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ep36. 선지자, 강림 (2)
활시위를 당기고 찰나의 순간,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며 면밀히 파악했다.
방벽을 넘어오는 야수는?
없다. 이건 정말 다행이었다. 지금 장애물이 쌓인 입구 쪽 하나만 방어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감시탑에 올라가 있는 주민들이 이상 현상을 목격하면 제때 보고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자 피를 쭉쭉 뿜어내던 넝쿨이 흐느적거리며 땅속으로 들어갔다.
저 넝쿨은 생물체가 가진 보폭을 감지해서 사냥하는 대표적인 육식 식물이었다. 파훼법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저 식물이 이 마을 안쪽까지 뿌리를 뻗은 게 큰 문제였다.
“걱정 마십시오! 엘프의 의식을 이미 치렀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영역으로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내 생각을 눈치챈 사제가 그렇게 외쳤다. 엘프의 의식이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사제가 저렇게 호언장담하니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판단을 끝낸 나는 시위를 잡고 있던 오른손의 힘을 풀었다.
패앵—!
활 끝이 뭉툭하고 무거운 탓에 조준한 곳과 크게 벗어났지만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최대한 강하게 저 장애물에 부딪히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화살은 잔햇더미에 강하게 부딪혔고.
챙그랑—!
촉에 매단 세 개의 유리병이 일시에 깨졌다. 이내 화합물이 섞이며 오묘한 연기를 뿜기 시작한다.
성분 하나하나 봤을 때는 반응성이 없는 물질들이다.
하지만 세 개가 뒤섞이면 유기물의 분자를 급속도로 분해한다.
“숲이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사체를 녹이는 물질.”
말로 풀기도 어려울 만큼 여러 과정을 통해 추출한 물질이다.
나무와 짚으로 된 잔해는 반쯤 녹으며 끈적한 액체가 된다.
그렇게 다시 고체와 뒤섞이며 더욱 끈적하고 기분 나쁜 장애물이 완성된다.
“크르르…….”
리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윽, 냄새.”
“역한 냄새는 모든 생물이 꺼리고, 판단할 지능이 없는 짐승들은 저런 것만으로도 행동이 둔해져.”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는 가장 다루기 쉬운 감정이다.
그리고 그걸 완벽하게 통제하면, 어떤 상황이든 내가 주도하는 게 가능해진다.
질척한 액체를 밟으며 장애물을 꾸역꾸역 넘어오는 짐승들의 발길이 둔해졌다.
엘프 사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모두, 전진!”
“전지이인-!”
주민들이 창을 내민 채, 진영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장애물 돌파를 시도하는 짐승들이 착지할 틈이 사라지고, 창끝은 바로 장애물 앞에 위치하게 된다.
“키에에엑—!”
뒤에서 밀어 대는 탓에 앞으로 굴러떨어지듯 밀린 짐승들이 창에 꽂혀 목숨을 잃었다.
한 번 기세를 잃자 공세는 이쪽으로 넘어왔다.
아니, 최소한 그런 줄 알았다.
“2차 옵니다!”
“2차?”
사람들이 난색을 보였다. 이 상황의 진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은 사제만이 침착함을 유지했다.
“막아! 버텨!”
“창끝 올려! 집중해, 새꺄!”
나도 나이프를 들어 올린 채 대기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곳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진영에 파고드는 건 팀킬이나 다름이 없는 짓이었다.
사제는 막간 여유를 이용해서 내게 뛰어왔다.
“광인이시여! 계시를 믿고 있었습니다! 신속하게 현재 상황 보고하겠습니다. 현 침공은 근처에 있는 숲에 살던 짐승들이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으며, 그 이유로는…….”
“스프리건.”
사제가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말을 이으면서도 주변을 탐색하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근처에 사는 생명의 정령, 스프리건이 모종의 이유로 광기에 빠졌네요. 맞나요?”
“그렇습니다.”
“스프리건은 광기에 빠지면 지성체를 주로 공격하는 습성이 있어요.”
“…….”
“당신들 말로 신의 자손이라고 하던가? 이유는 간단해요. 지성체들은 스프리건이 통제를 할 수 없으니, 본능적으로 적의를 가지는 거예요.”
딸깍-
황금 지침에서 꺼낸 짙은 푸른색의 보석은 반지가 되었다. 언제나처럼 엄지손가락에 끼며 말했다.
“통제를 할 수 없는 건 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어떻게 그걸 다 아십니까? 인간이신…… 아니, 아닙니다! 광인을 의심하다니 죄송합니다!”
