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35
35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2권(10화)
3. 마왕이 마왕이어도 외계인은 외계인(4)
베베와 마왕이 체비트의 연구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천일은 검은색 고스로리 드레스를 입은 마왕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반하기라도 한 게냐?”
베베가 농담을 건넸다.
“……!”
마왕이 안색을 굳혔다.
“하하하. 그, 그게 뭐랄까. 아무튼 예뻐.”
천일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차림새가 달라지자 마왕이 공주님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불만이 있다면 색감이었다. 하얀색이나 연분홍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음 날.
재운은 뭐가 급한 지 놀 수 없다며 근육 단련을 시작했고, 천일은 마나 써클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마왕이 천일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왕이 물었다.
“응? 어.”
천일은 수행을 중단하고 일어났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응.”
“나는 마왕의 자격을 잃었습니다. 당신 역시 제 남편이라는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역할 놀이는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왕은 베베에게 살짝 넘어가 주는 척했지만, 내심으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의 억지가 맺어 준 인연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싫어?”
천일이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
“괜찮아. 마왕이라서 너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었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나는 당신의 곁에 쭉 있었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사랑이라고 불릴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마왕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불쑥.
정말로 불쑥.
천일은 마왕에게 한 걸음 다가가 오른손을 그 허리에 두르고 강하게 옥죄며 입술을 훔쳤다.
“……!”
마왕의 눈이 커졌다.
10초 정도 지나고.
천일이 떨어졌다.
“이걸로는 안 될까?”
짝.
경쾌한 따귀 소리.
마왕의 손이 천일의 뺨을 날리고 있었다. 소리만 컸지 천일은 고개를 돌리지도, 아픈 기색도 내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날 농락할 셈입니까?”
“아니.”
“그럼 뭡니까. 어째서 갑자기 그런 짓을, 그런 짓을.”
마왕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대화한 지 오래됐네. 미안, 소홀했다.”
천일이 사과했다.
“저는 그런 것을 지적하고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나의 편의에 의해, 마왕의 사정에 휘말린 당신을 구하고자 했던 제 판단으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나는 그 일로 인해 죽을 각오도 했습니다. 당신이 빛의 진영으로 갔다면, 나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심판의 의식을 받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그랬다면.”
마왕은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럼 말이야. 나도 한 가지만 물어도 돼?”
천일이 화제를 돌렸다.
“말씀하십시오. 대답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드리겠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를 구하기 위해 그런 위험을 무릅쓴 거야?”
“그건…… 당신이 무관계한 인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어떤 진영에도 속하고 있지 않아. 체비트나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나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는 만만한 자가 아냐. 그리고 그는 계속 강해지겠지. 나는 보호가 필요해.”
“보호입니까?”
마왕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천일이 마왕에게 보호를 말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 솔직히 지쳤어. 전에 이야기했지? 전생에서 천 년을 살았다고. 살다가 살다가 지쳐서 말이야. 드래곤 로드에게 도전을 하러 갔어. 싸우기 싫어하는 드래곤 로드와 싸우기 위해 헤츨링을 죽이기까지 했고.”
“…….”
“삶은 무료해.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먹고 자는 일만 신경 쓴다면…… 그때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존재는 아이를 가질 수도 없었고, 황제의 부름에 응해 전장에 나서는 일이 전부였어. 나는 솔직히 뭘 하면 좋을지 몰랐던 거야. 그리고 다시 태어났을 때, 전생의 기억을 전부 거짓으로 치부하고 살고 싶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기를 손에 넣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그때부터는 강해지는 것이 무서웠지. 사람들 가운데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들도 있을 거야. 그들이 지구의 평화에 파문을 가져왔으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희망이었어. 새로운 무언가, 드넓은 우주 같은 것 말이야. 하지만 역시 혼자는 재미없어. 나에게는 동반자가 필요해. 하지만…… 언제나 거기서 맴도는 거지. 너는…… 나를 거기에서 구해 준 유일한 사람이야. 이게 사랑은 아닐 거야. 분명 사랑은 이런 게 아니겠지. 사실대로 말해 나는 사랑이 뭔지 몰라. 그런 걸 한 적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언제나 살아남는 것에만 신경 썼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죽이기만 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고. 단지 그뿐인 이야기.”
천일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마왕을 바라보았다.
울먹.
마왕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왜 울려고 해? 울지 마. 예쁜 얼굴로 울면 되겠어?”
천일은 자연스럽게 사탕발림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뭡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마왕의 얼굴은 동요를 보이고 있지만, 말에는 동요가 없었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줄래? 네가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여자에게는 배우고 싶지 않아.”
“……!”
“안 돼?”
“무리한 주문입니다. 사랑…… 그런 건 나도 모릅니다. 난 언제나 마왕으로서의 마음가짐만을 배웠습니다. 그런 내가 사랑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닮은꼴이네.”
“아닙니다. 저는 마왕이 아니게 되었지만, 당신에게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웅이 되면 어떤 여자든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굳이 저일 필요 없습니다.”
“가능성? 푸하하.”
천일은 웃었다. 기가 막힌다는 듯이, 얼굴에 슬픔이 가득 고여 있었다.
“왜 웃는 겁니까? 이상한 말이라도 했습니까?”
