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88
88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4권(13화)
4. 누가 이 외계인 좀 말려 줘요(1)
베베는 수완가였다. 한국 정부에게 천일이 어떤 존재인지 납득시키는 한편 천일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 인근 주민들을 퇴거시켰다. 그 과정에서 소소한 마찰이 있었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천일이 알았다면 인상을 쓰고 반대할 이야기.
그러나.
천일은 크로벤을 수행한답시고 집에 없었고, 마왕은 천일의 동생 연이와 외출 중이었다.
“언니, 우리 옷 사러 가요.”
연이는 마왕을 언니라고 불렀다.
“옷?”
마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멋지게 차려 입어요. 그게 뭐예요!”
연이가 싫은 기색을 보였다.
마왕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차림새를 바꾸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막상 입으려고 하니 무엇을 입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베베가 골라 주는 옷은 대개 거창한 드레스 종류였고.
“으, 응? 어.”
마왕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 가요, 언니.”
연이가 마왕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응.”
질질.
밖.
“그런데 언니는 오빠하고 어디까지 갔어요?”
연이가 물었다.
“그, 그건.”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는 마왕.
“키스했어요? 아니면 포옹? 손은 당연히 잡았죠?”
폭풍 같은 질문 공세.
“키스 정도라면. 손은.”
마왕은 말을 아꼈다. 키스는 분명 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손은, 손을 잡고 걷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런 적은 없었다.
“정말요? 우와. 우리 오빠랑 말이죠?”
연이는 놀란 반응을 보였다.
“으, 응.”
마왕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헤. 천일 오빠가 키스를. 여자 보기를 돌보다 못한 존재로 봐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연이가 반색을 했다.
“여자 보기를 돌보다 못한 존재로 본다?”
마왕이 물었다.
“그럼요. 아무리 예쁜 애를 데려와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걸요.”
연이는 태연자약했다.
“…….”
마왕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언니는 키가 크니까, 정장 계통이 어울릴 거예요. 아니면 음. 오빠 취향을 알면 좋을 텐데. 하아.”
연이의 한숨.
“동생인데 몰라?”
마왕이 물었다.
“그럼요. 얼마나 가드가 단단하다고요. 무슨 옷차림을 해도 그냥 ‘어, 예쁘네.’이게 전부라고요.”
연이가 질린다는 투로 말했다.
“끙.”
마왕은 천일답다라고 생각했지만 아쉬웠다. 동생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드라마를 보면 그냥 운명적인 만남 그런 것이던데요.”
연이가 화제를 바꿨다.
“음.”
마왕은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 등장한 만남보다 시시하고 재미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언니.”
연이가 또 화제를 바꾸었다.
“응?”
마왕이 반응을 보였다.
“언니, 그거 알아요? 언니 되게 예쁘다는 거. 오빠야, 드라마 쪽이 훨씬 낫지만 언니는 달라요. 옷을 좀 화려하게 입으면, 프릴 달린 거 같은 걸로, 치마도 조금 짧게. 생각하니 오빠에겐 과분하네요.”
연이는 마왕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
마왕은 그저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연이 혼자 말을 쏟아 내고, 마왕은 가끔 대꾸만 하는 정도로.
신촌까지 왔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낮에는 어느 날이든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거리. 마왕은 껄끄러웠지만 연이의 움직임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여러 군데의 옷가게를 통해 마왕이 변신을 했다. 돈은 마왕이 가진 카드 한 장으로 오케이. 마왕도, 베베도 돈만큼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거 정말 가져도 돼요?”
연이가 물었다.
사는 김에 마왕은 연이의 옷도 네다섯 벌 사 주었다. 액세서리도 함께.
“응, 선물이다.”
마왕이 답했다.
“그런데 말투 원래 그렇게 딱딱해요? 설마 오빠랑 둘이 있을 때도 그런 거 아니죠?”
스쳐 가는 연이의 질문.
‘천일과 단둘이 있는 적이 언제였지?’
생각하는 마왕, 하지만 입은.
“글쎄.”
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럼 어떻게 해요! 오빠 같은 사람한테는 자기야― 라거나 하는 게 필요하다고요.”
연이의 지적.
“자, 자기야?”
마왕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우와. 언니, 드라마보다 심각한 거예요? 이렇게 예쁜 외모를 가지고?”
연이가 의문을 표했다.
“…….”
마왕의 경우는 할 말 없음.
