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117
117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5권(17화)
4. 막을 내리는 아틀란티스 월드(5)
엔더스는 힐끔 베베의 눈치를 살폈다. 천일이 크로벤을 만나 동요를 보인 찰나, 엔더스는 살짝 열린 문틈의 존재를 인지했다. 베베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도 베베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실시간으로 제단을 처리하는 데 성공하였는지, 실패하였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따위를 보고받아 처리하고, 관련 사항을 정리하여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하고, 열 사람이 매달려도 힘에 겨울 일을 베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혼자서 처리했다.
손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광속.
처음에는 노트북 하나, 데스크탑 하나였는데, 지금 베베의 책상에는 노트북이 3개, 데스크 탑이 2대 해서 총 5개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탁.
음악처럼 흐르는 타자음. 엔더스가 하는 일은 그 옆에서 베베의 시선을 피해 들어오는 사안들을 처리하는 것뿐이다.
엔더스도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나 있어서 일처리 속도가 신의 경지라 말해지고 있지만, 베베에 비하면 갓난아이나 다름없었다.
‘에잉. 남자가 돼서는.’
엔더스가 천일을 떠올리고는 슬쩍 어금니를 깨물었다.
천일이 쓸데없는 말로 베베를 동요시키지 않았다면 광속이 아닌 초광속이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천일을 동정했다.
천일에게는 엔더스 좋을 대로 의견을 제시했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분명 껄끄러울 테니까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베베,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겉모습은 가지런한 금발머리가 인상적인 소녀다. 12살이나 13살 정도. 많이 쳐 줘도 15살을 넘었다 보기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외모가 그렇다는 이야기로 알맹이는 할머니의 할머니가 할머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거기에 흡혈귀다. 마녀다. 그녀 자신은 흡혈을 하여 사람을 죽인 적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흡혈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때려죽이거나 찢어 죽이거나 한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녀의 피를 받은 자들에게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로얄 블러드 가문의 금색 마녀.
로얄 블러드 가문의 두뇌이며, 가주가 아끼는 보석이며, 애완동물이며, 장난감이며, 애첩이며, 하녀이며 등등.
그녀의 명예를 더럽히는 소문은 끝이 없었다. 다소는 거짓이 섞여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리라.
신뢰할 수 있는 소식통에 의하면.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육체가 12―13세 정도에 머무는 것은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나.
진실의 여부는 그녀 자신만 알겠지만 상관없이.
천일이 위에 언급된 이야기들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녀의 외모를 생각하면 여자로 생각되지 않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게다가 천일에게는 마왕이 있었다. 엔더스는 사실 반신반의하는 이야기였다. 그가 보고 듣고 읽은 것에 의하면 진왕과 마왕의 관계는 주종 관계 같은 것이었다. 알콩달콩한 로맨스 같은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마왕이 진왕을 소유한다는 이야기.
잘못된 지식이었지만, 그 잘못된 지식은 잘못된 지식인 채로 존재해야 했기에 진실을 아는 자들은 진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갔다.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게다가.
엔더스도 청춘일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복수의 여성을 애인으로 삼아 지냈던 적이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그런 엔더스를 부러워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남부럽지 않은 좋은 추억이지만,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한다면 고개를 흔들 터였다. 복수의 여성을 애인으로 삼아 지내는 일보다 단 한 명이라 해도 좋으니 아름답고 멋진 여자와 가정 꾸리는 일을 선택하고 싶었다.
헌터라는 직업을 가진 한 그런 일 가능하지 않겠지만.
그런 이유로 해서 엔더스는 천일을 동정했다. 하지만 영웅이라고 하니 그 정도는 감당해야지, 라는 생각도 있었다.
오랜 과거.
영웅이라고 불리고 싶어 헌팅을 시작했고, 명예를 위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날뛰던 젊은 시절. 그때는 멋모르고 마냥 영웅을 동경했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었다. 위기를 넘어 명예를 얻고 미녀를 양쪽에 끼고 위세를 부리는 것보다, 느긋하게 흔들의자에 앉아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감상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맛좋은 와인을 한 잔 하는 쪽이 더 좋았다.
엔더스의 소망이 그렇다는 거다. 현실은 빠르게 줄어드는 헌터들로 인해, 은퇴를 하고 싶어도 은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때때로 젊은 혈기에 헌터 조직을 만들고 연합체의 우두머리가 된 것을 후회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었다는 거다.
그래도 뭐.
시대가 바뀌어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외계인의 등장이라는 황당무계한 사건 때문이지만.
어쨌든 지구의 영웅이라는 자가 잘해 주었으면 했다.
달칵.
천일이 들어왔다. 조건 반사적으로 움직이던 엔더스의 손이 멈췄다. 자신의 조언이 먹혀들었는지, 어떤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잘되어 가?”
천일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느니라. 본녀는 네 사생활이 어떠하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야.”
베베의 선공!
진실은 아니었지만 엔더스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베베가 천일을 좋아해서 천일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라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구를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
천일의 방어!
