며?”
“비슷한 냄새를 알려 달라는 거였습니다만…… 제가 실수했군요. 상대의 지식수준에 맞췄어야 했는데 말이죠.”
“…….”
툭툭.
갑자기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레제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내 옷깃을 살짝 잡아당기는 중이었다.
“후후, 레제 양. 무슨 일이십니까?”
“뭐, 뭔가 이상해요. 여, 여길 떠나야 해요. 뭐,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어요.”
레제의 정수리에 난 바보털. 그게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레제에게는 [위기 감지]라는 A급 스킬이 있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닐 거다.
문제는 내 [초감각]이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
“흐음, 이상하군요. 자연재해라도 오고 있는 걸까요?”
그런 스토리는 없는 걸로 아는데.
레제가 뭔가를 착각한 건 아닐지에 대해 생각하던 때였다.
내 뒤를 바라보던 레제가 당황하더니, 상자에 머리를 처박은 채 바동거렸다.
“히, 히익! 주, 죽을 거예요! 숨어야 해요오!”
갑자기 죽을 일이 생긴다고?
그럴 리가 없다. 악마라도 기습을 해 오지 않는 한…….
뒤를 돌아본 나는 알 수 있었다.
악마가 서 있다. 루나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가.
뚜둑-.
“루, 루나 양?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그걸 모르는 게 너의 죄가 아닐까?”
악마로 변한 루나가 내 머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끄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1장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
가끔 악마로 변하는 고양이 한 마리와 상자에 머리를 박은 채 오들오들 떠는 토끼 한 마리.
이게 바로 현재 내 파티의 전력이었다.
* * *
하루가 지났다.
게임에 들어온 시점에도 시간이 빨리 흘렀지만, 요새는 더한 것 같다.
‘이제 하루 남았네.’
내일이 바로 르앵을 공략하는 날이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목숨을 걸 정도의 싸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르앵은 고작 1장 보스에 불과하니까.’
악마의 편린과 르앵을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
악마의 편린은 보스 몬스터가 아니지만, 단순 난이도로만 따지자면 ‘악마의 편린’이 훨씬 높다.
3턴 누적 즉사라는 괴멸한 기믹에, 아무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싸운 상대니까.
‘원래라면 3장 이후에나 공략할 수 있는 놈이기도 하고.’
그에 비해 르앵은 1장의 보스.
특별한 기믹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펼치는 비기에 따라 좌우로 이동할지, 상하로 이동할지 선택해야 하는 것 정도?
1장의 보스이다 보니 고인물들에게 해체 수준으로 분석을 당한 상태다.
르앵이 펼치는 모든 비기를 알고 있는 나로선, 전혀 걱정할 일이 없었다.
레벨도 르앵보다 훨씬 높고 말이다.
그렇다. 싸워 이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지금 문제는.
‘회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
회개시킨 후 죽여야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현재 내가 가진 정보로는 그게 불가능한 상태다.
‘로델린과 카론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긴 했지만…….’
퍼즐 조각이 부족하다. 르앵이란 캐릭터에 대한 정보의 조각이.
‘엘레스터라도 찾아가서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의심을 산다면 곤란해지는 건 마찬가지야. 응? 잠깐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르앵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미친 생각이.
‘사람이 있는 곳에서 마검을 꺼내 들지는 않을 거고.’
나에게 나쁜 감정을 가져도 문제될 게 없다.
어차피 내일 서로의 목을 노리며 싸우게 될 테니까.
‘역시 나는 똑똑하다니깐?’
콧노래를 부르며 기숙사를 나섰다.
* * *
순식간에 오전 수업이 끝났다. 점심식사까지 끝마친 지금.
계획대로라면 르앵에게 가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한 상태였다.
“후후, 루나 양?”
“응? 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찰그락-.
내 손목에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손목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맞물리며 나는 소리다.
특이한 건 나, 루나, 그리고 레제의 손목에서도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
그렇다. 현재 우리는 쇠사슬로 연결된 상태였다.
물론, 범인은 루나였고.
“아아, 레제한테 친구를 만들어 줘야 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조금 불편하겠지만 협조 좀 해 줘.”
레제한테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서로의 손목을 묶은 쇠사슬.
이 둘에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일반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다.
“즐겁게 노는 걸 보여 주면 애들이 알아서 오지 않을까? 그래서 묶어 본 건데. 왜, 별로야?”
응, 별로지. 많이 별로지.
구속하는 것 같잖니? 여기 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상징하는 것 같잖니?
분명 레제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조, 좋은 생각 같아요. 이, 이렇게 가까우면 치, 친해 보이니까요…….”
응, 그렇구나. 너도 정상이 아니구나?
안 되겠다. 르앵을 찾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평범한 삶을 위해 여기서 빠져나가야겠다.
지금 당장!
“후후, 볼일이 있는데…… 곤란하군요.”
“같이 가면 되잖아? 어디로 가야 하는데?”
찰그락- 찰그락-.
우리가 걸을 때마다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르앵도 이 꼴을 보면 무서워서 도망가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가는 건 무리였다.
“후후, 저와 약속한 거 잊으셨습니까? 레제 양 산책을 시키셔야죠.”
“응?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어제는 훈련 때문에 피곤하다며 건너뛰지 않으셨습니까. 벌충해야죠.”
“치사하게 이럴 거야?”
“산책하며 천천히 아카데미를 둘러보시죠. 레제 양이 사귈 만한 친구를 찾아도 볼 겸.”
“그럼 너도 같이 가면 되잖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후후, 제가 같이 있다면 다가오려던 아이도 멀리 갈 겁니다.”
“……뭐, 그렇긴 하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놈들이야 이쪽에서 거절이지만.”
나는 불길함의 상징이라 불리는 실눈캐니까.
[불길한 기운]이라는 스킬이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물론, 너희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저 멀리 도망가겠지만.’
서로의 손목을 쇠사슬로 구속한 루나와 레제.
내게 걸린 각종 디버프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칠 기세다.
“레제한테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긴 해.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버리기는 싫은데…….”
“후후, 모처럼 루나 양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지 않습니까. 이대로 버리기에는 아까운 기회입니다. 마침 볼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잠시 생각하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알겠어. 어쩔 수 없지. 볼일이 있다니까…….”
루나가 아쉽다는 듯 쇠사슬을 풀었다.
옛날의 루나였다면 포기하지 않고 내게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때 사건 이후로 조금 나아졌단 말이지.’
루나에게 다른 친구를 사귀라며 잠시 떨어졌던 때.
그때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 뒤로 가끔씩 개인적인 시간을 주곤 했다.
하루에 10분 정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옛날에는 화장실까지 따라다녔으니까.
‘계속 나아지겠지.’
루나는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거다.
그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 아니냐고?
……서로를 쇠사슬로 묶는 루나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너 T니?
아무튼, 내 손목에 있던 쇠사슬이 떠나갔다.
Zero is free!
제로는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랬다간 저 쇠사슬이 내 목에 감기게 될 테니까.
아무리 루나라도 그렇지, 설마 그러겠냐고?
“흠, 쇠사슬이 남네. 목에도 채우면 되려나?”
루나가 손에 남은 쇠사슬을 보며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루나야, 그랬다간 산책이 다른 의미의 산책(?)으로 변질될 텐데?
어쩌면 이 게임이 전체 연령가에서 벗어났다며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후후, 남는 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제 몫이니까요.”
“음, 그래. 잃어버리면 안 된다? 돌아왔을 때 다시 차야 하니까.”
그렇게 난 하나의 세계를 검열로부터 구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