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97화. 첫 번째 보스, 르앵(15)
“커, 커헉……!!”
먼지가 걷히며 르앵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검을 땅에 박은 채 거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예상대로군.’
[일섬] 한 방에는 안 죽을 거라고 예상했던 나다.앞서 말했지만, 레벨에 비해 부족한 스탯으로 인해 [일섬]이 약한 상태.
물론, 그래도 [신의 모방]으로 A급 판정을 받는 스킬인지라, 지금 수준의 상대에게는 상당히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일단 1차 목표는 달성했다.’
[일섬]으로 큰 피해를 입혀 르앵의 스탯 수치를 깎는 것.죽이는 게 아니라, 회개시키는 게 목표인 나다.
팔다리를 적당히 못 쓰게 만들어 놔야 한다. 그래야 대화할 시간이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그럼 2차 목표는 어떨까?
“어, 어떻게…….”
르앵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떻게 네놈이 일섬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음, 2차 목표도 달성한 것 같다.
‘정신적 충격’을 주는 것. 이게 바로 2차 목표였다.
이걸로 회개를 위한 발판은 성공적으로 깔렸다.
이제 남은 건 3차 목표이자, 최종 목표.
‘르앵이 플뢰르 가문의 검술을 사용하게 하고, 내가 그 검술을 이용해 르앵을 꺾는다.’
라는 목표만 달성한다면.
르앵을 성공적으로 회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답해라! 어서!”
르앵이 자신의 몸을 돌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고래고래 소리쳤다.
[일섬]으로 받은 신체적 타격보다 내가 [일섬]을 사용했다는 것.심지어 르앵 그 자신의 일섬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걸 사용했다는 것.
오히려 그것에 온 신경을 빼앗긴 상태였다.
“후후, 일섬이 르앵 선생님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크, 큭큭큭…… 크하하하하!!”
돌연, 르앵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뚝 그치며 정색했지만 말이다.
“뭐? 명문가의 검술을 배우는 게 뭐가 어째? 결국 네놈도 똑같지 않으냐. 명가 중의 명가인 레스터 가문의 검술을 쓰고 의지하지 않느냐!”
나도 결국 모방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남을 훈계할 처지가 안 된다.
르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릅니다.”
“……다르다고?”
“예. 르앵 선생님은 아직도 명문가의 검술이 최고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술의 처음과 끝은 같다.
중간만이 다를 뿐.
“조금 전, 선배의 말을 따르라고 하셨죠?”
“…….”
“모방의 길.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제가, 그 끝을 본 제가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하겠습니다.”
당신이 틀렸습니다, 르앵. 모방의 끝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 *
뽈깍-.
상자 뚜껑을 열고 나온 레제가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제로가 사라진 뒤 약 1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곳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로델린 선배를 비롯한 아이들은 아직도 건물에서 나오지 않았고.
제로를 집어삼킨 정체불명의 포탈도 어디론가 사라진 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루나도 변함이 없었다.
루나는 제로가 사라진 곳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을 뿐.
저러다 진짜 돌이 될지도 모른다.
“저, 저…… 루나 양. 이, 이거…… 드세요.”
레제가 자신의 간식을 건넸다.
당근 맛 감자칩. 레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였다.
“응? 고마워. 잘 먹을게.”
와삭…….
와삭와삭!
순간, 루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당근이잖아?”
“네, 맛있죠?”
“……일단 내 취향은 아니네.”
레제의 고개가 푹 꺾였다.
이 세상에는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나 맛있는데, 대체 어째서?’
오늘도 우울한 레제였다.
“저, 저기…… 루나 양.”
“응, 왜?”
“뭐,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봐.”
“왜, 왜 같이 안 들어가신 거예요? 이, 이렇게나 걱정하면서…….”
레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제로를 이렇게 걱정할 거면 같이 가는 게 나았을 텐데.
제로가 거부 의사를 표하더라도, 루나의 힘과 고집이라면 충분히 제로와 함께 들어갈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진심으로 궁금한 레제였다.
“……친구니까.”
“예?”
“친구니까 믿는 것뿐이야.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 자신이 하겠다고 하잖아. 믿어야지, 그럼.”
“…….”
“괜찮아. 제로는 반드시 돌아올 거거든.”
“그, 그걸 어떻게 알죠?”
그야.
“약속했으니까.”
친구 사이에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게 바로 루나의 신조이자, 긍지였다.
제로도 자신의 친구이니, 분명히 약속을 지켜 줄 거라 믿는 루나였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말이다.
“뭐, 조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이렇게 있었다는 거 제로한테 말하면 안 된다?”
“네? 아…… 네. 거, 걱정 마세요. 반드시 지킬 테니까.”
루나의 시선이 다시금 제로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레제가 당근 맛 과자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자신도 루나 양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텐데’라고.
* * *
라프렐 가문류 세 번째 비기.
일루전 소드.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퉁퉁퉁!
콰과가가가각-!
“크윽!”
이번에도 밀려난 건 르앵 쪽이었다.
르앵이 사용할 수 있는 5개의 가문, 10개의 비기.
그 모든 걸 한 번씩 사용했지만, 내 [일섬]을 넘어선 건 하나도 없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다!”
“…….”
“우리 가문도 그런 훌륭한 검술을 지닌 가문이었다면! 그러기만 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악마와도 계약을 하지 않았을 텐데!”
르앵은 이미 멘탈이 나간 상태였다.
‘모지리 자식.’
나는 알고 있다.
죽어라 모방을 해 봤자다.
모방은 결국 모방일 뿐이다.
