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116
116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5권(16화)
4. 막을 내리는 아틀란티스 월드(4)
얼마나 골몰하였는지, 천일은 크로벤이 뒤에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크로벤이 천일의 어깨에 손을 대고 ‘바쁘냐? 훔쳐보느라 정신 없구먼.’이라고 말을 건넸을 때야 크로벤의 존재를 눈치챘다.
‘깜짝이야. 놀랐네.’
천일은 호흡을 가다듬은 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조용히 베베의 방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크로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자신의 방. 크로벤은 ‘왜, 이놈아. 나 바빠.’라며 귀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할 이야기가 있어.”
천일은 그렇게만 말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천일의 방은 마왕만큼 살풍경하지도, 베베만큼 화려하지도 않았다. 침대가 하나에 컴퓨터가 한 대, 책상, 책꽂이, 그리고 소파와 탁자. 소파와 탁자는 달라진 천일의 위치를 생각해서 천일의 방에 넣어진 것이다. 예전에 살던 집에는 없었다.
“무슨 이야기?”
크로벤이 의문을 표했다.
“일단 앉아. 이야기는 그다음이야.”
천일이 말했다.
“앉았다.”
크로벤은 천일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너, 그 여자하고 어디까지 했냐?”
천일은 대강은 감을 잡고 있었지만 확실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으, 응? 그, 그건 갑자기 왜?”
크로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지구를 관리하는 영웅.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정은 알아야지.”
“그거야.”
“그거야?”
“했지 않을까?”
“뭐?”
“사실 그 뭐랄까. 키스? 키스라는 걸 하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음.”
“기억에 문제가 있다고?”
천일이 물었다.
“그래, 하지만 음. 그녀가 덤비는 걸 보면, 했겠지.”
“기억이 어떤데? 없어?”
“있긴 하다. 있긴 해서 했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그럼 한 거네.”
“그렇겠지.”
“책임은?”
“그건 걔가 생각해 보겠다던데?”
“뭐?”
“거시기 달린 여자 외계인이, 어쩌고저쩌고하더라.”
“…….”
“사실 나도 좀 그렇다. 내가 위치가 있잖아. PDC가 될 소질이 있는 후손이 만들어진다면, 부담 없이 반려로 인정하겠지만. 그게 그런지 아닌지 확인할 도리가 없잖아. 더구나 한 명하고밖에 결혼 못한다며.”
크로벤은 내키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성격은 어때?”
천일이 화제를 돌렸다.
“괜찮아. 화끈하고 말도 통해. 가끔 고삐 풀린 것처럼 굴 때도 있다만. 아아, 싫다는 건 아냐. 그런 거 보면 귀엽기도 하고. 싫지는 않아.”
“다른 건 마음에 든다?”
“말하자면 그렇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잘도 그렇게 말하네. 너무 이른 거 아냐?”
“그건 아니다. 그 뭐랄까. 아드베리아인은 그걸 통해서 상대의 정신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된다. 마음에 들어.”
“그렇군.”
“그런데 할 이야기가 뭐냐? 본론 꺼내.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어.”
크로벤에게도 나름대로의 정보통이 있었다.
“그래? 뭘 알지?”
천일이 물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도 알고, 프로페스에 관한 것도 안다. 이 몸이 이래 보여도 PDC, 황금의 아드베리아인이다. 연락책이 있지. 지구 여자 만 명 정도만 데리고 오라더군.”
크로벤은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로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천일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이대로 있다가 지구가 없어지면 PDC 관련 일도 백지가 될 것이 뻔하잖냐. 그러니까 만 명 정도만 어떻게 해서 데리고 탈출하면 뒤는 봐주겠다고.”
“진짜냐?”
“진짜다.”
“그럼 그거, 기밀 중에 기밀일 텐데.”
“기밀 중에 기밀이지. 너나 관련자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하라더라.”
“그런데 말했네?”
이해할 수 없다는 천일의 의문.
“말했지.”
크로벤의 긍정.
“왜냐? 이유가 뭐냐?”
천일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크로벤은 운만 띄워 놓고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난 그녀가 좋다. 그걸 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녀가 보여 준 행동들. 사실 특이한 것이라서 되도록 그녀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천일은 속으로 ‘이 녀석 완전히 푹 빠져 있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 말을 했다. 알겠어. 잘 알겠어.”
무슨 생각을 하든지, 천일의 겉은 평온했고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냐?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돕겠다.”
크로벤이 말했다.
“너, 지구에 영웅 등급 전투 능력을 가진 외계인들이 꽤 숨어 있다는 거 아냐?”
천일이 떠보듯 말했다.
“대충은.”
“그들하고 우리들하고, 이래저래 합해서 영웅 등급 전투 능력 보유자가 서른이 넘어. 아세란은 빼고. 그녀도 나를 돕기로 했으니 전력에 포함시켜도 되겠지.”
“……!”
크로벤의 안색이 굳어졌다.
“지구를 연맹 내 자치 구역으로 선포할 생각이야.”
