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98)
제98화
98화. 첫 번째 보스, 르앵(16)
모방(模倣). 처음에는 좋을지도 모른다.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진도가 팍팍 나가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을 우러러보곤 하니까.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다.
「아카데미의 영웅」에서 깨고 싶었는데 실패한 퀘스트가 있을 때.
내가 원하던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없을 때.
공략 카페를 찾아봤고, 그들의 플레이를 그대로 따라 해 원하는 걸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재미없어.’
다른 사람이 한 플레이를 그대로.
이동하는 칸, 대사 선택, 심지어는 스킬 사용의 각도와 시간까지.
다른 사람이 한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건 순간적인 만족도를 줄지는 모르나.
나 스스로가 해냈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행복감.
그것은 주지 못했다.
그렇다.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플레이해야만.
재밌고, 행복하고, 그래야 고인물이란 이름의.
“영웅이라 불릴 수 있는 겁니다.”
* * *
“르앵! 지금 뭐 하는 거냐!”
“…….”
“저 애송이 놈 하나 이기지 못해 이 궁상을 떨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르앵. 그는 지금 악마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마검에 들어 있는 악마다.
9급. 하급 악마 중의 하급 악마.
“추가 계약을 하자! 나와 두 번째 계약을 한다면 저런 놈쯤은 한 방에 보낼 수 있어!”
악마의 속삭임이 르앵의 귓가를 간질였다.
르앵은 눈을 감았다.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잊고 지내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레스터 가문에서 쫓겨난 이후, 제국 이곳저곳을 떠돌며 계속해서 검술을 수련하던 와중.
어쩌다 보니 그놈을 만나게 됐다.
형님에게 모욕을 주고 떠난 열네 살의 아이를 말이다.
물론, 현재 그는 스물둘이나 나이를 먹은, 건전한 청년이었다.
“아, 글쎄. 내가 과거에는 말이야! 한 실력 하는 놈이었다고!”
“어이, 라 씨. 닥치고 술이나 먹어!”
르앵은 조용히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술에 취한 그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간 바로 그 순간.
“나와 결투를 해라.”
결투를 신청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뭐? 미친놈! 저리 꺼져!”
“……이미 결투는 시작되었다.”
검을 하나 던져 준 후, 결투를 시작했다.
세 합이 채 지나기도 전에 승부가 났다.
“끄, 끄아아아악!!”
팔을 베인 철부지 놈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3cm도 안 베인 것 같은데 말이다.
르앵이 그런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당당히 선언했다.
“철부지 놈, 기분이 어떠냐?”
“크, 크윽…… 웬 놈이냐! 대체 네놈은 누구야!”
“플뢰르 가문의 르앵이다. 넌 플뢰르 가문에게 패배한 거야.”
“뭐? 플뢰르라고? 그럴 리가! 방금 그 검술은 라앵타 가문의 검술이었다! 네놈은 절대 플뢰르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
“아니, 난 분명한 플뢰르 가문이다. 플뢰르 가문의 차남, 르앵이란 말이다!”
인정받지 못한 르앵.
그리고 인정받지 못하는 플뢰르 가문의 승리.
르앵은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랐다.
“아, 글쎄! 그럴 리가 없다니까! 플뢰르 가문은 단단한 형세가 인상적인 가문이란 말이다! 방금 네놈처럼 하늘하늘한 쓰레기처럼 춤추는 게 아니라!”
울컥!
쓰레기라고? 내가 지금껏 쌓아 온 게?
“자, 잠깐! 내가 말을 실수했…… 컥!”
르앵은 곧장 그놈의 배를 따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놈은 워낙 망나니라 가문에서도 버린 존재라고 한다.
아카데미에서도 쫓겨났다고.
살인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하지만 르앵은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플뢰르 가문이 아니라고?”
그날 저녁, 온종일 플뢰르 가문의 검술을 수련하며 깨달았다.
이미 자신의 검술은 플뢰르 가문의 검술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걸.
다른 검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쁜 건 아니야.’
르앵이 가문을 떠난 이유.
다른 가문의 검술을 접목해, 플뢰르 가문의 검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완전히 다른 검술이 되어 버린 건 조금 그렇긴 했지만…….
‘너무 멀리 왔다. 하던 대로 하는 수밖에.’
