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ep34. 그 시절의 친구 (1)
서지아는 남부를 경유하여 이곳으로 올라왔다.
중간에 정신착란을 유발하는 장벽을 억지로 넘은 탓에 가벼운 기억 상실증을 겪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서지아는 잘 알고 있었다. 남부 접경지대는 지옥에서 솟아오른 죽음의 씨앗이 서서히 영토를 넓히는 곳이었고, 그만큼 죽음에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죽음의 이치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자리 잡는 곳이었다
서지아는 그들 중 한 명을 우연히 만난 적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탑에서 검은 연구복을 입고 죽음에 관하여 연구하는 사람들.
죽음을 연구하는 이들은 근본적으로 마법사였으나,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그들만의 세상인 사계(死界)에 대해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선후가 너무나 당연한 사실처럼 나열한 사계에 대한 지식은, 사계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사실뿐이었다. 사실 관계를 검증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사계를 경험해 봤다고?
장생종의 운명을 타고나 온갖 경험을 다 했기에, 웬만한 것으로는 놀라지 않는 서지아도 지금 강선후가 보여 주는 모습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선후는 항상 그랬다. 엘프를 놀라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매번 그걸 해 냈다.
그런 부분이 한편으로는 희극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강선후는 구슬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돌아가자.”
“뭘 하려고?”
“준비해야지. 사냥.”
‘사냥’이라는 단어를 유령에 접목시키는 건 굉장히 모순적이었다. 조심스럽게 자세를 가다듬는 주현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말을 꺼내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몰랐다. 주연서는 조금 주저하다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저희가 해 드려야 할 게 있습니까?”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쪽 매뉴얼이 있겠죠? 그것대로 하세요. 그걸로 충분할걸요.”
OWIC 측 매뉴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게 방금 증명되었는데도 강선후는 그렇게 말했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최소한 그쪽한테 문제 생길 여지는 없죠?”
“그렇습니다.”
주현서는 다행히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지금 강선후는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그쪽 사정이 난처해지는 게 아닐 테니, 방해하지 말고 적당히 해야 하는 것만 해라.
즉, 강선후는 OWIC 쪽이 이번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주현서는 구슬을 통했던 풍경을 떠올렸다. 그 세상은, 거울 속 세상과 같았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죽은 자의 세계.
확실히 OWIC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방해가 안 된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일 뿐.
그래서 주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강선후는 그 말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사무소로 향했다.
돌아가자 리리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 까만 머리가 미역처럼 젖어 있는 게 이제 막 씻고 나온 모습이었다.
리리는 텃밭 앞에서 아무렇게나 자란 식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들어와 볼래? 할 말이 있어서.”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다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쉴 생각이 아예 없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따라 들어왔다.
안쪽에서는 차소희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어디서 챙겨 왔는지 모를 드라이기 작동 소리로 가득했다.
“어? 리리. 이쪽으로 와 볼래? 머리 말려 줄게. 어? 뭐 하려고?”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우리의 진지한 분위기에, 차소희는 드라이기를 끄고 선반 위에 올려 뒀다.
모두 소파에 앉았고, 1인용 소파에 따로 앉은 강선후는 테이블 위에 유령의 핵을 올려 두었다.
“이건 어제 잡은 유령의 핵이야.”
“응. 어제 유령 죽이고 얻은 거잖아.”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유령은 핵이 없어. 그런데 간혹 이렇게 핵이 있는 유령이 나와.”
“어떨 때 그러는지도 알아?”
“아주 오래된 공동묘지가 ‘던전화’되었을 때.”
“던전화?”
이 시점에서 리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에 게임을 꽤 좋아하는 차소희는 알아들은 분위기였고, 의외로 서지아도 그랬다.
입을 연 쪽은 차소희였다.
“그, 게임의 인스턴스 던전 말하는 거야?”
“이해가 빨라서 좋네.”
설명을 이었다.
유령은 적법한 장례를 치르면 그 출현을 억제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란 존재하지 않고, 이계는 온갖 이해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한 곳이다.
적법한 장례를 치른 사자(死者)의 무덤,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공동묘지여도, 사람들의 기억에 잊힐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조금씩 불순한 마력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한 공동묘지가 통째로 ‘유령화’된다.
죽은 자들이 사는 작은 차원,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인스턴스 던전이 만들어지는 셈이었다.
“……당신은 그런 걸 다 어떻게 알아?”
리리가 의문을 표했다. 서지아도 아까 전에 같은 의문을 표했던 걸 기억했다.
강선후 본인도 이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 대부분 그렇듯이.
하지만, 지금 말한 이 지식이 의심할 구석이 없는 진실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어. 왕국이나 영지에서 다루는 공동묘지는 주기적으로 사제들이 구마 의식을 치른다고.”
리리가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지아도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은 여전했다.
“이번 건 사제를 부르는 게 낫지 않겠어? OWIC의 블랙 요원은 근처 영지랑 컨텍이 되어 있을 거야. 고생은 좀 하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닐…….”
촤아악—!
강선후가 손에 쥐고 있었던 하늘색 보석이 빛을 발하며 길고 화려한, 그러면서도 조금 낡은 멋을 내는 검의 형태가 되었다.
강선후는 전사가 아니었다. 누구도 그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무기를 들고 있는 강선후의 모습은 낯설었다. 강선후 자신도 지금 들고 있는 검을 조금 어색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하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유령을, 불멸을 베는 검.
그 효과를 강선후 자신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검날을 훑어보고 있었다.
“왜 굳이 OWIC한테 이 기회를 넘겨?”
“……뭐가 기회인데?”
리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항상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강선후가 매번 이유랍시고 내놓는 게 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선후는 그런 리리의 눈치를 보다가 턱을 긁으며 웃었다.