반지를 낀 나는 정면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들려온 이질적인 소리.
이 소리. 날갯짓 소리 아닌가?
짐승들의 고함과 발소리, 그사이에 숨어 있는 펄럭거리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등장했다.
“치이이잇—!”
날다람쥐와 하이에나가 섞인 것 같은 생김새, 비늘이 나 있는 조류 같은 덩치 큰 짐승이 순식간에 장애물을 넘었다. 끈적거리는 유기물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건 거의 날아오듯 우리를 덮쳤으니까.
그 순간, 리리가 들고 있던 단검을 역수로 바꾸며 날렵하게 달려나갔다. 모자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그대로 도약했다.
그리고.
“어어……!”
창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당황했다.
날다람쥐 파충류 괴물 때문이 아니라, 창끝을 밟고 도약하는 리리 때문이었다.
저렇게 들고 있는 창이 리리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창끝은 리리의 발끝에 살포시 밟히며 아래로 살짝 내려갈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리리는 날다람쥐 괴물과 같은 높이까지 도약할 수 있었다.
사아악—!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은, 그저 곡예 같은 움직임에 괴물의 날개막이 길게 찢겼다. 중심을 잃은 괴물의 몸이 회전하며 땅에 곤두박질치기 직전.
촤아악!
내가 그 아래로 파고들어 동맥을 베어 냈다.
머리가 있는 짐승은, 반드시 목 앞부분에 동맥이 지나간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여기는 이계라 뭐든 단정 짓긴 힘들지.
“……세상에.”
뒤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탄성을 내질렀다.
딱 보니까 지구인인데, 조금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였다. 엄청나게 어려 보이는데. 하운드인가?
잠시 눈길만 힐끗 주다가 나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애물은 시간이 갈수록 훼손되었고, 짐승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 마을을 공격했다.
이번엔 땅 아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두더지 종류인가? 진짜 돌아 버리겠네.
그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퍽 놀라운 단어가 들려왔다.
“탈레스반tallethban.”
그러자, 땅 아래에서 막 고개를 내밀던 덩굴이 진동을 멈췄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이 짓을 해 대는 정령을 찾지 못하면, 이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예요!”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젊은 남성이었는데, 엘프도 난쟁이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게 딱 봐도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에는 난처함이 드리웠다.
그는 절뚝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이 마을 촌장님이 말한 선지자십니까?”
검은 로브 남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지자가 어떤 지위를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쪽은 누구?”
“남부 접경지대에서 긴급 파견된 현장 연구원입니다.”
“마법사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방금 말한 룬 언어는 평범한 게 아니던데.
“최근에 남부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경고하기 위해 긴급 파견되어 이곳까지 왔지만…… 조금 늦었습니다.”
마법사의 눈빛에서 죄책감이 묻어 나왔다.
“이건 근처에 사는 스프리건이 광란해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 차라리 공세가 옅어지는 틈을 타 이곳을 버리고 이주를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신이 선지자라면, 이들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 말은 도통 듣지 않더군요.”
“엘프는! 한 번 머문 곳을 버리지 않는다! 이 근본도 없는 녀석아!”
저럴 거 같긴 했지.
근데 어떻게 하지?
“……나도 그런 명령을 내릴 생각은 없어서요.”
마법사는 난색을 보였다. 저러니까 진짜 시체 같구만.
* * *
남부 접경지대에서 죽음을 연구하는 말단 마법사, 쟈니는 순간적으로 뇌가 멈추는 느낌마저 들었다.
눈앞의 존재는 분명 인간이었다. 이들이 선지자로 부르는 존재가, 이제는 제국 남부에서 잘 찾아볼 수도 없는 종족인 인간이라는 것까진 놀라웠다.
하지만, 그 희귀성이 종족의 대단함을 의미하진 않았다. 인간은 최소한 지금은 아무런 영광도 찾아볼 수 없는 종족이었다.
쟈니는 조금 실망했지만, 학자는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선 안 되었기에, 그 내면에 무언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없이 조심스러웠으나 해야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저, 그, 음……. 상황이 급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프리건의 위치는 찾는 게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요?”
“그렇습니다. 그 존재는 땅 아래 정기가 충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낼 필요도 없습니다.”
듣고는 있는 걸까? 남자는 그저 정면에서 끊임없이 넘어오는 짐승들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 활동 범위도 너무나 넓습니다. 특히 이곳은 분지 지형이라, 그 위치를 추적하고자 해도 도무지 방법이…….”
“탈레스반tallethban.”