마왕이 약간 토라진 말투로 물었다.
“아니, 단지 말이야. 그 가능성이라고 하는 말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표현이라서 잠깐.”
천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느낌이었다.
“혐오?”
마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말이야. 가능성이라는 애매한 것에 휘둘려 현재 주어진 것을 내다 버릴 정도로 바보가 아니거든. 지금 내 손에 있고, 내 눈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능성?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향해 뛰어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지금 내 눈앞에 있고, 나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쳤고, 마왕이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보다는 그것을 감내하려고 노력하는 네가 마음에 들어. 그래서 반 호뮬이라는 사람에게 마왕 가문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여자다! 라고 생각해 버린 거야. 그게 아니었다면 글쎄.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든가 영웅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흥미가 없었을 거야. 그냥 적당히 살았겠지. 분명 그래. 나는 야망보다 여자가 좋아. 콕 짚어서 말하면 바로 너.”
재운이 이 말을 들었다면 무슨 소리를 했을까? 분명 사탕발림이라고 난동을 피웠을 터였다. 베베도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 수가 없구나. 염장질은 적당히 하거라.’라고 한마디 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마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삐―익.
마왕은 그런 효과음이 뇌신경 전체를 마구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돈다는 느낌?
어쨌든.
짝.
천일은 대낮인데 별을 보았다. 양쪽 뺨을 동시에 얻어맞은 것이다. 그도 모자라 마왕의 작은 손이…… 작아진 손이라고 해야겠지, 좌우간 그 손이 천일의 복부를 강타했다.
‘대, 대체 내가 뭘!’
천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프고 정신없는 그 가운데.
불쑥.
이번에는 마왕이 천일의 입술을 훔쳤다. 분명 조금 전의 입맞춤이 처음이었을 텐데, 마왕은 대담하게도 혀를 천일의 입술 사이로 넣었다.
1분 정도.
천일도, 마왕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서로만 탐했다.
“푸하.”
마왕이 떨어졌다.
도도도.
마왕이 도망쳤다.
“…….”
천일은 말문이 막힌 채로 한동안 멍하니,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멍청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여기서 잠깐.
지금까지 간간이 등장은 했지만 무대의 앞으로는 나오지 않은 마왕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마왕의 휘하에는 4대 로얄 가문과 17개의 하위 귀족 가문이 존재했다.
마왕이라는 직함은 남자든 여자든 불문하고 직계 중 장자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직함이었다. 장자가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 그걸로 대가 끊기는 시스템이었다. 마왕 계승 의식은 오직 장자의 장자로만 전해져 내려가게끔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마왕 가문은 진왕의 존재를 중요시했고, 보통은 4대 로얄 가문이 인정하는 자를 진왕으로 삼았다.
흡혈귀, 로얄블러드.
악마, 로얄데빌.
흑마술―흑마법, 로얄위자드.
사귀, 로얄다크소울.
이렇게 4대 가문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지지하는 미묘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고, 이것들과는 별개로 마림(魔林), 괴이도시(怪異都市), 현흑림(玄黑林), 오음(이라고 쓰고 오늘맑음이라고 읽는, 잊혀진 도깨비 마을)이라는 것들이 어둠의 진영 4대 신비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왕 가문은 그들 세력들과의 형평성을 위해 언제나 정략결혼을 추진했다.
그러다 선대 마왕이 평범한 인간을 남편으로 맞이하였다. 엉겁결에 진왕이 되어 버린 남자는 이후 사실을 알고 나서…… 빛의 진영으로 가 버렸다. 당시 마왕은 아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무사했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처형되었다.
4대 귀족 가문의 손에 의해.
대강 그런 이유로 지금의 마왕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강력한 아르바슈 가문 방식의 교육 방침에 따라 키워졌다.
어둠의 진영을 수호하고, 다스리고, 가문의 율법에 절대 순종하는 그런 방법으로.
그렇다고 해도 마왕도 바보는 아니어서 순순히 세뇌당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그 어머니의 그 딸이랄까. 하지만 뭐, 어머니가 어째서 세상을 떠났는지 아는 마당에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선택을 할 수야 없는 노릇.
그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어둠이었고, 태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교육으로 만들어진 신념과 의무로 자신을 무장했다. 그것만이 자신을 지키고 앞으로 나가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랄까, 전부 사라져 버렸다.
그녀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 없고, 기껏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문과 어둠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을 거듭하는 마당에.
별안간 다른 세계로 넘어가 버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의문.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대충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천일이 있었고, 마왕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밀어내려고 했다. 진짜 싫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떠올리자 자신은 너무나 비겁해 보였다, 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삶을 따라 할 생각은 없지만, 마왕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냥 그런 이야기.
마왕 스스로 알아서 답을 찾아야 하는 답.
거기에 천일이 툭 하고 불을 붙여 버렸다. 절대 고의가 아니다. 천일은 마왕에게 그저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 놓은 것뿐이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통해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마왕의 심지를 태우는 불꽃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고, 단계라는 것이 있고, 정도라는 것이 있다.
마왕은 계속 자신 개인의 감정을 억눌려 왔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잊었다. 하지만 사고를 치고 나니…… 어라? 내가 미쳤어! 라는 모양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마왕은 일주일을 넘게 천일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