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ep33. 꽤 오래 비웠던 집 (1)
사막과 엘신 포리에리를 나누는 장벽, 그러니까 베이스캠프에서는 동쪽, 사막에서는 서쪽에 위치한 이것은 한쪽 면은 거울이지만, 다른 쪽은 투명한 유리와 같은 구조였다.
그러니까 취조실의 거울과 같은 구조라고 볼 수 있었다. 즉, 베두헨들은 장벽을 넘어간 내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하지만, 나는 저들을 계속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있는 모래산 너머로 베두헨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렐릭시나가 투레질을 하며 재촉했다. 렐릭시나에게는 빚을 진 게 있으니, 이번에는 조금 심기를 맞춰 주고자 바로 위에 올라탔다.
찰칵—
드넓은 사막, 그 모래 바람 속으로 돌아가는 사막의 뱃사람, 베두헨. 그리고 그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 다시 기억될 거인의 도시.
그 모습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은 이 필름 카메라를 구해다 준 진서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고된 여행을 견디기 위해서 디지털 기능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으니 찍은 사진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요즘에도 이런 거 현상해 주는 가게가 있나?
“음.”
“무슨 생각해?”
고개를 돌려보니 리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보니 나도 조금은 심리적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리리, 너도 카메라를 알아?”
“카메라?”
리리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물론 이름이 다를 수도 있다. ‘카메라’는 지구에서 붙은 이름이니까.
카메라를 받아 든 리리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 적 없어.”
리리가 모르는 것뿐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리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이 안에 있는 36장 분량의 필름에 담겨 있을 장면을 상상하며,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탔다.
정면으로 완만하게 뻗어 나가는 오르막길, 이 산 정상은 우리를 여기에 올 수 있게 인도해 준 비프로스트가 있었다.
렐릭시나는 여유롭게 걸었다. 거대한 장벽은 사막과 이곳의 환경을 완전히 격리했고, 불과 오백 걸음만에 낮게 깔린 초목이 렐릭시나의 불타는 발굽에 스쳤다.
가파르진 않지만 내 두 발로는 온종일 걸어도 도달하지 못할 정상이었다. 렐릭시나가 없었다면 아마 꽤 고생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에, 무심코 렐릭시나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머릿속에 지나가는 잡생각을 흐르는 대로 두며 멍하니 있었는데, 등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리리가 내 등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머리가 무거운가.
“비프로스트 말이야.”
그 상태로 리리가 조근조근 말하자, 등에 댄 이마를 타고 간지러운 진동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지개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문이 이상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옷깃을 가볍게 당기는 게 느껴졌다.
“아무데나 이어지는 그런 문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는 느낌이 들었어.”
“인도?”
“비프로스트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는 항상 특별한 일이 일어났잖아. 당신, 용하고 거인을 같은 해에 마주친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생각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비프로스트는 우리를 허허벌판으로 던져 놓은 적이 없었다.
아직 두 번 정도밖에 안 써 봤으니 통계를 내기에는 시기상조지만, 그래도 리리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누군가 당신이 세상에 나올 걸 알고 준비해 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습관처럼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래 봤자 등에 이마를 대고 있는 리리가 보일 리 없었다.
“운명처럼.”
운명이라.
지구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남았을까? 우리 세상에서는 바보 취급 당하기 딱 좋은 소리인데.
이계는 아직 이런 주장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곳이었다.
“거인의 도시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이 시대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건 내 판단이다.
리리는 잠시 생각이 잠겼는지 조금 뜸을 들였다.
“그것도 그것대로 좋은 거 같아.”
진실은 별로 의미가 없다. 여기는 그런 세상이니까. 직접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확언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모험할 가치로 가득한 곳이다.
속도를 내기로 했다. 비프로스트를 이용하면 일주일 안쪽으로도 주파가 가능하니, 이미 한 번 들른 곳은 빠르게 지나쳐 돌아가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사막 생활이 예상보다 길었고, 그 피로는 꽤 많이 누적되어 있었다.
산 정상에는 이전의 그 건조한 공기가 불어닥쳤다. 렐릭시나의 푸른 갈기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뻗어 나갔다.
비프로스트를 작동시킨 후, 들어가기 전에 사막 쪽을 바라보았다.
