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49
49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2권(24화)
5. 해답이 없기에 나는―상(9)
가이아는 누가 봐도 괴상한 머리색을 하고 있었다. 리핌 여관 카운터 아가씨와 완벽하게 똑같은 색이었다.
“아니긴 무슨. 언제까지 빛과 어둠의 싸움을 보고만 있을 셈이야? 슬슬 정체를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때가 됐잖아. 영웅 가이르디슈.”
천일이 살짝 언성을 높였다.
“무례한 사람. 가녀린 여자의 과거를 쑤셔 내서 협박하고 있는 건가요? 비열한 짓은 그쯤 해 두고 자리에 앉기나 하세요. 음식이 식습니다.”
가이아가 화제를 돌렸다.
“…….”
천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걱정 마세요. 음식을 먹을 시간은 충분히 있어요. 움직이는 것은 그 후에 해도 괜찮아요. 그동안 거기 있는 무례한 남자가 하고 있는 착각을 바로잡아 드리죠.”
가이아가 말했다. 이에 천일은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착한 아이네요. 음식의 탈을 쓴 독극물을 날름날름 먹을 때부터 알아보긴 했어요. 하지만…… 후훗. 오랜만이에요. 정말로.”
가이아는 그런 말을 하고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얼굴을 했다. 잠시 추억의 상자를 열어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일부러였냐.”
천일은 알고 있었지만 투정 없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는지 한마디 했다.
우물우물.
오늘 나온 음식은 맛있었다.
“인간은 어둠이 아니에요. 죽은 자는 부활하지 않아요. 당신도 알고, 나도 알죠.”
가이아가 불쑥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
천일은 귀를 기울였다.
“저는 당신의 생각대로 여신 가이아이며 빛의 진영에 여신의 숨결을 내리고 있는 존재예요. 하지만 빛에 속했다고 믿는 사람들. 빛의 진영에 몸을 담은 사람들이 어둠과 싸우는 진짜 이유는 저와는 상관없어요. 그들은 여신 가이아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랍니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명확하게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그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추악한 것도 비열한 것도 있겠죠. 제가 나설 자리는 없어요.”
가이아는 말을 마치고는 씁쓸한 미소를 띠웠다.
“장난하냐?”
천일이 기가 막혔는지 먹던 것을 멈추고 가이아를 노려보았다.
“장난? 이런 일로 장난? 과거의 저는 어쨌든 지금의 저는 빛과 어둠의 싸움이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장난 아니에요.”
가이아는 진심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
천일은 어떻게 믿겠냐는 얼굴로 가이아를 노려보았다.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저는 그래요. 죽은 연인을 부활시키기 위해 그의 정신과 시체를 가지고 지구에 왔어요. 당시만 해도 인간의 수는 매우 적었어요. 머리만 조금 좋은 원숭이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랬지요. 그랬기에 부담 없이 실험에 착수할 수가 있었어요. 지각을 뚫어 맨틀까지 내려가 실험실을 차려서 이것저것 해 보았지요. 그러다가 그만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실험실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답니다. 거기서 포기했으면 지금의 인간은 없었겠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모든 일은 그게 시작이었지요. 인간들이 그 영향을 받아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옛 동료들이 찾아오고. 숨어 지내느라 얼마나 혼났는지. 분명 저는 그렇게 살았었어요. 그러는 가운데 그를 만나게 되었죠.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저 자신도 놀랐었죠. 그렇게 해서 요정족이라는 것이 탄생하였답니다. 호호.”
가이아의 옛이야기는 충격적인 사실로 가득했지만, 천일에게는 화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본론을 말해. 본론을.”
천일이 살짝 짜증을 냈다.
“알았어요. 그게 좋겠네요.”
가이아가 동의를 표했지만, 천일이 듣기에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들을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요정이 어쩌고, 천사가 어쩌고, 악마가 어쩌고, 그런 가운데 구시대의 주민이라 불리는 진조가 발생하고.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거다.
대지 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어둠에 영향을 받은 인간이 진조를 낳고, 보통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부분과 어둠이 더해져 요괴나 악마 같은 것이 탄생하고, 그에 맞추어 가이아도 천사나 퇴마 일족을 만들어 내고.
그때부터 빛과 어둠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언제 이야기인지 대체.
하지만 가이아가 정말로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둠과 빛의 영향 속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자신의 두 발과 두 손으로 걷는 인간의 존재였다. 가이아가 생각했던 대로라면 인간은 멸망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지구의 선택을 받았다는 듯이 빛의 자식들과 어둠의 자식들을 낳기도 했지만, 자신들과 같은 존재를 낳기도 해서 어떻게든 종족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인간의 수가 빛과 어둠의 자식들의 수를 크게 웃돌고, 인간의 지혜와 강함이 빛과 어둠에 대항할 수 있도록 성장하고.
가이아는 빛의 정점에서 내려와 인간들 틈에 섞여 살기 시작했다. 때로는 남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가 되기도 하면서 수많은 인생을 즐겼다. 자손을 많이 만들었다. 그랬기에 가이아는 지구와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과 어둠의 다툼을 손 놓고 보기만 했던 것은 어둠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어둠이 낳은 존재들과 싸워야만 했다.