“어, 리리, 유령의 무덤 안쪽에는 영물이 하나씩 있어. 묘지 하나가 작은 차원이 되려면 그만큼 많은 마력이 밀집되어 있다는 거거든? 그걸 얻어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그냥 솔직하게 말해.”
“…….”
강선후는 ‘흐흐’하고 우스꽝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언제 챙겼는지도 모를 카메라를 품속에서 꺼냈다.
“궁금하지 않아? 유령들이 사는 차원이 카메라로 찍힐까?”
“……미친놈. 아니, 더 심한 욕 없나!?”
차소희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강선후는 마치 설득이 다 끝나기라도 했다는 듯,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뭘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 들어가는 방법은 알아?”
강선후는 분필로 바닥에 룬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보여 주는 그 신비로운 이기에 모두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리리 혼자 이상함을 느꼈다. 리리는 이곳에서 강선후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룬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이라 그랬다.
이 룬을 그릴 줄은 몰랐으나 강선후를 따라다니다 보니 조금은 식견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저건 어떤 특별한 룬 문자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결계 룬 문자였다. 특별한 점이라고는 조금 더 유지력이 강화된 획이 하나 정도 추가되었다는 점.
강선후는 그 룬을 신중하게 분필로 그려 나갔다. 그리고 그 정 가운데에 유령의 핵을 놓았다.
그리고.
꽈직—!
그대로 밟아 버렸다.
“……그게 방법이야?”
리리가 뒤로 물러나며 그렇게 물었고, 강선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세상일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거든.”
룬은 그저 열린 문을 제어하기 위한 결계 용도일 뿐이었다.
룬이 없었다면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을 문은, 결계에 가둬져 형체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후우웅—
우우우웅—
보통 차원문은 전류가 튀는 듯한, 혹은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거칠게 요동친다. 그리고 격한 폭풍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지금 이 결계 가운데 생긴 차원문은 그 분위기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아주 느릿하게. 마치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물의 소용돌이가 굉장히 느리게 재생되는 듯한 모습.
푸른색인지 녹색인지 보라색인지 구분하기 힘든 창백한 소용돌이가 그 문 가운데에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이 문이 죽음에 관계된 곳과 연결된 탓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 문마저 이미 그 세계의 일부와 관련이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따라오지 마. 리리.”
강선후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믿었다. 리리는 이 안에서 정말로 위험할 수 있었다.
“응.”
그래서,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짐이 되지 않고자 하는 인도자의 상은 자신이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구분할 줄 알았다.
강선후는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차원문을 넘어가면 번쩍거림이 눈앞을 장식하고, 가벼운 메스꺼움이 동반된다.
하지만 이 문을 넘어가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무언가 의식을 잃을 것 같기도, 깬 채로 꿈속으로 진입하는 기분이 들었다.
강선후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오른쪽을 바라보자 셀피를 처음 만난 그 바위산이 저 멀리 보였다.
정면을 바라보자 저 멀리 천공섬이 있을 설산이 안개에 휩싸여 그 실루엣만 드러냈다.
좌측을 바라보자 버뮤다 숲이 있을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바위산에는 원래 새겨져 있을 키호테의 진명이 없었다.
북쪽의 설산 위에는 천공섬이 없었다.
동쪽의 황무지에도 버뮤다 숲은 없었다.
지금 강선후가 서 있는 곳은 베이스캠프가 있는 그 위치였으나, 그 ‘세계’는 아니었다.
지금 이곳은 아주 거대하고, 무질서하게 어질러진 공동묘지였다.
“……이런 곳에 터를 잡고 베이스캠프를 세웠다고?”
풍수지리사라도 부르지 그랬어. 강선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거 언제인지 모를 풍경의 공동묘지. 낮게 안개에서는 연녹색, 청록색의 빛이 희미하게 뿜어져 있었다.
공기는 차가웠다.
무덤 사이를 거니는 강선후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게 공동묘지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었다.
그곳에 마력이 고여, 결국 만들어진 하나의 작은 환영의 세상이었다.
강선후는 검을 꽉 쥐고 조금씩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유령에게 핵이 있었듯, 이 공동묘지를 대표하는 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까악— 까악—
위를 올려다보았다.
까마귀인지 마귀인지 모를 것들이 저 하늘을 날아갔다.
“…….”
그 뒤에는 풍선이 하나 지나가고 있었다. 점처럼 보일 정도로 아주 멀리, 하지만 강선후는 구분 지을 수 있었다.
공포를 위한 환각일까?
그것까지 의심했다. 여기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니까.
그렇게 정신 팔리는 중.
부스럭—
“……!”
갑자기 기척이 느껴졌다. 강선후는 몸에 입력된 대처 방법을 기계적으로 실행하며, 몸을 뒤로 빼고는 검을 쭉 내밀었다.
“……?”
그곳에 있던 건.
“왕!”
강아지와 개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어중간한 나이의 늑대였다.
강선후는 검을 늘어트렸다. 너무 빨리 경계심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강선후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 이계의 늑대.
정확히는 늑대의 유령.
강선후가 알고 있는 늑대였으니까.
“……존슨?”
“왕!”
* * *
조난 생활을 하던 시절 언젠가.
간신히 비를 막을 수 있는 천장, 그리고 그 아래 대충 쌓아 만들어진 건초 침대에 만족한 뒤 강선후는 자신의 몸을 시야를 가릴 잎으로 간이 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만 되는 녀석이었으나, 녀석은 기이할 정도로 사람을 잘 따랐고, 강선후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네 이름은 존슨이야. 자, 얘는 윌슨. 친하게 지내야 한다?”
“왕!”
“윌슨 너도 대답해! 어허! 무슨 말버릇이야 그게!”
그 뒤로 약 이 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 충직한 사냥개를 바라보며 웃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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