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really good RAW novel - Chapter 181
181
제181화: 치고 박고(2) – 완결
사건의 전말을 풀자면 이렇다.
조태수는 어떤 식으로든 국정원에서 자신을 공격하리라고 확신했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가장 위태로운 사람은 천삼억이었다.
국정원과 천삼억이 손을 잡고 자신을 제거하려 습격했던 것인데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 양쪽 모두 치명타이다.
그래서 더욱 죽이려 할 것이다.
단 이번에는 총은 아니다.
다른 방식을 고집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그러다 생각한 것이 이왕식을 통해 접근해 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왕식을 이용하도록 부추기는 차원에서 더욱 전화를 자주 했고 만나 술을 마셨다.
속도 모른 이왕식은 비싼 술을 자주 사주는 조태수가 고맙고 즐거워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예상대로 국정원은 이왕식의 핸드폰에 감청 칩을 넣었다.
물론 이왕식의 집에 몰래 침입해서 설치했을 것이다.
국정원 요원들에게 소리 없이 침투하는 건 식은 밥 먹기일 테니까.
그런 이왕식에게 오늘 점심을 먹자고 했다.
술집에서 접근해 오는 것은 어렵다.
술은 마개를 따야 하므로 독극물을 넣을 수가 없고 더구나 단골집만을 다녔기 때문에 장난을 치지 못한 것이다.
조태수는 어제 이곳 ‘지중해’에서 점심을 하자고 이왕식에게 전화했다.
당연히 국정원에서 감청을 했을 것이다.
조태수는 오늘 대구탕에 백 퍼센트 작전이 펼쳐졌을 것으로 확신하고 국내 제일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장미영 PD를 부른 것이다.
그런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잠시 후 밖이 소란스럽더니 제복 경관 두 명이 나타났다.
“신고하셨습니까?”
“들어오세요.”
두 경관이 방 안으로 들어왔고, 문 쪽에 주인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타났다.
“음식에 독이 들어 있다니 무슨 말입니까?”
조태수는 조용히 말했다.
“이 두 그릇의 대구탕에는 우리가 먹으면 즉사할 수 있는 독이 들어 있소. 일단 민간에서 내려오는 대로 은 젓가락을 담가 증거를 보여드리죠.”
조태수가 젓가락을 담갔다.
그러자 검게 변한다.
“맙소사!”
입구에서 보고 있던 주인이 놀란다.
“정식으로 경찰에 증거 신청을 합니다. 즉시 조사해 주십시오.”
장미영이 나섰다.
“전 M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고발자 담당 PD 장미영이에요. 나 또한 같은 연락을 받고 달려와 지금 현장을 찍고 있는데, 일단 은을 이용한 조사에서는 독이 있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경찰과 함께 또 한 곳 공신력 있는 민간 기관에 검사를 요청했어요.”
때맞춰 세 사람이 나타났는데 두 명은 젊고 한 명은 오십 대 중반의 인물이었다.
“박사님!”
“장PD,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슨 대구탕에 독이 있다고 검사를 해달라는 건지 원.”
그러다 경찰을 발견하고 눈이 커진다.
그때 이왕식이 사람들 귀에 똑똑히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해구냐? 나야 인마, 왕식이. 장사는 잘 되지? 급히 부탁할 게 있다. 살아 있는 닭 한 마리 들고 지금 지중해로 빨리 와라. 일단 와. 오면 알게 돼.”
이왕식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친구가 재래시장에서 닭 장사를 하는데, 살아 있는 닭 한 마리 가져오라고 했다. 닭에게 국물을 먹여보면 확실하잖아.”
경찰들은 뭔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멍청하게 서 있기만 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금세 식당 안으로 소문이 퍼진 것이다.
“왕식아.”
큰 소리가 들리고 작업복 차림의 한 사내가 포대자루 한 개를 들고 나타났는데 마구 움직였다.
“해구야.”
이왕식은 반가움을 표시했다.
“닭은?”
“가져왔지. 잡아 놓은 닭 배달은 다녀봤지만 살아 있는 닭 배달은 첨이다. 만 원만 주라. 딱 먹기 좋을 크기다.”
포대자루에 손을 넣더니 닭 한 마리를 꺼냈다.
닭은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잘 찍으세요.”
이왕식은 밥그릇 뚜껑에 대구탕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담았다,
뜨거운 기운이 식기를 기다렸다가 숟가락으로 덜어내고 말했다.
“닭 입 좀 벌려.”
“왜.”
“벌리라면 벌려.”
“알았어.”
이해구는 능숙하게 닭의 부리를 벌렸다.
이왕식은 닭의 주둥이에 국물을 넣었다.
닭의 혀가 움직이며 삼킨다.