천일이 본론을 꺼냈다.
“제정신이냐?”
크로벤은 진심으로 천일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응, 멀쩡해. 뱃속 시커먼 녀석들 장단에 놀아나 봐야 미래는 없지. 나는 궁극적으로 그놈들 전부를 연맹에서 제거해 버릴 거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독립하여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야겠지. 원래는 가이르디슈가 꾸미던 일인데. 이제 그녀는 은하 연합의 일원이 되었으니. 내가 뒤를 이어야지.”
천일은 본의가 아니라는 뜻과 많은 준비가 되어 있음을 슬쩍 내비쳤다.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면 안 되는 것이지 않나?”
크로벤이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 외에도 지구 소속이 되어 줄 PDC들이 필요해. 너라면 끌어들일 수 있다고 봐.”
천일이 말했다.
“…….”
묵비권을 행사하는 크로벤.
“여러 명의 여자와 결혼해도 된다는 특권을 주마. 그렇다 해도 무한정은 무리고. 차차, 그 부분은 조율을 해 나가야겠지만, 지구가 정말로 자치 구역을 선포하게 되면 PDC는 대우받을 자격이 있어.”
“진짜?”
“그래.”
“끙.”
“얼굴이 왜 그래? 싫어?”
천일은 크로벤이 우거지상을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야기는 좋다만. 이야, 나는 무리다. 그녀에게 죽을 거야.”
크로벤은 체리슈를 끔찍이 생각했다.
“강제는 아니야. 그리고 아이가 없다면 네 그녀도 언젠간 죽을 테고. 그다음에 새로.”
천일은 별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하다가, 싸늘해지는 크로벤의 눈빛에 급히 말을 끊었다.
“나, 아줌마나 할머니는 싫다.”
뜬금없는 크로벤의 발언.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말이다. 괜찮으면 나 그녀에게 늙지 않는 시술 같은 거 해 주고 싶다.”
“뭐?”
“이왕이면 연령 조작 능력 같은 것도 부여하고, 몸매 같은 것도. 어흠.”
“…….”
“안 되냐?”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가지 한다고? 내가? 뭘?”
“아니야. 화제를 넘기지. 그래서 도와줄 거냐? 말 거냐?”
천일이 강제로 말을 돌렸다.
“도와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커뮤니티에 자랑 좀 했더니, 오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줄을 섰다. 줄을 섰어.”
난처하다는 크로벤.
“몇 명이나 오려고 하는데?”
“오십?”
“……!”
“의외로 여자들도 오고 싶어 하던데. 근데, 지구 남자들 가슴 좋아하지? 걔네들 와서 찬밥 신세 되면 시끄러울 것 같아서.”
“가슴? 그건 개인 취향이지. 넌 무슨 사람들 취향이 다 같은 줄 아냐. 다 같으면 넌 인마 버림받았어야지.”
“……!”
“뭘 그리 놀래?”
“가슴 있는 남자는 이상한 거냐?”
“지구 남자들과는 다르잖아. 이상하지.”
“떼어 버릴까?”
“그만둬. 혹시 아냐. 네 그녀는 그걸 또 좋아할지.”
천일은 되는 대로 내뱉은 말이었다.
머쓱.
크로벤이 얼굴을 붉혔다.
‘진짜 그런 거냐!’
그래서 천일도 당황했다.
“흠흠. 몇 명이나 와도 좋다고 할까?”
크로벤이 화제를 돌렸다. 이에 천일은 굳이 프라이버시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관광차 오라고 해. 신분증은 이쪽에서 준비해 두지.’라고 말했다.
“신분증? 나도 하나 주라. 신용카드 같은 것도 필요하고. 불편해 죽겠다.”
크로벤이 말했다.
“기다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만들어야 해. 아직 없어. 만들게 되면 가장 먼저 줄 테니 걱정 마.”
천일의 대답.
“알았다. 그럼 그렇게 알고 커뮤니티에 말해 두마.”
이것으로 크로벤은 지구의 아군이 되었다.
‘살았다. 걱정하고 있었는데.’
천일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넌 뭘 훔쳐본 거냐? 거기 있는 애, 네 부관이지?”
크로벤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응? 어, 부관이지. 잠깐 그냥 좀.”
천일은 자신도 모르게 머뭇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크로벤은 재밌겠다 싶었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이상했는지.
“옷이라도 갈아입고 있는 중이었나? 왜 훔쳐 보지. 그거 관음증이라고 하던데.”
라는 말을 했다.
“과, 관음증? 대체……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냐.”
천일은 깜짝 놀라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보다 뭐야? 설마 너, 부관에게 몸 접대 같은 거 시킨 거냐?”
크로벤이 물었다.
“뭐? 왜 그런 질문이 나와? 좀 두들겨 맞고 싶지? 잠깐 으슥한 곳으로 갈까?”
천일은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살기를 뿜으며 화를 냈다.
“지, 진정, 진정. 오해였다면 미안하다. 영웅들 가운데는 그런 녀석들도 꽤 있어서 말이다.”