엔더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진실은 조금 달랐다. 엔더스는 베베를 색안경 끼고 보고 있었고, 천일에 대해서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알고 있느니라. 그래야 지구의 영웅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본녀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그것이 분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니라. 마왕도 여자이니라. 지구를 위한다는 명분이라면 그녀는 이해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그 마음은 어떨지 걱정되는구나. 너는 타인보다 타인이 아닌 자들을 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야.”
베베의 맹격!
‘내 마음도 좀 생각해 주지? 난 뭐 없어? 이렇게 충성을 다하는데?’
엔더스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알아.”
천일의 대응.
“무엇을 안다 하느냐. 내, 보기에 너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미안해.”
“무엇이 말이더냐.”
“흠흠. 괜찮아. 가끔은 너도 상대해 줄게.”
천일의 이 말.
엔더스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래, 그래야지. 암이라고 생각하면서.
“……!”
베베의 얼굴이 굳어졌다. 동시에 천일은 양손으로 베베의 목덜미를 감쌌다. 그러면서 슬쩍 의자를 틀어 베베의 얼굴을 정면에 오게 했다.
“…….”
베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천일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이지?”
베베의 질책 섞인 대사.
엔더스는 ‘역시!’라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것이 바로 ‘연륜! 경험!’이라고 기뻐했다. 동시에 천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나도 꽤 사람들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은 잘 모르고. 역시 엔더스가 옳은 걸까? 그렇겠지. 거부하지 않고 있으니.’
라고.
때문에 조심스레 베베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좁혀져 1cm 정도가 되었을 찰나.
발칙하게도 베베는 슬쩍 빼는 몸짓으로 일어나서는 천일의 어깨에 양손을 대었다. 그리고 벌어지는 역습.
“……!”
천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입술을 타고 들어오는 뜨거운 혀의 감촉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은 아예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목덜미가 따끔했다. 베베는 키스를 유도하는 척하면서 천일의 목덜미에 이빨을 꽂았다.
쭈욱.
전혀 귀엽지 않은 소리가 1분 정도 천일의 귀를 두드렸다. 그 후, 베베가 만족한 얼굴로 천일에게서 떨어졌다.
“여전히 맛있는 피로다.”
베베가 말했다.
“하아.”
천일이 한숨을 쉬었다.
“본녀의 입술과 혀를 기대했더냐?”
베베가 고양이 같은 얼굴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전혀 읽을 수 없는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기대라. 글쎄, 손톱만큼?”
천일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본녀가 슬퍼했던 이유는 네가 지구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니라. 마왕은 널 좋아하고 있느니라. 그 형태가 사람들의 것과는 달라도, 그것은 할 수 없는 일. 그녀의 절반은 인간이 아니니라. 네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지. 그리고 너는 지금까지 본녀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지극히 인간다운 비열한 남자이니라. 본녀는 그런 남자 싫어하지 않느니라. 좋아한다, 싫어한다,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면 좋아한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잊지 말거라. 마왕의 반은 인간이니라. 반은 인간이 아니기에 너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해도 상처를 입을 것이고, 아파 할 것이야. 너를 속박하는 지구 그 자체를 미워하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이야기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느니라. 처신을 분명히 하는 편이 좋으니라. 얌체같이 어중간한 짓만 골라 하지 말라는 뜻이니라. 이런 말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이야기겠지.”
베베는 불쾌함을 가득 담아 말을 쏟아 냈다.
“…….”
천일은 잠깐 생각하는 얼굴로 베베가 늘어놓은 설명을 주워 담았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다시는 구차한 변명 같은 것을 방패 삼지 않도록 하지.’라고 말했다.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마음에 드느니라.”
베베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지금의 시간은 금보다 귀해서 말이야. 이리저리해야 할 일들이 있다. 남은 일도 부탁해.”
천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베베의 거처를 떠났다.
“염려는 붙들어 매거라. 누구의 지시라고 거부할까. 최선을 다할 것이야.”
베베는 없는 천일에게 그런 말을 하고는 광속을 넘어 초광속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엔더스는 깊은 의혹을 느꼈다. 이야기의 흐름만 보면 틀린 것은 자신이었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1분 정도 고민하던 엔더스는 베베에게 ‘그래서 진심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라고 물었다.
“여전히 쓸데없는 참견을 좋아하는 녀석이로구나. 네가 이상한 말로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이야기가 풀리진 않았겠지. 그 점은 고맙구나.”
베베는 엔더스와 천일이 문밖에서 나눈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문이 있고, 거리가 있고, 방음장치가 있다고 해도 베베의 귀는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진심이 대체 뭐지?”
엔더스는 집요했다.
“일이나 하거라.”
베베의 회피.
“키스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그렇다.”
엔더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느니라. 그런 부분은 본녀가 알아서 할 일이거늘. 네깟 놈이 끼어들어 참견할 일이 아님을 알거라. 이빨을 뽑아 저주받은 흙무더기 묘비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베베가 협박성 발언을 했다. 그래서 엔더스는 더 말할 수 없었다. 이빨을 뽑아 저주받은 흙무더기에 꼽겠다는 것은 몸의 말단부터 썩어 들어가는 저주를 걸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