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21st century, the Sword Master, the Demon Lord, and the Aliens RAW novel - Chapter 89
89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4권(14화)
4. 누가 이 외계인 좀 말려 줘요(2)
강원도 영동 지방에 위치한 해수욕장, 때는 초겨울.
여름이라면 비키니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차고 넘치겠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여름 같은 위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있었다. 짝을 지은 사람들도 있고, 혹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때로는 혼자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와 성별, 차림새는 전부 제각각이었다.
천일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독도에서 가까웠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자, 헌팅이라는 것을 해 봐라. 가슴 달린 외계인아.
크로벤 출동.
크로벤의 본래 모습은 아름다운 황금색의 긴 머리카락과 갸름한 턱선. 어떻게 봐도 여자 같은 외모였지만, 약간의 변신 같은 것도 가능했다.
머리색을 검은 색으로 바꾼다거나 턱 선이나 눈매를 고친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지만 어떻게 해도 여성스러워질 뿐이다. 그의 본질은 다리가 세 개인 남자였고.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사실.
어쨌든.
크로벤은 천일이 지켜보는 가운데 헌팅에 착수했다.
“저기요.”
“여보세요.”
“혹시.”
“시간 좀 내주세요. 차를 사겠습니다.”
“차, 차 한 잔만.”
“잠깐 이야기 좀.”
인터넷의 힘이랄까. 여러 가지 레파토리가 크로벤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여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멀어질 뿐이었다. 도리어 남자들이 ‘저, 혼자 오셨나요?’, ‘차 한 잔 어떠세요?’, ‘제가 요전에 차를 한 대 장만했는데.’라는 식으로 작업을 걸어왔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
천일은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그 꼴을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천일에게도 누군가가 접근을 해 왔다.
“저, 안녕하세요. 배후에 조상신이 보이네요. 은덕을 참 많이.”
여자였다. 빼어나지도 않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외모. 천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가라, 가. 귀찮다.’라며 쫓아 보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크로벤도 저런 부류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런 사람들도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크로벤의 외모는 너무나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가슴이라도 없으면 미청년이라고 우기면 될 텐데 말이다.
그래도 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반나절 만에 한 명 건졌다. 상대는 조금 귀엽게 생긴 여성이었다. 천일은 청애에게 감시를 부탁하고는 해변으로 갔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
뻗어 나가는 시야가 부서지는 파도에 휩싸여 지평선을 향했다. 그런 가운데 문득, 아틀란티스 월드를 떠올렸다.
재운과 빈센은 잘 지내고 있을지.
아세란은 밤딸기를 부관으로 삼는 데 성공했을지.
자유 진영 일곱 신비 수장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지구에 둥지를 틀고 있는 외계인들에 이르기까지.
검푸른 바다에 완전 미래 예지 능력 보유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편지에 적혀 있던 비아냥거림과 따가운 말들.
‘별 같잖은 소리를.’
천일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 실례해요. 혼자 오셨나요?”
누군가가 접근을 해 왔다.
“도에 관심 없습니다.”
천일의 대꾸.
“호호. 아쉽지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관심이 있어서요. 혼자 왔거든요.”
노골적인 이야기.
“임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혼자 오셨어요?”
“……!”
저돌적인 여자의 태도에 천일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여자가 물었다.
“…….”
침묵하는 천일.
사랑이라는 단어에 마왕을 떠올려 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았다.
“없구나. 아니면 말하기 싫다든가?”
여자는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그쪽은요?”
천일이 화제를 돌렸다.
“있었죠. 여자 나이 스물여섯이면, 사랑 한두 번은 해 본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이었다.
끄덕.
천일은 가만히 긍정을 표했다.
“헤어졌어요. 헤어졌다 말하는 것도 이상하려나. 아틀란티스 월드라는 곳에 가 버렸거든요.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잖아요.”
여자는 침착했다.
“그래서 새 애인 모집 중?”
천일이 운을 띠웠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실망했죠?”
여자가 천일의 안색을 살폈다.
“아뇨.”
천일이 고개를 저었다.
“실망스럽지 않아요? 관광지에서 말을 걸어오는 여자가, 알고 보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망부석 같은 여자였다는 사실이?”
여자의 의도는 알 수 없었다. 천일과 여자는 처음 만나는 사이인 만큼 탐색전을 하는 것이리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라면 상대가 애인이 있든 뭐든 상관없을 겁니다.”
천일이 답했다.
“그렀네요.”
“네.”
“그런데 원래 그래요?”
“네?”
“여자가 말을 걸었으면 호기심을 드러내거나 하는 것이 예의이고, 정상이잖아요. 나, 그렇게 못생겼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도발적인 여자의 발언.
“하하.”
천일은 한바탕 웃고는 ‘말했지 않습니까 임자가 있다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까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 확신은 없지만.’라고 말했다.
“이상한 이야기네요.”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천일이 물었다.
“임자가 있는데 좋아하지는 않고,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아니고. 솔직히 말해 봐요. 그쪽도 애인 모집 중이죠?”
여자는 묘하게 천일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게 바로 선수일까? 천일은 그런 생각을 하며 씨익 웃고는 발을 돌렸다. 그 태도가 여자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여자는 대담하게 천일의 소매를 잡고는 ‘이봐요. 진짜 이럴 거예요? 관광지에 혼자 왔으면 규칙을 준수하셔야죠.’라고 말했다.
