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108
108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5권(8화)
2. 다국적기업 영웅과 마왕 그리고 지구인, 줄여서 H.D.T(6)
“이 망할 자식은 안 오고 뭐하는 거야. 젠장.”
아세란이 투덜거렸다.
밤딸기가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프로페스 2개 함대가 지구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지구 방식으로 따져 6개월에서 약 1년. 가이르디슈가 있었다면 걱정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는 승천하여 비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째서일까? 가이르디슈가 지구에 보인 애정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들의 뒷수작을 알고 있었다면 이해가 가지 않을 것도 없었다. 은하 연합에 속한 존재들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 말이다.
딱딱.
아세란의 손가락이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를 때렸다. 두 번이나 연락을 넣었는데 오지 않은 천일에 대한 화풀이였다.
‘그 개놈들을 엿 먹이지 않으면, 지구인들과 지구에 숨어 있는 영웅 등급 존재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치면, 뒤집어엎지 못할 것도 없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이상한 이야기였지. 지구에는 연맹에 혐오감을 가진 영웅 등급 전투 능력을 가진 존재가 이십이 넘어. 보나마나 가이르디슈의 수작이 있었을 테지. 그런데 왜 이 타이밍에 승천을. 말이나 좀 하고 가던가. 염병.’
아세란은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똑똑.
“나야. 들어가도 돼?”
천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들어와.”
아세란의 대답과 함께 천일이 들어왔다. 그러고는 대뜸 ‘무슨 급한 일인데 그래?’라고 물었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 비밀이다. 너 혼자, 알고만 있어.”
아세란이 말했다.
“응, 말해.”
천일이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아세란은 자신이 알아낸 진실과 지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해 주었다. 천일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농담이지? 제발 농담이라고 해 줘.”
억지로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천일은 동요하고 있었다.
“진실이야. 이제부터 우리는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해.”
아세란이 말했다.
“…….”
말문이 막힌 천일.
“네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함선의 건조와 우주인의 확보야. 현재 아틀란티스 월드에 있는 지구인들을 때려 붓는다고 치고. 영웅 등급 능력자들을 억지로 우겨 넣는다고 해도 남은 시간 동안 준비를 마치는 것은 어려워. 더구나 지구 위에서 발생하는 그들의 부활도 막아야 해. 가이르디슈가 있었다면 일이 조금은 쉬워졌겠지만, 그렇지가 않아. 여기까지 이해했지?”
아세란이 물었다.
“응.”
천일은 답답했지만 긍정을 표했다.
“자유 진영인가 뭔가에 속해 있는 영웅 등급 애들은 좀 어때?”
아세란이 화제를 바꾸었다.
“1명은 말만 해 뒀고, 2명은 적극적으로 협조받기로 했어. 나머지는 몰라. 만나 본 적도 없어.”
천일은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좋아. 그런 일단 함선은 네 것까지 3척 건조한다고 하자. 필요한 기술은 내가 전부 대 줄게. 급한 대로 이웃 항성계를 사용해. 거기에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은 없지만, 자원은 충분해.”
“그래도 되는 거야? 원래 기술이나 자원 같은 건 거래를 통해 얻어야 하는 거 아냐?”
“너, 크로벤 좀 설득해라.”
“걘, 왜?”
“화성 정도를 지구와 비슷하게 만들게 하고. 그걸 나에게 파는 조건으로 해서 내가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형식을 취할 수 있으면 앞뒤는 일단 맞아.”
“…….”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야. 너는 지구의 영웅이고. 아니면 뭐야. 이대로 손 놓고 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생각이야?”
“그럴 수는 없지.”
“좋아.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계약서만이라도 좋아. 일단 그 놈팽이에게 사인을 받아. 이거 가져가.”
아세란은 그런 말을 하고는 책상 서랍을 열어 서류를 하나 꺼냈다.
끄덕.
천일은 서류를 챙겼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
아세란은 서류 뭉치 하나를 천일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야?”
천일의 질문.
