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
ep1. 귀환자에게 익숙한 세상은 없다. (1)
1화
—작은 변화라도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움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들여다보면 수많은 인과가 격렬하게 뒤섞인 결과이기에 그렇다.
변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저도 모르는 새 도태된다. 뜨거운 물에 삶아져 죽는 공상 속 개구리처럼.
나는 성격상 이런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편이 아니었다. 딱히 와닿는 말도 아니었고.
하지만, 나를 지금까지 살아남게 해준 게 바로 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을 간혹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읏차!”
어깨에 짊어진 사슴 한 마리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거면 내일까진 넉넉하게 먹고, 남은 건 훈연해서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을 테니까.
“윌슨!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소득이 있었어. 이제 벌레 안 먹어도 돼!”
위장을 위해 잔뜩 깔아둔 나무를 헤치며 들어가자, 자랑스러운 내 캠프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둘러친 목책 형태의 울타리에는 독액을 꼼꼼하게 발라두었다. 생명에 지장이 가진 않지만, 건들기만 해도 격통을 일으키는 뱀독이었다.
울타리 사이사이에는 파충류의 신경계를 교란하는 식물의 잿가루를 뿌려놓았다.
그야말로 난공불락. 웬만한 포식자는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만의 안식처.
하지만 이곳에 사는 토착종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윌슨?”
캠프는 너무 조용했다. 사실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이계의 마력을 실은 바람에서 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으니까.
사슴을 내려놓으며 돌도끼를 들어 올렸다. 푸른 수정을 깎아 만든 특제품.
그 순간, 비린내를 품은 바람이 한 번 더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윌슨. 나 없을 때 캠프에 무슨 일 있었어?”
그렇게 딴소리를 하며,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바스락.
들렸다.
이 한순간만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일이 틀어졌다는 걸 깨달았는지, 게가 한 마리 텐트에서 튀어나왔다.
바닷가에 사는 그 게가 맞았다. 하지만 크기는 내 허리춤까지 오는 수준.
나는 기다리고 있다가.
“흐읍!”
흙바닥에 박혀 있었던 검은 돌을 때렸다.
까아아앙······ㅇ.
독특한 소리와 함께 파장이 캠프 일대에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키긱···?”
흙바닥에서 수십의 덩굴이 튀어나왔다. 무언가를 찾는 듯 여기저기 더듬더니, 저 거대한 게를 휘감아 조이기 시작했다.
“키기긱!”
그 단단한 껍질 여기저기에 금이 가고, 끝내 부서졌다. 물론 저 식물이 내 편일 리 없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저것들이 피아 구분에 사용하는 호르몬을 항상 몸에 바르고 다녔으니까.
“후우···.”
이 정도는 별일도 아니지. 빨리 밥이나 먹고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저 게새끼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고···.
“어? 어어?”
그 날카로운 집게가 기어이 풍선 줄을 끊어버렸다. 안 돼!
“위, 윌슨! 돌아와! 안 돼에에!”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윌스으으은!”
나, 강선후. 직업은 탐험가.
이계로 끌려온 뒤 유일한 위안이었던 마지막 친구를 잃었다.
***
지구에 살던 시절, 나는 오지 탐험가였다. 탐험만 하면 생산성이 없어 보이니, 적당히 블로그나 유튜브에 탐험기를 올렸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올린 통짜 녹화본이 알음알음 인기를 끌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이름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는 탐험가였을 수도 있었다.
큰맘 먹고 남미의 한 오지에 도착한 그 날, 공간이 뒤틀리며 균열이 발생했고···.
집에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계에도 문명과 지성체는 있었다. 귀가 큰 미형의 인종과 수인들 말이다.
당연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나를 반기지 않았다. 출신을 떠나서 말부터 통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많은 단어를 외우기는 했으나, 소통이 되었을 리가 없었다.
첫 일 년.
이계 전역에 흩뿌려져 있는 독기에 적응하지 못해 격통에 시달렸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고통.
잠조차 잘 수 없었기에 나는 광인에 가까웠다.
“헤헤···. 한 푼만 주세요. 한 푼만.”
“복 받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키킥··· 포카칩 사 먹어야지···.”
이계인들 입장에서는 방언을 내뱉는 걸인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정착의 희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끝내 광야로 쫓겨났다.
결국엔 극복하고 제정신을 차린 내가 지금 생각해도 대견하다.
이 년째, 어느정도 독기에 적응한 나는 세계 각지를 떠돌며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방향을 읽어내는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세상이었으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정신을 차리며 ‘어떻게든’이란 단어는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삼 년째, 정착해서 야인으로 살기로 다짐했다. 캠프를 건설하고, 토착 생물과 경쟁했다.