“하아.”
연이는 눈치 빠르게 짐작을 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보통, 그런 거 말하나? 자기야, 라고.”
마왕이 물었다.
“그럼요! 사랑하는 연인끼리라면 자기야― 라거나, 아앙― 라거나, 많다고요.”
연이의 주장.
“그거 배우고 싶군.”
마왕이 말했다.
“알았어요. 언니, 날 따라와요.”
연이는 그렇게 마왕의 손목을 잡고 신촌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천일은 머리가 아팠다. 크로벤을 두들겨 패서 혼내 준 것까지는 좋은데, PCD를 두들겨 패다니 전대미문의 일이라며 문제 삼겠다는 크로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요구 조건.
여자를 소개시켜 달란다. 그래서 아직 덜 맞았나 하는 생각에 천일이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크로벤은 급히 말을 바꾸었다.
소개는 부탁하지 않을 테니, 헌팅은 허락해 줘.
집요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천일은 왜 그리 집착을 하냐며 크로벤에게 질문을 했다. PCD쯤 되는 존재가 여자 사귀지 못해서 안달이라니, 개떡 같은 이야기가 따로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이를 낳아 줄 사람이다. 어중간한 것은 용납 못해!”
크로벤이 외쳤다.
“연맹에는 여자가 없냐? 많잖아.”
천일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 단순히 아이를 원했다면 진작 했지. DNA를 구매해서 기계에 넣고 돌리면 아이는 만들 수 있어. 하지만 거기에는 온정이 없지.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크로벤이 주장했다.
“가정. 후우.”
긴 한숨.
천일도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대해 알 만큼 알기에 할 말이 없었다. 자손을 만든다는 것, 사랑을 나눈다는 것, 그들에게 있어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수명은 연장하면 연장할 수 있는 것이었고.
“지구는 정말 멋진 곳이다! 아직도 사랑과 가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행성이 얼마나 많은지. 지구인인 너는 몰라. 순수함이 사라진 행성 사람들의 의식 체계를.”
크로벤은 맺힌 것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너, 네 정체는 어떻게 설명할 셈이냐?”
천일이 물었다.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전부 가르쳐 준다. 내가 지구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여 가정을 꾸리게 되면, 화성이든 금성이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지.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크로벤은 자신만만했다.
“가슴 있는 남자 외계인이냐. 좋아할 여자가 있을지 모르겠네. 없을 거라 말은 못하겠다만. 너, 가정을 꾸린다는 것의 의미를 알긴 하냐?”
천일의 의문.
“남자와 여자가 아이를 낳고 함께 사는 것!”
“다른 여자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그게 무슨 소리냐?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
크로벤이 의문을 토했다.
“돌겠다, 진짜.”
천일은 괴로웠다.
“그런 이야기 잔뜩 있지 않냐. 어떤 국가에서는 일부다처도 용납한다고 들었다만,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거 아니냐?”
아무것도 모르는 외계인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는 또 어서 들었냐?”
천일의 소박한 의문.
“인터넷! 거기에는 전 세계를 망라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크로벤이 답했다.
“버려.”
“응?”
“그런 걸로 상식 같은 걸 쌓지 마. 누군가를 선택하여 가정을 꾸린다는 것 말이야. 거기에 남은 일생을 다하겠다는 맹세 같은 거야. 그렇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지만, 그게 정상이고 보통이야. 알았으면 헛소리하지 마.”
천일은 단호했다.
“그런 거냐?”
크로벤이 물었다.
“그런 거다. 아이를 만들면 책임을 져야지. 남자가 돼서 그냥 사고치고 나 몰라라 하면 되는 줄 알아? 우주에는 그런 상식 없냐?”
천일은 궁금했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여자가 책임질 수 있으니 가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게 아니면 가지지 않으면 되는 거다.”
크로벤은 진지했다.
“너, 그냥 지구를 떠나라. 뭐가 어째? 지구인들 가운데 그렇게 행동하는 남성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슬픈 이야기가 태어나는 줄 알기나 해? 개소리는 그쯤 해. 진실한 마음으로 한 명만을 선택해서 거기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 없다면, 헌팅이고 뭐고 용납 못해. 지구에서는 내가 법이다.”
천일은 진심이었다.
“어허. 뭐, 뭐. 조,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지키지. 하지만 음. 아이만 생기지 않게 하면 되는 거지?”