“지구에 숨어 사는 영웅 등급 외계인들에 관한 정보. 그들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네 몫이야. 그들에게는 진실을 들려줘도 좋아. 물론 비밀 보장은 받아야겠지.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세란이 말했다.
“할 수 있어.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천일이 답했다.
“좋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연맹 내 녀석들과도 한바탕해야 할 테니, 그것도 염두에 둬.”
아세란이 주의를 주었다.
끄덕.
“그럼 가서 일 봐. 크로벤에게 사인 받아 오는 것이 최우선이야. 서류만 들어오면 이쪽도 바로 움직일 테니. 그리고 함선 만들게 되면 넌 거기서 꼼짝 없이 붙어 있어야 한다. 다른 영웅 등급 2명도 마찬가지고.”
“알았어. 맡겨 줘.”
천일은 대답을 하고는 아세란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크로벤과 베베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베베의 앞에는 두 대의 노트북이 있었다. 한 대는 H.D.T 관련 일을 처리하는 데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잊혀진 죄악들의 부활 저지를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엔더스 역시 잊혀진 죄악들의 부활을 저지하는 베베에 맞춰, 정보를 수집하고 타겟을 정하고 지령을 내리고 있었다.
겸사겸사 일반 사회의 눈을 피해 살고 있는 비밀결사 조직들과 헌터들의 흡수도 병행하고 있었다.
“위성이란 정말 좋은 것이로구나.”
베베가 중얼거렸다.
지구의 하늘 저편에는 각국에서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이 많이 있었다. 비밀스러운 것도 있고, 공식적인 것도 있었다. 베베는 그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정보를 얻어 냈다. 덤으로 아틀란티스 관리 함선의 레이더 기능도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44만 3천 556개의 부활 지점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1분에 한 통 이상 ‘처리 완료’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거 끝이 없군.”
엔더스가 중얼거렸다.
잊혀진 죄악들의 부활을 위해 의식이 진행되는 곳은 대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대도시의 지하도 어딘가처럼 찾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1분에 한 통 이상이라는 경이로운 처리 속도를 보이는 중이지만, 만 24시간 동안 겨우 3천여 개를 없앴을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천일이 왔다. 거침없이 들어와서는 엔더스를 한 번 노려보고는 베베에게 말을 걸었다.
“이유가 있느니라. 들어 보거라.”
베베는 그렇게 말하고는 간략하게 요점만 뽑아서 천일에게 보고했다.
“광고 때려.”
천일이 말했다.
“광고라 했느냐?”
무슨 뜻인지를 묻는 베베의 물음.
“돈은 있지? 전 세계에 광고를 때려. 없으면 내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지금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냐. 고양이 손이라고 빌려야 해. 본격적으로 간다.”
“바깥 세계의 권력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니라.”
“상관없어. 까불면 다 밀어 버리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더냐?”
“프로페스 2개 함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로 발목 잡힐 수는 없어. 빨리 처리하고, 함선 제작에 도와줄 사람하고 함선에 탑승할 사람들 뽑아야 해. 시간 없어. 내 말 알아들었지?”
천일이 말했다.
“알았다. 그렇게 하겠느니라.”
대답을 마친 베베는 광고 제작을 시작하였다. 광고라고 해도 특별히 영상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파란 화면에 하얀 글씨. 동시에 인터넷 도메인을 하나 구매하였다. 상황판을 올려놓고 사이트를 점검하고.
다다다닥.
베베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였다. 옆에 있는 엔더스는 천일을 바라보며 ‘이 사람은 저 마녀의 위에 있다는 지구의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 너.”
천일이 엔더스를 바라보았다.
“듣고 있다.”
엔더스가 답했다. 천일의 말은 한국어였지만 엔더스는 어째서인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베베를 돕고 있는 헌터인가 뭔가 하는 자들의 우두머리라고 했지? 체계적으로 조직을 개편해 둬. 우리 회사의 하부 조직으로 써 주마. 월급 정도는 주지. 대신 악마 부활 같은 거 시도하는 자들 없도록 해. 모든 것은 지구를 위해서다. 베베, 들었지?”
천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발을 돌렸다.
