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ep32. 바다의 도시, 해적의 꿈 (6)
에드워드는 허리춤에 칼을 차고 팔짱을 낀 채 거인을 바라보았다.
거인은 그 시선에 담겨 있는 의지를 엿보았다. 황금의 시절 산맥에서, 바다에서 불어오던 영광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인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꼬마의 이름을 따라간 정령, 에드워드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돌고래가 물고 가는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인간 놈아.」
“왜요?”
「나는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몰라. 그러니 네놈한테 묻겠다! 그 꼬마놈은 이걸로 만족할까?」
“어, 그 꼬마애도 인간이었어요? 베두헨 아니었을까? 베두헨하고 인간은 좀 다른데.”
「내 눈에 보기에는 다 그놈이 그놈이야! 트집 잡지 말고 대답이나 해!」
강선후는 그런 에드워드를 바라보다가, 거인을 바라보다가, 산호로 뒤덮힌 바위산을 바라보고, 지평선 저 끝으로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여전히 파도치고 있었다. 바다를 그리워하던 거인의 의지가 사막에 현신하여 거대한 마력이 된 결과물이었다.
“황금의 시대를 살아가던 거인이 다스리는, 지저 바다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나무 위 도시. 삶의 터전이었던 사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창공의 가장 좋은 땅. 그곳에 건설될 거대한 배.”
강선후는 그 모든 모습을 보란 듯, 팔을 펼치며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그 꼬마가 기대했던 만큼은 되지 않을까요?”
「음.」
에드워드의 주름살 가득한 눈빛은 항상 날카로웠다. 단순히 정령이라서가 아니라, 살아온 그 세월의 무게가 깎아 놓은 눈매였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럼, 인간이 아니라 지배자의 상을 타고난 녀석에게 묻겠다. 나는 사명을 완수했냐?」
“그럼요.”
「그렇구만.」
에드워드는 품위 있는 대화를 나눌 줄 몰랐다. 감정을 잘 표현할 줄도 몰랐다. 항상 지평선 끝에 시선을 두고, 눈앞의 허례허식을 따져 본 적이 없었기에 그랬다.
그래서 한 마디 대답으로 일축했다. 그렇구만.
이걸로 충분했다. 해적의 대화는 그랬으니까.
* * *
이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너무 많은 일이 한 번에 있었기에 짐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말라 가기 시작한 바닥에 대충 앉아 단단한 석재 폐허에 등을 기댔다.
리리도 그 옆에 앉았다. 바닷물로 흠뻑 젖은 몸이 마르고 태양빛에 체온이 올라가자 잠이 쏟아졌다. 긴장이 풀린 리리는 곧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강선후는 검을 들어 올렸다. 천공의 기사가 건네준 바로 그 검이었다.
강선후 자신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싸움꾼이라고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싸움을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다.
남들이 어떻게 판단하든, 최소한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검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야기 속에서 자주 보이던 그런 형태의 검, 롱 소드라고 하던가? 보통의 검에 비해 가드 부분이 두꺼웠고, 그 중앙에 리빙 메탈의 룬 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강선후는 이런 검을 쓰는 법을 전혀 몰랐다. 잘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나, 여전히 쿠크리와 헌팅 나이프가 더 손에 맞았다.
천공의 기사는 이걸로 거인을 베었다. 날 부분을 살펴보았다. 무언가를 벨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지 않았다. 다이소에서 살 수 있는 식칼이 차라리 더 예리할 거 같았다.
“불멸을 베는 검이라.”
예상컨대, 그냥 명검이라기보단, 특별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에 가까우리라.
아무래도 좋았다. 뭐든 있다면 없는 것보단 나았으며, 특히 강선후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었다.
잠시 정신을 집중하자 검이 빛나며 하늘색의 보석이 되었다. 황금 지침을 꺼내서 뒷면을 바라보았다.
방랑자의 활.
기록관의 반지.
예언자의 서.
세 개의 유물이 보석의 형태로 지침 뒷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강선후는 네 번째 자리에 푸른 보석을 끼워넣었다.
끼리릭—
그와 동시에 지침이 힘차게 회전하며 흔들렸다. 진동이 멈출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가, 고개를 들어 지침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남쪽.”
베이스캠프 기준으로는 윌슨을 섬기는 광신도 마을이 있는 방향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더 멀리 가야 할 게 분명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강선후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렐릭시나!”
