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100
100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4권(25화)
7. 홍길동을 만나다―상(2)
“오랜만이지? 활약은 들어서 알고 있어. 근데 진짜 대단하더라. 길동 님도 인정할 정도라니. 나로서는 배 아픈 이야기지만.”
약간의 질투와 선망이 담긴 문구.
율도국 12재녀 중 일곱 번째, 신기루 주희였다. 그녀는 천일과 만났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을 터인데 말이다.
“주희…… 였지?”
천일이 잊고 있었다는 듯 물었다.
“맞아, 주희. 열두 재녀 중 일곱 번째, 신기루지. 따라와. 길동 님께서 기다리고 계셔.”
주희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새침하게 발을 돌렸다. 그에 천일과 마왕은 눈빛을 한 번 교환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율도국 수장이라는 길동 님에 관한 호기심을 품에 앉은 채.
초가집들, 기와집들, 때때로 2층, 3층 건물도 보였다. 그럼에도 네모반듯한 현대식 건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걷기를 10분.
천일과 마왕은 마주치는 사람 없이 ‘역’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주희는 천일과 마왕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돗자리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뭐야?”
천일이 물었다.
“하늘을 나는 돗자리.”
주희가 답했다.
“뭐?”
천일은 당황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들어 봤어도, 하늘을 나는 돗자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율도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야. 100인용까지 있어.”
주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돗자리를 펼쳤다.
부웅.
지면에서 10cm 정도 돗자리가 떠올랐다. 그 위에 주희가 먼저 올라탔고, 천일과 마왕이 뒤를 이었다.
“앉아. 마음 단단히 먹어. 내가 운전 실력이 많이 서투르거든. 바깥 세계에 있어서 그렇지만. 그러니 알아서 이해 부탁해.”
주희는 그런 말을 하고는 천일과 마왕이 앉기를 기다렸다.
착석, 출발.
부우웅.
“뭐, 뭣!”
천일이 깜짝 놀랐다. 주희가 운전하는 하늘을 나는 돗자리는 시작부터 제트 코스터처럼 뱅글뱅글 돌았다.
“야호, 신난다!”
주희의 외침.
시야는 하늘과 지상을 오갔다. 속도는 시속 300km 이상. 천일 역시 하늘 정도는 날 수 있었다. 시속 300km 정도는 거북이로 생각될 정도의 속도로. 그럼에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똑바로 운전 안 해!”
천일이 소리쳤다.
“괜찮아. 괜찮아. 모로 가도 서울만 도착하면 된다잖아? 걱정 마. 길동 님 면전에 내려 줄게.”
주희의 받아침.
“큭.”
마왕은 천일의 뒤에서 가벼운 멀미를 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어금니를 깨물고 버티고 있는 상황. 마왕 역시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날개를 가진 그녀이기에 전투 능력이 천일보다 낮다고 해도 비행 속도는 천일보다 빨랐다. 솜씨도 좋았고. 그렇기에 엉망진창인 주희의 운전에 더 견디지 못하는 것이리라.
1시간 정도.
주희가 운전에 능숙했다면 30분 정도에 도착하였을 테지만, 지나간 과거이고 희망 사항일 뿐이다.
쾅.
주희는 지붕을 뚫고 착지했다.
“쯧쯧. 멀었구나, 멀었어.”
그렇게 말하는 사내가 있었다. 푸른색 도포에 죽립. 누가 봐도 한눈에 홍길동임을 알아볼 수 있는 차림새였다.
“두 번 다시 타나 봐라. 운전 좀 똑바로 해!”
지면에 꼬꾸라졌던 천일이 일어나며 한마디 했다.
“우욱.”
마왕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지면을 박찼다. 주희가 만들어 둔 지붕을 통해 하늘 높이. 멀미를 상쾌한 바람에 날려 버리기 위해서였다.
“면목 없다. 신기루가 너희와 안면이 있기에 보냈거늘. 결과가 참혹하구나.”
홍길동이 천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아.”
천일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야. 잘됐어. 혹시 우리에게 용건이 있어? 그렇다면 그쪽부터 듣지.’라고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용건이 있을 턱이 없지. 용건은 그쪽이 있을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찾아왔겠지. 그래서 불렀다. 그냥 놔두면 귀찮은 일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니. 알아들었으면 어서 용건이라는 놈을 꺼내 보아라. 귀를 기울이지.”
홍길동이 말했다.
“그래? 알았어. 나도 중간 절차를 밟아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천일이 답했다.
“신기루야, 차를 내오너라. 실수를 만회할 기회이니, 잘해 보아라.”
