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ep36. 선지자, 강림 (3)
광기에 빠진 짐승들의 침공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쟈니가 이 마을에 도착한 이틀 전에도 이 마을은 밤낮으로 침공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의 예상이지만 최소한 닷새는 밤낮으로 공세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쟈니는 마을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 부분에서 의문을 느꼈다. 이 사람들이 그저 막아 내기만 할 뿐,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미친 스프리건의 공격을 막아 내기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스프리건은 끝장을 볼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거고, 이쪽에서 스프리건을 제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 의미 없는 방어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면, 차라리 쟈니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촌장은 공세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문만이 남았다.
‘왜 계속해서 방어만 하고 있는 겁니까? 원인을 알고 있다면, 이 고집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말에, 촌장은 터무니없는 답변으로 일갈했다.
‘선지자가 우리를 구한다는 계시가 내려왔소.’
성좌의 계시를 터부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고려해도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 선지자라는 존재가 뭐든, 불멸의 존재나 신화 속 인물의 재림이 아니라면 이 상황에 무슨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쟈니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과거를 돌이키며, 눈앞의 상황을 목도하고 있었다.
지배자를 상징하는 문신이 그의 왼쪽 손등에서 주홍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걸 본 붉은 스프리건은 광기에 찬 움직임을 일시에 멈췄다.
녹색의 스프리건은 그저 차분하게 제 주인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순간, 창끝을 내렸다. 짐승의 공세가 일시에 멈춰, 더 이상 날붙이를 내밀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이곳을 몰아친 위기가 하룻밤의 악몽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증발하고 정적만이 이곳을 감돌았다.
바람이 불었다. 강선후의 재킷과 그 옆에 서 있는 뱀파이어의 긴 머리칼이 가볍게 흩날렸다.
쟈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지배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정령과, 그 정령에게 제압당한 괴물.
그리고 그 앞에서 무표정한 눈빛으로 괴물을 바라보고 있는 지배자.
옛날이야기가 담긴 책의 삽화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
“이게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 녀석이었소?”
키가 작고 어깨가 다부진 마을 사람 하나가 촌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놈이 내가 애지중지 키운 소를 다 죽여 버린 녀석이란 말이지?”
촌장은 기다란 창을 지팡이처럼 세운 채 다부진 표정으로 그저 스프리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곧, 그 시선은 선지자에게로 옮겨졌다.
선지자는 감정을 읽기 힘든 눈빛으로 스프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주인. 바라는 바를 말해 주세요.」
쟈니는 그 순간 기대했다. 아마 마을 사람들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선지자라 불리는 인간은 마땅히 적을 벌하고 다시 한번 이 마을의 영웅이 된다.
그게 이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전통적인 영웅과 기사의 이야기였다.
그 사이에도 여전히 선지자는 꿈틀거리는 미친 정령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거 같은데, 그 눈빛을 아무리 읽어도 감정을 엿볼 수가 없었다.
「죽어야 해! 내 영토에 들어온 모든 놈들은 전부 죽어야 해!」
붉은 스프리건의 불안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그 순간, 쟈니는 알았다. 인간의 시선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분노도, 짜증도 아닌 그저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사실을.
「…….」
미친 정령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그 목소리에 온화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지배자였기 때문이었다.
강선후는 물었다.
「내 영토를…… 지켜야…….」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 준다면, 네 안식처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할게.”
「…….」
“약속할게.”
「……당신의 약속을 어떻게 믿어? 당신은 약속하는 존재가 아니야. 그저, 군림하는 존재…….」
“약속할게.”
붉은 스프리건이 조금 꿈틀거렸다. 그 몸을 이루는 수천의 빛방울이 일렁였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끼어들지 않았다. 그들이 선지자라 부르는 이 인간이 하는 걸, 그저 믿음 충만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쟈니가 나섰다.
