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ep38. 엘드리치, 사자(死者)의 구원자 (7)
병사들은 유령 늑대가 높이만 2m에 달하는 곤충의 목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느 정도 정황을 파악한 사람은 정지훈뿐이었고, 그렇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그 장면에 커다란 혼란을 느꼈다.
“……유령?”
“아니 씹…… 이 타이밍에…… 요원님! 지금 당장 상부에 보고 부탁…….”
“조금만 기다려봅시다.”
정지훈은 현장 지휘자를 제지했다. 유령 늑대는 굉장히 흉포해 보였는데, 그 모습이 스캐븐 울프와는 궤를 달리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보고되지 않은 종임이 분명했고, 그 말은 이 근처에 사는 생물종이 아니라는 걸 뜻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창백하게 발하는 빛과 그 반투명한 모습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는데.
“키에에엑—!”
예상치 못한 습격에 곤충은 몸부림쳤다. 늑대는 놓지 않았다. 하지만 곤충의 명을 끊기에는 한 끗이 부족했다. 포유류가 아니기에 목이 급소일 리는 없었다.
그걸 마무리하는 건 말을 타고 빠르게 접근하는 강선후였다.
그는 측면으로 빠르게 접근하며 말 위에 두 발을 올렸다.
곤충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더듬이로 말과 인간의 접근을 정확히 인지했다. 유령 늑대에 목이 찢기는 와중에도 그 거대하고 날카로운 앞다리를 거칠게 휘둘렀다.
강선후는 쇄도하는 그 흉기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지척으로 다가오고, 이제는 정말로 위험해진 그 순간.
“크르르릉—!”
깡—!
강선후의 흑마가 그 이빨로 낫 형태의 앞발을 거칠게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말이? 전투를?
그와 동시에 강선후는 날아올랐고, 곤충의 등 위에 돋아 있는 작은 혹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테르마tterma.”
정지훈이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검날을 박아넣는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었을 뿐.
하지만 검날이 꽂힌 곤충은 몸에 경련을 일으켰고,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선후는 곤충이 쓰러지는 타이밍에 맞춰 그 등에서 뛰어내렸다.
“…….”
정지훈은 총알을 수십 발 박아 넣어도 죽을 기미를 보이지 않던 괴물의 시체 옆에서 잠시 서 있다가, 유령 늑대에게 다가갔다.
“……?”
분명히 아까까지는 늑대였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왕-!”
어느새 작고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정지훈은 꼬리를 흔들며 사람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게 뭔지, 강선후는 또 어디에서 이런 미지의 기술을 배워 온 건지.
그가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적절한 때에 돌아오셨습니다.”
“왜 내가 없을 때 항상 난리가 나 있어요? 환영회라도 준비하는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그저, 언제나처럼 이런 인사를 나눌 뿐이었다.
* * *
“크르르릉—!”
“뱉어! 그거 먹는 거 아니야!”
“크릉!”
“어허!”
매번 드는 생각인데, 렐릭시나는 아무래도 좀 훈련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이 필요한 훈련이 아니라, 고양이나 개들이 받는 그런 애완동물 훈련.
우선 뭐든 우선 물어뜯으려고 하는 저 습성 좀 어떻게 해야겠는데.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뭐 먹고 탈 날 거 같지도 않은데.
“항상 강선후 님이 돌아오시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래요? 할 말이 따로 있으신가?”
“할 말…….”
정지훈은 그러더니 땅에 있는 곤충의 사체와 렐릭시나, 그리고 내 왼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언제나 할 말은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문제네요. 그보다 지팡이, 숨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진서연 선임이 보면 눈 돌아갈 텐데요.”
“그건…… 좀 귀찮겠네.”
나는 곧바로 보석으로 바꾼 뒤 황금 지침 뒤에 끼워 넣었다. 존슨은 제 임무를 다하자 내가 무슨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사라졌다. 지팡이에 들어온 남색 빛이 꺼진 걸로 보아 뭔가 법칙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건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
“어디서부터 놀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음…… 이건 비밀로 해 드릴까요?”
“회사에요? 상관없어요. 그보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이에요?”