홍길동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손을 한 번 휘둘렀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들마루가 척 하니 나타났다.
“……!”
천일은 놀랐다.
“사람들이 도술이니 선술이니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세상 만물이 손짓 하나면 해결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 너도 그래 보이는데, 진실은 어떠한가?”
홍길동은 여유 만만했다.
“그런 재주 못해. 할 줄 몰라. 때려 부수는 거라면 가능하지.”
천일이 답했다.
“하지 못한다? 대답이 빨라서 좋구나. 세상에는 잔머리 굴리며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진짜처럼 보일까 걱정하는 자들이 많이 있지만,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 모양이구나.”
홍길동은 천일을 떠보았다는 식이었다. 그러고 홍길동은 자신이 만든 마루에 걸터앉았고, 천일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척.
천일은 홍길동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내, 율도국에 이렇게 앉아는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그것도 하지 못해서야, 어찌 반선(半仙)이라 할 수 있겠느냐. 우화등선(羽化登仙)하여 선계에 간 자들은 나에게 어서 이쪽으로 오라 하지만. 속세를 헌신짝 보듯 하는 그들과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은 편치 않은 일이지. 전부 나의 마음속 한구석에 있는 작은 미련 때문임을 내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것을 간단히 내치는 것도 원하는 바는 아니야.”
홍길동은 어딘지 먼 곳을 바라보며 그런 말을 했다.
‘반선(半仙)? 우화등선(羽化登仙)? 연합과 연맹의 이야기를 대입하면, 선계는 연합에 속한 자들이 사는 세상일 테고. 우화등선은 그렇게 되는 일. 반선은 홍길동과 같이 경계에 있는 자들을 칭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려나. 그렇겠지.’
천일은 나름대로 홍길동의 말을 해석했다.
“어서 용건을 꺼내 보아라. 눈알만 굴리지 말고.”
홍길동이 재촉을 해 왔다.
“나는 지구인이야. 당신은?”
천일의 뜬금없는 질문.
“나는 율도국을 책임지고 있는 몸이니라.”
홍길동이 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
“부탁?”
“응. 지구인으로서, 모든 지구의 사람들 가운데 우주로 나갈 자격이 있는 지구인과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여 자격을 부여하는 직책이지. 물론 당신에게만 제안할 것은 아니야. 당신과 같은 자들에게 전부 부탁할 생각이야.”
“이 내가 무엇을 위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냐?”
“지구에 사는 모두를 위해. 우화등선이라고 했지? 가이르디슈가 말하길, 그것이 가능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 게다가 가능성이 언제나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주는 넓고 적은 많아. 연맹에 속한 자들은 일단 아군이지만 뒤꽁무니로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몰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 하늘로 승천해 버리면 이런 일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해야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
천일의 주장.
“저 너머에 있는 자들도 선하지만은 않네. 그들 가운데도 악은 있지. 내가 올라가면 그들과 싸우게 될 거야.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구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당신이라면 그들과 싸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냐?”
“허허허. 그런 것도 알고 있었나?”
“하다 보니 알게 되었어.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더군. 경계를 넘어갔다가 돌아간 사람이라고.”
“……!”
홍길동의 안색이 굳어졌다.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인지 아는 모양이네. 그래, 맞아. 나는 순간이지만 경계를 넘었었어. 이렇게 말은 해도 잘 몰라. 경계를 넘어간 즉시 돌아왔으니 말이야.”
“어째서? 어째서 돌아왔지? 경계를 넘었다는 것은 이 세계에 미련이 없다는 뜻일 터. 그럼에도 돌아와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나?”
“아니, 그런 일은 없었어. 그 경계를 넘었을 때, 나는 분명 다른 법칙으로 구성된 세계에 있었지. 세상의 모든 것이 무겁고,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도 힘에 겨웠지만,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질 것 같지 않은 느낌. 최강이면서 최약이라고 생각되는 묘한 상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은 누군가가 남긴 편지의 내용 때문이었지. 장난 같은 이야기야. 장난 같은 이야기.”
천일은 의도적으로 뜸을 들였다.
“장난 같은 이야기? 무슨 이이기지?”
홍길동이 미끼를 물었다.
“세상에 태어나 행복을 손에 쥔 자는 결코 허무를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즐거우며, 언제까지라도 행복할 수 있고, 작은 불행을 지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던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준비가 된 자는 어떤 형태의 무슨 존재가 되어 어디에 있더라도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만들어진 거짓된 행복이라고. 대충 그런 이야기였지.”
천일이 답했다.
