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ep38. 엘드리치, 사자(死者)의 구원자 (1)
우리는 경직된 표정으로 벽화를 읽어 보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먼저 입을 연 건 리리였다.
협곡의 고성은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안쪽은 긴 복도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지만, 이전에 말했던 데스 나이트도 없었고, 이런 불가사의한 고성이라면 으레 있을 것 같은 함정도 없었다.
그 복도에는 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그 벽화에는 도끼를 들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도끼를 들고, 불타는 눈을 가지고 있는 걸로 묘사되어 있었다.
남자가 서 있는 곳 하늘에는 소용돌이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소용돌이인데.
“이건 아마도 사계, 그러니까 명계를 묘사하는 거 같은데.”
그 말대로였다. 이계의 전승상 명계는 하늘에 영원한 소용돌이가 존재한다고 묘사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거, 그거…… 잖아.”
불타는 눈을 가지고,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남자의 머리맡에는 풍선이 하나 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도끼를 휘두르는 상대는, 거대한 불을 가지고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저게 뭔지 몰랐는데, 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명계의 왕.”
명계에서, 풍선 아래에 있는 불타는 눈을 가진 남자가 명계의 왕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는, 쓰러진 명계의 왕을 발로 밟고 올라선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의 뒤에서 한 남녀가 그 등에 의지한 채 뒤따르고 있었다.
“……풍선과 같이 다니는 남자가 죽어서 명계를 갔는데, 살기 위해 명계의 왕을 쓰러트리고 억지로 이승으로 기어 올라왔다.”
리리는 아주, 아주 복잡한 감정을 담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내가 잘못 해석한 건가?”
나도 몰라.
왜 나한테 그래.
그 순간.
또각- 또각-
복도 저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그림자 뒤편에서, 두 명의 인간, 아니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푸르게 질린 피부를 제외하면, 인간이라 생각해도 어렵지 않은 모습.
그 남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초대 예언자의 예언이 다시 한번 실현되었군요.”
“……누구세요?”
“당신의 자손이지요.”
그들은 나를 바라보더니,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덕분에 다시 태어난 생명이니, 당신은 저희의 아비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자손, 아다마와 하바입니다.”
사람이 머리가 복잡해지면, 오히려 반대로 멍해지는 경향이 있다.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멍한 정신을 강제로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건 내가 오랜 기간 살아남으며 체득한 훈련 결과였다.
심호흡을 하고, 복잡한 생각을 한편으로 치우고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미안한데, 저는 아무런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아서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기억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아다마와 하바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건 이 적막으로 가득한 고성의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다.
그때, 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
리리를 바라보았다. 그 동공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리리는 지금, 이 둘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둘의 영혼은 하나의 나무야. 사과가 열려 있는 나무.”
“둘 다?”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
“하나라니?”
한 명만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리리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고 있어.”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저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여전히 날 올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나뭇잎을 모티브로 만든 것 같은 그 로브가 묘한 신비로움을 주었다.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아버지.”
그들은 동시에 뒤로 돌았다. 그리고 기나긴 복도를 걸어가 우리를 안내했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그 끝에는 작은 회랑이 있었다. 위에서 한 줄기의 빛이 그 가운데에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을 받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보였다.
“이게 우리를 구했던 당신의 도구였습니다.”
“……내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사과가 듬성듬성 열려 있는 그 나무로 다가가며 말했다.
“나는 사과나무를 휘두른 기억은 없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난 당시에 도끼만 사용했으니까.”
별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벽화에 그려져 있는 도끼가 익숙했던 건 바로 그 탓이었다.
아다마가 말했다.
“그 도끼가 자라 이렇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사과나무를 깎아 손잡이를 만들곤 했으니까요.”
이들은 로크 벨라의 기억 제거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그건 아니었다.
이들은 기억에 의존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을 정해, 악착같이 기억해 내고 있었던 거였다.
과거, 키호테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 물건에는 당신의 의지, 그리고 남겨진 저희의 의지가 깃들었습니다.”
문뜩 떠올라서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냈다.
황금 지침은 아주 빠르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건, 지금 황금의 유물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였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았다.
너무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지금 정황상…….
“황금의 유물이야.”
오히려 확신은 리리가 내렸다.
이 사과나무가 황금의 유물이라고?
내가 사과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황스러웠다.
황금 유물은 도구 아닌가?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아다마와 하바가 사과나무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위에 손을 얹었다.
“황금의 유물은.”
“지배자의 의지를 존중하지요.”
그 순간, 그들의 이마 중앙에 문신이 발했다. 속이 빈 원 형태의, 남색 빛을 발하는 문신.
그와 동시에 나무 역시 광채를 발하며 크기가 작아져, 끝내 지팡이의 형태가 되었다.
그 끝에는 이파리가 달린 수정구가 달려 있었다. 지팡이의 몸체는 구불구불한 나무뿌리를 묘사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언제나 황금의 유물이 그랬든, 은은한 황금빛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사자(死者)의 지팡이.”
“이것과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엘드리치시여.”
그들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팡이를 내밀었다.