진짜가 될 수 없는 거다.
“네놈이 뭘 아느냐! 명문가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건, 영웅이 될 꿈을 포기하라는 것과도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검술에는 닿을 수 없단 말이다! 바로 지금처럼!”
“…….”
“영웅이 되고 싶었다! 대륙에 이름을 떨치고, 모두가 목 놓아 칭송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단 말이다!”
영웅이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
나는 알 수 있었다.
르앵의 정신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걸.
“마검 개방!”
꾸드드득-!
마검에서 수십 개의 핏줄이 튀어나오더니, 르앵의 오른팔에 박혔다.
[마검 개방].공격력이 200% 증가하지만, 잠식률이 0.5% 늘어나는 스킬.
어차피 잠식률이 80%에 가까운 르앵이니, 별 상관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내가 널 죽여도 괜찮겠나?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을 거다. 그 누구도 네놈의 희생을 모를 거란 말이다!”
안 됐지만, 죽는 건 내 쪽이 아니다. 네 쪽이지.
그리고 영웅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르앵 선생.”
세상을 구하기도 바쁜데, 눈앞의 사람을 구하기에도 급급한데.
제 잇속을 챙겨서야 어찌 영웅이라 불릴 수 있단 말인가.
그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루터스와 앵무새에게서, 그리고.
이 게임에서 마주한 수많은 영웅들에게서, 그것을 배웠으니까.
“일단,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뭐가 말이냐!”
“당신에게는 영웅의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개소리! 개소리하지 마라!!”
칭송받고 싶어서 영웅의 길을 선택하다니.
질이 나쁘다.
르앵이 마검을 휘둘렀다. 마기가 폭풍처럼 날뛰며 마검을 감쌌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군.’
르앵은 플뢰르 가문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 버린 모양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검술을 쓰지 않았다.
숨겨진 보상은 포기다.
르앵도 내가 알던 르앵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고. 이제 그냥.
‘죽이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나는 진짜로 첫 살인을 저지를 생각이었으니까.
검 손잡이에 힘을 가득 줬다.
레스터 가문류 첫 번째 비기.
일섬(一閃).
“크, 크아아아아악!!”
마검에 서려 있던 마기가 [일섬]이 날린 바람에 통째로 사라졌다.
저 정도면 팔과 몸통이 한 번에 잘리게 될 거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였다.
르앵이 검을 고쳐 잡았다.
플뢰르 가문류 세 번째 비기.
강철 폭풍의 날개.
쿠오오-!!
내가 날린 한 줄기 빛의 섬광.
그것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공중에 녹아들기라도 한 것처럼.
[일섬]이 막혔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왜냐고? 드디어.
숨겨진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후후, 보십시오. 결국, 급하니 뿌리가 나오시지 않습니까.”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갈고닦아 온 검술일 테니까.
죽기 직전의 상황이었으니, 몸이 절로 반응을 한 것이리라.
“닥쳐라! 이딴 게 어떻게 검술이란 말이냐!”
르앵이 또다시 비기를 사용했다.
각기 다른 세 군데를 동시에 찌르는 라프렐 가문의 비기.
라프렐 가문류 세 번째 비기.
일루전 소드.
당장 몸에 구멍이 뚫릴 위기였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일섬]이 막힐 당시, 똑똑히 잘 봐 두었으니까 말이다. [신의 모방] 슬롯 변경. [대지 뒤집기] > [강철 폭풍의 날개]플뢰르 가문류 세 번째 비기.
강철 폭풍의 날개.
쿠오오-!!
르앵의 만들어 낸 검의 환영이 하늘에 녹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푸슈슈슈슉-!!
“커헉!”
주변에 떠다니던 물건들이 르앵의 몸으로 쇄도했다.
폭풍의 날개에 휘말린 물건들이 모두 르앵에게 날아간 거다.
“이, 이게 무슨……!”
“후후, 어떻습니까. 강철 폭풍의 날개,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그게 우리 가문의 검술이라고? 그릴 리 없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당연하지 않느냐. 우리 가문의 검술이 그렇게나…… 그렇게나…….”
강하고 아름다울 리 없다고 생각하겠지.
이것도 결국 [신의 모방]으로 모방한 기술. A급에 불과했다.
S급. 플뢰르 가문이 추구하던 검술의 정점은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르앵도, 그리고 나도.
일개 모방자에 불과하니까.
“거짓말하지 마라!”
다시금 싸움이 시작됐다.
르앵이 플뢰르 가문의 검술을 사용하고, 내가 같은 걸로 받아치고.
길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만은 않은.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허억, 허억…….”
르앵이 땅에 마검을 박은 채 신음했다.
감이 온다. 슬슬 끝을 낼 때라는 감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모방은 결코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모방은 결국 모방일 뿐이다. 진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고?
‘신의 모방은 결국 A급 스킬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니까.’
모방하는 스킬의 등급을 모두 A급으로 고정시키는 [신의 모방].
처음에는 좋지만, 뒤로 갈수록 애물단지가 된다.
최종 보스와의 결전. 보스도, 주연 캐릭터도, 심지어는 조연 캐릭터도.
S급 스킬을 남발하는 싸움이 시작된다.
최대 스킬이 A급인 내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원해 주는 역할로 변하게 된다.
그렇기에.
‘너희들의 성장이 더욱 눈부시게 보이는 거겠지.’
위기의 순간에도 꺾이지 않는 캐릭터들.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진다.
눈앞에 있는 르앵 선생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영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꺾고 포기한 것. 그건 바로…….”
다름 아닌 당신 자신입니다, 르앵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