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ep33. 꽤 오래 비웠던 집 (3)
“으에…… 어지러. 이거 진짜 엄청 셰댜.”
기념품 삼아서 하무디에게 받은 사막의 술 세 병을 테이블에 깔았다.
사막에서 가축으로 기른다는, 고래와 생태가 비슷한 동물의 젖을 발효시킨 뒤 증류해서 빚은 술이라는데, 술맛을 모르는 내가 먹어도 꽤 괜찮은 느낌이라 차소희가 생각나서 몇 병 챙겼다. 얘는 술을 꽤 좋아하니까.
“어때? 먹을 만해?”
“웅, 달아. 술이 달댜. 헤헤.”
“요구르트 맛이 나는데 색은 투명하네.”
서지아는 신기한 듯 턱을 괸 채 잔을 들고 빛에 비추어 보았다. 잔 속에 들어 있는 술은 유리처럼 투명했다. 사막 연회 때는 어두운 건물 안에서 불투명한 잔에 담았으니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너는 엘프잖아. 너희 세상인데 이 술을 본 적 없어?”
“사막을 가 본 적은 없으니까.”
서지아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진서연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많이 탔네. 자기는 바깥일 하는 인간치고는 하얀 편이었는데.”
무심코 손등을 내려다봤다. 해변으로 휴가라도 갔다 온 것처럼 새까맣게 타 있었다.
소파 한편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리리는 여전히 새하얀 얼굴이었다. 가만 보면 신기할 정도로 하얗단 말이지. 완전 백지장 같지는 않지만…… 그런 오묘한 느낌이 있다. 확실히 인간이랑은 다른 느낌이다.
저 하얀 피부 탓에 햇빛에 약하다는 것도 묘하게 뱀파이어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진서연은 내가 건넨 붉은 보석을 손에 든 채,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거인의 심장?”
서지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하게 한심하다는 그런 한숨이 아니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를 듣고 소화하기 위한 심호흡에 가까웠다.
“자기가 진짜로 거인을 잡고 왔을 줄은 몰랐는데.”
서지아는 처음에 믿지 않았다. 그저 이계에 간혹 있는 거대 괴수를 거인이라고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서지아가 알고 있는 전설 속에서는 거인이 불멸자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담겨 있다고 했었지.
그래서 이걸 꺼내 보여 줬다. 그러자 믿더라.
“거인을 잡고, 지저 바다에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우고, 숲의 씨앗을 이용해서 그걸 지상으로 올리고…….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뿐이네.”
진서연은 아무 말 없이 그걸 손으로 들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매혹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 두근.
“히익!”
진서연에게 달라붙어서 거인의 심장을 같이 내려다보고 있던 차소희가 화들짝 하고 놀랐다. 거인의 심장 조각은 여전히 박동하고 있었다.
진서연은 술이 다 깨 버렸는지, 한동안 이걸 바라보다가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선후 씨가 뭘 봤고, 누굴 만난 건지……. 너무 궁금하네요. 못 따라가는 게 진심으로 억울할 정도로요. 솔직한 심정을 말해 볼까요? 저 선후 씨 질투하고 있어요.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거 같아서.”
나는 그저 웃었다. 옹졸하다는 느낌이 들 수는 있지만, 저런 질투를 받는다는 걸 알면 괜히 기분이 좋다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리는 발그레한 얼굴로 멍하게 있다가 내가 일어나는 걸 느끼자마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안 피곤하면 조금 더 있어.”
“당신은?”
“나는 일찍 자게.”
“으에에?”
차소희가 한탄을 내뱉었다.
“벌써 자아? 냐! 니가 주인공이…… 흐에……. 취한다.”
“이제 해 뜨겠네. 나 계속 밖에서 자다가 이제 막 복귀했거든? 그리고 너도 동태 눈깔이 다 되었는데, 적당히 먹다 자.”
“동태? 동태애? 너 동태 이빨이 을매나 날카로운 줄 알구 구루냐……. 흐에에…….”
흐느적거리며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차소희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잠시 멈춰 말했다.
“아, 맞다. 서연 씨.”
“네?”
거인의 심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진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저기, 작업실 테이블 위에 선물 놨어요.”
“선물이요?”
“그거 확인해 보세요.”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작업실로 들어갔을 진서연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카메라! 세상에! 맞아! 이거 부탁했었지!”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쓰던 침구가 그대로 침실에 놓여 있었다.
두 달 동안 사막 생활을 하다가 따뜻한 물로 씻고 눕는 하얀 침대의 포근함은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 * *
다음 날. 일부러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은 맑았다. 일부러 알람도 맞추지 않았다.
