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ep38. 엘드리치, 사자(死者)의 구원자 (6)
우리는 북쪽으로 이동했다. 나흘 전에 이 길에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여기로 오는 길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었지?”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는 그래도 숲길이야.”
리리가 말했다.
고개를 살짝 돌려 리리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렐릭시나에 같이 타고 가서 모르던 사실인데, 리리는 말을 정말 잘 탄다.
“확실히 나보다 훨씬 잘 타네.”
“배웠으니까.”
리리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배운 게 아니지?”
“뭐,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또 탈 줄은 아네? 그게 더 신기한데.”
“예전에 말 한 필 있으면 어떨까 해서 야생마 포획해서 무작정 올라타 본 적 있거든.”
“그때 배운 거라고?”
“아니. 그때 뒷발에 차여서 죽을 뻔했어.”
“……살아 있네. 다행히도.”
“그래서 솔직히 잘 모르지. 근데 네가 알려 줬잖아?”
사실 활쏘기도, 승마도, 나는 할 줄만 알았지 기초부터 꽤 엉망이었다. 나는 평생 그걸 모르고 지냈는데, 리리에게 교정을 받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지.
“리리. 너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물하나.”
이계의 1년은 지구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저 나이에 승마에 궁술에 격투술에…… 아무리 뱀파이어 가 기민함을 타고난다고 해도, 체력도 보통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눈에는 마법처럼 보일 수 있는 특수 능력을 뱀파이어 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까지 리리가 그걸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뭔진 모르겠지만,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니 질문을 항상 미뤘었지.
어쨌거나 나이에 비해서 과하다고 싶을 정도로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이 모든 게 인도자의 상을 타고난 가문에서 태어난 계승자의 숙명인 셈이었다.
“어휴. 나는 그렇게 못 살아.”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고생했다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고개를 가로젓고는 황금 지침을 품속에서 꺼냈다.
다섯 개 보석이 쭈욱 제자리에 맞춰서 나열되어 있었다.
“벌써 다섯 개네.”
리리도 가까이 다가와 황금 지침을 바라보았다.
“이제 반 정도 왔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수집하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사실은 꽤 흥미롭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하나씩 모일수록 진짜로 기뻐하는 건 나보다는 오히려 리리였다.
딸깍-
뚜껑을 열었다. 지침은 기기긱 소리를 냈으며, 수직으로 새우고 나서야 제대로 된 위치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여전히 위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약간 초록빛이 스며들어 있는 이계 특유의 푸른 하늘이었다.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조금 건조한 바람에 한기가 서려 있었다.
“……우리가 잘못 들은 게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계가 워낙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서 뭐든 확신을 가질 수 없지만, 우리가 들었던 건 분명 매의 울음소리였다.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매의 울음소리, 그건 아홉 주신 중 하나인, 끝없는 어둠…….
“어, 그러니까 뭐였더라?”
“끝없는 어둠 너머에서 천 년마다 찾아오는 매. 당신 이름 정말 못 외우는구나?”
그래. 저거.
어쨌든 저게 온다는 신호였고, 그렇다면 정황상, 지금 지침은 그 매를 가리키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나저나, 진짜 부르기 힘드네.
“아니, 그게 이름이야?”
“뭐가?”
“끝없는 뭐시기 어쩌구. 그건 칭호라고 생각하고 이름 같은 건 없어? 운데라나 라 시마처럼.”
“이게 이름이야.”
“……이제부터 그거 이름은 코즈믹 안드로메다 호크다.”
“신성 모독이야.”
리리가 어이없다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주신교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했다간 발발 뛰었을걸?”
“나는 원래 눈치 잘 보는 타입이니까 걱정 하지 마.”
“말이나 못 하면. 저 앞에 마을이야.”
우리는 어느새 숲길을 걷고 있었고, 기역자로 꺾이는 희한한 산길을 타고 오르다가 나를 선지자라고 섬기는, 엘프들이 주로 사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전에 스프리건의 습격을 받았던 곳.
여전히 방책과 벽은 손상되어 있었지만, 마을의 분위기는 대체로 평온했다. 해가 지는 시점이니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는데.
“……?”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리리.”
“응.”
내가 신호를 보내자마자 리리는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근처 수풀 뒤로 들어가 말 고삐를 묶고 왔다.
나도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렐릭시나, 어디 가서 숨어 있어.”
