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ep38. 엘드리치, 사자(死者)의 구원자 (5)
인간은 마탑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성녀는 그 뒤를 따랐다. 인간이 타고 다니는 애마가 도착했지만, 그는 타지 않았다.
그저 함께 걷는 이들과 두 발을 맞춰 걸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는, 어느새 이야기를 꽃피우고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흙이고 바위고 전부 새까만 이유가, 혹시 정기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산 뿌리가 막힌 곳을 가 봤는데 거기 흙이 대체로 이런 느낌이던데.”
“아, 맞아요! 그러니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우선 아주 오랫동안 태양 빛을 받지 못해서 유기체가…….”
텔라테리가 화답했다. 둘은 한동안 학구열에 불타 대화를 나누었다.
성녀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럴 때 인간은 자연철학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땅에서 고개를 내민 두더지를 보고 천진난만하게 좋아하기도 했다.
“봐. 내가 말했지? 여기는 죽음의 땅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린다니까.”
“……최소한 지금은 맞긴 한데, 예전에는 죽음의 악마 땅이었잖아.”
“봐. 안 죽었잖아. 그런데 죽음은 무슨, 좀 새까만 색이면 다 죽음인가?”
네 다리를 휘저으며 낑낑대는 두더지를 내미는 손, 뱀파이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피식 내뱉었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기에 뭔데?”
“어, 새까만 땅?”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당신 이름을 진짜 못 짓는구나.”
“이름이 밥 먹여 줘?”
“당신 밥벌이에는 관심도 없잖아?”
“이제는 우리 귀족 자제분도 만만치 않네.”
“흥.”
성녀는 주변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크샤론의 선조는 발걸음에서부터 온화함을 담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텔라테리는 자신의 선조들을 뒤따라 가면서 선망과 환희, 그리고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선조님?”
하바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핏기 없는 푸른 피부만 제외하면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
각종 고서에서나 간신히 실증되었던 나크샤론이라는 종족 전체의 시작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텔라테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물쩍거렸다.
하바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 두세요.”
“네? 아, 저, 죄송합니다. 그게,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일이 일어나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으니까요.”
하바는 그렇게 말하며 텔라테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텔라테리의 마음속에 불안함이 싹틀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시대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는 것으로 보여 기뻐요. 나의 딸.”
하바는 다시 앞을 바라보고 걸었다. 텔라테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후배들이 바라보면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냐는 질문이 날아올 것 같은 얼굴이었다.
성녀는 그런 모두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악마를 눈앞에 둔 사람들이 맞나? 엘드리치라 불리는 남자의 거대한 힘을 목도한 사람들의 대화인가?
이들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막 동행하기 시작한 여행자들처럼 데면데면하면서도 친근하게, 서로를 알아보듯 대화를 나누거나 웃음 섞인 한마디씩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하지요.”
성녀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던 레베카가 말했다. 성녀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하얀 레베카의 피부는 재투성이에 회색빛으로 얼룩덜룩했다.
“지난번에 기억하십니까? 인간의 몸으로 기생체를 압도했던 그 숲에서의 일.”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베카는 슬쩍 고개를 돌려 성녀를 바라보았다. 성녀는 레베카의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기억나.”
“목소리를 들으니까 좋네요.”
레베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성녀는 품속에서 마른 꽃잎 하나를 꺼내 바라보았다.
레베카도 품속에서 같은 꽃을 꺼내 바라보았다.
지금은 말라 버렸지만, 그 형태는 여전히 작고 아름다웠다. 지난번 기생체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지하 버섯숲에게 감사의 표시로 받은 꽃이었다.
레베카도, 성녀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도 저 남자는 자신이 얻을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얻어 낸 막대한 가치를 지닌 보물을 숲을 살리기 위해서 깨부쉈고, 숲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기꺼이 바깥으로 나가 위험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성녀도 그때를 떠올렸다.
거대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괴물을 처치했다는 건 그 자체로 영웅적인 행보였다. 조금만 자신을 자랑했다면, 모두의 선망을 받는 영웅이 되어 삶의 남은 부분을 영광 속에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마를 처치하고 예언을 뒤바꾼 위업은 영웅이라는 칭호조차 부족할 정도인데, 저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저 보고 경험하는 것만이 중요할 뿐 다른 것에는 어떤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자입니다.”
성녀는 앞서가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마에 올라타지 않고, 그저 그 고삐를 잡을 뿐인 그의 걸음은 느렸다.
마치, 지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부분에 매료된 겁니다. 본인이 드러내고자 하지 않으니,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군림하는 영웅이 아니라 함께 걷는 동료로 있고자 함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레베카는 잠시 인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성녀 쪽으로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성녀님. 성녀님은 예언자의 상을 계승하셨습니다. 이는 왕좌의 자격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성녀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레베카는 조금 뜸을 들였다. 하지만, 성녀는 이미 레베카를 이해하고 있었고, 레베카도 성녀를 이해하고 있었다.
