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
11화
강선후는 쓰러진 하운드들을 찬찬히 살폈다. 얼굴이 뭉개진 녀석은 즉시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으, 으으··· 으흐윽······.”
팔이 부러진 하운드는 부상을 부여잡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강선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가가서 하운드의 겉옷을 찢었다.
부부욱
“커억- 컥···.”
그러더니 입에 쑤셔 박았다. 캑캑대는 하운드의 입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못했다.
이들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짧은 시간동안 과격하게 움직였는데도, 그 호흡에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 으···. 아니···.”
여관 사장은 엉거주춤 일어나 덜덜 떨고 있었다가 강선후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하에 감금해둔 뱀파이어의 존재.
그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든 게 사실이더라도 증거가 없다면 당당할 수 있었다. 그게 지금의 사회였으니까.
여관 사장의 이성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청을 높이고자 했으나.
“어······.”
그 눈빛을 앞에 두고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거대한 맹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확신이 들 지경이었다. 그저 평범한 인간임이 분명했음에도.
“이놈들도 공범이지?”
그 목소리는 범의 으르렁거림으로 느껴졌다.
“팔아치울 거래처도 필요했을 테니 뱀파이어를 혼자 감당했을 리가 없거든. 어쩌면 하운드가 뱀파이어를 납치했고, 네가 거래처 역할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진 않고.”
강선후가 가방 속에서 도끼를 꺼냈다.
“그건······.”
날 부분이 푸른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손도끼였다.
수정 부분은 눈에 익는 것이었다. 이계 곳곳에 있는 바로 그 바위들과 같은 재질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 바위는 어떤 방법을 써도 부술 수 없었다는 것.
사태 초기 OWIC의 조사 발표에서 그렇게 밝혀졌고, 사람들은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강선후가 들고 있는 건 분명 조각한 푸른 수정 도끼였다.
‘대체 어떻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퍼억—!
나무로 된 바닥을 내려치는 도끼. 한 번에 수 센티미터의 균열을 만들어내었다. 나무 조각이 총알처럼 흩날렸다. 바닥 면이 부서지자 안쪽의 골조가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지끈!
부서진 면이 내려앉으며, 그 아래 공간이 드러났다. 빛줄기가 안쪽을 밝혔고.
“쉬이익···!”
잔뜩 겁에 질린 여성이 그 아래에서 몸을 떨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손과 발은 녹슨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해진 드레스를 간신히 걸친 새하얀 몸은 상처와 멍투성이였다.
“시이이—!”
고양이가 하악질 하는 모습이 연상되게, 여성은 몸을 떨며 얼굴을 찡그렸다. 위협하려는 의도가 보였으나, 애처롭기만 한 모습이었다.
흑발에 적안, 그리고 나뭇가지에 긁히기만 해도 상처가 생길 정도로 새하얗고 약한 피부.
강선후가 도시에서 만났던 뱀파이어임이 분명했다.
***
뒤늦게 도착한 경비대장은 지하실에 가둬져 있는 이계 종족을 보자마자 경악하고는 바로 여관 주인을 심문했다. 지하실로 가는 문은 계단 밑 창고에 숨겨져 있었다.
『접근 제한 —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간이펜스를 쳐서 민간인의 접근을 막은 뒤, 바로 지하실로 들어갔다.
손전등, 그리고 뚫린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어두운 방.
“하아······.”
그곳을 바라보는 경비대장의 표정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중 비중이 가장 높은 건 당연히 분노였다.
“이런 지하실을 대체 언제 만든 겁니까. 허가도 받지 않고.”
정중한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낮게 깔린 중후한 목소리만이 여관 주인을 압박하고 있었다.
“저, 그게···.”
사실 불법적으로 만든 지하실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아래에 갇혀 있는 이계 종족의 존재였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큰 문제였다.
“······.”
뱀파이어는 구석에서 몸을 떨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팔다리에 얼기설기 묶인 쇠사슬 자국이 그 피부를 시퍼렇게 물들였다.
피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아까 강선후가 말했던 ‘뱀파이어의 SOS 신호’가 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거슬릴 정도로 지독했지만, 이 냄새 때문에 다른 뱀파이어가 꼬일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했다.
“규정을 모르시진 않겠죠. 허가 없이 이계 인종을 마을 안으로 들여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요.”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계 인종을 매매하는 건 중범죄라는 사실은요.”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건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국제법 위반이에요.”
어떻게 변명해도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자각한 사장은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저··· 대장님.”
“예.”
허리를 굽히는 여관 주인.
“공공 이익을 위한 대장님의 노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큰 죄를 저질렀다는 걸 뒤늦게 자각하고 있고요···. 정말 후회가 막심합니다.”
조곤조곤 말하며 힐끗, 경비대장을 바라보았다.
“평생 죄를 뉘우치며 살 테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저도 대장님의 노고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보답이요?”
“그, 아시잖습니까? 이번에 부임하고 나서 아직 한 번도 받으신 적이 없으시지만, 이전 경비대장님들은 전부 일정한 ‘절차’를 거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장님도···.”
경비대장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여관 주인은 뇌물수수를 종용하고 있었다.
경비대장이 한마디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퍼억—!
“어억!”
계단에서 무언가 날아와 여관 주인의 귀를 스치고 지나가 벽에 박혔다.
강선후가 들고 다니는 수정 도끼였다.
“히, 히이······.”
“실례했습니다.”
