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ep37. 남부 접경지대 (1)
남부 접경지대.
1년 전 이곳에서는 거대한 전투가 있었다.
사실 전투라기보단 저항에 가까웠다. 이곳부터 남쪽으로 쭉 펼쳐져 있는 죽음의 지대.
그 지대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악마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징조가 계속해서 이어져 왔기 때문이었다.
남부 접경지대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은 그 악마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수십 년을 조심스럽게 살아왔으나, 이제는 유명무실한 행동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악마는 깨어날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제국에서는 도발적인 명령이 떨어졌다. 화력을 투사하여 악마를 선제공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행동은 악마의 기상 시기를 앞당길 게 분명했으나, 어차피 깨어날 거라면 그 시기가 당겨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실패하더라도 본전인 상황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게 아마도 제국의 판단이었던 모양이었다.
약 1년 전, 듣도 보도 못한 군사 집단이 화기를 이끌고 이곳으로 찾아왔다.
제국과의 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도착했다고 하는 이들은 알 수 없는 재질의 군복을 입고 있었고 무쇠로 만들어진 긴 화포를 가지고 있었다.
제국에서 운용하는 화포와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였으나,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화력을 구사하는 그 흉기가 아홉 문이나 있었다. 이들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저 멀리 깔려 있는 검은 안개 안으로 포격을 가했다.
그리고, 악마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악마는 그저 울부짖고는 다시 연기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이 이야기만 듣는다면, 악마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들과 군사 집단의 사기를 꺾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연기 안에 있는 게 무엇인지, 이들은 정면으로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불멸자로 태어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용.
제 아비를 따라가기 위해 자살한 불멸자는 그 자체로 죽음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존재는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던 공포를 이끌어 냈다.
그것만으로 모두의 사기가 꺾였다.
그 뒤로, 별다른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시간만 끌다가 이 집단은 떠났다.
마법사들은 유명무실한 제국의 행보를 비난했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이곳의 균형을 깬 사건이었고, 마법사들의 신성한 연구를 방해한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토록이나 마법사들은 충성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룬의 비밀을 푸는 것에만 의미를 두는 자들이었으니까.
“……라는 거지?”
“그렇다네.”
리리와 나는 이동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 마을에 남아 있을 쟈니가 이야기해 준 말이었다.
그 악마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서지아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영상에 담겨 있었던 지구 군대의 정체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OWIC이 제국이랑 협조하고 있다고?”
이건 리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꽤 신선한 정보였다. OWIC이 이계에 어디까지 관여하고 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으니까.
이쯤 되니까 살짝 궁금해졌다.
차원문이 열리고 이제 3년을 바라보는 시점.
OWIC은 그 훨씬 이전부터 이계에 관여하고 있었거나, 최소한 이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 OWIC이라는 단체 말이야.”
가만히 생각하는 사이에 리리가 입을 열었다.
“정말 당신 세상의 사람들이 맞을까?”
“……?”
“당신 세상이 우리 세상에 넘어왔잖아.”
“……그렇지?”
리리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말 위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 세상에서 당신네 세상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지 않겠어?”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당장 서지아도 그렇게 넘어온 사례고.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어쩌면 당신 세상이 우리 쪽에 넘어온 것보다, 우리 세상이 당신네 세상으로 먼저 넘어갔을 가능성은?”
“일리는 있네.”
처음 떠오른 가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생각해 본 적 없는 가정이었다.
어느 방향이든 사실 내 큰 관심은 아니었다. 저들끼리 알아서 하라지. 당장 우리 세상에 해코지하려는 게 아니라면 내가 신경 쓸 건 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머릿속 한편에는 남겨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다시 평야를 달렸다. 바람은 남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느꼈던 그 습하고 꿉꿉한 바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건, 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습해.”
리리가 말한 대로였다. 이 바람은 우리가 베이스캠프를 벗어난 시점부터 느낄 수 있었지.
예전에는 확실히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셈인데, 남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관련이 있는 걸까?
아니면, 지금 갑자기 성녀가 남쪽으로 향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음…… 리리.”
“응.”
“이번에는 확실히 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리리는 무슨 술주정 부리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저래?
“그거 되게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알아?”
“왜?”
“당신, 그럼 이제까지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고 돌아다닌 거야?”
“…….”
예상치 못한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그건 아닌데, 장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 직감적인 게 있어.”
“어쨌든, 그래서?”
“이번에는 좀 신중하게 다니자. 셀피!”
「네. 우리의 주인.」
바닥에서 녹색 반딧불이가 솟아오르더니 호랑이의 형태가 되었다. 호랑이는 우리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지도.”
그 말과 동시에 내 중심으로 홀로그램 지도가 넓게 펼쳐진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 이렇게 3D 지도를 둘러보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셀피의 지도는 우리가 향하는 방향으로는 끊겨 있었다.
“이 전방으로는 알 수 없는 거야?”
“우리의 영역이 아니에요. 그곳에는 생명의 정령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 보이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는 미세한 장벽 하나를 지났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그저 흔적뿐인 장벽이라고 생각했다. 장벽이란 위험하고 절대적인 것도 있지만, 이렇게 있으나 마나 한 것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나는 최소한 그렇게 생각했다.