이 세계의 생태계는 정말이지 불합리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냥감을 훔치거나 열매를 따 먹으며 연명했다.
독극물을 잘못 먹고 사경을 헤매기도, 집채만 한 동물에게 쫓기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이 숲 전체가 나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야생 동물은 점점 싸움을 피했다.
그리고 사 년째.
“···이 게는 우선 심장부터 제거해야 해. 심실에 고인 독이 살에 스며들면 다 버려야 하니까.”
내가 살아남을 자격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육 년이 훌쩍 넘어서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는 지금은 숲속의 당당한 포식자로 인정받았으며.
“윌슨··· 나쁜 새끼···.”
지금, 이 순간 풍선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물론 별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풍선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미치진 않았으니까. 얼마 남지 않은 위안거리가 사라졌다는 게 뼈아팠을 뿐이었다.
해가 지고, 책상 앞에 앉았다.
“모스Mohs.”
반딧불이 같은 불꽃 한 줌이 허공에 떠올라 책상을 밝혔다.
이계의 언어였다. 어떻게든 배웠던 몇 개의 단어는 말하기만 해도 마법처럼 현상을 만들었다.
아마, 이계의 언어는 그 자체로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 내 상식이 통할 세상이 아니니.”
낡아빠진 공책에 재를 녹여 만든 먹물로 글자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는 챙긴 기억이 없는 공책.
생존 투쟁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일지를 적었다.
알게 된 것, 알아야 하는 것, 느낀 점.
모든 걸 이곳에 기록했다.
[오늘로 몇 년이 지났는지 알 수 없다.오랜 시간 조난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몸보다는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좋은 생각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이계의 전설 속 보물에 대한 망상일지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단 백 배 더 좋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지막 장이었다. 종이를 만드는 법은 모르고 가죽은 거칠어 글쓰기 힘든데.
“하아···.”
윌슨도 잃어버렸는데, 종이까지 바닥나다니.
한동안은 남아 있는 여백을 최대한 이용해보자.
정성스럽게 눌러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지막 장에서, 마지막 온점을 찍었을 때.
콰지직···
“···응?’
파지지직—
오두막 한가운데에 균열이 열리기 시작했다.
날 여기로 보내버린 그건데?
“으아? 으아아아!”
***
“에그···!”
누군가 놀라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이계에서 살던 동안 내 청각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집중하면 풀벌레 걷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저 큰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게 그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인가?’
이 문장 하나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재수 없고 멍청한 귀쟁이 깐프 놈들도, 털이 북슬북슬하고 수상하게 돈이 많은 수인종도 아니었다.
이계에도 물론 인간은 있었다! 하지만··· 저 표정, 저 옷차림···.
“여기, 지구예요?”
“아휴, 놀래라. 무슨 일 있어요? 총각 차림새가 왜 그래?”
뽀글머리 아줌마의 몸빼바지가 이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으아, 으아···.”
“으, 아? 크게 좀 말해봐요. 잘 안 들려.”
“으아아아!”
“어매나 깜짝이야!”
지구로 돌아왔구나.
***
“저···.”
뭐야?
검은 장발의 여성이 난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났나?
《OWIC(주) / R&D본부 / 과장 진서연》
그 정장 차림과 이름표를 보고 나서야 기관 쪽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다.
“아, 되성합히다.”
“아니, 아니에요. 다 드시고 이야기하죠. 천천히 드세요.”
나는 다시 컵라면에 집중했다. 이 MSG의 맛. 혼절할 정도로 강렬했다. 농담 아니라 기절할 것 같았다. 인간 문명은 역시 위대해.
컵라면 세 개를 순식간에 해치운 후에야 진서연은 입을 열었다.
“성함이 강선후 씨. 맞으시죠?”
“네.”
“신원 파악이 방금 끝났는데요. 2년 전에 실종 신고가 되어 있더라고요.”
“2년이요?”
말도 안 된다. 내가 센 햇수로만 최소 6년이다. 그 뒤로는 새는 것마저 포기했다.
물론 다른 세상의 하루가 지구랑 같을 리 없었지만, 더 짧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간단한 조사가 필요한데요.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
다른 세상과 그곳에 있었던 이종족 문명, 그리고 괴물과 다름없는 토착 생물들.
어떻게 말해야 미치광이 취급을 덜 받을까?
내가 말이 없자, 진서연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차원문 저편으로 넘어가셨던 건가요?”
“네?”
“입고 있던 옷, 스캐븐 울프의 가죽이더라고요. 가방 속에 있었던 게 껍데기는 레이더 크랩일 거고요.”
스캐븐 울프? 레이더 크랩? 그것들을 그렇게 부른단 말이야?