“규칙?”
천일이 발을 멈추고 여자에게 물었다.
“제가 마음에 들면 든다, 아니면 아니다. 그런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무시하지 마세요.”
여자가 새침하게 그런 말을 했다.
“그런 게 있습니까? 몰랐습니다. 하하.”
천일은 웃음으로 넘기려고 했다.
덥썩.
“그러니까, 그렇게 웃으면서 넘기지 말라고요.”
여자는 놓지 않았다.
“하아.”
한숨.
천일은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관광지면 다 이런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랑이란 뭘까요?”
라고 물었다.
“에?”
당황하는 여자.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죠? 그 사람이 아틀란티스 월드로 갔다면, 따라갈 생각 안 하셨습니까?”
천일의 반격.
“자격 없데요. 나의 DNA에는 아틀란티스 월드로 갈 만한 잠재 능력이 없다더라고요.”
여자가 답했다.
“DNA의 잠재 능력이라.”
천일이 중얼거렸다.
“으, 춥다. 커피 한 잔 사 줘요. 자판기라도 용서해 드리죠.”
여자의 제안.
천일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아틀란티스 월드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둘은 근처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천일과 여자는 서로 관심사가 달라 삐걱대는 대화였지만, 여자의 기지로 어떻게든 말이 오갔다. 그러던 가운데 여자가 은근슬쩍 배고프다는 말을 했다. 천일은 밥 정도라면 살 의향이 있었기에 말려들어 줄까 생각했다. 청애가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터였다.
―주인, 주인! 큰일 났어. 그 외계인. 으앙. 몰라. 빨리 와 줘.―
청애는 울먹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급히 일이 생겨서. 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었는데, 계산은 제가 하죠. 그럼.”
천일은 그렇게만 말하고 뛰쳐나왔다.
어떤 호텔, 어느 층의 복도.
“꺄아아아악. 괴, 괴물이야. 괴물!”
여성의 목소리로 보이는 날카로운 절규.
“우왓. 게엑.”
쫓겨 나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가슴이 있는 남자, 크로벤. 덤으로 매끈한 꼬리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 살려! 괴물! 괴물이야!”
여자는 혼란스러운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괴, 괴물이라니. 이봐, 나는 외…….”
크로벤은 그런 말을 하며 발을 돌렸다. 동시에 날아오는 잡동사니들. 인터넷 어디선가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작업에 성공은 했는데, 본격적인 일에 착수하려고 하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쾅.
닫히는 문.
“야! 야!”
크로벤이 애처롭게 문을 두들겼다.
“꺼져! 이 괴물아! 가슴에 꼬리까지. 괴물!”
안쪽에서 들리는 절규.
“야, 말했잖아. 난 외계인이라고.”
크로벤이 소리쳤다.
“…….”
침묵.
여자는 크로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야! 야. 야― 아!”
크로벤이 소리를 쳐도 의미는 없었다. 그래서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했다. 그때 ‘야, 너 뭐하냐?’라는 천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으, 응?”
크로벤이 몸을 돌렸다.
잘록한 허리 라인, 매끈한 피부. 지구인과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풍만한 가슴과 황금색의 악마 꼬리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외계인 ‘남성’이 거기 있었다.
“옷부터 입어.”
천일이 한마디 했다.
“하, 하지만 작업 다, 다 했단 말이야.”
크로벤이 항의했다.
“쫓겨나 놓고는 말이 많다. 뭔가 중간에 오해가 있던 것이겠지. 그만두고 일어나. 아니면 또 맞을래?”
천일이 으름장을 놓았다.
“시, 싫다.”
크로벤은 재빨리 옷을 입었다.
“하아.”
천일의 한숨.
“대체 뭐냐. 네가 몰라서 그렇지 대화가 얼마나 잘 통했는지 아냐? 내가 외계인이라고 했더니, 상관없다고 했단 말이다.”
크로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일반인들 보기에는 외계인 같은 거잖아요.”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머리야. 안 되겠다. 이 녀석 진짜 어떻게 하지.’
천일은 머리가 아파졌다.
“야, 진짜 외계인은 안 되냐? 내가 차도 사 주고, 집도 사 주고. 응? 잘해 줄게.”
크로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에라이.”
천일이 크로벤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쳤다.
빡.
“아씨. 진짜. 너, 황금의 아드베리아인 알기를 뭘로 아는 거냐. 내가 말이야. 연맹에 가서 확 몇 마디 하면.”
크로벤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그냥 더 맞아라.”
투다닥. 퍼퍽.
날렵하게 움직이는 손이 크로벤의 머리와 옆구리에 명중했다.
“크아악. 외, 외계인 차별 반대.”
무너지는 크로벤.
“어휴. 진짜 이걸 어떻게 하면 좋지. 돈다, 돌아.”
천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크로벤을 어깨에 들쳐 멨다.
“미안해요, 미안. 그런 건 무리예요.”
안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말.
“갑니다. 안심하세요. 이상한 해코지 같은 건 없을 겁니다.”
천일은 그 말을 남겨 놓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잔꾀를 하나 떠올렸다.
‘납득하면 좋을 텐데.’
걱정 반, 우려 반.
크로벤을 어깨에 멘 천일은 그대로 호텔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