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99)
제99화
99화. 첫 번째 보스, 르앵(17)
“끄으윽…….”
르앵의 얼굴이 새하얗다. 몸에 피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마검을 쥔 오른팔을 베어 냈고, 그곳으로 피가 철철 쏟아졌으니까.
포션으로 응급처치를 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쏟아진 혈액은 복구할 방법이 없었다.
“허억…… 허억…… 미안한데 저기서 검 한 자루만 가져다주지 않겠나?”
훈련장 구석에 있는 진열장.
그곳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 르앵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잘 보게나, 나의 마지막 제자 제로 군.”
“르앵 선생님…… 그렇게 무리를 하신다면…….”
“그만, 난 이미 글렀다네. 악마 놈이 오른팔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수작을 부려 놨거든. 어차피 처형될 몸이야. 그러니.”
후웅-.
“마지막 길은 내가 선택할 수 있게 해 주게나.”
르앵의 검무가 시작됐다.
춤, 칼날, 날개, 어둠, 창공.
플뢰르 가문의 다섯 가지 비기였다.
“허억…… 허억……. 내게 주어진 시간이 더 없는 게 아쉽구먼.”
“……선생님.”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어서 덤비게나, 제로 군. 지금부터.”
처억-.
“마지막 지도를 시작하겠네.”
르앵이 검을 치켜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오른팔이 없는데도, 왼손으로 검을 잡은 경험은 몇 번 되지도 않을 텐데도.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나 또한 같은 자세를 취했다.
평생을 열등감과 싸워 온 그에게, 마침내 승리한 그에게.
자그마한 위로를 건넨다.
“후후, 수업 재밌었습니다. 진심으로요.”
당신의 학구열, 노력, 그리고 애정까지.
수업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제로 군, 나도 자네 같은 학생을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다네.”
타닷-!
탓!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니, 예의를 다해 보내 주기로 했다.
[신의 모방]이라 플뢰르 가문의 극의(極意)는 보여 주지 못하겠지만.그래도, 위안거리로는 충분할 거다.
플뢰르 가문류 다섯 번째 비기.
강철 폭풍의 창공.
플뢰르 가문류 다섯 번째 비기.
강철 폭풍의 창공.
상대를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검을 단 한 번만 휘두르는, 정제된 검술의 극의.
고요했다.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속삭였다.
“보셨습니까?”
“그렇다네, 제로 군. 창공이라…… 이런 거였구먼.”
푸확!
르앵의 가슴팍에 한 줄기 혈선이 생기더니, 이내 터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동시에.
찌직-.
내 오른쪽 팔뚝에 얇은 혈선 하나가 그어졌다.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닿은 거다. 내 몸에.
나를 위해 저 작살난 몸으로, 진심을 다해 비기를 펼친 거다.
“후후, 르앵 드 플뢰르. 당신의 검술…… 확실히 이 몸에 닿았습니다.”
다른 가문에 맞먹는.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주 훌륭한 일격이었습니다.”
* * *
그런가. 닿았구나.
죽은 몸이지만, 르앵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검술이, 그간 쌓아 온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그래, 제로. 영웅이란 바로 너 같은 아이를 말하는 거겠지.
막강한 힘을 마주한 적 있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마음과 의지.
만약, 자신에게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저렇게 살리라.
플뢰르 가문의 의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이어져 나갈 거다.
제로, 바로 저 아이에게서.
“앞으로 나아가게, 제로 군.”
강철 같은 의지로.
플뢰르 가문의 날갯짓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 * *
[퀘스트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르앵 드 플뢰르(1/1)] [메인 퀘스트#4, ‘1장의 보스, 르앵 드 플뢰르를 처치하라!’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200exp, 10골드가 주어집니다.] [르앵 드 플뢰르를 성공적으로 회개시켰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눈 뜨기 스킬이 F > E로 한 단계 상승합니다.] [숨겨진 보상이 주어집니다.] [플뢰르 가문류(C) 스킬을 획득합니다.] [칭호, ‘플뢰르 가문의 후계자’가 주어집니다.] [플뢰르 가문의 후계자]-플뢰르 가문의 정식 후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한 플뢰르 가문의 검술.
검 종류의 무기를 사용할 시, 공격력이 20% 상승한다.
겹겹이 쌓인 정보창이 내 눈을 어지럽게 했다.
하나씩 천천히 정리해 보자.
메인 퀘스트 클리어 보상인 2레벨 업과 10골드.
무난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음은 추가 보상인 [눈 뜨기] 스킬의 등급 업.
F에서 E로 한 단계 상승했다.
‘설마 부가 효과가 생긴 건가? 그렇다면 대박인데.’
정보창을 열어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눈 뜨기 : E]-살짝 눈을 뜹니다. 눈동자에 조금 더 불길한 붉은빛이 감돕니다.
“…….”
나는 이 스킬이 F급일 때의 문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빙의하자마자 받은 스킬의 상태가 절망적이었으니까.
F급일 때는 ‘불길한 붉은빛’, 그리고 E급일 때는.
‘조금 더 불길한 붉은빛’.
그렇다. ‘조금 더’라는 단어만 추가됐을 뿐, 아무런 추가 효과가 없다.
개고생해서 회개시켰더니 고작 이따위 보상을 줘?
당장 시스템을 엎어 버렸을 거다.
아래에 있는 2개의 숨겨진 보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플뢰르 가문류C].솔직히 말하겠다. 이건…… 굉장히 큰 보상이다.
잠재력 도박을 할 때마다 쓰레기 스킬이 나오고, [눈 뜨기]가 주력 스킬인 나에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보상이다.
왜냐고?