렐릭시나는 내 명령과 동시에 뒷걸음질 치더니, 뒤쪽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걸어나갔다. 우리는 몸을 숨긴 채 방벽을 살펴보았다.
“리리, 이상하지?”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시탑에 사람이 없어.”
문을 지키는 경비도, 감시탑에서 주변을 살펴보는 보초도 없었다. 아무리 방벽이 훼손되어 재건하는 공사를 한다 치더라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밤이 깊은 시간대도 아니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기에, 우리는 말에서 내려 천천히 다가갔다. 날 뒤따라오는 리리가 헌팅 나이프를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방벽을 넘어 들어갔는데.
「킬…… 킬…… 킬…….」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웃음소리였다.
“……에이 씨.”
조금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은폐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선지자님……! 아, 안 됩니다!”
건물의 창문 틈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그렇게 말했다. 최대한 속삭이는 게, 누가 봐도 겁에 질려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킬…… 킬…… 킬…….」
하지만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을 한가운데, 꽤 거대한 모포 더미가 천천히 날아다니며 이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창백한 녹색으로 빛나는 반투명하고 흐느적거리는 천.
……유령이잖아.
「키에에에! 필멸자! 그 몸을 내놔라! 나와 같이 불멸의 영역으이에에에에에!」
“…….”
마찬가지로 긴장이 풀린 리리가 뒤에서 다가왔다. 그 걸음걸이에서 맥빠짐이 느껴졌다. 나 역시 집행자의 검을 늘어트리며, 땅으로 톡 하고 떨어지는 창백한 구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오.”
건물에서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이제는 얼굴이 퍽 익숙한 마을 사람들.
“오오……!”
“오오!”
“오—!”
아, 제발.
“유령을 베어 낸…… 영웅…….”
“광인이시여!”
“대체 어디까지 갈 셈이십니까!”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던 리리가. 콕, 하고 내 귀를 손가락으로 막았다.
“한쪽은 내가 막아 줄게.”
“……고맙다.”
왜 이렇게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익숙하다 싶다가도, 이럴 때는 또 도망쳐 버리고 싶은 기분마저 든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사람들의 환호를 애써 무시하며 바닥에 있는 구슬을 들어 올렸다.
푸른 구슬. 어떤 힘이 담겨 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른다. 단발적으로 만들어진 죽음의 공간에 들어가는 문을 여는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지.
“그게 가능하다는 건, 분명 어떤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뜻일 텐데…….”
하지만 그건 룬도 아니고, 마력도 아니었다. 내가 아직 구체적으로 모르는 제3의 에너지일 게 분명했다.
“음.”
잠깐.
이건 어떻게든 명계와 관련된 에너지일 거 아냐?
머릿속에 탈레의 룬 문자가 그려지며, 그걸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상관관계가 계산되었다.
어쩌면…….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제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광인이시여. 금방 돌아오셨군요.”
“별일 없었죠? 아니, 있었던 거 같긴 하지만…… 이 외에는 없었죠?”
다치거나 잘못된 사람은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내 앞에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엘프 사제가 고개를 들었다.
“네. 그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후로 별일 없었습니다. 유령 사태도 불과 두 시간 전에 일어난 거라…….”
“두 시간이요?”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에서 하늘마저 찢어 버리는 거대한 빛의 기둥을 보았습니다.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것이온데, 혹시 광인께서……?”
내가 한 짓은 맞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광인의 힘이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내 힘이 아니다. 용의 힘이었지.
하지만 용 어쩌구 이야기를 꺼내는 시점에서 정말 귀찮아질 것 같아 그저 넘어갔다.
“왜 갑자기 유령이 나왔어요? 여기는 장례도 제대로 할 거 아니에요?”
“저, 남쪽에서 빛의 기둥이 발한 뒤, 뭔가 불길한 기운을 담은 바람이 한 번 올라왔습니다. 그 뒤로 매의 울음소리가 울리고…….”
“……그렇구만.”
아무래도 가롯이 죽으면서 만들어진 여파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큰일은 없는 거 같아 다행이니, 나는 하룻밤 머물 곳을 요청했다. 사제는 기꺼이 내게 좋은 방과 음식, 물과 술을 가져다주었다.
술은 리리한테 주고, 나는 육포, 그리고 마을에서 제공한 사슴고기와 뿌리채소를 넣은 스튜, 그리고 버섯으로 만든 빵을 먹었다.