* * *
아다마와 하바는 자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황금의 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을 살았으며, 그 시대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명계에서 의식이 없는 영체가 되어 영원히 헤매던 그들은 생전의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함께였다. 이유는 그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에 누군가 떨어졌다. 죽은 자는 명계의 하늘에 영원히 회전하는 소용돌이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희미한 의식의 파편 속에서 새로 죽은 자의 영혼을 동정했다.
그 죽은 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손에, 생전의 무기가 그대로 들려 있는 걸 보기 전까지는.
죽은 자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하리라 여겼던 목표에 도전했다.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명계의 흙을 입에 넣고 씹었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과 이를 악물고 맞섰다.
그가 명계에서 무슨 업적을 이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결국 현세로 기어 올라온 사실.
그리고 자신과 동행해 준 아다마와 하바를 기꺼이 구원해 준 사실은 이 세상에 그대로 남아 증명되었다.
아담과 하바, 먼 미래 지배자의 상 중 하나, 사자(死者)의 상을 발현한 뒤에 다짐했다.
그들을 구원해 준 은인을 위해, 영겁을 기다리겠노라고.
* * *
강선후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사자(死者)의 상을 타고난 이들은 고대의 언젠가 그들을 구원한 남자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는 그런 강선후를 잠자코 기다렸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아다마와 하바는 강선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크샤론에 대해 알아요?”
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자식들이지요.”
“그 사람들, 당신들을 그리워하는 거 같은데.”
“저희도 우리의 아들딸들이 그립습니다.”
“엄청 가깝잖아요. 나 여기까지 오는데 딱 이틀 걸렸거든요? 말 타고 있긴 하지만…… 가고 싶으면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여기에서 나갈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다마의 표정에는 약간의 슬픔이 덧씌워져 있었다.
“가롯을 억제해야 합니다. 이 성 자체가 가롯을 억제하기 위해 지어진 구조물이기에.”
“가롯?”
“보지 못하셨나요? 제 아비를 따라 자살한 용입니다.”
“그, 까만 폭풍 안에 있는 거대 파충류 화석?”
아다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조신은 투신하여 이 대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첫 번째 자손이었던 용 중에 제 아비를 따라가 목숨 버린 용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가롯, 지금은 죽음을 상징하는 악마가 된 영혼입니다.”
“가롯이 풀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 숨결이 온 세상에 닿습니다. 그는 지금 용이라고 불리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여전히 그 어떤 필멸자보다는 강한 존재니까요. 죽음의 기운을 담은 그 숨결이 세상을 덮겠지요.”
하바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걱정입니다. 이 성은 오래되었고 악마의 힘은 예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가롯의 봉인이 점점 풀리는 게 느껴져요.”
“…….”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건 꽤 긴 시간이라, 좀 어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정적이 길게 유지되었다.
“……만약에 가롯이 처리되면, 당신들이 자식을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만…… 가롯을 죽이기 위해서는 불멸의 존재와 버금가는 힘이 필요할 텐데요.”
“리리. 가자.”
“응.”
리리는 내 결정을 예상이라도 한 듯 굳은 얼굴이 되었지만, 따로 반박하지는 않았다.
떠나기 전, 뒤를 돌아 말했다.
“이따 밖에서 봐요.”
아다마와 하바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기나긴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성녀가 왜 여기로 왔는지 알 거 같아.”
“자살할 생각인 거야.”
우리는 그녀가 물고 있는 단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거기에 어떤 힘이 담겨 있는지는, 나보다 리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콜브’랑데쥬의 힘으로 악마를 처치하려고 하는 거야.”
* * *
비바치시모는 가파른 대지를 지나, 산기슭을 올랐다.
메마른 검은 흙과 바위뿐인 산은 미끄러웠으나,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났다. 산은 올라갈수록 가팔라졌으며, 끝내 검은 폭풍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눈에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매캐했다. 거대한 산불 한가운데에 떨어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으며, 온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재로 이루어진 바람이 끊임없이 비바치시모를 스치고 지나갔다.
악마를 추종하는 마수들은 성녀의 접근을 인지했지만, 그저 방치했다.
이 시대의 성녀는, 반쪽짜리 껍데기뿐인 성녀였으니까.
입에 문 악마 하나 제대로 정화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타고나지 않은 그저 평범한 별의 자손이었으니까.
그저 전대 예언자가 억지로 지배자의 상을 계승한 탓에, 성녀로 추앙받을 수 있었으니 그랬다.
심지어 지금은 예언조차 포기하지 않았는가?
예언을 하지 않는다고 다짐하고, 악마를 입에 물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예언을 하지 못하는 예언자는, 그야말로 무덤에 누워 있는 사자(死者)와 마찬가지오.’
언제, 누군가에게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이 말은 사실이었다.
악마를 정화하지도, 한마디 예언을 하지도 못하는 성녀는 빈껍데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껍데기뿐일지라도.
세상을 죽음으로 뒤덮을 악마 하나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앙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눈앞, 뼈만 남은 거대한 용이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성녀는 단검을 붙잡았다.
그 손이 쉼없이 떨리고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