크로벤이 천일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 새끼가 진짜. 지구인끼리 그럴 수는 있어도 우주인이 그런 식으로 지구 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용납 못한다. 지구의 영웅인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딜.”
천일이 으름장을 놓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될 거 아냐. 쪼잔하게. 모행성 주민이라고 아끼기는. 우주인이라고 차별이나 하고.”
크로벤이 투덜거렸다.
“너, 아직 덜 맞았지?”
천일의 한마디.
절레절레.
크로벤이 머리를 흔들었다.
“좋아. 알아들은 것으로 알겠어. 하지만 헌팅 제대로 안 되도 너무 실망하진 마라. 가슴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남자로 인식되는 일도 어려울 거야.”
진지한 천일의 충고.
“가슴만 없애면 되냐?”
“없애면 다시 만들어 붙일 수 있냐?”
“…….”
“그냥 태어난 대로 살아. 혹시 알아? 운 좋으면 네 있는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줄 여자를 만날지.”
천일은 입으로 그런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네 외모로는 남자를 꼬시는 게 빠르겠다. 얼굴은 갸름하니 예쁘장하고, 가슴은 또 크고. 어휴. 이런 게 남자라니. 황금의 아드베리아인인지 뭔지 하여간.’
라고 중얼거렸다.
“조, 좋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아보겠다.”
쓸데없이 의욕을 불태우는 크로벤.
“그런데 진짜 너, 왜 온 거냐? 최고 의회인지 뭔지 무슨 생각으로 널 보낸 건지 모르겠다.”
천일이 지나가듯 의문을 표했다.
“그야, 우리 종족이 멸망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크로벤이 답했다.
“뭐?”
천일이 물었다.
“아드베리아 행성인은 황금, 백은, 청동으로 등급이 나뉘어져 있고 성비가 매우 나쁘다. 남자 100명에 여자 1명 수준. 더구나 등급별로 DNA 구조와 생체 능력이 달라서 자손을 낳는 일도 가능하지 않다. 기술로 만들어지는 아이는 PCD가 되지 못해. 우리들의 수가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번영에 직결된다고 할 수 있지.”
크로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지구 여자와는 PCD가 될 수 있는 자손을 만들 수 있다?”
천일이 물었다.
“그럴 거라더군. 진실은 모르지.”
“…….”
“잘만 되면 지구의 운명은 탄탄대로다. 지구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연맹은 대접을 해 줄 거야.”
“그래서 독도를 폭파하여 국가 간 갈등을 야기하려 한 거냐?”
“그건, 뭐.”
크로벤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트집 잡히는 일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뭔데, 그래? 끝까지 말해 봐.”
천일은 크로벤을 추궁했다.
“그게 있잖아. 우리들이 가정을 꾸린다고 해도 자식은 어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거든. 그런데 지구는 나라와 종족이 많고. 잘못하면 우리들 사이에서 싸움이 날 가능성도 있으니, 그런 일을 배제하기 위해서. 일단 통일 정부를.”
크로벤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천일의 눈치를 보았다.
“에라이.”
천일이 언성을 높였다.
“안 되냐?”
크로벤이 물었다.
“안 돼. 통일 정부니 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너 그런 거면, 헌팅을 도와주는 것은 무리다. 조금 시간을 두고 자격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찾아보는 것이 나아.”
천일이 슬쩍 말을 바꾸었다.
“야, 그건 좀 너무하지. 아직 확실치도 않은 부분이잖아. 우리가 지구 여자와 가정을 꾸려서 PCD가 될 수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야지. 그것만 해결되면 그다음에는 네가 만든 시스템을 존중하겠지만 지금은.”
크로벤이 슬쩍 말을 끊었다.
일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좋아. 하지만 한 번뿐이야. 그래도 책임 못질 일은 하지 마. 어떤 여자를 고른다고 해도 네 책임이야. 여자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뭐. 여자하고 상의하고 해결할 일이지. 아무 여자나 무턱 대고 고르지 말란 말이다. 양다리 같은 것도 안 돼. 알았지?”
천일이 약속을 요구했다.
“알았다. 황금의 아드베리안의 명예를 걸지.”
크로벤이 반색을 했다.
“하아. 좋아, 그럼 가자고.”
천일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크로벤을 이끌고 독도를 떠났다. 자, 어디에서 가슴 달린 남자 외계인을 설치게 하면 좋을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