“으아…….”
팔다리가 가벼웠다. 창가로 햇살이 비췄다. 반대편에 놓인 침대에는 언제나처럼 리리의 흑발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리리는 항상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자는 버릇이 있었지.
“침실 하나 더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가 다른 침실 문 앞에 섰다가, 안쪽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에는 여기서 잤구만.
1층으로 내려가자 소파에 앉아서 전기 포트를 바라보는 서지아가 눈에 들어왔다.
“좋은 아침.”
서지아가 나를 힐끗 보더니, 손바닥을 들어 간단히 인사를 받았다.
뭔가 셰어 하우스에서 사는 기분도 든다.
“차소희는 위에서 자는 거 같고, 서연 씨는?”
“새벽에 돌아갔어. 필름 들고 현상소 찾아간다면서. 새 필름 끼워 두고 갔더라.”
“코드 바이올렛은 풀렸어?”
예상과는 달리 서지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갔어? 차원문 봉쇄된다며.”
“그 회사 직원이잖아. 뭔가 특혜가 있겠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지아는 믹스커피를 세 개나 쏟아 넣은 뒤, 뜨거운 물을 부으며 말했다.
“……오전이 다 지났는데 경보가 생각보다 안 풀리네.”
“그러게, OWIC도 눈치가 제법이네.”
서지아는 멍하니 컵을 내려다보다가 문뜩 내 말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눈치가 제법이라니? 자기, 무슨 말이야?”
털썩—
소파에 앉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어제 유령을 잡고 얻은 창백한 푸른 구슬을 손에 들었다. 차가움이 느껴진다. 기분 탓이 아니라 표면에 수증기가 맺힐 정도로 정말 차갑다.
서지아에게 설명이나 해 주려는 차, 갑자기 마을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OWIC 대책본부에서 전달합니다. 일시적으로 차원문의 봉쇄를 풀었습니다. 현재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는 민간인께서는 서둘러 대피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의무 사항이 아니나, 이후 모든 신변 문제에 대해서는 OWIC에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 유의하십시오. 다시 한번 전달합니다. 현재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는…….」
OWIC에서 대응팀을 파견한 모양이었다. 내가 마을을 점령한 유령을 잡았다는 소식이 전달된 모양이지. 잠시 확보된 안전을 틈타 사람들을 대피시킬 모양인데.
잠시 고개를 들었다.
2층 침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쥐 죽은 듯이 자는 모양인데. 엔간히들 마신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볼까?”
가만히 보고 있었던 서지아도 헤드폰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곧바로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몇 달 자리를 비웠는데도,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분위기가 평화롭지 않다는 점 정도.
첫 번째 경보 발령 때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각자 짐을 챙겨 차원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또 이러냐…….”
“요즘 들어서 경보 발령이 너무 많네.”
“피해 보상은 해 주려나. 에휴.”
“하루 장사 안 하면 손해가 얼마야?”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알고 있었다. 그들을 인도하는, 전투 복장의 OWIC 대응팀들에게 윤민지가 다가갔다.
“……다들 수고하시네. 커피?”
“아, 괜찮습니다.”
윤민지는 종이컵을 들고 고개를 끄덕인 뒤, 호로록하며 다시 여관으로 들어갔다. 대피 안 할 생각인가 보다.
기가 꽤 센 사람이란 말이야. 종업원 시절 하운드에게 시달리면서도 미소를 유지했던 건 정말로 비즈니스 스마일이었던 모양이다.
여관의 주인이 된 뒤에는 뭔가 패기 같은 게 느껴질 정도다.
나는 대응팀의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것저것 지시하기에 바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갈색 단발 여성이 나를 보더니 불쑥 경례를 했다.
“어…….”
조금 당황해서 말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미리 준비한 말이 있었는데.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는 변칙 개체 대응 특무팀, 엑소시스트의 제2팀장 주현서라고 합니다. 마을을 습격했던 변칙 개체를 처분하셨다는데, 이번에도 큰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이렇게 두두다다 칭찬을 쏟아 놓으니 내 쪽에서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서지아가 와서 대신 입을 열었다.
“왜 사람들을 대피시켜요? 유령은 죽었잖아요?”
“회사가 소유한 변칙 파동 감지 장치에서 포착한 이상 파장은 유령이 사라진 뒤로도 여전히 마을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죠?”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팀장 주현서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최초 감지된 상황에서 12% 정도 강해졌습니다. 선후 님께서 유령을 토벌해 주셨다는 보고 뒤에도 여전히 강한 에너지가 포착되어 상부에서는 대피를 결정했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냈다.