“저 남자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에 도착한 뒤, 자초지종을 들은 후배들은 돌아온 엘드리치와 그 동료들, 그리고 학구열을 불태운 선배를 환대했다. 마탑에서 가능한 호화로운 식탁을 준비했다. 제국에 알리고 거창한 환대를 준비하려 했으나, 강선후는 극구 사양했다.
식탁은 객관적으로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영웅은 이에 만족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하바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다마는 조심스럽게 식기를 들어 올리는 하바를 그저 미소 지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 서, 선조님.”
텔라테리의 후배, 샤비가 머나먼 조상을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으,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하바는 고개를 들어 샤비를 바라보았다. 햐얀 장발이 조금 흘러내렸다. 샤비는 긴장한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푸른 안광을 마주하는 하바를 어느새 식탁을 둘러싼 모두가 바라보고 있었다.
하바는 미소를 지었다.
“제 자식이 손수 차려 준 밥상에 트집을 잡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은 건 샤비뿐만이 아니었다. 나크샤론들의 거대하기 그지없는 리액션에 강선후는 낄낄 웃었고, 리리는 예의가 아니라며 그 옆구리를 푹푹 찔렀다.
성녀도 자신의 접시 위에 올려진 음식을 가만히 내려 보고 있었다. 방금 씻고 와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구불구불한 붉은 장발이 접시 위로 흘러내렸고, 레베카가 조심스레 치워 줬다.
강선후는 물었다.
“성녀님.”
성녀는 고개를 들어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별의 자손도 음식을 먹어요?”
“응…… 흡!”
성녀는 저도 모르게 대답하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가는 더 이상 자신의 입에 저주받은 단검이 물려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흠칫 놀라고는 했다.
그녀는 조금 멋쩍어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먹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
그리고 성직자가 가장 멀리해야 하는 감정은 쾌락이었다.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기를 들었다. 성녀는 가만히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식기를 들었다.
기억도 채 나지 않는 그리운 감각이 입안에 따뜻하게 머물고, 혀를 감쌌다.
“어때요?”
“……몰라.”
레베카는 평소에 성녀가 눈물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성녀는 언제나 그런 레베카의 의견을 부정하고는 했다.
“눈물이 많으시네. 오늘 하루만 몇 번을 우시는 거예요?”
“입 다물어…….”
리리는 다시 한번 강선후의 옆구리를 푹푹 찔렀고, 강선후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해가 져 가고, 운데라가 이 땅을 온전히 비추고, 성좌들이 떠올랐다. 죽음만이 가득했던 남부 접경지대에서 처음으로 생명이 깃든 가득한 밤이 찾아왔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죽음을 연구할 수 없었다. 죽음이 강림한 땅은 마음만 먹는다면 대륙 어딘가에서 찾아낼 수 있지만 나크샤론들은 이곳을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동족을 결집시키고 싶었다. 이곳에 강림한 엘드리치와, 다시 찾아온 선조들의 영광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하바는 이렇게 말했다.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던 아다마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텔라테리는 그 말을 이해했다. 앞으로 나눌 이야기는 많으며, 우리에게는 이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가 이제 여러분을 떠날 일은 없어요.”
텔라테리는 선조의 배려에 감격하며 신성한 학구열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짧은 밤은 지나가고, 태양이 떠오를 때는 다시 찾아왔다. 이는 이별의 시간을 의미했다.
“정말…… 떠나실 겁니까?”
텔라테리는 안광이 빛나는 그 눈을 강선후에게 들이밀며 그렇게 말했다. 제발 떠나지 말아 주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모습에 강선후는 난처해하면서도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집에 가야죠.”
그렇게 말하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레베카와 성녀가 짐을 꾸리고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는, 강선후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돌아가요?”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목소리를 내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강선후는 그런 성녀를 바라보다가, 허리춤에 찼던 단검과, 소지품 속 악마의 심장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요.”
“……그건 네 거야.”
“단검은 나한테 쓸모도 없는 거. 성녀님한테는 의미가 있지 않아요?”
성녀는 그가 내민 단검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레베카에게 들었어요. 단검을 문 이유요. 교회 사람들이 예언을 강요했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요?”
“……맞아.”
“그러면 어쨌거나 이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업적을 증명하기 위해서든,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든.”
콜브’랑데쥬가 정화되었다는 사실은 이곳의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단검을 물고 있다면, 예언을 강요받는 상황을 계속해서 피할 수 있을 것.
“그리고, 이 심장은, 성녀님이 돌아가서 이곳의 업적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거예요. 그럼 예언 좀 안 해도 앉을 자리가 더 편해지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 심장에서 나한테 필요한 건 룬이었으니까.”
이게 강선후의 의도였다.
“물론 선택은 성녀님 몫이지만.”
