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79
79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4권(4화)
1. 어쨌든 가자, 그녀 같은 사람의 거짓말은 속아 주는 것이 남는 거야(4)
그런데 오지 않는다. 항성의 에너지를 변화시켜 동력으로 삼고 있기에 실드가 무너질 일은 없겠지만, 이대로라면 애써 구축한 생활 영역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버릴 터였다. 남는 곳은 주시자의 방과 그 일대뿐.
시간이 흐르면 놈들은 지칠 테고 최후의 승리자는 자신일 테지만, 생활 영역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일단 후퇴라는 선택을 해야 할 터였다.
불쾌한 이야기.
위대한 정신생명체 프로페스가 벌레 같은 CHONSP 유기생명체 때문에 위기에 몰리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감시를 맡고 있는 파더 놈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분노.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인간들의 출현에 잊고 있었던 것.
영웅 네아.
정신 지배 공격으로 행동을 묶고 DNA 변이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만 것이다. 진행률은 46퍼센트 정도. 5퍼센트 정도만 더 진행하면 휘하에 두고 근위병으로 써먹을 수 있었을 터였다.
종점은 프로페스화.
노바 스페이스 출신 영웅 등급 전투 능력 보유자를 휘하에 둔다는 것은 프로페스들 사이에 커다란 자랑거리였다.
콰아아아.
벽을 뚫고 날아오는 커다란 불덩어리. 공격을 퍼붓던 노블 크라운 멘토와 노블 나이트 멘토가 허둥지둥 물러나기 시작했다.
주시자의 실드를 열심히 공격하던 천일과 재운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시무시한 열기, 휘몰아치는 중력, 더 공격을 하기에는 두려워졌다.
―요 망할 놈이! 감히 내 정신을 파고들어 멋대로 헤집어 놓아? 복수다!―
그런 외침이 울렸다.
영웅 네아의 목소리.
천일과 재운이 주시자를 공격하여 실드를 깎아 낸 덕에 붙잡혀 있던 영웅 네아가 정신을 찾았다.
정신을 찾은 네아는 즉시 항성 내부로 이동하였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변이 중이던 프로페스의 생체 조직을 잘라 내고 원래의 육신으로 탈바꿈했다.
시작되는 복수전.
평소의 주시자였다면 복수전 따위 시작도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천일과 재운의 공격을 막아 내던 중이라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영웅 등급 전투 능력 보유자의 일격을 받는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걸로 전투가 종료함을 뜻했다.
즉, 승리는 영웅 네아의 것.
항성 내부는 그녀에게 있어 물이었다. 산소였다.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만찬이었다. 맛있게 먹고 멋지게 부활. 그러나 천일과 재운, 그외 기타 등등에 대해 관심이 쏠리지 않은 상태였다.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전력을 다한 연속 공격.
부피는 대충 달(Moon)의 크기.
주시자의 쉴드는 애처롭게 부서지고, 천일과 재운은 서둘러 일행에 합류하였다. 대기하고 있던 청애가 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도주길에 오른 것은 빈센이었다. 뒤를 재운이 따르고, 남은 사람들은 멀뚱히 서로 눈치를 보다 마왕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쿠아아아.
주시자가 관리하고 있던 프로페스의 생활 영역이 무너지며 항성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만큼이나 뜨거운 열기.
퍽.
베베가 밤딸기의 등을 발로 찼다.
“우갸.”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탈출구로 날아가는 밤딸기. 직후 천일은 청애의 뒷덜미를 잡아 탈출구에 우겨 넣었다.
휙.
베베의 손이 허공을 스친다. 천일을 쑤셔 넣기 위해 손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천일은 그것을 슬쩍 피해 베베를 통로에 넣었다.
탈출구의 끝은 잃어버린 함선 크사크노사르 관리함선 내부.
베베의 도착을 끝으로 통로가 끊어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천일만이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잃어버린 함선 크사크노사르 필드에서 있었던 일.
천일은 이전의 생애 죽기 위해 행패를 부렸다. 살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추억의 무게에 마음이 짓눌려 있었다.