“아, 이건 미확인된 유사곤충류입니다. 우선 군집 생활을 하는 걸 확인했고…….”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들어, 이놈이 왔을 법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서쪽? 아니면 북쪽?”
“서쪽입니다.”
“정기 먹고 큰 놈들이네. 나온 지 한 닷새 정도 됐어요?”
정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피곤함이 가득했던 그 눈빛에 진지함이 감돌았다.
“네. 정확합니다. 닷새 전, 남쪽에서 거대한 빛기둥이 관측되었습니다. 그 뒤 뜨거운 바람이 이틀 동안 불더니, 근처의 생물 활동 활성화가 감지되고…… 그 뒤에는 이렇게 된 겁니다.”
“…….”
아무래도 가롯이 사망하면서 생긴 여파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힘 두 개가 충돌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
생각 정리를 마치고는 렐릭시나가 여전히 물어뜯고 있는 사체를 살펴보았다.
“……이건 점령 대상이 되는 곳에 페로몬을 흩뿌리는 개체예요. 공격대가 본격적인 공세를 가하기 전, 목표를 획일화하는 목적으로요.”
그 말을 듣던 경비대장이 다가왔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때맞춰 이렇게 도와주셔서…….”
“아뇨. 늦었어요.”
“……네?”
미소 지으며 다가온 경비대장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대상 지역에서 죽는 역할을 하는 개체예요. 지휘 개체인 척하고, 위협적인 척 괴팍한 무기를 온몸에 달고 다니는 이유가 뭐겠어요?”
“……일부러 공격받기 위해서.”
“정답. 페로몬 탱크와 같은 녀석이에요. 목표 지점에서 죽는 걸로 임무를 완수하는 거죠.”
이놈들은 개미, 혹은 벌과 비슷한 군집 생명체다. 한 놈 한 놈은 생물이라고 부르기에도 어쩌면 부족한 놈들이지만, 완전한 군집을 이루게 되면 고등 생물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 세력이 강해진다.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때, 마을 안쪽에서 용병으로 보이는 군인 한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나도 익숙한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박격포?”
“곤충 군락이 발생한 곳에 포격을 가할 예정입니다. 오늘 저녁 경보가 발령될 예정이니 선후 님도 폭음에 주의…….”
“아뇨. 하지 마세요.”
“네?”
“군락, 그거 그냥 전초기지예요. 걔들 본진은 훨씬 아래에 있고, 괜히 군락을 부수면 자극만 더 하는 꼴이거든요. 게다가, 그놈들 학습해요. 포격 당하면 다음 놈들은 땅속에서 접근할걸요?”
정지훈은 이제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하긴, 나였어도 아무것도 모르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당황했을 거 같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 보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경계 태세 풀어도 돼요. 쟤들 보기보다 호구거든. 군락 근처에만 접근하지 말라고만 해 주세요.”
“필요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요청하십시오.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신에, 저기에서 나오는 건 이번에도 제가 다 가져도 되죠?”
“물론입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마을에서 5분 좀 넘게 걸으면 보이는 내 오두막. 아니, 이제는 오두막이 아니지. 그럴듯한 탐험가 길드 사무소였다. 불은 꺼져 있었다.
“집에 왔네.”
리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리리도 여기를 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기분이 좋았다. 언제든 마음 편히 머물 곳이 있다면 그건 행복한 삶이지.
에너지가 남아 있는 몸도 집을 보는 순간 힘이 쭉 빠져 버리는 건 생리 현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명료했던 리리의 붉은 눈빛에도 피곤함이 감돌기 시작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뒷마당에 박힌 말뚝에 리리의 뿔 달린 말 고삐를 묶었다. 렐릭시나는 말을 잘 알아듣는 녀석이니 그저 뛰어놀게 두었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보이는 상담 및 접수 테이블에는 서류 몇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대리 경영을 해 주는 차소희가 열심히 일한 흔적이었다.
안쪽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유리창이 아니라서 닫아 놓으면 햇빛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는데, 그래도 내 눈에는 충분히 보였다.
“커어어어어—.”
차소희가 소파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
리리는 그저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고, 나는 그냥 불을 켜버렸다.