장벽을 넘어가자마자, 전방으로 보이는 검은 땅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는 자리에서 멈췄다.
“……여긴가 보네.”
사실 눈보다 코로, 피부로 먼저 느꼈다. 거의 물속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습했다. 아니, 처음에는 습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달랐다. 이건 공기가 무거웠다.
마치 중력이 강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찔렀다. 처음에는 코피가 날 것 같이 따끔했으나 이내 익숙해졌다.
젖은 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연기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먹구름 뒤에서 그 실루엣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구름 틈 사이로 검붉은 번개가 번쩍였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 전방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짙게 깔린 검은 연기가 펼쳐져 있었다.
강철 실로 만들어진 거대한 솜 같기도 했고, 하늘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먹구름이 땅 위로 내려앉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느 쪽 비유가 더 맞든,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연기 같은 질감인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너무 이질적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셀피는 장벽을 넘지 못한 채 그곳에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셀피?”
내 말은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고, 셀피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죽음의 땅이야.”
리리의 평은 정확했다.
이곳은 죽음의 땅이었다. 생명을 상징하는 존재는 그 발을 들이밀지 못하고 있었다.
지침을 바라보았다. 황금 지침은 여전히 남쪽을 가리키는 듯했으나, 그 방향이 살짝 왼쪽으로 이동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조금 더 가 봐야 할 일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우측은 어느 정도 평탄한 지역이었으나, 바로 왼쪽은 온갖 바위산과 언덕, 그리고 좁게 펼쳐진 길이 뒤섞인 복잡한 지형이었다. 그 모든 게 검은색이라는 게 너무 이상해서 신비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저거…… 탑이야?”
꽤 높은 산꼭대기에, 탑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타는 눈알이 휙휙 돌아가며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 집착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니, 우연이겠지.
나는 고개를 휘젓고는 다시 렐릭시나 위에 올라탔다.
“가자.”
“저기로 가려고?”
“저런 걸 어떻게 지나쳐.”
리리는 성녀를 한 번 힐끗 바라보았다. 성녀는 무슨 말을 들어도 그저 동그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우리는 서둘러 말을 달려 탑으로 도착했다.
탑은 생각보다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높이는 못 해도 20미터는 훨씬 넘어 보이는 게 고대 유적이라는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렐릭시나.”
“크릉…….”
“여기에서 기다려. 친구 잘 보살피고. 알겠지.”
“크르르릉—!”
“어허! 네가 서열 싸움할 짬이야?”
렐릭시나는 리리와 성녀가 타고 다니는 말을 툭 하면 위협했다. 확실히, 성격이 좀 더럽긴 하단 말이지.
우리는 바위 뒤에 말을 감춘 뒤 위장 망토를 몸에 둘렀다.
“성녀님도 따라올 거예요?”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진짜로 방해가 될 거 같으면, 그때 가서 다시 설득하기로 했다.
우리는 조금씩 신중하게 탑으로 접근했다. 성녀는 생각보단 잘 따라와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탑 벽에 바짝 붙을 수 있었다. 다행히 탑 꼭대기에 있는 마법 눈은 간헐적으로 검은 연기 폭풍 쪽을 바라볼 뿐, 딱히 우리를 발견하진 못했다.
“성녀님. 여기서 잠시 기다려요. 안쪽 정찰하고 금방 올게요.”
우리는 그런 말을 남긴 채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문은 없었다. 그저 뻥 뚫린 입구만 있을 뿐.
경첩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쪽은 어두웠지만, 저 멀리 불빛이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희미한 횃불이었다.
“횃불이네. 마법일까?”
리리가 속삭였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기름을 잘 먹인 게…… 이건 분명 사람의 흔적인데.”
조금 이상했다.
접경지대는 우리가 진입하는 곳과는 거리가 좀 떨어진 곳이라고 들었는데.
리리와 한 번 눈을 마주치고는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의 흔적은 있는데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돌로 만들어진 탑 안에서는 공기가 미세하게 흐르는 공명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그렇게 긴 복도를 지났다. 안쪽은 생각보다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대부분의 방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20분 정도 탐색을 했을까.
2층에서 우리는 사람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리리는 엘프만큼은 아니지만, 청력이 좋은 편이라 안쪽의 소리를 듣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은 소리는.
“그어어어…….”
“흐읍!”
갈라지는 듯한 소름 돋는 목소리였다.
리리는 숨을 들이켰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신음 소리는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내뱉는 마지막 숨소리에 가까웠다.
우리는 이곳이 죽음과 관련된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좀비!”
리리가 빠르게 답에 도달했다. 나는 조금 결론을 미루고 귀를 기울였다.
“그어어어…….”
“그어어…….”
그 소리는 좀비의 소리가 아니었다.
고개를 내밀자, 두 개체의 인간형 무언가가 검은 로브를 입고,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어어어…….”
잠깐.
“……?”
나는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모든 신경을 차단하고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했다.
“교수님…….”
“이번…… 논문만 도와드리면…… 학위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이름…… 올려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야. 마탑에서 반려됐다고.”
“…….”
나와 리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좀비 소리가 아니었다.
“50년째 졸업도 못 하고 이게 뭐예요…….”
저건 한국에서도 많이 사는…… 개체인데.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