아니 애초에 그 짐승들이 뭔지 알고 있다는 건···.
내 표정이 엔간히 미묘했는지, 진서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2년 전 이계와 지구가 연결됐어요. 우리는 강선후 님이 그 파동에 휩쓸려 넘어갔을 거로 생각하고 있고요.”
***
2년 전 차원문이 열렸다.
던전이 열리고 괴물이 인류를 괴롭히는 상황은 의외로 발생하지 않았다. 인간은 가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했으니까. 각 정부군은 차원문을 신속하게 통제했고, 안정화에 성공했다.
인간에게 그 너머의 세계는 오히려 기회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그 순간처럼.
사람들은 그곳에서 각자의 꿈을 찾기 시작했다.
“···라는 말이죠?”
“정리하자면 그래요.”
진서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대륙이라니.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은 2년으로 충분한 모양이었다. 벌써 많은 사람이 탐욕스러운 눈길로 이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2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그 너머를 잘 몰라요. 본격적인 조사는 안 하고 있거든요.”
“왜 조사를 안 해요? 기회라며?”
“들어가는 돈에 비해서 위험이 훨씬 크거든요. 거기서 뭘 얻을 수 있는지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고···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죠. 함부로 발을 들이면 위험할 수 있는 독기에, 각종 변칙 현상. 그리고 거기 사는 것들은··· 아시잖아요?”
괴물들이지.
다시 생각하니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연구원은 내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의문이 가득한 듯했다.
“근데··· 강선후 씨.”
“네.”
“그곳에서 2년이나 살다 오신 게 정말 맞나요? 혹시 도시에서 머무르셨다거나···.”
“아뇨. 도시 것들 순 나쁜 놈들뿐이에요.”
“그럼요?”
“쫓겨난 뒤로 숲에서 살았어요. 베어 그릴스 다큐멘터리 보셨나?”
“···2년 동안요?”
절대로 2년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체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그녀의 미묘한 표정에 담긴 건 차라리 경의에 가까웠다. 그 이야기를 몰래몰래 듣는 주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2년간 이계의 야생에서 살아남는 것.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동감이야.
그 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대기하라며 병실로 안내했다.
깨끗한 침대, 쾌적하고 건조한 공기, 그리고···.
“스마트폰···!”
이계로 빨려 들어간 뒤 생존에 필요 없는 촬영 장비들은 전부 버렸지만, 이 핸드폰만큼은 가방 깊숙한 곳에 몇 겹이나 감싸 모셔뒀다.
언젠가 전기를 얻게 되면 다시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오두막에서 말린 고기나 먹던 때를 떠올리자 이 모든 게 귀족의 궁전처럼 느껴졌다. 침대는 푹신했고, 이불의 매끈한 촉감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핸드폰에 충전 선을 꽂았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을까?
등이 따뜻해지고 배가 불러오자 관심사는 거기로 향했다. 전원을 올리자 어색한 불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내 유튜브 채널은?
<휴면 계정입니다.>
영상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애초에 조금이었지만, 그마저도 줄어든 구독자 수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오래된 채널에 애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건 여전히 궁금했다.
그걸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튜브를 둘러보는 거지.
그렇게, 인기 급상승 카테고리에 들어갔는데.
<말로만 들었던 서큐버스 서식지! 제가 발견했습니다.>
<이계의 도시. 천체 망원경으로 관찰해보면?>
“···?”
제목만 보면 이게 유튜브인지 넷플릭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분명 현실이었다.
이계는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는, 아까 연구원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아무 영상이나 클릭해봤다.
<룬 언어의 비밀 2탄: 우리도 마법을 쓸 수 있을까?>
처음 보는 유튜버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이계인들이 쓰는 언어 중 <룬 언어>라는 게 있는데요.
그 언어는 놀랍게도, 언어 그 자체에 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계 마법사들의 비밀은 거기에 있을까요?
그 언어를 배우기만 하면, 우리도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룬 언어? 이계 마법?
유튜버가 있는 곳은 분명 이계였다. 내가 모르는 곳이지만··· 그 특유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그 단어 중 하나를 알아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오늘 실험은, 그 언어로 제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지에요! 준비는 끝났으니, 바로 해보겠습니다!
···
씨르! 띠르! 뛰르! 쒸르!
···
어휴··· 안되네. 발음이 문제려나?」
영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내 관심사는 화면 안에 있지 않았다.
“······.”
좌측 협탁에 놓여 있는 빈 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슬며시 손가락을 올렸다.
“씨르thir.”
컵 안쪽에 다수의 물방울이 맺혔다.
몇 초 뒤, 종이컵 한 잔 정도의 물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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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귀환자에게 익숙한 세상은 없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