“저, 이렇게 끼어들어 죄송하지만, 이 정령은 이제까지 우리를 습격한 주체입니다.”
“그렇겠죠?”
“단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법사님은 비에 젖으면 비를 원망하세요?”
인간은 그저 붉은 스프리건을 바라만 보았다.
“그건 당연히 아닙니다.”
“정령도 마찬가지예요. 생명이지만, 자연 현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녀석들이에요. 그런 녀석들에게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면 그 원인을 교정해야지, 녀석들에게 화풀이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러고는 호랑이의 형태를 한 정령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셀피.”
「우리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선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약속할게. 네가 내 말을 들어 준다면 너한테 안전한 집을 제공한다고.”
「…….」
붉은 스프리건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일렁였다. 밝게 빛나다가도, 꺼진 촛불처럼 희미해졌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붉은 스프리건은 몸을 일으켰다.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생김새였으나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녹색의 정령과 붉은색의 정령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 존재가 나와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허락하시나요? 우리의 주인.」
강선후는 스프리건이 군체 생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뜻만 일치한다면, 여럿이자 곧 하나가 될 수 있는 존재.
“우리랑 같이 가자.”
강선후는 그렇게, 공포에 질렸던 스프리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등에는 여전히 주홍빛 지배자의 문신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윽고 붉은 반딧불이 군체와 녹색의 군체가 서로 뒤섞이며 하나가 되었다. 보랏빛이 발하는가 하다가는 어느새 다시 포근한 녹색의 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붉은 동공을 한 채 바라보고 있는 리리의 눈에는 확실한 변화가 보였다.
“……새싹 형태의 영혼이.”
“변했어?”
“자랐어. 이제는 나무야. 작고 푸른 나무.”
쟈니는 이 모든 신비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순간을 축복받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격이 되지 않는다면 평생 볼 일이 없는 정령의 실체를 보는 걸 넘어서서 두 스프리건이 하나의 뿌리가 되는 모습까지 보다니.
생명과 죽음을 연구하는 마법사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자, 처절하게만치 눈에 힘을 줬다.
지배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정령, 그리고 그런 정령을 존중하는 지배자.
더 놀라운 건.
“……포식자의 상이십니까?”
단 한 번도 이 시대에 관측된 적 없는 지배자의 상이 눈앞에 있었다.
최초의 포식자가 자손을 남겼거나 후계를 선택했다는 기록이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강선후는 쟈니의 말을 무시한 채 그저 스프리건을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마치, 새로 구매한 말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마을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다들, 다친 사람 없죠?”
“광인이시여!”
사람들은 일시에 엎드려 절했다.
이곳에 서 있는 건 인간과 뱀파이어, 그리고 쟈니뿐이었다.
* * *
모든 일이 끝났다. 사람들은 피해를 복구하고, 부상자를 이송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만난 핏자국의 주인은 다행히 죽지 않고 마을에 도착했다. 숲속 어딘가에서 의식을 잃었는데, 천운이 따라 줘 목숨을 건졌다고.
지난번처럼 연회를 열려고 하는 마을 사람들을 말리고, 우리는 빈집을 하나 빌렸다.
“연회 안 해?”
“리리는 했으면 좋겠어?”
고개를 가로젓는 그 표정을 보니, 리리도 확실히 선지자 타령은 질리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마을 사람들한테는 그게 위안이 될 테니까.”
“위안?”
“마을에 미친놈 씨 오시니까 계시라면서 저렇게 신나 하는 거 봐.”
“…….”
고개를 돌려 힐끗 창밖을 바라보자, 광장에서 모여서 술판을 벌인 마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들은 당신이 구심점이야. 우리 아버지도 연회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영지민들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축제를 기획하셨어.”
“어른들의 세상이네.”
그리고 난 그런 세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광인 소리 때문에 돌아 버릴 거 같은 건 여전하지만 이제는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나를 광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최소한 나를 배려하는 사람들이었고, 그게 나쁜 건 절대로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 마을에서 시간을 때울 생각도 없었다. 우리의 체력은 아직 충분했고, 갈 길은 멀었다.