무거운 이야기.
이쯤 해서 천일이 마검 소울 이터와 마왕, 마신, 그란체와 얽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알고 있어요. 그 정도는…… 이만큼이나 살다 보면 말이죠. 인연이나 운명이나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돼요. 그렇다고 해도 모두의 인생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영웅 등급에 도달한 사람,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의 미래나 운명은 읽지 못해요. 제가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가이아는 그런 말로 답을 주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쩌고저쩌고, 쌀라쌀라.
복잡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빈센 경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 그가 요정과의 혼혈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와 빛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어둠과 사람들에게 빼앗긴 것에 관한 이야기에 도달하였다.
“결국 사적인 원한이 문제라는 거냐.”
천일이 결론을 냈다.
“그렇게 말하면 저도 할 말은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들을 보호하고 옹호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제가 원인이니까요.”
가이아는 이제야 자신의 입장을 털어 놓았다.
“결국…… 말릴 생각 없다, 이거지?”
천일이 물었다.
“회개해도 죄는 남아요. 죄 값을 치르지 않으면 본보기가 되지 않아요. 단순히 악이 날뛰게 될 뿐이죠.”
“…….”
“모른다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명색이 영웅이잖아요.”
가이아가 슬쩍 쐐기를 박았다.
“이봐.”
천일이 툭 말을 던지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미래의 영웅님.”
가이아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언제까지 싸우면 되는 건데? 빛이든 어둠이든 어느 한쪽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아니면 우리끼리 싸우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말하는 우주 괴물급 존재들이 강림하여 다 파탄 날 때까지? 말해 봐. 언제까지야?”
천일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쪽도 알죠? 생명체가 전투 능력 1천만 갤런에 해당하는 전투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경우 소규모의 블랙홀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래서 영웅 등급에 오른 자는 행성에서 1천만 갤런 이상의 전투 능력을 사용하면 안 되고. 사용할 경우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철저한 감시와 제한 아래 사용해야 한다는 걸요.”
가이아가 화제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툭 끄집어냈다.
“알아.”
천일은 일단 대답했다.
“그 때문에 제가 어둠을 처리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우주라면 이야기는 달라요. 이 근처의 우주 지도를 봤으면 알 거예요. 프로페스라는 것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요. 게다가 소행성이나 혜성이나 이런 것들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지구를 위협하죠. 그러한 모든 것을 누가 처리했다고 생각하나요? 이해하시죠?”
가이아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다짜고짜 전함들을 이끌고 나타났냐? 잠깐 듣고 보니 이상하네. 혹시…… 네가 부른 거냐?”
천일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런 대목에서는 웃으면 대답을 피하는 것이 정석이에요. 걱정 말아요. 긍정을 표하진 않아요. 부정하지도 않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이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썩을 불여우.”
천일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 칭찬으로 들을게요.”
가이아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바보 같은 짓을 그만둘 거냐? 네가 계시를 내리든 꿈에 나타나든, 기적을 일으키면 빈센이라는 녀석을 추락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잖아.”
천일은 말을 돌려 가이아에게 제안했다.
“그렇게 쉽게 사건이 해결될 거라 생각하세요? 그와 그들의 상처는 말이나 계시 같은 걸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당신은 인간이니 알잖아요.”
가이아가 거절했다.
“그래도 해.”
천일은 물러나지 않았다.
“해요? 어머, 들을 만한 이야기는 전부 들었으니 함정에 빠뜨리겠다, 이건 가요?”
가이아가 얌전을 떨었다.
“됐으니까, 해. 그냥 해. 그냥 하라구. 네 말이나 계시가 통하든 통하지 않든 그냥 해.”
천일은 더 이상 이상한 이야기를 가지고 질질 끄는 짓은 하기 싫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았어요. 연약한 아낙네는 영웅의 강요을 이길 수 없어요.”
“웃기는 소리.”
“그래서 잘난 영웅님께서 생각하는 최종 목표는 뭔가요? 묻지 않을 수 없네요.”
가이아가 화제를 바꾸었다.
“나? 마왕을 부인으로 맞이하여 일상의 즐거움에 젖을 수 있으면 돼. 외에 다른 것은 없어.”
천일이 솔직하게 답했다.
“원대한 꿈이네요.”
“원대하지.”
“그런 의미에서 팀원을 한 명 추천할게요. 받아 줄래요?”
“누군데?”
“더 홀리 나이트 빈센 경.”
“……!”
“그렇게 절 노려보지 말아요. 벗고 싶어진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았어. 하지만 안 돼. 그런 속 좁은 놈을 어디다 써.”
“부하로 두면 자신의 가치관은 상관하지 않고 당신에게 충성을 다 바칠 거예요. 어쩌면 사랑해 버릴지도? 후후.”
가이아는 생각 이상으로 짓궂었다.
“남자가 나를 사랑해?”
천일은 혹시나 하고 물었다. 빈센이 알고 보니 여자다! 라는 결론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지 않나요? 틈을 보이지 않으면 그만인 이야기잖아요.”
혹시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가이아의 짓궂음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