뜸을 들이는 것도 잠시, 성녀는 검은 심장을 받아 들었다. 조심스럽게 레베카에게 건넨 뒤, 단검을 천천히 들어 보였다.
그리고, 맨 처음 이 저주받은 단검을 물기 직전처럼, 얼굴 가까이에 대고 바라봤다. 흑빛 날의 광택에 별을 품은 그녀의 눈이 희미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성녀가 죽음을 각오한 이유는 예언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교회의 누군가에게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을 때도 납득했다. 죽을 사람과 죽은 사람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성녀는 그 언제보다도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 인간 덕분이었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여정은.”
성녀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아홉 주신의 축복이 가득할 거야. 모든 성좌들이 내려다볼 것이며, 그 어떤 장애물이 부딪치더라도 지혜와 힘으로 이겨 나갈 거야.”
레베카는 당황한 표정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힘에 부치는 거대한 벽에 닿았을 때는 그에 걸맞은 조력자가 기꺼이 힘을 빌려줄 것이고, 그들은 결국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뤄 내.”
리리 역시 조금 당황한 눈빛으로 성녀와 강선후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강선후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배어 나오는 희미한 미소가 엿보였다.
“그거, 예언 아니잖아요?”
“…….”
성녀는 그런 강선후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다가는.
턱-
단검을 물었다. 부끄럽기라도 한지 얼굴에서 붉은 기운이 느껴졌다.
강선후는 그 당돌한 눈빛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누군가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는 성녀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들을 축복했다.
강선후는 황금 지침을 꺼내서, 남색 보석을 그 뒤에 꽂아 넣었다.
쩍—!
보석은 자석에 빨려들 듯 제자리를 찾아갔으며, 황금 지침은 이제 다음 유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선후는 그 지침의 방향을 읽어 보기 위해 버튼을 눌러 뚜껑을 열어 보았다.
“……어?”
성녀와 리리, 레베카가 그 반응을 보고 지침을 바라보았다.
끼긱, 기기긱—
지침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강선후는 이런 경우를 언젠가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사막에서, 천공의 기사가 건네준 검을 가리킬 때였다. 그 검은 지하에 있었고, 지침을 수평으로 뒀을 때는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지 못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강선후는 지침을 수직으로 세워 들었다.
그러자, 지침은 위를 가리켰다.
그런데.
“……여전히 흔들리는데?”
강선후는 지침을 손바닥으로 탁, 탁 쳐 봤다.
지침의 끝은 한 곳을 정확하게 가리키지 못하고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칫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미세했으나, 강선후는 지침이 이렇게 흔들릴 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황금의 유물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삐이이익——
길게 울리는 소리.
휘파람 소리 같기도 했으며, 뼈로 만들어진 호루라기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어쩌면, 강선후가 가끔 쏘아 올리는 효시에서 나오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모든 비유가 별로 의미 없었다. 이 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매?”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의문을 품었다. 이곳에서 새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죽음의 기운이 걷어진다고 하더라도, 벌써 매가 이곳으로 찾아온다고?
하지만 하늘에는 매는커녕 참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시 소리가 울렸다.
삐이이이——
두 번째 들리는 매의 울음소리.
이 순간 모두가 깨달았다.
이 소리는 하늘 전체에서 울리고 있었다. 하늘이 진동하듯, 온 세상에서 매의 울음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 소리의 정체를 단번에 깨달은 건 리리와 성녀였다.
“이건…….”
리리가 성녀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끝없는 어둠 너머에서 천 년마다 날아오는 매.”
로크 벨라rok bella를 듣고 찾아온다는 아홉 주신 중 하나.
그것이 지척까지 다가왔다는 걸 의미하는 신호였다.
“……렐릭시나.”
“크릉—!”
강선후는 거의 날아오르듯 말에 탔다. 리리도 마찬가지였다. 성녀와 레베카는 그를 올려다보았고, 아담과 하바가 그에게 다가왔다. 텔라테리도 허겁지겁 마탑에서 나왔다.
“바로 떠나십니까?”
“저 소리 들었죠?”
모두가 이미 그 소리를 들은 뒤였다.
“……늦기 전에 대비를 해둬야 해. 다들, 나중에 봐요.”
“나중에, 나중에 뵐 수 있는 건지요?”
“계속 여기 있을 거잖아요? 시간 되면 꼭 찾아올게요.”
“아버지의 여정에 주신의 축복이 있기를.”
아다마와 하바는 가슴에 손을 얹고 예를 표했다. 텔라테리와 나머지 나크샤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성녀는 그저 강선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강선후는 말머리를 돌렸다.
떠나기 전, 뒤를 돌아 성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성녀는 그저 멀뚱멀뚱 강선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단검을 입에서 떼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어, 강선후는 그저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벨라.”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라 비바치시모.”
뒤를 돌아보자, 성녀는 단검을 입에 문 뒤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강선후는 그 모습을 보고 웃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음에 또 봐요. 벨라.”
벨라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