“알겠느니라. 누구 말이라고 거부할까. 걱정 말거라. 철저하게 해 주지.”
베베가 답했다. 천일은 듣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에 엔더스는 조금 놀란 얼굴로 ‘진심인가?’라고 물었다.
“지금 본녀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르겠느냐. 사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말은 본녀에게 있어 절대이니라.”
베베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엔더스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베베가 하는 일은 천일의 지시한 대로였다.
“인간 중에도 나쁜 놈이 있지 않느냐. 흡혈귀들 중에서도 마찬가지이니라. 본녀 역시 선하게 살아 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본녀는 피를 지나치게 빨아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느니라. 그 점은 너도 알 터. 이상히 여길 일은 아니니라.”
“…….”
엔더스는 말문이 막혔는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그것이 최선의 답이었다.
크로벤은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처음 손을 댈 때만 해도 여자를 낚기 위한 방편 같은 것이었는데, 하다 보니 게임 자체가 재미있었다. 길드에도 들고 사람(?)들도 사귀고, 적당히 꾸며진 신분을 사용해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고.
무엇보다 어울린다는 느낌이 좋았다.
어울린다, 그게 뭐 대단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크로벤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입장이었다.
크로벤의 위치라는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형― 동생 하며, 오빠 소리 들으며 같이 괴물을 잡아 레벨을 올리고, 가끔 필요하다는 것 있으면 사 주고.
사람들이 크로벤에게 사 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아이템 하나 먹으려고 죽자 사자 덤벼드는 모양이 안쓰러워서 크로벤이 사 주는 거다. 돈이야 많으니까. 물론 지금은 조금 자제하게 되었다. 자신의 성격을 이용하기 위해 살갑게 구는 아이들도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 체리슈 덕분이었다.
체리슈는 크로벤이 몸담고 있는 길드의 부길드마스터로, 처음에는 굉장히 까칠하게 굴었다.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했고, 자신의 이야기도 잘하지 않았으며, 도와주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체리슈가 크로벤의 행동에 태클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기분이 나빴는데, 체리슈가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태클 하나하나에 애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최근 길드에서 크로벤은 재벌집 2세로 통했다.
그리고 크로벤의 감시를 위해 베베가 붙여 둔 흡혈귀들과 청애 역시 크로벤과 같은 길드에 속해 있었다. 그녀들은 크로벤과 체리슈 사이에 싹트는 핑크빛 감정을 따뜻한 눈으로 치켜보며 슬쩍슬쩍 시련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템을 뜯어내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거나.
괜히 시비를 건다거나 하는 식으로.
현실에서는 어쨌든 게임 내에서는 체리슈가 강했고, 크로벤이 그것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반년 이상 열심히 플레이를 해야만 했다.
보호받는 크로벤과 트집 잡으며 나서는 체리슈.
둘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날까? 모두들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런 중이었다.
덜컹.
천일이 크로벤을 찾아왔다. 서류를 내밀며 아세란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해 주었다. 크로벤은 신중한 얼굴로 ‘야, 나 아직 여자 없다. 없는데 이건 곤란하지.’라고 말했다.
“게임에 푹 빠졌다며? 이거 재밌냐?”
천일이 그런 말을 하며 크로벤의 분신이 움직이는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오빠, 내가 말했지? 애들에게 아이템 사 주지 말라고. 오빠가 부자인 건 알겠는데, 부자라고 해서 애들이 달라는 대로 아이템 사 주면 버릇 나빠져. 알아?]마침 체리슈가 훈계를 늘어놓고 있던 참이었다.
스슥.
크로벤이 급히 모니터를 가렸다.
“으, 응? 재미? 재밌지. 암 재밌지. 이거 정말 잘 만들었더라. 지구 최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천일의 반문.
“신경 쓰지 마. 너 바쁘잖아. 응?”
크로벤이 화제를 돌렸다.
“서류에 사인해 주면 모른 척해 줄게.”
천일은 어떻게 해서든 사인을 받아야만 했다. 비겁한 줄은 알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걸로 과연 넘어올까? 싶기도 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