이 길이 맞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이후부터 더욱 모방에 전념했고, 명성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백전백패의 르파엘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잊히고, 모방의 르앵이라는 이름이 플뢰르 가문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문을 떠난 지 10년째 되던 해.
르앵은 가문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형인 르파엘은 돌아온 자신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다.
문제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가문의 검술을 제가 개량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이걸 저희 가문의 검술로 하시죠.”
르앵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신이 창조한 검술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건.
“……르앵,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거냐?”
“예?”
“후우…… 10년 만에 돌아왔기에 당연히 깨달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구나.”
“형님…… 저는 가문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르앵은 분노했다.
다른 가문의 검술을 따라 하고, 비웃음을 사고, 무수한 모멸과 핍박까지 받았는데.
“저게 그 모방의 르앵이라며?”
“푸하하! 웃기는 놈이네. 다른 가문의 검술을 흉내 내?”
“우리 가문 검술도 가르쳐 줘 볼까?”
자존심, 자부심, 자긍심. 그 모두를 버렸다.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받아들일 수 없다니!
한번 보자고조차 하지 않다니!
“저희 가문의 검술은 약하지 않습니까! 열네 살짜리 아이에게 질 만큼!”
“아우야, 나는 아니지만 너에게는 재능이 있다. 너라면 분명 그들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어. 지금부터 해도 충분히 가능하단 말이다.”
“이딴 쓰레기 검술로요?”
“……강철(鋼鐵)이 무엇인지 아느냐.”
굳세고 단단한, 이것저것 섞인 철 뭉텅이.
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철이기도 하다.
수천 번, 수만 번을 두드리는 단조의 과정을 거친다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지. 사람도 다르지 않다. 그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
“우리 가문의 검술은 그런 강철 같은 의지를 표방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보니, 다른 가문의 검술과도 잘 어우러질 거야. 하지만, 중심이 흔들린다면.”
무너지고 말 거다. 지금의 너처럼.
“……그럴 리 없습니다!”
10년의 세월이 부정당한 르앵은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
가주인 형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르파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검을 가져왔을 뿐.
“그래,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그렇게 해서 네 열등감이 사라진다면, 얼마든지 나를 모욕하도록 해라.”
그렇게 결투가 시작됐다.
르앵은 손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르파엘은 계속해서 쓰러졌고, 계속해서 일어났다.
승자와 패자가 이미 결정된 결투.
지루한 싸움을 이어 나가던 도중, 르앵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형님은 자신이 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결투를 받아 준 거야.’
대체 어째서?
“……넌 모를 거다.”
르파엘이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검을 땅에 짚었지만, 다리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일어서는 데 성공한 거다.
“……일어서는 거다, 버티는 거다.”
강철 같은.
“플뢰르의 의지로.”
직감일까, 아니면 본능일까.
르앵은 일순 공포를 느꼈고, 곧바로 비기를 시전했다.
라프렐 가문류 세 번째 비기.
일루전 소드.
플뢰르 가문류 다섯 번째 비기.
강철 폭풍의 창공.
르앵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내지른 비기가 부서졌기 때문이다.
뚝- 뚝-.
심지어 왼쪽 팔뚝에서는 피까지 흘러내렸다.
물론, 르파엘은 땅에 쓰러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상태를 보아하니 기절한 것 같았다.
‘강철 폭풍의 창공이라니. 무서울 정도로 정적이고 조용한 비기 아닌가.’
만약, 자신이 저걸 펼쳤다면?
……아니다. 그런 가정은 하지 말자.
자신이 승리했고, 자신의 주장이 옳은 거다. 가문의 검술은 약한 거고.
그렇게 르앵은 또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도망치듯 오른 여행길.
이제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절대로 영웅이 될 수 없겠지.’
그렇게 한탄하던 때. 검은 들개 한 마리가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혹시, 도움 필요하냐?”
이게 바로 악마와 르앵의 첫 만남이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플뢰르 가문은 형의 죽음과 함께 공중 분해됐고.
그와 반대로 르앵의 명성은 더욱 올라갔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악마와 거래를 해서 마검을 손에 넣었다.
다른 가문의 비전 기술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검을.
사용하면 할수록 신체의 일부를 대가로 바쳐야 했지만.
살점 한 조각 정도로도 충분했기에, 르앵은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다.