“포대에 넣어 놔.”
“뭐 하는 거냐?”
이해구가 포대에 넣으며 물었다.
“어어! 왜 이래?”
포대 속 닭이 몸서리를 치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런 염병할, 죽었잖아.”
닭이 죽었다.
사람들이 경악했고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제야 경찰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여기저기 전화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
2차장 배칠도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보고를 한 김국현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자신들이 함정을 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태수의 유도에 걸려들고 말았다.
경찰을 통해 지중해 사건의 전모를 보고받았다.
국과수에서 대구탕 국물 분석에 들어갔고 나머지 한 그릇은 국내 최고의 독극물 연구 기관인 KH 연구소로 보내졌다.
1차로 서울 강남에 있는 모 일식집 식당에서 독극물이 들어 있는 대구탕이 발견되었다는 MBS의 단독 보도가 나갔다.
문제의 대구탕은 모 그룹 회장과 친구가 먹기 위해 주문한 것이라면서 다행히 식사 직전 발견되어 죽음을 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성을 알기 위해 닭에게 먹이는 모습과 바둥거리다 죽어가는 닭의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갔다.
“조태수!”
배칠도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신들의 지시를 받고 대구탕에 독극물을 넣은 주방장은 행방이 묘연하다.
어느새 조태수가 사람을 시켜 안전 보호에 나선 것이다.
국정원과의 접촉을 차단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벌컥!
문이 급히 열리고 부하 직원 김장수가 들어오더니 말했다.
“조금 전 주방장이 경찰서에 나타났습니다.”
“어디 경찰서야?”
배칠도가 물었다.
조태수는 경찰에 전화를 넣어 주방장의 신변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자신들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주방장의 신변을 확보한 건 독극물을 투여한 쪽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독극물을 투여한 쪽이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조태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국정원이오. 그 뒤에는 천삼억 원내대표가 있을 것이고.”
이어 조태수는 경찰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과 천삼억의 관계를 말해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천삼억의 입장에서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조태수를 죽여야 했다.
조태수만 죽이면 천만오는 6년형만 받고 나온다.
물론 2, 3년 정도 살다 슬그머니 특사에 실려 빠져나올 것이다.
그러나 고이건의 죽음에까지 연루된 사실이 알려지면 무조건 15년 이상이다.
천만오의 인생은 끝장이고 천씨 가문은 폐문(廢門)을 당한다.
천삼억으로서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하지만 일은 틀어져 버렸다.
보고를 받은 경찰청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일로를 걷고 있었다.
***
2차장 배칠도가 들어섰다.
“어서 와요.”
국정원장이 들어서는 배칠도를 미소로 맞이했다.
“여기 차 두 잔만 부탁해요.”
비서에게 말을 하고 소파에 앉았다.
스윽!
국정원장 문근수가 담배를 권하자 배칠도는 흠칫하며 놀란다.
“뭘 그렇게 놀랍니까? 여기서 피워도 됩니다. 방주인이 피우라는데, 누가 뭐라고 해요.”
“감사합니다.”
배칠도가 담배를 물자 불을 붙여주고 자신도 빼어 물었다.
후우!
문근수는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요즘 어떻습니까? 많이 바쁘죠?”
배칠도는 고개를 돌렸다.
요즘 어떻냐니, 설마 돌아가는 상황을 몰라서 묻는 건 아닐 것이다.
“인생 참 피곤합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안 그렇습니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했던가요?”
“그냥 그렇습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굉장한 복입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돈 많은 부모를 꿈꾼다면 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자식을 원할 겁니다.”
“원장님 아이들도 잘한다고 들었는데요?”
“아니오. 평범해요. 중학교 때까지는 잘하는 것 같더니 고등학교 때부터 떨어지더군요. 그냥 그런 대학 들어갔고 얼마 전 겨우 취직해서 밥벌이 하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여비서가 차를 가져다 놓고 나갔다.
“듭시다.”
홍차다.
배칠도는 차를 마셨다.
홍차를 처음 마시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쓰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대표님께서는 배 차장이 모든 걸 끌어안아 주길 원하시던데.”
팟!
배칠도의 눈이 빛났다.
모든 걸 끌어안는다는 건 자신이 뒤집어쓰라는 것이다.
일반인에게 뒤집어쓰라는 건 모든 죄를 인정하고 교도소에 들어가라는 의미이지만 국정원은 다르다.
세상을 떠나라는 뜻이다.
죽으면 공소권 없음으로 정리되어 모든 사건은 덮인다.
“집사람과 아이들에게는 살아가는데 어려움 없도록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거요.”
부들부들!
담배를 쥔 배칠도의 손이 떨린다.
밤이다.
