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93화. 첫 번째 보스, 르앵(11)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는 한 줄기 섬광.
르앵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레니아가 검을 뽑았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한 줄기 섬광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간 뒤였다.
콰앙! 쿠콰콰콰쾅-!!
“으악!!”
르앵의 입에서 튀어나온 비명이 아니었다.
레스터 가문의 가주, 레니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비명이었다.
“어, 어떡해! 또 사고 쳤다!”
레니아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더니, 자신의 뒤쪽으로 향했다.
르앵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뒤에 있던 벽이 세로로 쩍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게 바로 일섬인가!’
르앵이 호흡을 조절하며 진정하려 애썼다.
소문으로 들은 것보다 더하지 않은가.
‘아니, 애초에 이게 검술이 맞긴 하단 말인가!’
르앵이 멍하니 일섬의 흔적을 바라봤다.
레니아가 일부러 빗맞혔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맞기는커녕 스치기만 해도 몸이 사라질 거다.
‘……누더기처럼 보수된 훈련장. 이것 때문이었군.’
레니아의 ‘일섬’이 너무나도 강력해, 마법을 건 보호막도 소용이 없는 거다.
대단한 기술이다. 꼭 배우고 싶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말이다.
“꺄아악!! 완전히 부서졌잖아!? 이, 이걸 어쩌지?”
레니아가 허둥거렸다. 대귀족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모습.
그 모습을 본 르앵은 무심코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귀엽다’라고.
물론, 얼굴을 터는 것으로 그 생각을 날려 버렸지만 말이다.
“으, 으음. 달링이랑 집사가 또 한 번 부쉈다간 대련을 금지하겠다고 했는데…… 이걸 어쩌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던 레니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루나가 했다고 하면 넘어가 줄지도 몰라. 그렇게 하자.”
대귀족이라 그런가. 생각이 남다르다.
‘떠넘기는 게 아주 자연스럽군.’
그래도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명문가의 귀족.
아랫놈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게 당연하다는 듯 이어진다.
‘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명문 귀족가에서 허드렛일을 아랫사람이 떠맡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르앵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루나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갓난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즉, 레니아는 루나의 애교를 통해 이 상황을 극복할 계획이었지만.
이런 생각을 모르는 르앵은 그렇게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레니아 님?”
“응? 아아……. 거, 걱정하지 마요. 이 정도는 제 선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니까.”
그렇게 말한 레니아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전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가난한 자신이 물어 줄 수는 없는 법.
르앵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보수 작업을 돕겠습니다. 제 잘못도 조금은 있으니까요.”
“그, 그래 줄래요? 그럼 너무 감사하죠. 인력 한 명분은 덜 혼나겠네. 아하하, 다행이야.”
인력이 하나 늘었다는 것에 좋아하다니.
‘은근히 허당이시군.’
조금 전까지는 굉장히 멋진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레스터 가문은 참 알쏭달쏭한 가문이었다.
가주가 혼이 날 것을 두려워하질 않나, 저렇게 벽을 허물 수 있는 루나라는 존재가 있질 않나.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가문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수련을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작은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음…… 그렇게 하세요. 큰 성장을 앞둔 상태 같으니까.”
큰 성장이라. 레니아의 말대로다.
현재 그의 내면은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르앵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가문의 검술 개량? 필요 없다.’
일섬 같은 강력한 비전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만 된다면.
플뢰르 가문은 삼류 가문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던 게.
* * *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르앵은 자신이 분석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일섬에 대한 모든 것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종종 레니아가 찾아와 대련을 해 줄 때도 있었다.
……두 번째 대련 이후, 레니아가 훈련장의 출입을 금지당하는 작은 사건이 있긴 했지만.
일섬에 담긴 비밀과 묘리를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었다.
뭐, 이론과 실전은 엄연히 다른 거였지만 말이다.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 다른 가문의 검술을 일부 포기해야 했지만…….’
레스터 가문의 검술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자신이 지난 5년간 쌓아 온 모든 것을 버려도 괜찮을 정도로 말이다.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콰가각-!
한 줄기 섬광이 날아가며 수풀을 베어 냈다.
‘성공이다!’
르앵이 기쁨의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스무 번 중 한 번 겨우 성공하는 수준.
하지만 레니아의 앞에서 성공적으로 선보였다는 게 중요했다.
칭찬과 조언을 기대하고 있던 바로 그때.
“……아쉽네요.”
“예?”
“어렵지만 명예로 가득한 길 대신, 쉽지만 명예가 없는 길을 택하다니. 아쉽다고 평할 수밖에 없지요.”
레니아의 기세가 평소와는 달랐다.
일단 눈동자가 달라졌다. 평소처럼 맹한 눈빛이 아니다.
차분하고, 진지한. 무언가 진중한 느낌.
‘무슨 무게감이…….’
갑자기 사람이 커진 느낌이었다. 자신보다 몇 배나 말이다.
“르앵 경.”
“예…….”
“아무래도 제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에요. 르앵 경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도와드린 건데…… 전혀 반대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줄은…….”
르앵은 레니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조금만 더, 당신의 일섬을 조금만 더 보고 분석한다면 분명 나도……!
“그대가 가야 할 길은 이쪽이 아닙니다.”