모래 먼지로 가득 찬 공기, 그 뒤에 자리 잡은 거대한 섬이 뿌옇게 보였다.
그곳에 우뚝 선 거인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거인은 아마, 고개를 돌려 이쪽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거인의 시력으로 지금 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고개를 돌리기 전에 도시 위에서 누군가 손을 흔드는 게 보이는 듯했다.
* * *
지구 측 베이스캠프의 한 여관.
일주일째 그곳에 숨어 있던 진서연과 차소희, 서지아는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서연은 말했다.
“지금은 지켜야 할 미덕이 과하게 많은 시대고, 사람들 눈치를 많이 봐야 하니까 OWIC에서 하는 사업은 정치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뭐만 하면 시민단체가 태클 걸고, 그 사람들 달래려고 들어가는 사과 박스만 한두 개가 아니고…….”
“숨길 생각도 없던 거 같던데.”
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우리 회사는 막대한 규모의 로비, 그리고 여론전으로 반대파를 짓눌렀어요. 조금씩이지만 신중하게 대중 분위기를 컨트롤한 거죠.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선거철에 많이들 하는 거니까.”
“그런 말 막 해도 돼요?”
이 여관의 주인, 윤민지가 지나가면서 넌지시 말했다.
“이제 와서 뭐 어때요? 어쨌든, 그렇게 대중들이 안심했다고 해서 이계의 위험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여기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화성에 세워진 전초기지나 마찬가지예요. 언제든 사람이 떼로 죽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으으…….”
차소희는 괴담이라도 듣는 듯 서지아에게 엉겨 붙었다. 서지아는 귀찮아하면서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심코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진서연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당하기만 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마냥 바보인 건 아니라 대처법을 마련했어요. 그게 바로 최고 위험 경보, <코드 컬러> 발령이에요.”
“군대에서 쓰는 그거랑 비슷한 건가?”
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코드 레드는 폭력적 위협, 그러니까 괴물들이 쳐들어올 때예요. 쉽게 말해서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하는 위험이요. 최고 위험 경보니까 늑대 몇 마리 쳐들어온 걸로는 턱도 없고, 성숙 기생체나 대규모 마수 침공 정도 되려나요. 두 번째로는 코드 블랙. 이건 이계인들과 외교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예요. 예를 들어 왕국이나 제국에서 보낸 적대적인 사절단이 도착했을 때. 이게 발령되면 블랙 요원을 파견한다고 들었어요. 자세히는 저도 모르겠네요. 고등급 기밀이라.”
서지아는 촛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발령된 건?”
“코드 바이올렛.”
“그게 뭔데?”
“이해 불가한 변칙 개체로 인한 공격.”
“……유령 같은 거?”
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밖에 있는 것들이요.”
서지아와 진서연, 차소희는 갑작스럽게 몰려온 ‘유령 무리’들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유일하게 그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서지아뿐이었다.
“주신의 자손들, 그러니까 너희들 말로 ‘지성체’들은 죽은 뒤 적법한 장례를 치러야 해. 그러지 않으면 땅에 흐르는 마력이 고여서 저런 존재가 될 가능성이 생기니까.”
“그게 무슨 괴담 같은 이야기야…….”
“이 세상에서는 현실이야. 너희들 시체 수거 제대로 안 했지?”
차소희는 몸서리쳤다. 그 사이에 윤민지가 컵을 들고 다가와 앉았다. 들고 있는 등불이 그 단발머리를 비췄다. 꽤 섬칫한 모습이었다. 원래 인상 자체가 날카로운 탓이었다.
윤민지는 일행들에게 잔을 내밀었다.
“커피?”
“캐모마일 차는 없어요?”
“아까 거가 마지막이에요.”
“잠을 못 자겠네…….”
“안 마신다는 거죠? 이건 그럼 제가.”
호록. 커피를 마시는 그 모습을 차소희는 조금 어벙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일주일째 대피하는 상황인 거 알죠?”
“알죠?”
“그런데 그렇게 속이 편해요?”
“엉엉 울면서 있을 순 없잖아요. 내가 여기에서 장사를 몇 년째 하는데. 옛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 거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양반이지. 최소한 여기는 안전하니까.”