전생을 기억한 채로 지구에 태어났을 때 순간적으로는 절망했지만, 자신은 더 이상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아니며, 이 세계는 자신이 살던 세계와는 다름을 알고 안심했다.
태어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죽는 것.
사람의 생애란 어딜 가도 기본적인 도식 안에 존재했다. 그렇기에 천일은 쉽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과는 다른 삶.
평범한 보통의 죽음.
친구, 여자, 자식.
하지만 궤도는 처음부터 뒤틀려 있었다. 그것에서 천일은 눈을 돌렸다. 돈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은 간단한 이야기였다.
좋은 직장을 가지면 예쁜 아내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 세계의 상식.
검술이 하늘을 찔러도 의미가 없는 사회.
다소 엇나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절망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전생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마왕과의 일도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천일은 마왕을 사랑해서 마왕의 남편이 되자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마왕 같은 여자는 구원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남편이 되어 주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마왕은 구원받았다.
문자 그대로의 이야기.
얽힐 대로 얽혀 있는 복잡한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소대를 지휘하며 생각했다.
그래, 죽어 버리자.
하지만 그냥 죽기는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 멋지게 적과 동귀어진하자.
한 번 죽었었기 때문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삶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없었다. 지금까지 천일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죽어도 별로 상관없으니까, 모 아니면 도!
세상의 모든 일에는 리스크가 있기 마련이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천일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전생의 추억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 그것을 완전 미래 예지 능력 소녀와 만남으로써 알아 버리고 말았다.
아아,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라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미련이 있다면 베베의 이야기. 마왕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 거라는 거. 하지만 6개월이란 시간은 그것을 퇴색시켰다. 마왕은 결코 천일의 곁에 오지 않고,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행들을 보내고 자신은 항성이 되어 가는 프로페스 함선에 남았다.
그러나.
“오빠, 미안. 알아차리는 게 늦었어.”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
영웅 네아였다. 천일은 자살을 선택했지만, 네아가 간발의 차이로 천일을 구해 내고 만 것이다.
“…….”
천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 어비스 있네. 꺼내. 내 어비스만 가지고 오빠까지 챙기는 것이 무리야. 할 일도 있고.”
영웅 네아가 그런 말을 했다.
“할 일?”
“응.”
“무슨?”
“아직 잔당 남았어.”
“잔당이라면. 프로페스?”
“응. 머더만 파괴된 거야. 파더들이랑 기타 등등이 잔뜩 남아 있다구. 녀석들을 전부 없애지 않으면 안 돼.”
“응.”
천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비스, 마나 화이트홀 소드를 소환하였다. 그러자 영웅 네아는 천일을 놓고 두어 걸음 떨어졌다.
“나도 도울게.”
천일이 말했다.
“아니, 됐어. 괜찮아.”
영웅 네아는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왜? 나도 이젠 영웅 등급이야.”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오빠.”
영웅 네아는 상큼하게 웃었다.
“응?”
“나랑 결혼할래?”
뜬금없는 이야기.
“그게 무슨?”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싫지? 오빠에게는 마왕이 있으니까, 더구나 나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외계인이고.”
영웅 네아가 수줍은 듯 그런 말을 했다.
“……?”
천일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오빠,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쭉 날아가면 될 거야. 나는 아마 여기서 죽어.”
영웅 네아는 쓸쓸한 얼굴로 그런 말을 했다.
“죽어? 웃기지 마. 나에게 부여된 임무는 너를 살려서 돌아가는 거다. 죽게 놔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천일이 말했다.
“그래? 그랬구나. 그럼 날 구하러 왔던 거였어? 네아, 기뻐! 하지만 말이야. 마음만 받을게.”
새침하게 네아가 몸을 돌렸다.
“뭐?”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오빠, 모든 영웅들은 말이야. 죽음을 동경해.”
척 걸음을 멈춘 네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무슨 소리야?”