최근 르앵은 큰 파티를 오가며 다른 가문의 비전 기술을 목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초대를 받으며 활동을 이어 나가던 중, 한 무리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다.
“르앵이 왔다던데? 요즘 떠오르는.”
“에이, 그래 봤자 광대지 뭐.”
“맞아. 기술을 따라 하는 어릿광대.”
웃기는 놈들이다.
그들의 가문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삼류 귀족들.
하지만 르앵은 웃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다른 가문의 검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좋았다.
하지만 원조들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건 르앵에게 큰 답답함을 선사했다.
그러던 와중, 앤우드 아카데미에서 도착한 편지.
장황한 내용이었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아카데미 선생 자리를 주겠다.
르앵은 감개가 무량했다. 아무도 모르던 가문 출신인 자신이.
‘내가 아카데미 선생이 된다니.’
좋은 스펙을 쌓을 수 있기도 하지만, 자신처럼 방황하는 아이들을 지도해서 올바른 길로 이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다.
‘뭐, 더 이상 다른 가문의 검술을 배울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말이야.’
그렇게 준비를 하던 중.
뷀른가의 집사가 서신을 가지고 찾아온다.
서신에는 뻔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테르온을 잘 봐 달라는 뻔한 부탁.
‘역시 명문가는 다르군.’
잘난 비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방심이란 걸 하지 않는다.
있는 건 더 챙기고, 없는 자들은 더 찍어 누른다.
집사의 눈앞에서 서신을 찢으며 거절 의사를 표하려던 순간.
“후작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원하는 지원을 다 해 드리겠다고요.”
금은보화, 여자, 명예, 또는 그 외의 무언가.
하지만 르앵은 그 무엇도 원하지 않았다.
비웃으며 손에 힘을 넣는데.
“한 달에 한 번, 원하는 가문의 식솔과 대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멈칫.
자율 대련권. 이건 르앵의 부족한 부분을 긁어 줄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뷀른가와도 말인가?”
“물론입니다. 그런 걸 원하시지는 않을 거란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만.”
뷀른가는 검술 가문이 아닌, 무투 가문이니까.
주먹과 발로 싸우는 무투의 정점에 이른 가문.
그런데 검술을 갈구하는 르앵이 자신에게 대련을 청할 리 없다. 그 얘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유리한, 과분한 대가다.
때문에 르앵은.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다른 선생님을 찾으시라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거절 의사를 표했다.
“알겠습니다. 통신 번호입니다. 생각이 바뀌신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길.”
뷀른가의 집사가 떠났다. 테이블 위에는 통신 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절대 이쪽에서 먼저 연락할 일은 없겠지만…….’
이 세상에 절대란 건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역시나, 새 학기가 시작된 직후.
르앵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아이들의 검술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나의 비기를 배우기 위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던가.
그런데 이곳에는 그 비기가 발에 차일 정도로 널려 있었다.
결국, 르앵은 봉인해 둔 마검에 다시 손을 대게 된다.
그리고 그 행위의 결과는 뭐.
보시다시피.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 * *
“제로 군…….”
“후후, 이제야 정신이 드십니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마검에 몸을 빼앗기기 시작해서 그런 걸까.
르앵의 초점이 흐릿하다.
어느 쪽이든,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안하군. 이제야 조금…… 눈이 뜨인 기분이야.”
“…….”
“애써 외면했지만, 이제야 깨닫게 됐어. 내가 ‘모방의 르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말이야.”
르앵이 ‘모방의 르앵’이라 불리며 명성을 쌓아 올릴 수 있던 이유. 그건 바로.
“플뢰르 가문의 검술이 기본을 강조한 결과죠.”
검술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기에.
어디에나 쓰이는 코어 근육을 단련하는 검술이었기에.
그래서 르앵이 다른 가문의 검술을 손쉽게 흡수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지. 나는 내가 천재라서 그런 건 줄 알았지 뭔가. 그런데 그 기본을 잊어버린 꼴이라니. 큭큭, 선조분들을 뵐 낯이 없구먼.”
“…….”
“제로 군,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예, 말씀하시지요.”
“내 오른팔을 베어 주게.”
“하지만…….”
“부탁하겠네. 시끄러워서 대화를 할 수가 없잖나. 내…….”
르앵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 제자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