“버섯 빵이라니.”
“그거 난 좋아해.”
옆에서 하나 집어먹으며 리리가 말했다. 반대쪽 손에는 피를 반죽해서 만든 페미컨이 들려 있었다.
얘는 뱀파이어면서 은근 피 말고 다른 걸 더 많이 먹는 느낌이란 말이지.
뭐, 됐다. 나는 낡은 책상 앞에 앉아 남색 보석과 분필, 그리고 기록관의 반지와 유령의 구슬을 꺼내 늘어놓았다.
“뭐 하려고?”
“아이디어가 생겼거든.”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그렇게 말했다.
사진 속에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예상한 듯 존슨이 나를 정확히 바라보며 혀를 내밀고 있었다.
* * *
“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이번이 몇 번째죠?”
“네 번째입니다.”
“원인은요?”
고개를 가로젓는 요원의 모습에 정지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럴 때 한숨을 쉬면 사기가 낮아지고, 그걸 엿본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기 마련이었다.
“……또 대피는 아니죠?”
“그럼 정말 장사 망해!”
이계에서 오랜 기간 장사한 사람들 대다수는 이미 안전불감증에 걸려 버려, 자신의 위험보다 장사를 멈춰야 할 상황을 더 큰 문제로 삼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돈벌이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맞았다. 베이스캠프가 유지되려면 그만한 경제 규모가 받쳐 줘야 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정지훈은 이런 생각을 한 뒤, 방어 작전을 맡은 지휘자에게 가서 말했다.
“자동 개인화기 사용 허가 요청을 올려 두었습니다.”
“드디어…….”
“오전에 의료진이 파견될 예정이니, 빠르게 부상자를 이송해 주세요.”
“네.”
베이스캠프를 습격하는 벌레 무리들의 집 위치는 파악되었다. 땅 아래에서 갑자기 솓아오른 그 개미집은 작은 바위산이라 불릴 만큼 거대했고, 그곳에서는 개미라고 부르기에는 퍽 괴상한 생김새의 곤충들이 끊임없이 몰려나와 캠프를 공격했다.
처음에는 별로 큰 공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대처를 하기도 전에 공세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했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산을 뿌려 멀리서 공격하는 개체가 확인되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세 마리의 병정 곤충이 정찰병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하아…….”
한숨을 쉬는 정지훈에게 윤민지가 다가왔다. 그리고 잔 하나를 내밀었다.
“커피?”
“……언제나 여유로우시군요.”
“당신네들이 잘 해 줄 걸 아니까요.”
“민지 씨는 우리 회사를 별로 안 좋아할 텐데요.”
“그때그때 달라요. 어쨌든, 커피?”
“……감사합니다.”
윤민지가 건넨 커피를 받은 그 순간.
“습격이다! 거대한 지휘 개체 확인! 화기함 개방!”
갑자기 공세가 시작되었다. 정지훈은 바깥으로 나갔고, 이제까지 봤던 것 중 가장 흉포하게 생긴 곤충이 이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그런데, 정지훈이 본 건 그 흉포한 곤충 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는 두 마리의 말.
그리고 그 위에 올라 타 있는 두 명의 사람.
“……선후 님.”
강선후였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 위험하다고 외치기는 했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강선후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가 누군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니까.
강선후는 한쪽 손에 처음 보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막대는 은은한 황금빛 뿌리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그 끝에는 남색의 구가 달려 있었다.
대체 저게 뭘까?
정지훈이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시험해 볼까?”
강선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선후는 지팡이를 뻗어, 괴물을 가리켰다.
“키이이이이이익—!”
괴물은 강선후를 무시하고 곧장 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괴물의 송곳니에서는 독한 산이 뿜어져 나왔고, 사람들은 황급하게 방벽의 문을 올리고 있었다.
괴물이 방벽에 산을 뿌리려는 그 순간, 강선후의 지팡이가 흉흉한 남색 빛을 바랬다.
그리고.
“존슨!”
이해할 수 없는 이름과.
“물어!”
이해할 수 없는 명령.
그와 동시에, 강선후의 뒤쪽 멀리에서 녹색을 띄는 창백한 푸른빛의 바람이 달려왔다.
세 줄기로 시작된 그것은 소용돌이처럼 뭉쳐 하나의 형태가 되었고.
“컹—!”
반투명한 늑대의 형상이 됨과 동시에 괴물에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