손전등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강선후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개소리를 들으면 손이 가벼워지는 버릇이 있어서.”
“······.”
경비대장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선후가 보여주는 눈빛은 말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종류였다.
경비대장이 판단하기에, 강선후는 선한 사람이었다. 스캐븐 울프 무리에 기꺼이 달려들었으며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정보를 아끼는 법이 없었다.
야망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남을 이용하려들 때도 없었다.
그저 선하고, 조금은 단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강선후를 보기 전까지는.
“······.’
병적인 이면이 느껴졌다. 사람이 아니라 야성으로 날카롭게 버려진 짐승을 눈앞에 둔 듯한 느낌이었다.
규범과 법 따위와는 동떨어져 있는 야인의 얼굴이었다.
위층에 쓰러져 있었던 두 명의 하운드가 떠올랐다. 한 명은 팔이 부러져 있었고, 하나는 얼굴이 뭉개져 있었다.
그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분명 먼저 강선후를 공격했으리라.
용병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하운드 둘의 기습을 상처 하나 없이 해결하다니, 애초에 공격받는 상황까지 예상하고 들어갔던 걸까?
경비대장은 이전에 오분대기조 조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치, 맹수처럼 보였습니다.」
그건 마냥 헛소리가 아니었다.
강선후는 경비대장을 지나쳐서 뱀파이어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
구석지로 숨어 들어가던 뱀파이어가 그대로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
“···?”
처음으로 보이던 행동이었다. 뱀파이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잔뜩 질린 채 몸을 웅크리고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관 주인과 경비대장 모두 강선후를 바라보았고.
“···#@$%^$.”
강선후는 우두커니 선 채 뱀파이어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입안에 맴돌 뿐인 문장은 작지만 선명했다.
“루이스 아노Luis ano.”
룬 언어였다.
***
뱀파이어들의 귀족.
그들의 언어로 ‘로얄 블러드’라고 불리우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나이가 차고 능력이 발현된 날, 어린 흡혈귀는 방 안에 틀어박혀 공포에 떨었다.
똑똑.
누군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얘야.」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녀를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리리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허리까지 오는 흑발에 커다란 키, 붉은 드레스는 적안과 완전히 같은 색깔이었다.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어머니가 맞았다.
하지만.
“······.”
리리는 어머니의 뒤에 떠 있는 ‘유령’을 보고는 다시 겁에 질렸다.
그것은 이삭을 머리에 꽂고 있는 흰옷의 여성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히익······!”
유령의 손가락이 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얘야.」
도이나 신카 공작부인은 자신의 딸을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어머니, 유령이, 유령이 보여요. 어머니 뒤에도 있어요.
그 품속에서 리리는 웅얼거렸다.
「···우리 종족들은 피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주인을 닮아가게 된단다. 네 아버지가 늑대 우두머리의 피만을 먹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알아요. 그건 저도 알아요.
리리가 품은 공포에 대한 답이 되어주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귀족들은 영혼의 성질을 볼 수 있게 되었단다. 그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피를 마시기 전에 먼저 알 수 있도록 진화한 거야.」
그럼 제가 보는 건, 그 사람의 영혼인 건가요?
도이나 공작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그걸 영혼의 상(狀)이라고 한단다. 그자의 영혼이 투영된 형태. 악한지, 선한지, 영웅인지, 길거리의 잡배인지 알 수 있는 지표.」
리리는 오늘 아침, 자신의 소꿉친구나 다름없었던 시종의 등 뒤에서 침을 흘리는 탐욕스러운 악귀를 보았다.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네가 본 그게 모든 인종의 본질이란다.」
도이나는 리리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리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슬픈 눈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견뎌내고, 그 위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알겠니? 예언이 우리를 덮칠지라도, 너는 거기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아가야. 우리는 선택받은 상(狀)을 타고난 자손이니.」
***
몇 년 뒤, 예언된 침략전쟁이 시작되어 신카 소왕국이 멸망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뱀파이어 리리는 인간의 각 영역을 떠돌았다.
너무나, 너무나 많은 악귀의 형상이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어둠이 그녀의 눈에는 적나라하게 보였다.
모든 인간이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잉크를 쏟은 비단은 어떻게 해도 검은 자국이 남아있기 마련.
리리는 인간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 처음 보는 마을에 당도하자마자 인간들에게 납치당했다.
짐승의 생 피를 강제로 먹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자살은 뱀파이어에게 금기였기에 죽을 수조차 없었다.
몇 번의 밤이 지나고, 소란이 지나간 뒤 한 인간을 보았다.
모든 게 귀찮다는 표정을 하고, 분명히 평민의 옷을 입고 있는 남자.
의욕은 없어 보였고, 행동에서는 품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길거리의 야인이 문명의 이기를 조금이나마 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등 뒤에 발현되어 있는 영혼의 상(狀)은 맹수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용광로에서 막 나온 쇳덩이와 같은 야성, 본능에 충실하되 품위를 잃지 않는 격(格).
거대한 송곳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폭풍을 일으키는 듯한 눈빛.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 환시(幻示)마저 일으키는 듯한 위엄.
저 형상에 대해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대륙 곳곳에 퍼져 있다는 열둘 지배자.
그들임을 증명하는 영혼의 상 중 하나.
“···루이스 아노Luis ano.”
‘포식자의 상’이 눈앞에 있었다.
────────────────────────────────────
ep6. 이계가 어떤 곳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