“이계 장사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어쨌든, 지나가면서 들었는데 꽤 재밌는 얘기들 하고 계시네. 그래서 그 코드 바이올렛은 대처법이 뭔데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해 보기. 변칙 개체 대처인데 뭐 방법이 있겠어요?”
“대책이 없다는 말을 그럴싸하게 설명하시네요. OWIC이 그렇지 뭐.”
회사를 비난하는 어조인데도 진서연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이 연구원이 애사심이 별로 없다는 건 알음알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럼 우리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해요?”
윤민지의 말에 진서연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가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계의 사제가 아니라면 저걸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부터.
일주일 가까이 이러고 있었지만, 구조대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여관에 있는 식량은 거의 다 떨어져 가는 시점이었다.
“……술이나 한잔할래요? 공짜 술 먹을 기회 아닌가.”
“그럴까요?”
“혹시 모르니까 체력 챙겨놔야지. 술은 금지야.”
“지아 씨 생각보다 철저하시네요? 안 그런 이미지였는데.”
“네가 너무 막사는 거야.”
차소희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서지아는 염색이 벗겨져 밝은 금빛이 돌기 시작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래도 방법이 없진 않을 거 같은데.”
“……뭔데요?”
게슴츠레 뜨고 있었던 진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지아로 향했다. 서지아는 그 눈빛에 조금 멋쩍다는 듯 관자놀이를 긁으며 말했다.
“그놈……. 이제 슬슬 돌아올 때 되지 않았어?”
“…….”
잠시 정적 후에, 누군가 피식 웃었다. 턱도 없는 소리 같은데 정말 그게 희망이 될 거 같아서 우스운 탓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키에에에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나무벽을 통과해서 귓가에 내리꽂혔다.
「인간! 인간!」
「미완성 고깃덩어리!」
유령의 흉측한 목소리였다.
그것이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서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유령은 지금 누군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는, 대화가 아니라 위협에 가까웠다.
그 대화를 정확히 들을 수 있는 건 엘프인 서지아가 유일했다.
그리고, 서지아는 웃는 것인지 찡그린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으로 한동안 벽을 바라보았다.
“……호랑이도 제 말 어쩌고 하는 속담이 너네 세상에 있지 않았어?”
누가 왔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문, 창문으로 다가갔다. 주신교 사제단이 예전에 선물로 주고 간 종교 상징물이 여관벽에 매달려 있었다.
이것 덕분에 살 수 있었지만, 이곳에 갇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지아는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갔고,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창문 틈을 슬쩍 벌렸다.
끼이이익—
바로 앞 대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반투명한 넝마처럼 보이는 유령이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대여섯 마리가 한 몸으로 뒤엉켜 있는 끔찍한 모습.
그 유령이 누군가 대치하고 있었다.
푸르게 불타는 말, 그리고 단검을 손에 쥐고 자세를 잡은 뱀파이어.
그리고 말에서 내려 유령을 바라보고 있는 한 인간.
“와, 유령이다.”
강선후는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푸른 보석을 꺼냈다. 광채가 그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왔다.
“오오…… 흡!”
창문 틈에 모여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한 대피자가 하마터면 탄성을 뱉을 뻔하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강선후는 처음 보는 검을 들고 있었다. 이계의 유물일까? 서지아조차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그 검은 딱 봐도 꽤 낡아 보였다.
「인간, 너도, 우리가, 되어라. 불멸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저주.」
유령은 강선후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서지아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그런 칼로는 턱도 없어!”
강선후는 슬쩍 고개를 돌려 서지아를 바라보았다.
“그놈들은 총으로 쏴도 아무런 영향을 못 준다고! 당장 활을 내게 넘겨! 그거라면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서지아는 방랑자의 상, 방랑자의 활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온전히 이끌어낼 수 있었다.
쓸모도 없을 나이프를 허리춤에서 뽑아 들며 달려가는 서지아는 어색하게 자세를 잡는 강선후를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 미친놈이 뭘 하려는 거야? 폼 잡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놈이, 하필 지금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 순간.
「우리와 함께 이 쾌락을 받아 들끼야아아아아악!」
각자 건물에 숨어들어 눈만 내밀고 있었던 마을의 모두가 보았다.
숲과 대화를 나누며, 용을 타고, 명계의 무리와 맞서던 한 남자가.
이번에는 불멸의 존재를 반으로 갈라 버리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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