부서진 청살검에서 튀어나온 편지에 적혀 있던 내용을 축약한 것이었다.
“비수 같은 이야기로다. 알고 있는 일이었긴 하지만 타인에게서 그 말을 들으니 아프군.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어쩌면 좋은지 알 수가 없구나.”
홍길동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게 뭔데?”
천일이 물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낮잠만 자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일구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안 될 것도 없지.”
“뭣?”
홍길동의 눈이 커졌다.
“지구는 말이야. 내가 이전에 살던 세계에 비하면 천국이야. 굶어 죽는 사람도 적고, 사람들은 지혜롭고 정직하지.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칼을 휘두르던 세계여서 말이야. 그 한 그릇을 빼앗지 못해 누명을 씌우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괴물들이 사방 어디에나 있었지.”
천일이 슬쩍 전생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구에도 그런 지역은 있다네. 사람들은 그저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야.”
홍길동이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노력하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노력? 언제까지 하면 되는 거지?”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는 영웅 등급이라 분류된 자들이 있어.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혹시 알아?”
이번에는 천일이 비수를 꽂을 차례였다.
“모른다. 알 턱이 없지.”
홍길동의 대답.
“네아라는 녀석이 있어. 그 녀석에 관한 이야기야.”
천일은 그러고는 네아와 영웅들에 관한 그들의 사정을 말했다.
죽음을 동경한다거나, 삶이란 그저 싸우고 또 싸우고 싸울 뿐이라거나, 모행성에게 배신당하기도 한다거나 등등.
덤으로 네아 구출 작전 과정에 대한 것도 넣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로다. 어째서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꼬.”
홍길동의 허탈한 중얼거림.
“들으면 할 리 없다고 생각했겠지.”
천일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허허.”
홍길동은 그저 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되지도 않겠지만.”
“힘?”
“당신들 나보다 강하다며? 전투 능력 5천만 갤런 넘는다고 들었어.”
“숫자 놀음 이야기로군.”
“숫자 놀음?”
“경계를 넘어갔었다는 자가 숫자에 연연하고 있을 줄이야. 의외로다. 정녕 의외로다.”
“맘대로 말해. 내 기준 아니야. 연맹 기준이지. 그 녀석들 말로는 나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예외에 속하는 존재라던가. 그러긴 하던데 말이야. 잘 몰라.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천일은 귀찮다는 반응이었다.
“허허. 그런가. 선재로다, 선재야.”
홍길동은 세상만사 통달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시간 줄까? 얼마나 필요해?”
천일이 물었다.
“그럴 필요는 없네. 결정은 이미 내렸으니.”
“그래?”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네.”
“부탁? 뭔데?”
“나를 이겨 주지 않겠나?”
“뭐?”
“진심으로 하는 소리네. 이렇게 보여도, 나에게는 작은 명예와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말이야. 여러 가지로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생겨 버렸다네. 이 부분은 자네의 잘못이지. 얌전히 엎드려 도움을 청했다면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아도 받아들였을 거야. 그래서 처음에 말하지 않았나. 작은 미련이 발목을 잡고 있다 말일세. 그러니 나를 실망시키지 말고, 자네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보여 주게. 자네가 말하는 우주의 적들,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태우게 만드는 것들이 정말 그럴 만한 것들인지 알고 싶어졌네.”
홍길동은 그런 말을 하고는 살짝 웃어 보였다.
“……!”
천일은 어이가 없었다. 홍길동이 하고 싶은 말은 알겠는데, 이유가 억지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로페스 같은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고 싶다면 직접 그놈들과 싸워 보면 되는 일이다. 무대는 연맹이 마련해 줄 터였다. 굳이 천일에게 싸우자고 덤빌 이유가 없었다.
“깊이 생각하지 말게. 그냥 나를 이기면 되는 걸세. 그러면 자네는 이 나를, 천하의 홍길동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지구의 영웅이랍시고 내 위에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자, 어떻게 할 거지? 선택을 하게.”
홍길동이 선택지를 내밀었다. 그에 천일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라고 물으려고 했다.
쾅.
마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분명 말로써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터였다.
“이기면 되는 거냐?”
우물쭈물하던 천일이 태도를 바꾸었다.
“……!”
홍길동은 살짝 놀랐다. 천일이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천일이 강단을 보였다. 어째서일까? 의아해하던 홍길동은 아름다운 외모와 강인함을 두루 갖춘 것처럼 보이는 마왕의 모습에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홍길동이 그랬고, 많은 영웅들이 그러했듯 좋아하는 여성에게 약한 모습 보이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