술손님들도 하나둘 떠난 새벽 2시, 포장마차 주인은 한 손님을 바라보았다.
벌써 다섯 병째 마시는 한 남자이다.
꼼장어 1인분을 시켜놓고 소주를 다섯 병이나 비우는 손님은 드물다.
소주 다섯 병을 비웠지만 말투나 행동엔 취한 기색이 없다.
애초에 혼자 왔기 때문에 대화 상대도 없었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에서 평범한 남자 같지는 않다고 여겨질 뿐이다.
“한 병만 더 마시고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정중하게 말하는데 거절할 주인은 없다.
장사가 되는 손님은 아니지만 일단 행패는 부릴 것 같아 보이지 않았으므로 소주 한 병을 건네주었다.
딱!
남자가 마개를 따고 빈 잔에 채운 뒤 술병을 놓을 때 진동으로 해 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찍힌 번호가 낯설다.
핸드폰은 온몸을 떨면서 조금씩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한참 동안 핸드폰을 바라보던 배칠도는 전화를 들었다.
“여보세요.”
[오늘도 당신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납치하여 제거할 암살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팍!
왼손으로 들어 올린 술잔을 떨어뜨렸다.
“누구요?”
배칠도는 주위를 살폈다.
[눈치채지 않게 조용히 전화를 받으세요. 암살조는 모두 네 명이오. 한 명은 건너편 생맥주집 손님으로 위장해 창가에 앉아 당신을 보고 있고, 두 번째는 삼십여 미터 위쪽으로 공사를 알리는 콘 다섯 개를 쳐 놓고 하수도 맨홀 뚜껑을 만지고 있으며 나머지 한 명은 길가에 주차된 검정색 승용차에 있소. 물론 당신을 끌고 갈 차죠. 내가 돌아보지 말고 술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만큼 눈치가 빠른지는 당신이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잔 하나 달라고 하여 계속 마셔요.]상대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보고 있다.
배칠도는 긴장을 풀고 주인에게 잔을 부탁하여 한잔 따랐다.
CIA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가 자살하는 식으로 조직을 보호하도록 한다.
CIA뿐만이 아니라 국가 정보기관은 대부분 그런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애국심과 조직에 대한 충성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며, 혼자서 모든 죄를 끌어안고 떠나 버리는 것이다.
대신 남은 유족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다.
모든 걸 끌어안아달라는 원장 문근수의 말은 곧 그런 방식을 택하라는 압력이었다.
지난 사흘 동안 고민했다.
결단을 해야 하는데 자꾸 억울한 생각이 든다.
자신들만 살겠다는 생각이다.
배칠도 자신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독박을 쓰라는 것이다.
그때 넥타이를 풀어헤친 대머리 사내가 약간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아줌마,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안 돼요. 영업 끝났어요.”
“나 술 안 취했어요. 돈부터 받으세요.”
사내는 지갑에서 오만 원 권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잔돈은 놔두세요. 아줌마 팁이란 얘깁니다. 안주는 필요 없고 소주만 한 병 주세요.”
“그래도 뭣좀 먹어야죠. 깡소주를…….”
돈을 본 아줌마의 태도가 돌변했다.
“걱정 마세요. 원래 난 깡소주를 좋아해요. 정히 미안하면 거기 오뎅 국물이나 좀 주시든가.”
“그러세요.”
주인은 어묵 국물에 어묵 두 꼬치를 담아 내놨다.
커어!
사내는 한잔을 비우더니 어묵 국물을 떠 마셨다.
“나 조태수요. 듣기만 해요.”
사내의 말에 배칠도는 깜짝 놀랐다.
“당신 부하들은 절대 오늘 밤을 넘기지 않을 거요. 조금 있다 승용차 한 대가 올 것이오. 나와 같이 그 차에 타면 됩니다.”
그때 맞은편에 주차되어 있던 검정색 승용차 앞뒤로 두 대의 차가 섰다.
자신도 불법 주차를 하고 있는 마당이기 때문에, 검정색 승용차 운전사는 차를 대지 말라고 하지도 못했다.
새로 와서 선 차에서 일단의 사내들이 내리더니 근처 술집으로 모두 흩어진다.
사내들이 사라지자 검정색 승용차의 앞 유리가 내려오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자신의 차가 잘 빠져나갈 수 있는지 거리를 보는 것이다.
그때 포장마차가 있는 쪽으로 소리 없이 또 다른 검정색 승용차가 멈췄다가 10초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어!”
운전자도, 공사장 인부로 변장한 사내들도 모두 소스라쳤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내들의 소란에 시선을 빼앗겼는데 그 사이에 목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확히 본 사람은 오직 생맥주집 사내였다.