쟈니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눈앞의 남자는 정면으로 손을 뻗어 룬을 외었다.
인간이 룬을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지만, 쟈니의 머릿속에는 그보다 훨씬 더 믿을 수 없는 사실로 가득 찼다.
‘탈레’를 어두로 시작한 룬 언어는, 죽음을 연구하는 학파 사이에서만 내려오는 룬이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듣고서?”
탈레- 룬을 이 남자가 알 리가 없었다. 남쪽과 연고도 없는 자임은 분명했으니까.
그럼 한 가지 가정 말고는 남지 않았다.
방금 전 자신의 룬어를 듣고 따라 했다.
생명과 죽음을 다루는 룬, 그것은 룬을 떠나서 보통의 마법사들은 다룰 수조차 없는 특별한 것일 텐데.
쟈니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구분이 되지 않다가, 지금은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되새겼다. 저 앞에는 여전히 침공을 막아 내는 처절한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크르릉—!”
오금이 저리는 범과 맹수의 울음이 온 천지를 가득 채웠다.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볼 정도였다.
“뭐야!”
“뒤인가?”
“뒤가 뚫렸…….”
그 순간, 뒤편을 막고 있었던 방벽을 아무렇지 않게 훌쩍 넘어오는 거구의 존재는.
“커흥—!”
흑마였다.
발굽과 갈기가 불타는, 적안을 가진 흑마.
그것은 바람의 속도로 달리며 맹수의 울음소리를 내며 인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랑스레 다시 울부짖었다.
마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쯤 되니, 쟈니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은 이거 하나뿐이었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쟈니는 거의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몰아치듯 격변하기 시작한 상황을 눈과 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이 모든 비상식을 이해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하지만, 쟈니는 다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직감으로, 거대한 이상 현상을 누구보다 먼저 느꼈기 때문이었다.
땅이 울리고 있었다.
땅 아래에 생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주 빠르고 거대한, 자아를 가진 생명이.
그리고.
파아아악—!
인간의 바로 앞에서 거대하고 찬란한 빛이 솟구쳤다. 용의 브레스가 이곳을 강타했다고 순간 착각했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그건 아주 작은 녹색 반딧불 수천 마리가 모여서 만들어진 빛의 물줄기였다.
그것은 흩어지더니 다시 모여, 거대한 호랑이의 형상이 되었다.
연녹색으로 빛나는 호랑이는 인간 앞에 착지했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입에 물고 고개를 조아렸다.
마치, 사냥감을 바치는 맹수의 모습과 같았다.
「키익, 키이이익—!」
“이건…….”
쟈니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녹색 반딧불이 수천 마리가 모여서 만들어진 거대한 맹수의 형상.
그것이 입에 물고 있는 건, 붉은색 반딧불 수천 마리가 모여 만들어진 괴물의 형상이었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비정형의 슬라임처럼 이리저리 꿈틀댔지만, 맹수의 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나는 녹색, 하나는 붉은색.
둘 다 생명의 정령이었다.
맹수의 형상을 한 생명의 정령이 말했다.
「우리는 그대의 부름에 기꺼이 답합니다. 그대는 우리의 주인일지니.」
미쳐버린 붉은 스프리건이 몸부림치며 말했다.
「놔! 난 살아남을 거야! 산다! 나는 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그 순간, 몸부림치던 붉은 스프리건이 맹수의 이빨에서 벗어났고.
「그런 곳이 필요할 뿐이야!」
그것은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수천 마리의 벌떼와 같은 소리를 냈다. 듣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닿지 않고 멈췄다.
인간은 그것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인간의 눈은 그저 미쳐 버린 생명의 정령을 바라볼 뿐이었다.
인간이 뻗은 손등에는 주홍빛의 송곳니 문신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생명을 통제하기 위해서, 그것으로 충분했다.
* * *
죽음을 다루는 마법 학파는 제국에서 항상 중요한 위치를 담당했다.
그들만이 악마를 막을 수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본인들이 그럴 힘 따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직 전설 속에서만 내려오는 마법, 죽은 자의 영혼을 다루는 강령술을 다룰 수 있는 이는 세상에서 오직 한 명뿐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황금의 시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그 태생적 한계를 모두 극복해 내고 끝내 강령술의 비밀을 푼 자.
그는 인간임에도 룬을 사용할 수 있고, ‘탈레’를 이해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는 셀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온 자라고 했다.
황금의 시대 때부터 이어 온 그 전설 속 인물을, 학파의 마법사들은 엘드리치el de lich라고 불렀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