“으아!”
내내 꾸벅꾸벅 졸던 리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왜, 왜? 뭐야? 무슨 일 있어?”
“까먹고 있었어!”
“뭘?”
“지저 바다에 배를 두고 왔잖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리리도 난처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러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어. 어떻게 하지?”
강선후는 도시의 외곽 쪽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아래에 있는 나락이 보이지 않았다.
그곳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나? 숲의 씨앗도 사용하는 바람에 올라올 방법도 없을 텐데?
당황한 나머지 들뜬 마음을 잠재우고,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분명 방법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촤아아아악—
도시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나무, 그 ‘분출구’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 올랐다. 원래도 많은 물을 뿜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자연스럽게 일행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어?”
수많은 돌고래들과 함께, 그 물줄기 사이에서 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배는 그렇게 고점을 찍은 뒤.
풍덩—!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멀지 않은 호수 위에 떨어졌다.
“…….”
“잘됐네. 나는 또다시 내려가야 하나 했잖아.”
오히려 리리가 차분했다. 물 위에 떨어져 세차게 출렁거리는 배는 예상외로 많이 파손되지 않았다. 모래 위를 항해하는 배는 물 위에서 더욱 강했다.
그리고.
“크르르릉—!”
그 위에서 솟아올라, 바다 위를 빠르게 헤엄쳐 다가오는 말 한 마리.
갈기와 발굽이 영혼으로 푸르게 빛나는 강선후의 애마였다.
그리고 지금 저 말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크허어엉—!”
애마라고 생각하면 좀 애마답게 신경 쓰라고.
“미안! 미안해! 으하하하!”
렐릭시나는 혓바닥으로 강선후를 사정 없이 괴롭혔다.
“으하하! 으하! 너, 너 말 맞아? 왜 혀가 까칠거려! 미안! 아 진짜 피부 벗겨져!”
렐릭시나는 제 주인이 진심으로 반성할 때까지 괴롭히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들이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거인 디오네는 거대한 밧줄을 엮고 있었다.
「됐습니다.」
디오네는 간단하게 만든 올가미를 내밀었다.
「이거라면, 저 아래 지상까지 그대들을 내려줄 수 있을 겁니다.」
“가자.”
강선후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리도 그에 맞춰 짐을 챙겼다.
강선후는 배에 올라 탔고, 디오네는 배를 들어 정성스럽게 올가미를 고정했다.
디오네의 시선과 배에 올라탄 강선후가 서로를 마주 봤다. 거대한 백안의 동공이 움직이는 것까지 다 보일 정도였다.
“다음에 봐요.”
「거창한 작별 인사를 원하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볼 거니까.”
디오네는 램프의 정령으로 시선을 옮겼다.
「에드워드라고 했지요. 그대의 바람은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나는 안 떠나! 나는 계속해서 이 사막에 있을 거니까! 빠딱빠딱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다! 감시할 거니까!」
디오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거인은 미소를 되찾았다.
거인은 조심스럽게, 밧줄에 배를 매달아 아래로 내렸다.
강선후가 사막에 가까워질수록, 멀리에서 맴돌던 배들도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 * *
사막의 서쪽 끝.
강선후가 통과한 장벽이 있는 그곳.
파도치는 모래가 아니라,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그곳에서 베두헨의 대표들과 강선후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정말 바로 떠나십니까?”
하무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야죠. 앞으로도 가 봐야 할 곳이 많으니까.”
“돌아오십니까? 아니면 영원한 이별입니까?”
강선후는 그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이곳에서도 아틀란티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만큼 거대한 도시였다.
“다시 와요. 약속했으니까. 저 도시의 거인은 당신들을 지킬 수호신이 되어 줄 거예요. 그걸 위해서 살아온 거인이거든.”
“잘 지내 보겠소.”
언제나 하무디 뒤에 서 있는 중년의 덩치 큰 베두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후는 미소를 짓고는, 거울 장벽에 손을 얹었다.
“—.”
오오오—
왕의 언어를 실제로 들은 베두헨은, 이 인간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영웅이라는 걸 이미 받아들였음에도 다시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강선후는 그 찬사를 억지로 외면하며 뒤를 돌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디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음 행선지가 남쪽. 맞습니까?”
“네. 혹시 아는 게 있나요?”