“으에…… 눈 부셔…… 불 꺼…….”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처자고 있냐? 술 냄새 나네? 너 어제 술 퍼먹었냐?”
창문을 벌컥 열었다. 머리가 산발이 된 차소희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응…… 지아 씨 진짜 잘 먹더라…… 이계 사람들은 전부 북유럽 출신인가?”
“서지아? 걔는 어디에 있는데?”
“……언제 갔대.”
집 지키라고 하니까 아주 살판났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니 어지럽혀 있지는 않은 게 관리는 잘 한 느낌이었다. 장사도 계속하고 있었던 듯하고.
차소희는 여전히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소처럼 느릿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번에는 생각보다 빨리 왔네? 멀리 간 거 아니었어?”
“단순 평야면 일주일에 한반도 세 번은 횡단할 수 있어. 거리보다는 지형 하고 뭘 하냐가 더 중요하지.”
“닷새 전에 남쪽에서 일어난 빛기둥. 네가 한 거지?”
“아니, 용이 한 건데?”
차소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용? 지난번에 그 용?”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여는 차소희.
“이번에도 들을 이야기가 많을 거 같아. 안 그래도 지아 씨가 이번에 너 맞이할 준비 하려고 서울 간 건데. 생각보다 빨리 와 버렸네.”
“맞이? 무슨 맞이?”
“술.”
“…….”
“고기도 사 온대.”
“알았으니까. 잠깐 비켜 봐.”
짐을 대충 푼 뒤, 속 편한 소리를 하는 차소희를 옆으로 밀고 앉아 보석을 꺼내 들었다.
남색의 지팡이.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판타지 고전 애니메이션 같은 데에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형태는 그러했으나, 나무뿌리 같은 지팡이와 유물 특유의 은은한 황금빛 때문에 세련된 느낌이 촌스러움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차소희가 말했다.
“……너 이제 마법도 써? 아니, 생각해 보니까 그 전부터 쓰지 않았나?”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줄 생각이었다. 이게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나도 아직 모르는 상황이니까.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예전에 존슨을 찍었던 그 사진.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명계의 텅 빈 풍경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
이제 여유가 생기니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새 짐 정리를 끝낸 리리도 옆에 따로 놓은 1인용 소파에 앉아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만약 세상에 유령이 존재한다면, 그 유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법한 이런 고민에 명확한 답은 없었다. 그야 지구에서는 유령의 존재가 증명된 적도, 정립된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계는 달랐다. 유령이 실존했고, 그게 존재하는 법칙이나 고유의 세계도 정립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와서, 유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죽기 직전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사계는 죽은 자들의 세계가 아니라 양로원 시즌2에 가까울 거다. 그건 퍽 다양성과 재미가 떨어지는 모습이겠지.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답을 알지 못했다. 유령은 언제 만나든 자신의 프로파일을 알려 줄 정도로 친절한 녀석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존슨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탈레talle.”
지팡이에서 시작된 남색의 에너지가 모여든다. 그리고, 형체를 이룬다.
죽은 자의 영역이 피부로 느껴진다. 눈을 감으면 귀신이 보일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사자(死者)의 지팡이.
이 유물에는 죽은 자의 영역을 조금이나마 침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왕!”
정겨운 소리가 들렸다.
맨 처음 존슨을 만났을 때, 강아지 형태의 모습을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 속의 존슨은 그것보다는 확실히 나이가 많았거든.
그때는 내 착각이겠거니 싶었지만, 지금 와서는 명백해졌다. 필요에 따라 생전 어느 시점의 모습을 취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편리하네.
“…….”
헥헥 대며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예전의 기억이 많이 없다. 제정신인 시절보다 제정신이 아닌 시절이 훨씬 많고, 그마저도 사실은 기억이 왜곡되어 있거나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미쳐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존슨은 그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 파편화되어 있었다. 다 맞추면 온전한 모습이겠지만, 조각이 너무 많아 맞추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퍼즐이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왕!”
그래서 나는 이 말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기억보다는 그리움에 의존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재회의 기쁨이 희석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를 뿐이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