문을 박차고 나와 외쳤다.
“저 차야!”
사내는 멀리 사라지는 검은 승용차를 가리켰다.
사내가 차를 빼냈을 때 조태수가 탄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놓친 것이다.
***
도착한 곳은 홍제동에 있는 특급 호텔이다.
“긴장 푸세요.”
방으로 들어온 조태수는 실리콘으로 만든 대머리 얼굴을 벗고 변장을 풀었다.
조태수의 변장술에 배칠도의 눈이 커졌다.
“민망하게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정보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쪽에는 더 전문가 아니냐는 얘기였다.
“간단히 말씀드리죠. 천삼억과 국정원장은 모든 혐의를 2차장님에게 뒤집어씌울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죠. 그런데 선택을 하지 않자 오늘밤 2차장님을 제거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물론 자살로 위장하겠죠.”
“뭘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배칠도는 조태수와 손을 잡기로 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간단합니다. 천삼억의 지시를 받고 날 죽이려고 했다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됩니다.”
조태수는 얼굴에 묻은 실리콘 조각을 떼어내며 말했다.
“변호사는 염려 마십시오. 국내 최고로 붙이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5년 이상 교도소에서 썩지 않도록 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왜 천 대표님을 잡으려고 하십니까? 엄밀히 말하면 천만오 사장을 잡으려 하느냐고 물어야겠군요. 싸움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으니까.”
조태수는 냉장고를 열더니 양주 한 병을 꺼냈다.
익숙한 동작으로 온더록스 잔에 얼음을 넣고 술을 부었다.
“하시겠습니까?”
칵테일이 만들어진 잔을 내밀었다.
배칠도가 건네받는다.
이어 조태수는 다른 잔으로 자신의 칵테일을 만들며 말했다.
“괜찮은 여동생이 한 명 생겼습니다. 혈혈단신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에, 불쑥 여동생이 한 명 생기니까 기분이 좋더군요.”
조태수는 빙긋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데 여동생이 하는 짓도 예쁘지 뭡니까?”
“고연경 씨를 말하는 것이군요.”
“천만오가 그 아이를 죽이려 했습니다. 당신 같으면 미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동생을 죽이려 했는데 가만 두겠습니까?”
배칠도는 술잔을 들고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마를 찡그렸다.
몹시 불편하다.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선을 넘나들었던 30년 정보원 생활에 예상치 못한 파도를 만났다.
박수를 받고 떠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후배들에게는 작은 귀감이 되고 싶었다.
헌데 자살하라 종용한다.
스스로 죽으란다.
누군가의 욕망과 탐욕을 위해 자신더러 희생하라 외친다.
팍!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술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고 잔이 깨지면서 피가 흘렀다.
조태수가 재빨리 잔을 놓고 다가갔다.
“따라와요.”
욕실로 데려가 수돗물에 손을 씻었다.
파편을 씻어 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곧장 호텔에 구급약을 요청했다.
***
내외신 기자 200여 명이 모였다.
배칠도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과 천삼억 사이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탁!
문근수는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껐다.
게임은 끝났다.
인생은 줄이다.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줄을 잘못섰다.
천삼억이 차기 대통령이라고 확신하고 선택한 길이다.
어쨌든 후회는 없다.
삶은 이렇게 살다 가는 것이다.
탕!
문근수는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부하들이 뛰어 들어왔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한편, 당직자들이 문을 두드리며 불렀지만 천삼억의 집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꽝!
마침내 문이 열리고 당직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맙소사!”
모두가 소스라칠 듯 놀랐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환한 미소로 아침 회의를 주재하던 당 대표가 천장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목을 맨 것이다.
***
조태수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얼마쯤 피웠을까, 담뱃재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길어졌을 무렵 피식 웃었다.
“자살했다고.”
툭!
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생각보다 강단이 있군.”
지이잉!
전화가 왔다.
이왕식이다.
“점심 살 테니까 나와라.”
조태수는 벗어 놓은 윗도리를 들었다.
그래 먹자.
살아 있는 사람은 먹는 것이다.
누군가가 죽은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빛나는 구두를 신고, 정오의 점심을 왕성한 식욕으로 탐하며 숟가락을 들자.
아스팔트 위를 걷자.
야망을 걷어차면서, 가능하면 노래도 불러보자.
인생을 활보하자.
오늘도 이겼다는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커다란 소주잔에 술을 붓고 이 세상을 조문하며 외친다.
잘 가라.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
여종업원이 나타나자 이왕식이 말했다.
점심에 반주로 시작한 소주병이 벌써 아홉 개째 놓였다.
“아예 몇 병 가져다 놓으세요!”
조태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대낮에 술판이 벌어졌다.
그건 축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