“이 사막 기준으로 남쪽이면 공방 연합이 있는 곳이긴 합니다. 그런데, 영웅의 목표 지점은 그보다 훨씬 멀겠지요.”
“아마도요?”
하무디는 약간 우려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렇다면…… 아마 남부 접경지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에 그곳이 목적지가 맞다면, 신중하게 움직이십시오.”
“남부 접경지대?”
“남쪽에 공방 연합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한데, 그곳에는 제국의 방어선이 펼쳐져 있는 곳입니다.”
“뭘 막는 방어선인데요?”
“지옥의 영토 확장으로부터 막는다곤 합니다. 저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소문만 무성한 곳이라서요.”
“…….”
강선후는 생각했다.
OWIC이 아마 제일 많이 진출한 게 남쪽이라고 했지?
진서연에게 물어볼 게 조금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가서 생각하면 될 일, 벌써부터 머리를 고생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시간은 많았으니까.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야!」
하무디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던 램프에서 멋대로 에드워드가 튀어나왔다.
그는 독한 술 한 병과 잔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잔 하나를 강선후에게 거칠게 건넸다.
“뭐예요? 갑자기.”
「해적은 동료와 술을 나눈다! 술을 마시는 것으로 서로에게 무기를 내밀 생각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이제 와서?”
「이건! 약속이다! 네놈이 언젠가 이 사막에 돌아올 거라는 약속!」
강선후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짓더니 잔을 내밀었다.
에드워드는 그곳에 술을 따랐고, 잔을 높게 쳐들었다.
“나는 그럼 선장님 동료인가요?”
「청소부부터 시작하지!」
강선후는 낄낄 웃었고, 둘은 잔에 담긴 독한 술을 한 번에 마셨다.
「언젠가 돌아와라!」
“돌아올게요.”
그렇게 강선후는 장벽을 넘었고, 거울에 뚫린 구멍은 다시 메꿔졌다.
한 번의 소란이 지난 사막은 언제나와 같은 사막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아니었다.
하무디는 뒤를 돌았다. 나락 위로 솟아난 나무, 그 위에 세워질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거인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사막은 아닐 게 분명했다.
아마 이전과 같이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오랜 시대가 지나, 이 사막에 변화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베두헨들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까?
「준비됐냐 이놈들아! 거인하고 담판을 지으러 가야지! 오줌 지릴 놈들은 지금 먼저 말해라! 낙오시켜 줄 테니!」
에드워드가 곡도를 휘두르며 외쳤다. 하무디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가 봅시다.”
* * *
오래전에 에드워드라는 소년이 살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한 선장이 소년을 거둬들였다. 그곳은 해적선이었을까? 최소한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배 위에서 소년의 역할은 청소부였다. 선원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잡부일 뿐이었지만, 가끔 뱃사람들이 소년을 해적이라고 치켜세워 주고는 했다.
소년은 자신이 해적이라고 생각했다.
해적들 사이에 도는 전설이 있었다. 사막을 동서로 가르는 거대한 나락 아래, 온 뱃사람을 유혹하는 위대한 도시가 있다는 전설.
그곳에 도착하는 자는 대해적이 되어 신화의 영역에 이름 하나 남길 수 있다는 전설.
소년은 그 전설에 매료되었다.
— 우리는 꼭 그 도시에 갈 거죠!
— 그래, 그래.
아마도, 이름 모를 배의 선장은 그런 소년의 말을 그렇게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그 시절의 소년을 정확히 본 자는 램프의 정령이 유일했으니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이 정령은 허풍이 심한 편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런 소년이 창고를 정리하기 위해 들고 다니던 한 램프에서 이 정령은 태어났다고 했다. 소년이 크라켄의 습격을 받기 바로 전날이라고 했던가.
그날 밤, 소년은 먼지 덮인 창고에서 소원의 정령에게 소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령에게 물었다.
—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정령은 오히려 되물었다.
— 너는 이름이 뭐냐?
— 나는 이름이 없어요. 이 배 선장님은 나를 에드워드라고 불러요.
— 그럼 내 이름도 에드워드다.
—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정령은 뻔뻔하게도, 그렇게 대답했다.
— 소원의 정령 이름은 소원을 빈 놈의 것을 따라가니까.
그렇게 우기고는 했다.
그게 사실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나, 그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당신이 소원의 정령이라면, 제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 나를 의심하는 거냐?
소년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소년은 정령이 한 말을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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