각 가문의 기술을 하나씩만 모방할 수 있는 [신의 모방]과 달리, 이건 플뢰르 가문의 모든 비전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주력 스킬이기 때문이다.
루나의 경우는 [레스터 가문류], 로델린의 경우에는 [루시드 가문류].
그것처럼 나에게도 [플뢰르 가문류]가 생긴 거다.
‘춤, 칼날, 날개, 어둠, 창공.’
난 이 게임의 고인물이지만, 플뢰르 가문의 검술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존재하질 않는다. 르앵이 1장에서 보여 주지도 않고 죽어 버리니까 말이다.
직접 써 보기 전까지는 어떤 검술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문의 비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다니.
나에게는 정말 엄청나게 큰 선물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S급에 도달할 수 있어!’
게이머들에게 있어 [신의 모방]은 없으면 안 되는 필수 스킬이다.
누구나 개사기 스킬을 뽑으세요~ 하면 세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나게 효율적인 스킬.
하지만 A급이라는 한계가 명확한 점.
다른 가문의 비기를 쓸 수 있게 해 주지만, S급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점.
이게 엄청난 불만이었다. 그런데 그걸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나에게도 ‘진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다.
고인물로서, 한 명의 게이머로서.
정말 감동적인 선물을 받은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플뢰르 가문의 후계자]라는 칭호.‘플뢰르 가문의 정식 후계자’로 인정받았다는 문구도 감동적이지만, 검 종류의 무구 사용 시 공격력 20% 상승이라니.
‘개사기잖아?’
선물을 대체 몇 개나 주고 가는 건지.
“르앵 선생님…… 바다와도 같은 은혜, 감사드립니다.”
카론이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참스승이었다.
순간, 르앵의 시체가 빛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히든 보스라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등급도 S가 아닌 ‘???’로 표기됐었다.
[포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로델린 파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듯했다.응? 스승의 시체에 대고 [포식] 스킬을 사용하겠다니, 미친놈 아니냐고?
그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르앵 선생님도 자신을 더 이용해 주길 바랄 거다. 그렇지?
우웅-.
포탈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에 들어올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한 포탈.
“흠…….”
들어가기에 앞서,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살인에 대한 자가 진단.’
이건 꽤 중요한 문제였다. 앞으로도 종종 살인을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최악의 경우,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야 할 수도 있었다.
깊게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자가 진단에 들어갔다.
Q. 첫 살인을 한 후, 느꼈던 감정은?
‘……잘 모르겠네.’
워낙 정신이 없었다 보니,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가장 큰 감정을 꼽으라면 ‘슬픔’이었던 것 같다.
영웅을 꿈꿨지만, 열등감에 잡아먹혀 스스로를 망친 르앵에 대한 캐릭터에 대한 슬픔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럼 다음 진단으로 넘어가 보자.
Q. [정신방어]의 힘으로 괜찮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음, 이건 즉답하기에 꽤 어려운 문제다. 잠시 생각해 보자.
[정신방어]는 게임에 빙의하자마자 받은 스킬 중 하나다. [눈 뜨기]와 함께 받은 스킬.그것도 무려 S급으로 받았다. 처음에는 게임에 빙의했을 때 적응을 위한 특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못 느끼게 하는 장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그게 아니라면.
“후후, ‘살인에 대한 재미’를 못 느끼게 하려는 장치일 수도 있겠군요.”
게임 속 캐릭터를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미친 생각을 하는 플레이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흠…….”
자가 진단을 해 봤지만, 이렇다 할 문제를 못 느꼈다.
[정신방어]가 모든 감정을 차단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르앵이 죽은 것에서 슬픔을 느꼈다는 것.
시사하는 바가 컸다.
‘조금 연구가 필요한 스킬일지도 모르겠네.’
이런, 시간을 너무 끌었다.
포탈 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고작 게임 캐릭터 하나 죽인 걸로 유세 떤다고.
하지만 난 이들이 단순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로델린, 루나, 레이몬, 알렉스, 유리디아, 테르온, 그 이외의 모두도.
분명히 살아 있는 존재였다.
“후후, 너무 감상에 빠져 있었군요. 빨리 가야겠습니다.”
루나에게 왜 이렇게 늦게 오냐며 머리를 쥐어뜯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툭-.
뭔가가 발에 걸렸다. 마검이다.
르앵을 망가뜨린 원흉.
안을 들여다보니, 작은 무언가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처럼 보인다. 뭐, 저 안에 있으니 개의 탈을 쓴 악마일 테지만.
[마검을 습득하시겠습니까?]음~ 마검을 공짜로 준다고? 이거 정말 구미가…….
“하나도 안 당기는군요.”
내 몸을 좀먹을 뿐이다.
초반부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치고 강한 편이겠지만, 미래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스릉-.
검을 뽑아 들고, 르앵이 보여 준 동작을 떠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플뢰르 가문류 첫 번째 비기.
강철 폭풍의 춤.
쨍강-!
마검이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끼에에에에-!
착각일까. 악마의 비명 소리가 살짝 들린 듯했다.
참고로 내가 습득한 [플뢰르 가문류]는 C등급이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왜 이런 등급을 준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르앵 선생. 그가 일평생 수련하며 쌓아 온 등급.
그 등급이 내게 그대로 이동해 왔을 확률이 높았다.
의지가, 플뢰르 가문의 강철 같은 의지가 나를 통해 계속 이어진다는 거다.
“후후, 르앵 선생. 가문을 향한 당신의 숭고한 의지.”
이 제로가, 분명히 물려받았습니다.
“편히 쉬시길.”
마지막 인사와 함께, 포탈을 향해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