“제 노력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르앵 경은 검술의 강함이 명문가의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죠?”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레니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검술의 강함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레니아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마음. 이곳에 강함이 누적되는 겁니다. 명문가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마음에 강함이 누적된다고? 그리고 명문가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둘 다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후자는 더더욱.
“마음이라뇨. 마나 서클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신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느 가문의 검술이나 중간만 다를 뿐, 처음과 끝은 같다는 말입니다. 왜 잘못된 길로 가시려는 건지 모르겠군요. 훌륭한 기반을 갖고 계시면서 대체 왜…….”
“잘못된 길이라뇨! 아닙니다! 저는 압니다. 이게 바로 올바른 길이라는 걸!”
소리를 지른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레니아가 자신을 밀치기 시작했다.
르앵이 애써 저항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무, 무슨 힘이……!’
건장한 자신을 힘으로 끌고 갔다. 그것도 한 손으로 말이다.
훈련장을 나가고, 저택을 나가고, 마을과 성을 가르는 경계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세요.”
축객령이 내려졌다. 정확히는 퇴출령이었다.
르앵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일섬을 사용한 게 죄란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헤매는 건 여기까지만 하라는 뜻이죠.”
“전 헤매고 있지 않습니다! 올바른 길을 드디어 찾았는데 어째서……!”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겠군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똑똑한 르앵 경이니,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거라 믿겠습니다.”
콰앙-.
성문이 굳게 닫혔다. 쫓겨난 거다.
일섬을 따라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재능을 두려워한 게 분명해.’
더 분석당했다간 일섬을 빼앗길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르앵 경, 검술의 강함은 명문가의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이곳, 마음에 있는 것이죠.
그 말이 가슴속을 파고드는 건 어째서일까.
르앵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눈물이 났다.
“……마십시오.”
절 내쫓지 마십시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시오.
르앵이 흐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건 내가 알려 주지. 이 멍청한 인간!”
갑자기 악마가 르앵의 눈앞에 나타났고,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르앵은 어느새 오른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검은 마기가 넘실거리는 마검을.
마기가 오른팔을 타고 올라오며 르앵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허억!!”
르앵은 그제야 길었던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짹짹-.
온몸이 땀으로 젖은 르앵이 창문을 열었다.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 *
“악마는 상급 악마, 중급 악마, 하급 악마로 나뉩니다. 그럼 상급보다 높은 악마가 있을까요?”
엘레스터의 수업 시간.
몇몇 아이들이 재빨리 손을 들었고, 유리디아가 지목됐다.
“최상급 악마가 존재합니다. ‘군단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6위(位)라고 칭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섯 마리나 놈, 새끼처럼 다르게 불러도 상관은 없습니다.”
“정확합니다. 뭐, 뒤에는 좀 사견이 섞여 있는 것 같지만…… 나쁜 호칭은 아니군요.”
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이 교실에 울렸다.
엘레스터가 칠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필기구가 날아다니며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마법…… 나도 쓰고 싶다.’
물론, 나중에 쓸 수 있긴 하다.
마법 계열 히든 피스의 숫자는 검술과 비빌 수 있을 정도로 많으니까.
문제라면 기말고사 이후, 여름방학 때나 얻을 수 있다는 것 정도?
그때까지 마법은 내게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신의 모방을 이용하면 쓸 수 있긴 하지만…….’
그보다 좋은 스킬이 훨씬 많이 저장된 지금.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신의 모방] 슬롯 칸을 낭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때였다.
“이 마법진이 뭔지는 다 아시겠죠.”
원 안에 별이 뒤집어져 있는 문양.
상급 악마의 상징, 역오망성이다.
“5계위 이상의 악마, 그들의 뒤에는 이런 역오망성 문양이 떠다니죠. 아닌 놈들도 있지만, 여러분들이 기억해 둬야 할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엘레스터가 교탁에 양손을 짚었다. 동시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아주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도망치십시오. 이 문양을 본다면 무조건 도망쳐야 합니다.”
상급 악마는 격이 다른 존재니까.
역오망성이 있다면 최소 5계위 이상. 무조건 상급 악마라고 봐도 무방하다.
학생 수준에서는 상대가 안 되니, 무조건 도망치라는 뜻이다.
“이 공식을 꼭 기억하십시오.”
필기구가 또다시 춤을 추더니, 칠판에 숫자를 나열했다.
123456789 – 성(星)
987654321 – 계위
“1성 기사와 마법사는 9계위의 악마를 상대 가능합니다. 2성은 8계위의 악마를 상대할 수 있죠. 그럼 9성 기사는 어떨까요?”
“1계위의 악마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물론, 악마는 제각각 다른 마계술을 사용하니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요. 충분히 상대할 만한 악마를 만났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악마의 강함을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공식.
그냥 성(星) 숫자를 그들과 같도록 바꾸지, 왜 저렇게 귀찮게 만들었냐고?
‘악마는 기본적으로 ‘역’이니까.’
인간의 행동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존재들. 그게 바로 악마.
그래서 그런지, 이쪽 세계 사람들은 반대를 상징하는 ‘역’이라는 것에 상당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 않은가. 1성 기사는 1계위 악마, 9성 기사는 9계위 악마.
이런 식으로 바꾼다면 공식을 외울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전력을 비교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상급 악마라…….’
칠판에 그려진 역오망성의 문양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