어젯밤, 유령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남기고 간 것이었지.
나는 이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놓치기 쉬운 구슬 크기인데, 굳이 주워서 챙긴 이유가 있었으니까.
“이게 뭔지 아세요?”
주현서는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령의 핵이에요.”
“핵…… 말씀입니까.”
“보통 유령은 핵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애초에 이런 고형의 물질로 이루어졌을 리가 없는 존재니까.”
“…….”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열지 못하는 주현서.
“이게 있는 유령은 단 한 종류예요. ‘집’을 가지고 있는 유령.”
“……집 말입니까?”
“유령에게 집이 뭘까요?”
나는 구슬을 눈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덤.”
뒤에서 가만히 듣던 서지아가 대답을 대신했다.
“보통 집은 한 군데에 하나만 있지 않지? 의외로 무덤을 하나만 만드는 문화는 잘 없어.”
“……공동묘지.”
서지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스캠프 터를 굉장히 안 좋은데 잡으셨네. 여기는 아마 공동묘지 터였을 거예요. 최소한 바로 여기는 아니어도, 근처 어딘가는 그럴 수도.”
가만히 듣고 있었던 주현서는, 내 주장에 논리 비약을 느꼈는지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하셨습니까? 근처에 유령이 나오는 무덤이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공동묘지는…… 근거를 생각하기 힘듭니다만.”
“자요.”
나는 주현서에게 구슬을 내밀었다.
주현서는 그걸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 움직임에서 약간 겁을 먹었다는 게 느껴졌다.
구슬에 손가락을 댔다가 그 차가움에 화들짝 놀라 떨어트렸다.
내 눈치를 보며 다시 주워드는 주현서.
“눈에 대보세요.”
천천히 올라가는 손이 눈가에 닿은 순간.
주현서의 시선이 구슬을 통과하여 세상을 바라본 그 순간.
“으아아악—!”
주현서는 깜짝 놀라며 거의 넘어질 뻔했다.
톡-.
바닥에 떨어진 구슬이 조금 구르다가 멈췄다.
주현서는 어느새 품속에서 십자가를 꺼내 손에 꽉 쥔 상태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 * *
서지아는 그 반응에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본래 표정을 꾸미는 데에 능숙한 그녀였으나, 이번에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강선후는 조금 짓궂은 장난기가 동했는지 약간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강선후가 저런 장난을 치는 경우는 한 가지였다.
남들이 볼 때는 어마어마한 공포지만, 강선후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닐 경우.
이계의 모든 것이 대체로 이 위치에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공포지만, 강선후에게는 그저 신나는 모험의 일부분.
서지아는 이 희극적인 관계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며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심 기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강선후가 여유롭다면, 이해 못 할 현상마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학습했으니까.
그녀는 꽤 오래전부터 강선후를 믿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었다.
“뭔데?”
강선후는 구슬을 주워서 서지아의 눈에 직접 대 주었다.
서지아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입을 틀어막았다.
구슬 건너편으로 보이는 세상.
그건, 공동묘지였다.
이 땅 위에 베이스캠프의 건물과 울타리, 잡초와 나무 대신에 낡고 부서진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떠도는 무리들.
산 자의 무리가 아니었다.
서지아는 뒷걸음질 쳤다. 눈에서 구슬이 떨어졌다.
그 시야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순간이었지만, 서지아는 자신이 본 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신화에서 항상 다루던 세계였으니까.
서지아는 방금 사계(死界)를 보았다.
강선후는 구슬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과거, 이곳에 있었던 공동묘지야.”
“…….”
“지금은 이 땅 아래에 있겠지.”
강선후는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냈다. 그리고, 푸른 보석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건 그저 강선후의 손에 쥐어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지아는 알고 있었다. 강선후가 하고자 한다면, 저건 불멸을 베는 검으로 변할 거란 사실을.
서지아의 머릿속에는 이 의문 하나만 떠 있을 뿐이었다.
“……자기가 이런 걸 전부 어떻게 알아?”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산 자의 지식이 아니었다. 유령에 대해서는 그것이 원한을 가지고 사람이 습격한다는 사실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의 세상에는 산 자가 접근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고대 언젠가, 강령술을 개발한 한 마법사가 있다는 전설이 있었으나, 이는 전설 중에서도 가장 터무니없는 괴담이었다.
서지아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의 눈빛은 과거로 가 있었다. 언젠가, 잘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기 위해 머릿속 책장을 더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글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수도.”
“……사계를? 사계에 갔다 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
강선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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