크로벤의 입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런 녀석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넌 아직 모르겠구나.”
“뭔데? 말해 줘.”
“영웅들은 오래 살잖아. 정신 상태가 이상한 놈이 많다. 영웅은 부관의 생사여탈권은 물론이고 더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부관은 영웅의 맘대로거든. 벗으라면 벗고, 칼 맞으라면 칼 맞고. 그래서 4대 행성 출신이 몇 명씩 끼는 거다. 사령관도 다른 행성 출신으로 배치하는 거고. 좀 자제시키려고 그렇게 하는 건데, 의미는 없다. 가끔은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만, 희귀한 케이스고.”
“반대인 경우?”
천일은 사실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은 아니다. 그저 알아 두면 뭔가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물어본 것이다.
“영웅도 살아가면서 스트레스가 많지만, 부관도 많아. 그리고 부관은 유사시 영웅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 때문에 영웅이 부관의 응석을 받아 준 달까.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 결국엔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리는 거지.”
“아세란도 그래?”
“영웅 아세란? 그 여자는 그냥 미친년이야.”
“뭐?”
“일중독자거든. 일이 없으면 심심해서 부관들을 들들 볶아서 일 만들어 오라고 한단다. 그래서 그런 쪽 괴벽은 없어. 부관들만 죽는 거지. 커뮤니티에서는 아세란의 부관이 될 바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크로벤의 이야기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기가 질려 버릴 내용이었다.
“그런데 커뮤니티는 뭐냐? 아까도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인터넷 사이트하고 비슷한 건데.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너도 접속하려면 할 수는 있을 거야. 아, 장비 마련이 아직 무리구나.”
“장비 마련이 무리라고?”
“그래. 만들어지면 전용이라서, 등록된 사용자 말고는 사용할 수가 없다. 사려고 하면 못 살 것도 없지만, 가격이 항성계 2―3개 정도야. 나야, 황금의 아드베리아 행성인이니까 공짜로 받았지. 물론 너는 해당 사항 없어.”
“…….”
천일은 말문이 막혔다. 전용 장비 어쩌고는 둘째 치고 가격이 항성계 2―3개라니. 커뮤니티라는 곳에 나도는 정보는 탐났지만 급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왜 훔쳐본 거야? 그런 쪽이 아니면 수상한데. 솔직히 말해 봐. 너, 그런 거지?”
크로벤은 집요했다.
“아냐.”
딱 자르는 천일.
“뭔데? 말 안 하면 가서 말한다.”
“누구에게?”
“베베였지? 거기 있는 네 부관.”
“…….”
“천일이 문틈으로 엿보고 있었다고 말하면.”
크로벤은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빙글 웃는 얼굴로 천일을 바라보았다. 딱히 사정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천일이 곤란해하는 것이 재밌었다. 지금까지 당해 온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별건 아니고.”
천일은 할 수 없다는 듯 아세란과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베베의 반응을 말해 주었다. 덤으로 베베를 돕고(?) 있는 엔더스의 조언도 함께.
“에이, 난 또 뭐라고. 신경 써서 손해 봤다.”
크로벤이 시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야, 이게 얼마나 난처한 일인 줄 알아? 베베는 유능해. 나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란 거 네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천일은 약간 불쾌했는지, 크로벤을 째려보았다.
“넌 영웅이고 베베라는 애도 부관이고.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이면 가서 확 해 버려. 너야말로 이상하다. 필요에 따라 영웅 아세란의 키스는 받아들였으면서, 부관에게는 그 정도도 못해 주냐? 어차피 일이천 년 얼굴 맞대고 살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쭉 손발 맞춰 가며 지내야 할 텐데. 아세란이야 어차피 영웅이고 서로 용무 끝나면 헤어져야만 하는 사이지만, 부관은 죽을 때까지 너에게 매여 있어야 하는 거잖아. 소홀히 대하다 걔가 딴마음 먹으면 어쩔 건데?”
논리적으로 타당한 크로벤의 지적.
“…….”
천일은 말문이 막혔다.
“잘해 봐. 나는 어차피 외인이고, 걔는 네 식구니까. 식구 관리를 어떻게 하든 그거야 네 마음이지. 하지만 집안 단속도 못하는 영웅의 계획을 내가 믿고 따라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크로벤은 불신의 눈빛으로 천일을 바라보았다.
“걱정 마. 네가 걱정할 만한 사태는 생기지 않을 거다.”
천일은 어쨌든 크로벤의 쓸데없는 걱정을 없애야만 했다.
“걱정 말라는 그 말, 알았다, 믿지. 그럼 힘내. 가서 콱! 알지? 영웅은 그런 자리다.”
크로벤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더는 귀찮았는지 일어났다. 천일 역시 더 나눌 대화는 없었기에 나가는 크로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진짜 골 아프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터졌어. 크로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후우.’
천일은 풀리지 않는 고민 덕에 한동안 조각상이 되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