천일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을 자리가 있으면 죽어 줘야지. 난 너무 오래 살았어. 말한 적 있지? 싸우고, 또 싸우고, 싸우고, 싸우는 나날. 영웅은 결코 패배하지 않아. 의지만 있다면 죽지도 않지. 그러니까 언제나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거야. 천만 갤런 이상의 전투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거든.”
뼈가 담긴 네아의 말.
“……!”
천일은 굳어 버렸다.
“오빠도 모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고마워. 프로페스화되어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은 굴욕이고. 연맹 본부에 가서 전해. 영웅 네아는 그녀를 사로잡은 프로페스 전체와 함께 자폭한다고. 그럼 알아. 이해해 주겠지. 나는 모행성이 없으니.”
“야, 그게 무슨.”
“오빠도 죽으려고 했지?”
네아는 천일과 그 일당을 늦게 발견하기는 했지만, 천일의 행동을 놓칠 정도로 늦었던 것도 아니었다.
“……!”
놀라는 천일.
“오빠는 아직 어려. 나처럼 1억 년 가까이 산 것도 아니잖아. 벌써 삶에 절망하면 어떻게 해? 더구나 주변에 동료들이 잔뜩 있잖아. 그 사람들 다 버릴 거야? 오빠,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 1천만 갤런 전투 능력을 얻으면 지구가 어떻게 될까? 상관없는 거야? 냉정하게 말하면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마왕이라는 아이, 내버려 두어도 괜찮겠어? 무슨 꼴을 당해도 상관없어?”
천일이 가진 단 하나의 희미한 미련을 입에 올리는 네아.
체비트는 네아에게 천일이라면 남편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어디까지나 DNA를 섞어 아이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네아가 강력하게 원했다면 천일은 반강제로 네아의 남편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쭉 살아가기만 하는 영웅에게 안식처가 아닌 반려는 의미가 없으며, 순간의 유희일 뿐이다.
영웅이 영웅인 이유는 그러한 욕망을 자제하고, 영웅으로서 언제나 앞장서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웅 등급의 무게, 그리고 의미였다.
“망설임이 있다면 쫓아와도 좋아. 하지만 잠깐 거기 서서 나의 명멸을 감상해 줘. 보면서 잠깐이라도 좋으니 생각해 봐. 우리의 존재 의미를. 이제부터 영웅 네아는 스스로의 의지로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사퇴하는 거야.”
영웅 네아는 그 말을 남기고 저편으로 사라졌다.
고오오.
영웅 네아는 모든 힘을 쏟아 불덩이를 만들어 냈다. 줄기줄기 커다란 화염이 용솟음 쳐 우주 공간을 휘저었다.
그것을 향해 소리 없이 날아드는 벌레 같은 것들.
단순한 항성이 되어 버린 머더에게 딸려 있던 행성에서 날아오른 프로페스의 무리들이었다. 개중에는 파더라고 불리는 존재도 많이 있었다.
가장 강력한 파더는 새로운 머더의 형성을 위해 항성에 파고들고 있었고, 그 외의 파더들이 네아를 향했다.
파더라 불리는 프로페스의 영웅 등급들의 평균 전투 능력은 1억 갤런.
조금 낮은 것도 조금 강한 것도 있었지만, 대충 그 정도였다. 그런 녀석들이 백이 넘게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것들은 무한대였다.
하지만 목숨을 버리겠다는 영웅 네아의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영웅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수명을 다한 거대 항성이 초신성이 되는 것과 비슷했다. 천일은 시야를 가득 메우는 하얀 빛에 반사적으로 소드 실드를 시전했다.
존재 의미.
천일은 순간적으로 마왕을 떠올렸다. 부모님과 여동생을 떠올렸다. 베베, 재운을 떠올렸다. 청애도 생각났다.
그래도 역시 삶의 의미가 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기에도 무언가 아쉬웠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강함만을 좇고 있었다.
빠르게 강해지는 법만을.
영웅이 되어 마왕을 아내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그녀에게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한 것도 없었다. 걸림돌은 없애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네아가 말하는 영웅의 무게에 관한 것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