나는 바로 자신을 쟈니라고 소개한 마법사를 호출했다.
“저, 음, 부르셨습니까……?”
아까 전에는 위급 상황이라 좀 빠릿빠릿하더니, 긴장이 풀린 지금은 완전 시험이 이틀 남은 대학생 같은 꼴이었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쟈니의 태도가 이상했다. 짙게 깔린 다크서클이 더 진해져 있었다.
내가 지배자의 상이라는 사실 정도는 봤을 거고, 포식자 어쩌구 하는 것도 얼마나 알고 있냐에 따라서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지.
그럼 좀 위축된 건가?
이계에서 지배자의 상이 어느 정도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한 게, 이제까지 만난 지배자의 상 둘이 좀 상태가 좋지 않기도 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리리의 말이 뭘 뜻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어쨌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큰 수확은 셀피의 성장, 그리고 쟈니를 만났다는 사실이었다.
“그쪽 분은 남쪽에서 왔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그럼 가는 길을 알겠네요?”
그런데, 쟈니는 좀 난처한 표정이었다.
“알고 있지만, 저…….”
쟈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그곳으로 통하는 유일한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다리가 무너져요? 왜요?”
“지진 때문이었습니다……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는 다리고, 제국이 쇠약해진 이후에는 방치되어 있던 거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폭이 어느 정도죠? 다리가 없으면 못 건널 정도인가요?”
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리리는 골치가 아픈듯 이마를 잡고 한숨을 내뱉었다.
물론 난 아니었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잖아?
“근처에 비프로스트가 있지 않나요? 왠지 그럴 거 같은데.”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마법사인데?”
쟈니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저는 사용할 수가 없으니 아, 알 필요가 없었어요…….”
그때, 성녀가 들어왔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다가는 우리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잠시 당황하다가, 문을 닫으며 다시 나가려는 듯 뒷걸음질 쳤다.
“괜찮아요. 들어와요.”
쟈니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성직자를 대동하고 있군요. 왜…… 칼을 물고 있는 거지…… 무슨 종교적인 이유인가요?”
저 검에 대해서는 모르나 보네.
모르는 게 약이니 굳이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성직자가 있다면 비프로스트를 찾으시는 것도…… 이해가 되는군요…… 비프로스트는 성직자들의 선유물이니…….”
“어쨌든, 있긴 하다는 말이잖아요?”
“있다는 걸 알아도…… 어디 있는지 모르면 의미가…….”
“셀피.”
「주인의 바람에 따라 움직입니다.」
한순간 방 안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쟈니는 그야말로 기절할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심호흡을 했다.
땅 아래에서 녹색의 기운이 올라와, 어떤 형태를 만들었다.
그건 지형이었다.
이 근방 구석구석을 완벽하게 표시한 입체 지도였다.
이 근방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스프리건이 셀피의 무리에 합류했잖아.
“그럼, 그 영역은 사실상 내 영토나 다름이 없어.”
리리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성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홀로그램 지도로 손을 뻗었다.
나는 지형지물을 머릿속에 넣었다. 각 지형의 형태뿐만 아니라 특색과 특이사항까지, 샅샅이 기억했다.
“비프로스트는 여기 있네요. 하루면 도착하겠네.”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지체할 것 없으니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저, 그, 무례를 무릅쓰고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 까?”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쟈니가 말했다.
무례할 건 뭐야? 나는 그저 쟈니를 바라보았다.
“혹시, 엘드리치의 후예십니까? 혹은, 엘드리치 본인이십니까?”
“네?”
엘드리치?
……아니 그건 또 뭐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리리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시즌 3호 별명 축하해.”
“…….”
우선 무시하면서 지나가는데, 남쪽에서 있을 일이 조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사람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